옛적 서울 이야기 - 우리가 몰랐던
배한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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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독자는 이 책 『우리가 몰랐던 옛적 서울 이야기』를 읽기 전 '서울'이란 지명을 언제부터 사용했느냐는 점에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학교 다닐 때 '우리나라 수도'라는 의미라고 배웠지만 언제부터 '서울'로 부르게 됐는지는 배우지 못했던 것 같다. 우선 인터넷 네이버를 통해 백과사전을 찾아보았다. 여러 백과사전이 있고, 서울이라는 우리말의 어원이나 서울의 기원 등에 대해서는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상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막상 우리가 지금의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을 서울로 부르게 됐는지는 쉽게 설명되지 않았다. 다시 국어사전을 뒤졌다. 두 개의 풀이가 있다. ① 한 나라의 중앙 정부가 있는 곳. ② 지명: 한반도의 중심부에 있는 도시. 한강 하류에 위치하며, 북한산·도봉산·인왕산·관악산 따위의 산에 둘러싸여 분지를 이룬다. 일제 강점기에는 경성부로 불리다가 1945년에 서울로 명명되었고, 1949년에 특별시로 승격되어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교육 따위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을 비롯하여 탑골 공원, 어린이 대공원, 남산 타워 따위의 명승지가 있다. 대한민국의 수도이다. 면적은 605.39㎢.로 돼 있다. 

독자가 서울에 대해 사전을 찾아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국어사전을 통해 뜻풀이를 찾아볼 생각을 아예 안 했던 것이다. 학교 다닐 때 영어사전은 사전이 때묻고 닳아 아무데나 버려도 아무도 주워가지 않을 정도로 이용했는데 '왜 서울을 한 번도 찾아보지 않았을까?' 내심 부끄럽고 민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서울이란 명칭과 기타 다른 정보를 조금 더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은 다소 심적 보상이 되었다. ‘서울’이라는 단어는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 보이는 국호의 서라벌, 서벌(나라, 도성의 뜻)과 동의라고 한다. 이후 우리 역사의 모든 기록은 한자로 했고, 한자가 국가 공용어로 사용됐기 때문에 주로 한자음이 지역별로 다른 점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 시대에 말하는 일종의 사투리로 발음됐던 것 같다. 중국 본토에서도 한자는 문서 작성에 공용으로 쓰였지만 막상 발음하는 것은 통일 왕조였을 때도 지금의 우리 '표준말'처럼 통일 발음이 없었다고 한다. 우리 역시 비슷한 정책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독자가 이처럼 추정하는 것은 가장 최근 왕조인 조선시대에도 한자만 사용했고, 일반 백성이나 사회 활동이 제한돼 있는 부녀자들은 한자를 따로 배우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정부 고위관료 등에서는 책을 읽을 정도의 한자 교육을 가정에서 시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더욱이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해 널리 쓰이기를 바랐으나, 사대(事大)를 국시로 했던 조선에서 다른 언어를 만들어 쓴다는 것은 중국 황제에 대한 '반역'으로 생각해 한글은 정부에서 사용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벼슬을 하지 못하는 일반 백성이나 부녀자들 사이에 한글은 쉽게 퍼져 그런 대로 명맥은 유지했을 것이다. 편지를 쓴다거나 최소한의 뜻을 펴기에 발음을 한글로 표기하는 것은 가능했으니까 필요한 일부 부녀자들은 배우기도 했을 터였다. 조선 중기 이후 한글소설도 발표되고, 또 배우기가 쉬워 필요한 이들은 배우기도 했을 터였다.

조선시대에도 우리나라 수도는 당연히 한자로 표기했다. '한성(漢城)' 혹은 '한양(漢陽)'으로 표기했을 터다. 그러나 발음도 '서울'로 하지는 않았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국한문을 혼용하기 시작했다. 이때도 한성이라 표기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글학자도 거의 없는데다 한글 전용으로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때였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식으로 '경성(京城)'으로 표기했다. 일제 강점기 내내 경성으로 사용하다가 해방 후 비로소 '서울'이 대한민국의 공식 명칭이 됐다. 표기법은 다르지만 조선시대 수도로 된 이후 지금까지 서울은 우리나라의 중심지였다. 이 책 『우리가 몰랐던 옛적 서울 이야기』(이하 『옛적 서울 이야기』)의 저자 배한철도 〈서문〉에서 19살 때 처음 상경해 서울역을 나서며, 마주했던 역앞 건물(대우빌딩, 현 서울스퀘어)을 보고 적지않은 충격을 표현하고 있다. 고향에서 기껏해야 2~3층의 건물을 보다가 압도적 위용의 건물 앞에 놀랐다는 이야기다. 저자는서울살이를 하는 동안 알게 됐던 서울의 각종 역사, 기억, 기록들이 무척 재미있고, 한편으론 변화무쌍한 산업화 시대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많은 기억을 되살려 보고자 이 책의 집필했다고 밝힌다. 

"송파구 잠실 일대의 한강은 더욱 변화무쌍한 역사가 있다. 123층의 롯데월드타워가 우뚝 선 잠실이 애초 한강의 북쪽 편 뚝섬(광진구)의 땅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잠실은 조선 제11대 중종대 한강의 홍수로, 뚝섬 한가운데에 물길이 만들어지면서 섬으로 분리된다. 원래의 이 일대 한강의 명칭은 송파강이었으며 홍수로 새로 만들어진 물길은 신천으로 불렸다. 송파구 신천동 지명이 여기서 유래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한강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면서 잠실섬을 육지화하고 송파강은 막아 인공호수를 조성했다. 이것이 오늘날의 석촌호수다."(p.7)



이 책은 2부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조선의 서울, 한양〉, 2부 〈한양의 사람, 삶의 이야기〉이다. 1부엔 「낯선 조선, 뜻밖의 서울」「지옥보다 못한 최악의 헬조선」「혼돈과 격동의 역사」「발길 닿는 곳마다 명승지」 등 4개의 장과, 2부에 「조선의 주인, 경화사족」「같은 듯 서로 다른 인생」「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오백년 사직 지킨 이데올로기」 등 4개의 장으로 각각 구성돼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한양은 조선 왕조의 수도로서 자리 잡았다. 흔히 왕과 신하가 오가던 정치의 무대로 기억되지만, 실제론 그보다 더 넓고 복잡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얽힌 도시다. 그리고 그들의 일상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서울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옛적 서울 이야기』는 그동안 따분하게 배워왔던 정치사나 왕조 중심의 조선으로만 바라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도시 한양의 진짜 얼굴을 골목과 사람들 사이에서 찾아낸다고 저자는 밝힌다. 궁궐이 아닌 주택가, 왕이 아닌 백성들의 내밀한 일상 속으로 들어가 조선시대 한양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내어 과거의 한양을 시간 여행하듯 돌아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1부 〈조선의 서울, 한양〉에서는 도시의 구조, 경제, 명소, 위기와 같은 큰 이야기를 다룬다. 선입견과는 달리 한양은 소고기 소비량이 엄청났던 미식의 도시였다고 한다. 또 왕궁이 있는 도시이니만큼 독특한 내시들의 사회와 복잡한 신분 질서가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지금처럼 주택 광풍과 부동산 가격 폭등이 벌어지는 등, 한양은 정치 무대를 넘어선 생동감 넘치는 도시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2부 〈한양의 사람, 삶의 이야기〉에서는 역사책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노비, 무당, 군인, 상인, 여성 등의 시선을 따라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추적한다. 청계천이 거대한 도시 하수도로 쓰였고, 지금의 이태원과 한남동은 공동묘지였으며, 왕십리와 서대문은 서울의 식자재를 공급하는 배추와 미나리 밭으로 유명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몰랐던’ 서울의 역사를 재발견하게 해준다.

서울 도심은 곳곳이 역사 이야기의 보고다. 당연히 나라의 도읍지로 518년을 지속했고, 조선이 멸망하고도 115년이 지난 수도 서울은 조선시대 수도로 지정된 지 700년이 훌쩍 넘었다. 세 번의 외침과, 일제에 의해 망국의 한을 품고, 강대국들이 자신들 마음대로 분단시키고 또 자신들이 싸우느라 납북간 전쟁까지 일으켰다. 서울은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폐허을 딛고 민주국가로서의 발돋움하는 데 구심점 역할을 했고, 산업화와 함께 민주화를 위해 국민들이 피와 땀으로 일구어온 도시다.


서울의 고갯길은 우리 조상들의 삶과 애환이 서려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를 꺼낸다. 저자에 따르면 서울은 외사산(바깥 4개의 큰 산), 내사산(안쪽 4개의 큰 산)에 둘러싸여 있고 여기에서 발원한 물길이 한데 모였다가 다시 한강으로 흘러나가는 지형이어서 무수한 구릉지와 고개가 존재했으며 현재도 그 흔적이 어렵지 않게 찾아진다. 종묘 오른편의 종로4가 일원에는 난전인 이현(梨峴)시장이 존재했다. 이현은 순수 우리말로 배오개(배고개)라고 했다. 고갯길 주변으로 배나무가 많이 심겨 있다고 해서 이렇게 지칭했다. 그런데 조선 후기 이곳에서는 상인들이 돈과 물건을 노리는 도둑떼가 활개를 치는 무법지대였다. 따라서 대낮에도 100명이 모여야 고개를 겨우 넘어갈 수 있는 지경이었다. 이상한 것은 배오개가 사람의 발길이 뜸한 한적한 지역이 아니라 관허시장인 종로시전에 인접한 번화가였다는 점이다. 

"허가를 받지 않은 상인들이 워낙 부자여서 도적들이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강도질을 감행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시기 서울 인구는 30만 명을 넘어서게 된다. 이로 인해 각종 도시문제가 불거지고 살인 등 강력범죄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 조선 조정은 엄벌주의 사형제를 시행한다. 사람들이 붐비는 시장 한복판에서 중대 범죄자를 잔인하게 처형했다.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사형 장면을 볼 수 있도록 해 일번백계의 효과도 얻고자 했다. 한양도성의 가장 번잡한 거리인 종로 시전 일대와 도성 밖 최대 시장 중 하나인 서소문 밖 네거리는 끔찍한 방법으로 죄수를 죽이는 한성부의 대표적인 사형장으로 악명을 떨쳤다.

오늘날 부촌으로 각광받는 한남동과 옥수·금호동, 마포, 광희문 밖 신당동이 무덤으로 가득한 공동묘지였다는 것도 매우 낯설다. 산 전체를 빼곡하게 뒤덮은 묘지를 보고 외국인들은 "천연두 흉터 같다"고 묘사하기도 했다고 저자는 귀띔한다. 묘지는 오늘날 대표적인 혐오시설로 인식돼 화장장만 들어서도 인근 주민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결사반대를 외친다. 그러나 땅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서울은 과거 '무덤의 도시'였으며 서울 사람들은 묘터 위에서 살 수밖에 없었고 또 죽어서는 그 자리에 묻혔다. 

조선시대 하면, 극소수 양반들만 모든 권리를 독점해 떵떵거리며 살고 일반 백성들은 노예와 같은 비참한 삶을 살았을 것으로 지레짐작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물질적으로 낙후되고 궁핍했다는 것 흔한 인식이라고도 말한다. 이런 고정관념은 일제강점기 식민주의를 정당화하고 미화하기 위해 조선을 의도적으로 폄훼하는 역사의식을 주입한 것이라는 저자의 설명에 다시 한 번 반일의식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내시는 가난과 신분의 한계를 벗어나는 방편으로 자발적으로 거세하고 자원하는 사례가 많았다. 고종 34년(1897) 대한제국 성립기 직전까지만 해도 여의도에 움막으로 된 고자 시술소가 영업했다고 구전된다. 내시는 생식기능이 없었지만 어엿이 부인과 자녀를 거느렸다. 아내가 죽으면 재혼했고 첩까지 있었다. 생활고에서 벗어나고 왕실과 줄을 대기 위해 평민뿐 아니라 양반 가문 규수들도 서로 내시의 아내가 되고자 했다.(p.283)


종로구청 옆 이마빌딩은 궁중에 필요한 말을 기르는 사복시가, 청계천 마전교에는 말과 소를 빌려 주거나 매매하는 세마장이 위치해 말의 배설물이 그대로 하천으로 유입됐다. 나라에서도 굳이 단속하지 않았다. 세종 때 “도읍은 인가가 번성하고 그곳의 개천도 더러워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어효첨의 주장을 받아들여 오물투기를 방관했다. 동물 사체, 유아의 시체까지도 밤중에 몰래 버렸으며 종종 살인사건도 발생했다.(p.314)


이 책은 서울을 주제로 한 역사 교양서지만, 기존의 도시사와는 결이 다르다. 정치 엘리트가 아닌 사람들의 자리에서 조선을 들여다보며, 현재 서울의 도시성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생활사 기반의 인문 콘텐츠다. 서울의 현재는 조선의 골목 위에 있다. 『옛적 서울 이야기』는 그 오랜 시간의 지층 위로 다시 한번 걸어보게 만드는 책인 셈이다.


저자 : 배한철


박물관과 유적지를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문화재 기자. 발품을 팔아 얻은 생생한 체험으로 문화재와 역사에 관한 칼럼을 쓰고 관련 책을 꾸준히 출간했다. 대학에서는 이와 전혀 무관한 경영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매일경제신문〉에 입사해 정부 부처를 출입하면서 정책 기사를 주로 써왔다. 하지만 학창시절 관심분야였던 문화재와 역사 공부를 꾸준히 이어온 덕분에 2011년부터는 문화재 분야를 취재하며 못다 이룬 역사학도의 꿈을 마음껏 펼치고 있다. 국보에 깃든 고유한 아름다움뿐 아니라 국보가 간직한 이야기에 매료되어 역사서와 고문헌을 깊숙이 탐독하고, 전국 유적지를 구석구석 답사하며 이 책을 썼다.

현재 〈매일경제신문〉과 네이버에 한국사와 고미술, 고전 등을 주제로 다양한 칼럼을 쓴다. 저서로 《한국사 스크랩》(2015년 세종도서 선정) 《얼굴, 사람과 역사를 기록하다》(2016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달의 책 선정, 2017년 세종도서 선정) 《역사, 선비의 서재에 들다》 등 베스트셀러 역사 교양서가 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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