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다르게 걷기』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과 '삶'을 정의해낸 10명 인물들의 인터뷰집이다. 이들 10명의 인터뷰이는 각기 다른 직업들을 갖고 수많은 모호함과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대로 삶을 일궈온 사람들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해 자신에게 끝없이 묻고, 자신이 내린 선택에 매진함으로써 어느 정도 일과 삶을 확보한 사람들이라고 저자 박산호는 전제한다. 더 쉽게 말하자면 '성공한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화려한 성공담이 없다. 이 책에 등장한 인터뷰이들은 '성공했다'는 형용사를 덧붙여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듯하다. 그런데 왜 이들의 삶이 '성공적'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이 의문은 독자의 생각이지만 깊게 생각해보면 자본주의 사회에 너무 깊이 빠져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운 대로 말하자면 '성공'의 개념은 '돈 잘 버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는 아니다. 이 인터뷰이들처럼 자신의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마침내 목적한 바에 이르는 것을 가리킨다.
독자는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이란 개념이 살아온 만큼 오염됐다는 지적에 변명할 핑계거리를 찾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를 거치자마자 남북 간 다른 이념으로 전쟁마저 겪었다. 종전 후 폐허에서 먹을 것도, 잘 곳도 없는 상태에서 미국 등 선진국의 원조로 허기를 채웠고, 잠은 겨우 바람 막을 정도의 가건물 혹은 움막 같은 곳에서 해결했다. 그래도 한마음 한뜻으로 불과 수십 년 만에 선진국 대열에 올라설 정도로 우리는 부지런했고, 치열하게 살았다. 돈을 버는 일이라면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24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달려 들었다. 교육열은 과거 왕조시대부터 있었던 유전적 요인에다 자식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결심이 더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젠 '기적'이라고 부를 만큼 풍요로운 나라의 대열에 줄을 맞췄다. 이유는 간단했다. 결과적인 판단이지만 돌이켜보면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성공했던 것은 자본주의 사회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즉 땀 흘려 번 돈이 자신의 돈이라는 확신 때문에 별 보고 출근하고 별 보고 퇴근하는 일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이란 개념이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쟁취하고자 하는 목적물이다. 자본주의 논리대로라면 당연히 '돈'이 성공과 거의 같은 의미라는 사횡서 오랫동안 살아와 독자의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 『다르게 걷기』를 읽기 전 자본주의에 대해 확실히 알고자 네이버 백과사전을 찾아봤다. 이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자본가가 노동자 계급으로부터 노동력을 사서 생산 활동을 함으로써 이익을 추구해 나가는 다양한 생산양식이나, 이를 토대로 형성된 경제구조 또는 사회 제도를 표시하는 용어이다. 한편으로 자본주의는 단순한 화폐경제를 의미하기도 하고, 생산품을 생산하여 이윤을 획득하려는 경제 체제로도 사용되는 용어이다. 이 단어는 명확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자본주의가 확산되면서 '독점자본주의', '국가자본주의', '금융자본주의', '후기자본주의' 등의 다양한 수식어가 붙음으로써 그 개념은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특징은 ① 자신의 사용이 아니라 이윤획득을 목적으로 한, 상품생산이 이루어진다. ② 사유재산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 ③ 모든 재화에 가격이 성립된다. ④ 재화의 가치는 대부분 화폐의 중개를 통해 이루어진다. ⑤ 노동이 상품화되는 계약관계를 지니는 노동력 시장이 형성된다. ⑥ 자본의 소유주에 의해서 생산과정에 관여한 모든 사항이 통제된다. ⑦ 사회주의의 계획 경제에 비해, 무계획적이다. 이를 애덤 스미스(Smith Adam)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가 움직인다고 설명한다.(문학비평용어사전)
독자가 자본주의 개념을 다시 한 번 찾아 지식으로 머릿속에 새긴 것은 "개인적인 아픔, 반복되는 실패와 외로움의 시간을 통과하며 자신만의 철학과 삶의 세계를 구축해낸 이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성공담보다 눈부시다."고 쓴 소개글을 읽고서다. 저자 박산호는 책의 앞 부분 〈저자의 말〉을 통해 인터뷰이들의 공통점을 한 줄의 글로 정리한다. "회사라는 틀 안에 들어가지 않은, 혹은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자기만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 이들은 '일'을 스스로 정의하고 손수 빚어낸 사람들이고 모두 거창한 성공을 꿈꾸기보다는 자기다운 삶을 원했다. 결국 자신만의 우주를 구축했다.(p.5~6)

저자는 그들을 직접 만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들이 일궈온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랜 세월 프리랜서로 살아온 나도 영감을 받고 싶었고, 동지애를 느끼고 싶었고, 덜 외롭고 싶었다고 털어놓는다. 특히 저자는 무엇보다 남들이 다 가는 길을 가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실질적인 증거들을 모으고 싶었다고 밝힌다. 1년 넘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들이 하나같이 '처음부터 확신이 있었던 사람들은 아니라는' 점이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책에 따르면 그들도 시작은 불안했고, 두려웠다. 생계의 어려움도 실패도, 좌절도 겪어야 했다. 사회가 그들의 작업을 이상적으로만 바라본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정직하게 일하고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그들은 자신만의 철학과 세계를 쌓아 올렸다. 방식과 모양은 저마다 달랐지만 모두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마음, 누군가의 곁에 서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수많은 역경을 해치며 자신의 자리에 다다른 이 특유의 내공도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그들이 이룬 가장 큰 성취요 자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보다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실천을 선택하고 이어온 사람들. 인터뷰하는 내내 이들의 언어에서 조심스러운 용기와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삶의 강각을 배울 수 있었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저자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면 좋겠다고 귀띔한다. 조금만 더 용감하게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며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살아가고 싶은 인생이 무엇인지 질문해보기룰 권유한다. 사회가 정하고 용인하고 허락하는 틀 안에서만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그 자유로운 상상이 누군가에겐 삶을 바꾸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 책이 역할은 충분하다고 집필 취지와 바람을 은근히 내밀고 있다.
타인의 인정이 아닌 스스로에게 정직하기 위한 몸짓에서 나온 그들의 언어는 그 어떤 지적 성취보다 단단하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단순한 직업을 넘어 존재의 본질을 고민하게 되고, 삶을 구성하는 시간과 태도, 감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한 편 한 편 생의 온도와 속도를 조절해주는 뭉근한 사유의 기록이며 통찰 깊은 인문학 강의이다.

이 책에는 인터뷰의 대가 김지수, 특수청소 전문가 김완, 지식 큐레이터 전병근, 이집트 고고학자 곽민수, 티베트 불교 전파자 용수스님, 웹소설 작가 최영진, 성교육 강사 심에스더, 인권위 조사관 최은숙, 도시 연구가 정수경, 그리고 인권 활동가 변재원이 인터뷰한 내용이 들어 있다.
1년 넘게 이어진 인터뷰는 저자의 치열한 호기심과 사람을 향한 세심하고 따스한 시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번역가이자 소설가, 에세이스트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저자는 대상자의 말을 ‘기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깊은 고민이 담긴 질문을 통해 인터뷰이 스스로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맥락을 길어올리기도 했다. 그는 시종 성공의 외피가 아니라 선택의 내면을, 결과가 아닌 과정을 마음으로 듣고 담아내려 애썼다고 강조한다. 그 결과 이 책은 단순한 인터뷰집을 넘어 삶을 감각하는 성찰의 텍스트가 되기를 바랐고 바람대로 이어질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그러나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증거는 무수히 많다고 한다. 이 책은 그 증거를 차곡차곡 쌓아 우리 앞에 성실히 펼쳐 보이는 것이라는 게 저자의 말이다. 불투명한 앞날 앞에서 흔들리는 이들에게, 스스로의 방향을 찾고 싶은 이들에게,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하나의 나침반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20, 30대는 무대에서 날아다닐 수 있는 온갖 기술을 연마한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쓴 글이 ‘나 글 잘 쓴다’라고 과시하는 형태였다면 지금은 치열하고 최적화된, 간절한 글쓰기입니다. 굳이 비교한다면 저는 지금의 글이 좋습니다. 나를 구원하고, 독자에게 도움을 주려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으니까요. 그것에 항상 최적화된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p.17) - 「인터뷰의 대가 김지수」 중에서

이 책의 인터뷰이들은 각기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 독자는 이 가운데 '특수청소 전문가' 김완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얼마 전 읽은 소설에서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을 주인공으로 나와 감동적인 내용을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소설 속 주인공은 '유품 정리사'란 명칭의 직업을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직업이 생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초고령 사회를 우리보다 30년 이상 먼저 진입한 일본에서는 지금은 꽤 유망한 직업으로 정착돼 있다고 한다. 인터뷰이 김완 역시 이 직업을 갖게 된 게 그리 오래 되지 않은 듯하다. 제목은 「진자리에 선 사람」이다. 글 맨 앞에 저자 이름 아래 짧은 소개가 있다. "출판과 트랜드 산업 분야에서 일했다. 몇 년 동안 일본에 머물며 취재와 집필을 하면서 죽은 이가 남긴 것과 그 자리를 수습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수 청소 전문가로 일하며 죽음 현장에 드러난 인간의 삶과 존재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직업명에서는 별 거리낌이 없지만 막상 하는 일은 쉽게 적응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특수청소 전문가 김완에게 "어지간한 멘탈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뭔가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해 "죽은 사람의 진자리를 보면서 내가 죽었을 때 남는 흔적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느끼다 보니 공감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렇게 고인과 나의 거리감이 좁혀지다가 어느새 나왁 고인을 동일시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지요. 이런 것들이 이 일을 10년째 하게 되는 동력이 됩니다. 그리고 돈, 즉 경제적 요건도 중요한 원동력이 되고요."(p.37)
저자 : 박산호
영어로 쓴 소설을 한국어로 옮기고, 에세이와 칼럼을 쓰고,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사람들을 찾아가 인터뷰한다. 한양대학교 영어교육학과에서 공부하고 영국 브루넬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영화 ‘툼스톤’의 원작 소설 『무덤으로 향하다』 번역을 시작으로 번역가로 데뷔. 이후 스릴러의 거장인 로렌스 블록의 소설 시리즈, 영화 ‘월드워Z’의 원작 소설인 『세계대전 Z』, 영화 ‘차일드 44’의 원작 시리즈, 여성 첩보원 시리즈 ‘레드 스패로우’의 원작 소설,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의 원작 『토니와 수잔』, 그래픽 노블 『사브리나』, 『양들의 침묵』을 쓴 토머스 해리스의 『카리 모라』 등 다수의 스릴러 명작들을 20년 가까이 번역하면서 스릴러 문법과 구조를 익힌 스릴러 매니아. 최근에는 스릴러, 청소년 등 장르를 넘나들며 소설을 집필해 많은 독자를 만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오늘도 조이풀하게》《너를 찾아서》《소설의 쓸모》《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공저)《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