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러시아 문학' 하면 떠오르는 것은 독자 개인 입장에서는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다. 러시아 문학 전반에 걸쳐 한 번도 배운 적 없고, 책도 읽은 적이 없는 독자로서는 러시아 문학의 특장점이나 독창성에 대해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다. 다만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의 작품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전쟁과 평화』 등은 읽어봤기에 이 고전 작품을 쓴 두 사람이 먼저 떠오른다. 사실 유럽 역사에서 보면 러시아는 유럽 변방의 비문명 국가의 이미지가 강하다. 우리가 읽은 대부분의 문학 작품들이 서유럽 중심이기 때문일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서유럽의 문화에 대한 목마름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서유럽에서 배척되는 러시아로서는 독창성이 강한 작품이 잉태된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독자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유럽 고전 문학가들은 셰익스피어와 괴테, 빅토르 위고 등이다.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 서양의 문물을 접한 우리는 당연히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것들이다. 즉, 일본이라는 한 다리를 더 거쳐서 들어왔다. 영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우리로서는 일본으로 번역된 것을 읽었고, 해방 후에도 여전히 일본의 그늘에 갇혀 있었던 사실은 씁쓸하다. 이런 사실은 그만큼 오랜 세월 혹독한 일본의 식민지 생활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미국의 6·25 참전으로 우리나라를 지켜주었다는 사실 또한 서양 문명을 별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의 문명은 식민지의 상황을 스스로 극복했고, 대다수 국민들이 유럽 이주자들이기 때문에 유럽 전통의 문명과는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우선 실용적이고 개척적이다는 점이다. 신대륙 새로운 나라이기 때문에 불가피했던 것이다.
이 책 『러시아의 문장들』은 러시아 출신으로 한국으로 귀화한 ‘대한러시아인’ 벨랴코프 일리야의 최근작이다. 한국인에게 러시아를 친숙하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책으로 화제가 된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이후 두 번째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은 고전부터 현대 문학에 이르기까지,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 26인의 대표적인 문장 36개를 뽑아 러시아의 문화와 정서를 한국인들에게 알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러시아인은 러시아 문학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크다. 유명 문학 작품의 문장이 각종 미디어는 물론, 일상의 대화에서도 인용되는 일이 흔하다. 그만큼 러시아인들은 문학과 친숙하며 문학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한다. 따라서 러시아 문학을 이해하는 것은 러시아인과 러시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반대로 러시아 문화를 이해하면 러시아 문학이 더 친숙해진다. 러시아 문학이 어려운 이유는 한국인에게 낯선 이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러시아인 특유의 사고방식과 정서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 여성이 보수적인 사회에서 겪는 사회적 억압이 보인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러시아인의 눈에는 사회에 도전한 인간이 받는 심판으로 읽힌다. 독자에 따라 다른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기에 명작이지만, 러시아인의 정서를 모르면 그만큼 놓치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저자는 러시아가 기묘하면서도 모순과 역설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싹틔운 러시아 문화는 러시아 문학을 불멸로 이끌었다는 것이 저자의 러시아 문학관이다. 『러시아의 문장들』은 문학을 통해 우리 정서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러시아 문화로 창을 내어 들여다보게 해주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책의 〈프롤로그〉를 통해 러시아 문학을 개괄한다. 자신이 학교 다닐 때 러시아에서 받은 문학 교육의 기억을 잘 풀어내고 있다. 이에 따르면 러시아는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문학 수업이 이어진다. 문학 수업은 고등학교를 마칠 즈음엔 해외 문학까지 배우긴 하지만 주로 러시아 문학을 배운다. 중학교에서는 이해하기 쉬운 단편 소설이나 전래 동화, 시 등을 많이 다룬다. 고등학교에서는 의미가 깊고 생각을 많이 하면서 읽어야 하는 작품을 많이 읽힌다.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 같은 작가는 러시아에선 고등학교 때 배우는 작가들이다. 저자가 말하는 러시아 문학 수업은 우리와 별 다를 바가 없는 듯하다. 앞서 독자가 언급한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전쟁과 평화』 등을 독자도 고등학교 시절 읽었다. 물론 완역본이라기보다 발췌본에 가깝다. 고등학교엔 입시 위주로 수업이 바뀌기에 몇 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대문호의 작품을 제대로 읽기에는 부담스럽다.

독자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러시아는 소련이라는 국가 이름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었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에 따라 공산주의자들이 세운 나라다. 공산주의라는 개념은 경제에서의 개념이다. 원시 공산주의(함께 사냥이나 수렵을 통해 얻은 식량을 공동으로 일정하게 배분한다)의 이념에 따른 경제의 개념이다. 레닌과 트로츠키 등 소련 건국의 최고 지도자들은 공산주의 이론에 깊이 심취한 사람들이다. 사실 1917년 혁명 이전의 러시아는 제정이다.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은 거의 망가진 상태의 국가 상황을 보여준다. 유럽에서 마지막까지 농노 제도를 유지하던 러시아다. 관료들도 귀족들이 차지했다. 제정 말기의 러시아는 부정부패와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황실, 귀족, 고위관료 등이 국민의 생활을 돌보지 않아 유럽에서 이미 문명권 밖으로 인식되어 온 시기다. 헐벗고 제대로 먹지 못하는 일반 국민들은 체념으로 하루하루를 살다 서유럽의 국민들보다 수명도 짧았다는 인구 통계도 있다. 여기에 가장 적절하게 파고들어간 게 마르크스 이론이라고 한다. 더욱이 공산당 혁명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수행해 새로운 인민의 나라가 세워져야 한다고 돼 있다.
당시 극한의 고통으로 내몰린 러시아 국민들에게는 너무나도 달콤한 이론 아니었을까 싶다. 귀족 중심에서 사회의 새로운 지식인들이 정치의 중심으로 떠오른 유럽에 비해 러시아는 아직도 전제 군주의 틀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악정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실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도 제정 러이사 사람들이다. 그들이 활동하던 시절은 제정 러시아 말기적 사회 현상이 드러나 있다. 이에 두 대문호의 눈에는 곱게 보일 리 없다. 공산화 이후 러시아 문학은 우리는 거의 접하지 못했다. 남북한 분단이 장기적으로 이어진 것도 사실 이념과 사상이 다른 데 있다. 일제 강점기 항일 운동에는 뜻을 함께했지만 일본이라는 적이 사라지고, 갑자기 해방이 되자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 사이의 전후 처리에 대해 이미 약속된 대로 남북 분단은 우리의 뜻이 아닌 강대국의 논리에 의해 결정되었다. 사실상 내전인 6·25에 미국과 소련이 개입한 것도 자신들의 이념에 바탕해 치러진 것들이다. 전후 러시아 문학은 분단 남한에서는 금기였다. 공산주의 체제의 문학이나 예술은 물론 삶의 모든 분야에서 적대시됐다. 러시아의 공산혁명의 기초 이론이 된 마르크스의 모든 저작물은 금지된 출판물이 되었다.

우리가 러시아 문학이나 예술에 익숙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려다 이야기가 조금 다른 데로 흐르는 것 같다. 저자 일리야 벨랴코프의 〈프롤로그〉에 다시 집중해본다. "러시아 문학은 꽤 수준이 높고 훌륭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문학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러시아인으로 자부심을 가질 만한 문학의 거장들이 독자가 알기에도 적지 않다. 앞서 독자에게 러시아 문학을 가장 많이, 그리고 깊게 알려준 두 명의 대문호 이외에도 푸시킨, 투르게네프, 안톤 체호프, 막심 고리키도 익숙한 이름이다.
러시아에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문인들이 많다는 저자의 말은 낯설지 않다.
저자는 〈프롤로그〉#2에서 러시아 사람들의 문학 사랑에 적잖은 자랑을 늘어놓는다. 독자가 이 책을 읽고 알고 싶은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가 적혀 있다. "러시아 사람들은 스스로를 '전 세계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대중들이 그렇게 인식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다. 학교에서는 문학을 진지하게 배우고 일상에서도 책을 가까이하는 분위기다. 도시에는 서점도 많고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다. 퇴근 후에 집에서 밥을 먹고 편하게 차 한잔을 마시면서 책을 읽는 건 러시아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책에 대한 취향과 장르가 다양하지만 러시아에서 책 읽는 사람을 보는 건 어렵지 않다."(p.10)
저자가 한국으로 귀화한 이후 한국 사람들은 책을 읽는 것보다 컴퓨터를 들고 카페에서 일하거나 공부하는 모습이 더 친숙하다"는 지적에 이해가 간다. 러시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대한민국은 짧은 시간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모두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이 힘이 어디서 나오겠는가?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저자에게 말해주고 싶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을 거친 후 30~40년만에 두 가지를 이뤘다. 세계가 놀랐다. 서양의 선진국들도 자신들도 수백년에 걸쳐 이룬 것들을 한국인들은 매우 짧은 시간에 이뤄냈다.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독자는 러시아의 귀화인 저자에게 "삶에 대한 치열한 의지 때문"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러시아인들에게 문학은 일상의 일부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뉴스나 정치인의 연설은 물론 일상의 대화에서도 문학 작품의 한 줄이 인용된다고도 말한다. 그만큼 러시아 문학은 러시아 문화와 불가분의 관계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러시아의 대문호뿐 아니라 현대 러시아 문학의 거장들까지, 러시아 사람들이 즐겨 인용하는 문장 속에 담긴 러시아의 문화와 정서를 흥미롭게 전한다. 저자의 집필 취지로 판단된다.

사실 우리 입장에서 러시아 대문호들의 작품은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이라고 배웠고 생각도 하지만, 막상 도전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러시아 문학이 어렵고 난해하다는 편견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독자 생각으로는 러시아 문학이 우리에게 직접 전해질 무렵 한국은 공산주의 북한과 분단된 채 전쟁을 치렀다. 공산 혁명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러시아는 우리와 정치 사상의 이념이 달라 한국에 소개되기는 어려웠다. 그렇지만 북한에는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러시아 문학과 학문 등 모든 분야의 책을 접하기조차 어려웠다. 물론 소련 탄생 이전의 작품들은 이미 고전 문학으로 세계적 평가를 받은 작가와 작품들은 정부가 제재하지는 않았지만 반공 교육으로 소련의 모든 것들이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정치·경제·사회·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한국 독자들에게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당연히 낯선 문화, 낯선 학문이고 낯선 삶의 모습이었다. 서로 교류를 하지 않은 채 지내왔으니 문학의 경우 작가와 등장인물의 이름부터가 난관이다. 자주 접하지 못한 이름이고 언어이기에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 러시아 문학 특유의 철학적 고민까지 더해지면,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러시아인들에게도 러시아 문학은 결코 쉽지 않다고도 말한다. 저자는 “러시아 문학은 작가와 독자의 고통으로 만들어진다”고 말할 정도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라, 러시아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공감받는 인식이란 말도 덧붙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인들은 자국의 문학을 자랑스러워하고 열독하며, 일상 속에서 문학 작품의 명문장을 자연스럽게 인용한다. 이는 러시아 문학이 그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러시아 문화 자체를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 주기 때문일 것이다.
러시아는 사실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문화적 배경과 정서를 지니고 있다. 또한 서구와도 완연히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상식과 지식으로는 러시아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쉽게 이를 수 있다. 러시아 문학이 더욱 높은 장벽처럼 느껴질 수 있는 까닭이다. 2016년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저자 벨랴코프 일리야는 인생의 절반을 러시아에서, 나머지 절반을 한국에서 살았다. 한국과 러시아를 잇는 가교 역할을 자처하는 그는, 러시아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문학 속 한 줄의 문장을 통해 러시아를 이해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흥미로운 방법을 이 책에서 제시한다.

저자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같은 대문호들의 작품은 물론, 현대 러시아 문학까지 아우르며, 러시아인들이 사랑하고 실생활에서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문학적 표현이 오늘날 러시아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설명한다. 이제는 한국 작가가 된 저자는 생소한 러시아 문화를 한국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국적 상식과 속담을 활용하여 한국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출판사 측은 저자가 특유의 냉철한 논리에 위트를 더한 문체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러시아의 문장들』은 한국을 깊이 이해하는 러시아 출신 한국인만이 전할 수 있는 문화 안내서이자, 러시아 문학을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도록 돕는 친절한 가이드로서 펴냈다.
"러시아 문학은 특히 고생, 고통, 갈등, 분열 같은 주제가 워낙 자주 등장해서 그것을 풍자하는 농담도 많다. 이렇게 러시아 문학을 읽는 일이 고생스러운 것은 러시아 사람들도 웃으면서 인정할 정도다. 그러니 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 ‘난 왜 이 고전이 재미없지?’, ‘난 왜 이해가 안 가지?’ 하면서 절대 자책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다. 러시아 사람들도 『안나 카레니나』나 『밑바닥에서』를 읽으면서 여러분과 똑같은 생각을 하니 안심하길 바란다. 자, 이렇게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러시아 문학을, 즉 고생을 본격적으로 즐겨보자."(p.16)
“사람들의 심장을 동사로 불질러라”라는 말은 러시아 문학의 본질을 대변한다. 이 표현은 ‘말로 생각하게 만들어라’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러시아에서는 문학 작품이 단순히 쓰이는 것이 아니라 깊은 의미를 담아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푸시킨은 이런 생각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글은 사람을 생각하게 하고, 자극하며, 마음속에서 열정의 불꽃이 일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p.74) - 「알렉산드르 푸시킨│“사람들의 심장을 동사로 불질러라”」 중에서
저자 : 일리야 벨랴코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2016년에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러시아 극동국립대학교 한국학과를 졸업한 뒤에 연세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교에서 사회언어학 박사 과정을 밟았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다가 현재는 수원대학교 외국어학부 러시아어문학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다양한 채널에서 한국과 러시아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방송과 유튜브를 넘나들며 러시아와 한국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있고, 한국 및 러시아 문학 작품을 양국에 소개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을 러시아어로 번역했고, 러시아 그림 에세이 《어딘가엔 나의 서점이 있다》를 한국에 소개했다. 저서로는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2022)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