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 - 포기하지 않으면 만나는 것들
김호연 지음 / 푸른숲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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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의 저자 김호연은 문단 데뷔 20년이 넘는 중견 작가이다. 20년이란 기간은 "강산이 두 번 바뀌는",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데뷔 20년차의 작가가 왜 문인의 길에 회의감을 가졌을까? 이 회의감이 이 책의 저자 김호연을 읽는 주요 키워드이다. 중견 작가가 20년이 되어서야 소설가로서의 회의감이 든다고 고백한다면 무엇이 가장 큰 원인일까? 궁금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저자는 책의 〈프롤로그〉를 통해 자신이 '소설 쓰기'를 그만두려 했는지 밝히고 있다. "계속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생계가 되지 않는 소설을 붙들고 있어도 될지, 회의감이 들었죠." 저자는 바로 그때 ‘소설의 신’이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다고 나지막이 말한다. 

저자는 20년차 전업 소설가였지만 생계를 이을 만한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보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영화·만화·소설을 넘나들며 온갖 이야기를 써나가는 전천후 스토리텔러다. 1974년 서울생으로 고려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고 한다. 첫 직장인 영화사에서 공동 작업한 시나리오 〈이중간첩〉이 영화화되며 시나리오 작가가 되었다. 두 번째 직장인 출판사에서 만화 기획자로 일하며 쓴 『실험인간지대』가 제1회 부천만화스토리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만화 스토리 작가가 되었다. 같은 출판사 소설 편집자로 남의 소설을 만지다가 급기야 전업 작가로 나섰다고 한다. 이후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를 실천하던 중 장편소설 『망원동 브라더스』로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며 마침내 소설가가 되었다.

책을 소개하는 온라인 사이트 〈예스24〉에 따르면 저자는 장편소설 『망원동 브라더스』(2013) 『연적』(2015) 『고스트라이터즈』(2017) 『파우스터』(2019)와 산문집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2020) 『김호연의 작업실』(2023)을 펴냈다. 영화 〈이중간첩〉(2003), 〈태양을 쏴라〉(2015)의 시나리오와 〈남한산성〉(2017)의 기획에 참여했다.


이 가운데 2021년 『망원동 브라더스』는 연극으로 상연될 정도로 적잖은 인기도 누린 듯하다. 네 편의 장편소설을 쓰고, 과연 다섯 번째 소설을 쓸 수 있을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프롤로그〉에 따르면 네 번째 소설 『파우스터』(2019)를 출간하고 열흘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저자는 심각한 고민이 잉태된 시점을 말하고 있다. 2019년 4월 말. 저자는 시내 대형 서점에 들러 신간 매대에서 사라진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듯하다. 책장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마침내 책장에 단단히 박혀 있는 책을 발견했다. 저자는 이 소설 『파우스터』를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서 영감을 얻었고, 이 소설을 쓰기 위해 3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래도 출판사의 선인세만으로 생활에 충분치 않아 시나리오를 썼다. 그것을 팔아 번 돈으로 시간을 샀다고 말한다. 시간은 '소설 쓸 시간'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메피스토펠레스에 영혼을 팔기하도 할 듯 몰두해 초고를 완성할 즈음 어깨가 마비돼 응급실을 찾았다고도 말한다. 

목 디스크 재발이란 진단이 떨어졌다. 결국 통증 병원 치료 후 작업실에 출근하는 루틴으로 재고 작업을 수행해야 했다고 한다. 잘 낫지 않는 고질병 목 디스크처럼 지난한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2018년 말, 마침내 출판사에 보낼 원고를 완성했다. 출판사에서 지적한 부분을 받아들이고 다시 수정을 거쳐 오히려 분량을 늘인 작품을 편집장은 놀랍게도 지지해 줬다고 저자는 귀띔한다. 드디어 544페이지에 달하는 정통 스릴러 소설 『파우스터』가 탄생했다. 처음으로 '벽돌책' 작가가 됐다고 자랑스럽게 늘어놓기도 한다. 더욱이 데뷔작인 『망원동 브라더스』가 독자들의 사랑을 얻고 영화와 연극으로 제작되면서 경제적 여유도 찾았다. 이제 소설가로서 마음껏 살면 되는가 싶어단다. 두번 째 소설 『연적』(2015)을 호기롭게 출간했을 때도 기대는 여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은, 출판 시장은 자기 이야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작가에게 물을 먹이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고 출판계의 칼날 같은 단죄를 비유적으로 말한다.



세 번째 소설 『고스트라이터즈』(2017)는 카카오페이지에서 여러 차례 조회 수 1위를 기록해 기대가 높았다고 저자는 속내를 밝힌다. 그러나 출간된 뒤에는 역시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한 채 책장에 꽂히거나 '재고 없음'으로 분류됐다. 쓴맛을 다시 본 것이다. 저자는 그즈음 전업 소설가로 산다는 건 고라니로 사는 것과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고라니에 비유하는 이유도 밝힌다. 세계적인 희귀종이지만 한국에서는 애물단지 취급을 당하는, "잡아 죽이기도 뭣하고 죽이기도 하지만 보호하기에도 힘든 동물"이라고 적잖은 충격이 있었음을 은근히 표현한다

『파우스터』는 주인공인 야구 선수 준석의 강속구처럼 전력투구한 작품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동안 작품 성향과는 다른 스실러 장르에 도전했고, 그동안 쓴 소설 중 가장 많은 시간과 공력을 투자한 작품이라고 저간의 사정을 밝힌다. 출판사 역시 메이저급 회사로서 자신의 역량을 모두 쏟아부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저자는 대형 서점의 생리를 잘 아는 것 같다. "새 책이 서점 신간 매대에 머무르는 시간은 길어야 열흘 전후다. 이후에는 베스트셀러 매대로 옮겨가거나 서점에 돈을 내 전용 매대를 사야(매우 비쌈) 독자들에게 계속 책을 어필할 수 있다. 이 말은 출간 후 열흘이면 신간의 흥행 여부를 얼추 가늠이 된다는 말이다. 그날, 대형 서점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보며 나는 가능성 따위는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대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을 되뇌며 장벽 같은 책장에서 벽돌 같은 책을 뽑아 계산대로 향했다. 그게 내가 내 책을 사는 마지막 행위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멜랑콜리한 생각을 품은 채."(p.8)

이 책 『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는 180만 부 베스트셀러 작가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 『나의 돈키호테』의 집필 비하인드를 담은 에세이다. 네 번째 책의 기대감이 산산이 무너진 채 공원 벤치에 앉아서 걸려 왔던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소설 쓰기를 포기하려던 소설가”에게 한 줄기 빛은 그렇게 무심한 듯 찾아왔다. 돈키호테에 관한 글을 쓰는 조건으로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지던시에 3개월간 머물 자격을 선사하는 프로그램에서 온 전화다. 『불편한 편의점』으로 밀리언셀러 작가가 되기 바로 전의 일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써내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처럼 스페인 체제 소설 쓰기는 저자의 고민이 해결되는 유일한 탈출구가 된다. 이 책 『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는 2019년 9월부터 11월까지, 저자가 스페인의 유서 깊은 레지던시 ‘헤지덴시아 데 에스튜디안테스’에 머물던 때를 담은 여행기이다. 저자는 그곳이 “다시 꿈꿀 수 있도록 해준 인생의 스프링캠프”였다고 강조한다. 모기가 없는, 맛있는 음식과 술이 있는, 아름다운 유산이 곳곳에 숨어 있는 스페인 곳곳을 그리는 이 이야기가 무엇보다 ‘돈키호테’라는 저마다의 꿈을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응원하는 이야기인 까닭이다. 앞서 언급한 ‘헤지덴시아 데 에스튜디안테스’에 낸 제안서가 돈키호테에 대한 소설을 쓰겠다는 저자에 호응한 것이다.

이렇게 떠난 스페인에서 저자는 우리가 기대하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여행을 하지 않는다. 저자는 출간 계약도 하지 않은 원고를 하루 세 장씩 써야 했고, 경비를 한 푼이라도 아껴야 했으며, 철저하게 혼자였다. 그러나 그가 만난 스페인은 아름다웠다. 스페인의 햇살, 스페인의 문화유산, 스페인의 음식 그리고 스페인의 사람들까지. 저자는 그곳에서 쿠폰에 도장 10개를 찍으면 음료 한 잔을 무료로 주는 단골 카페를 만들고 147번 버스를 익숙하게 타고 다닌다. 『돈키호테』 원서를 찾아 서점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영감을 얻기 위해서라면 기차를 타고 훌쩍 떠나기도 하며. 그곳에서 저자는, 어느 동양인 여행객이 아니라 아무도 몰라주더라도 자신이 써야 할 글을 꿋꿋이 쓰는 작가였다. 

소설을 포기하려던 작가가 다시 소설을 쓰려고 마음먹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저자가 머물렀던 3개월 간의 여행(?)을 샅샅이 보여준다. 

포기와 성취의 경계에서 저자는 무엇을 경험했을까? 도망치듯 떠난 스페인에서 저자는 대단한 일을 하지 않는다. 돈키호테의 흔적과 영감을 좇아 다만 걷고, 읽고, 보고, 대화할 뿐이다. 다시 소설을 써야 하는 이유는 낯선 도시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찾아 왔다고 저자는 책에서 토로한다. 


"이루고 싶은 꿈을 좇으면, 우리는 어느새 꿈 그 자체가 된다." 저자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글을 쓰고 싶구나.” 돈키호테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이 어느새 그를 ‘돈키호테’로 만들어 준 것이라고 저자가 해석하는 대목에서 글에 대한 저자의 열정은 죽을 때까지 식지 않을 것으로 독자는 느낀다. 한국으로 돌아온 저자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서로에게서 거리를 두던 외롭고 힘들었던 시기, 멈추어 뒀던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그 원고는 결국 모두에게 위로를 준 소설 『불편한 편의점』이 되었다. 

저자는 “모험을 지속하는 동안은 언제나 돈키호테일 것이고, 집필을 멈추지 않는 동안은 계속 소설가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단순히 무모한 용기만으로 도전해 운 좋게 성공한 것이 아님을, 이 책에서 여실히 보여 준다. 꿈을 향해 다시 도전할 용기, 포기하지 않고 늘 대책을 궁리하는 자세. 저자의 이런 모습은 무엇보다 그의 순수함과 성실함에서 나온 것이란 생각이다. 이 한 권의 에세이에서 만나는 소박하고 소시민적인 저자의 모습은 그가 이제껏 그려 온 따스한 온기로 가득한 이야기 속 인물의 ‘실사화’ 버전이다. 저자 특유의 따뜻한 위로에 감동했다면, 이번 에세이에서 자신의 소중한 꿈을 좇는 저자의 여정 역시 감동으로 다가올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은 말하자면 소설 『나의 돈키호테』의 탄생기이자 취재기이기도 하다. 에세이지만 소설을 즐겁게 본 독자들만이 찾을 수 있는 재미있는 장치가 이 책 곳곳에 있다. 아직 소설 『나의 돈키호테』를 읽지 못해 못내 민망하지만 이 책 『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의 결말은 이미 모두가 추론할 수 있듯이 ‘꽉 닫힌 해피엔딩’이다. 궁색한 '무명작가'는 스타작가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 느낌이다. 우리도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기쁜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는 듯이 저자의 에세이는 만물이 생동하는 대한민국의 2025년 봄날을 스페인의 열정과 함께 독자들의 앞길을 환하게 이끄는 듯하다. 저자는 이처럼 독자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건넨다. 


저자가 이 책 『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를 읽고,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돈키호테가 있을 것 같아요. '나의 돈키호테'를 찾고 있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란 〈채널예스〉 대담자의 말에 저자의 답은 간단 명료했다. "간절함을 가지고 좇으세요. 그냥 찾는(looking for) 게 아니라 좇는(chasing)다는 생각으로 말이에요. 돈키호테가 쉽게 안 찾아지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어느 정도 집착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쉬운 게 아니니까 많이 좋아해야죠. 짝사랑하듯 해야 해요. 책을 보시면 저도 미친 사람 같잖아요. 스페인에 가서 돈키호테 동상에 말을 걸고, 세르반테스의 고향을 찾고요. 세고비아 관광지 중 멋있다는 데도 안 가고 나의 돈키호테만을 좇았거든요. 사실 거기 간다고 영감이 오겠어요? 그냥 가는 거예요, 그냥. 그 정도의 근성이랄까 간절함이 필요해요. 자신의 돈키호테가 있다면 그것을 짝사랑했으면 좋겠어요."


이곳에서의 3개월은 내가 다시 소설을 쓰도록 만들어 줬다. 돈키호테를 찾으며 배운 건 그 대책 없는 용기와 신념이었다. 세르반테스를 쫓으며 느낀 건 생을 향한 불굴의 의지와 어떤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는 집필욕이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손에 잡히지 않는 이익을 믿지 않으려 하지만 결국 《돈키호테》에 담긴 수많은 무형의 가치들은 우리를 뒤흔들었다. 그래서 그 책은 인류의 고전이 됐다.(p.236-237 - 「22장 아스타 루에고」 중에서


저자 : 김호연


영화·만화·소설을 넘나들며 온갖 이야기를 써나가는 전천후 스토리텔러. 1974년 서울생. 고려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첫 직장인 영화사에서 공동 작업한 시나리오 「이중간첩」이 영화화되며 시나리오 작가가 되었다. 두 번째 직장인 출판사에서 만화 기획자로 일하며 쓴 「실험인간지대」가 제1회 부천만화스토리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만화 스토리 작가가 되었다. 같은 출판사 소설 편집자로 남의 소설을 만지다가 급기야 전업 작가로 나섰다. 이후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를 실천하던 중 장편소설 『망원동 브라더스』로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며 소설가가 되었다.

장편소설 『망원동 브라더스』(2013) 『연적』(2015) 『고스트라이터즈』(2017) 『파우스터』(2019)와 산문집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2020) 『김호연의 작업실』(2023)을 펴냈고, 영화 「이중간첩」(2003), 「태양을 쏴라」(2015)의 시나리오와 「남한산성」(2017)의 기획에 참여했다. 2021년 『망원동 브라더스』에 이은 ‘동네 이야기’ 시즌 2 『불편한 편의점』을, 2022년 『불편한 편의점 2』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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