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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보는 그림 - 매일 흔들리는 마음을 다독이는 명화의 힘
이원율 지음 / 빅피시 / 2025년 4월
평점 :

<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나이 40. 공자는 '불혹'이라고 했다. 어떤 유혹에도 자신의 신념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링컨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했다. 링건은 세상 살아온 사람 얼굴에 삶이 그대로 쓰여 있다고 본 것이다. 선함과 악함이 얼굴에 쓰여 있다고 해야 되나? 아무튼 요즘 나이 40이면 예전과 달리 어른 취급도 안 해 줄 정도로 젊은 나이로 본다. 수명이 길고 세상이 복잡해져 배움의 시간이 더 길어졌기 때문이라고 할까. 80을 살든, 100세를 살든 나이 마흔쯤 되면 한 번쯤 자신의 삶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목표 지점을 향해 길을 갈 때 중간쯤 가서 잘 가고 있는 건지, 방향은 맞는 건지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듯이...
이 책 『마흔에 보는 그림』의 저자 이원율은 표제어에 썼듯이 자신의 마흔 살을 명화를 보며 성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저자의 나이는 이 책에서 고려 대상은 아니다. 그가 '마흔살'을 언급한 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들의 삶을 되돌아보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마흔, 인생에 그림이 필요한 시간」이라는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자신의 마흔 살을 우선 되돌아본다. "좀 더 고요하고, 차분하게 그간 가슴속에서만 품어왔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저는 참 많은 사랑을 합니다. 나이와 경력이 쌓이고 있지만 수년째 터널을 걷는 듯하다는 이를 사랑합니다. 탄탄한 기업 대신 작은 공방을 차린 후 월세만 겨우 버는 이를 사랑하고, 지금이 아니면 끝이라는 생각에 사표를 내고도 몸을 덜덜 떠는 이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p.4)
나이 마흔 살쯤 되면 자신이 "사회에서 무언가 이룬 게 있을 것"이란 희망의 반도 못 이룬 기대였음을 자각이 든다. 저자도 마흔이 된, 어느 덧 마흔을 넘어서 버린 자신의 주위 사람들이 모습이 보였다고 털어놓는다.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의 모습과 자신이 비슷하다는 조바심도 나는 것 같다. "저는 어느덧 긴장에 중독된, 쓰러질 만큼 피곤해도 푹 쉬거나 잠들지 못하는 상태가 돼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이랬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그저 하루라도 더 열심히 살고자 애썼을 뿐이지요."라고 자책하듯 밝힌다.
저자의 〈프롤로그〉는 자책하듯 푸념을 늘어놓는 것으로 보이지만 진정성과 진솔함이 묻어나온다.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도 비슷한 감정을 갖게 될 것이 분명하다. 독자 역시 마흔이 훨씬 넘었지만 이 책을 읽는 순간 "난 마흔 살쯤 삶을, 내 자신을 돌아봤던가?" 하는 후회감이 밀려든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집필 의도도 〈프롤로그〉에서 드러난다. "마흔 무렵이 되면 초연해질 줄 알았습니다. 언제나 의젓하고,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여전히 마음 한편에는 여린 꼬마가 웅크려 있고, 그 옆에는 아직도 세상 모든 게 서툰 청년이 서성이고 있다는 것을요. 이렇게 인생의 이치에 실망감이 밀려오면, 저는 예술을 통해 마음을 다독이곤 합니다."(p.5)
저자는 10년 넘게 위대한 화가들의 생을 짚어보고, 이들이 빚어낸 그림을 살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이들의 삶이 마냥 비범해 보이기만 했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전혀 특별한 것 없는 자신의 인생과도 포개지는 지점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의 작품 또한 마냥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었다고도 말한다. 현실의 괴로움과 고통, 외로움을 극복하고자 발버둥 쳤던 그들의 작품이야말로 당장의 자신의 상태를 비추는 창이자 영감과 위로, 희망까지 전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저자는 절감했다고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빌헬름 하메르스회의 삶과 그림이 매개체가 되었다. 하메르스회는 많은 날 그저 고요한 자기 집 안 풍경 그리기에 천착한 화가였다. 지난해 한 전시에서 그의 그림을 다시 마주하고는 머릿속에서 갑자기 종이 울리는 듯했다. 의지와 상관없이, 그 자리에서 한참을 벗어나지 못했다. 담담한 그의 작품 앞에서, 저자는 그때 쉴 때조차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젖어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방에 앉아 창문 틈으로 떨어지는 햇빛을 감상하는 일이나 곁에 좋아하는 음악과 아끼는 차 말고는 아무것도 두지 않는 일, 밀도 높은 휴식이란 외려 그때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저자는 새삼스러운 깨우침이었다고 말하면서도, 조금 더 어렸을 때는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는 점을 알아차린 것이다. 저자는 그날, 하메르스회의 그림 앞에서 떠올랐던 생각을 현실화한 채 가만히 시간을 보냈고, 아주 오랜만에 푹 쉬었다는 기분을 느꼈다고 말한다. 저자가 깨달았던 것은 그림의 힘이었다. 이에 따라 위대한 화가들의 삶이 아직 못 이룬 꿈과 희망이 있는 사람들에게 큰 용기와 의지를 북돋아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이 책 『마흔에 보는 그림』은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위로가 필요한 순간-“인생의 모든 순간은 의미로 가득 차 있다”〉, 2장 〈용기가 필요한 순간-“진정한 용기란 실패하지 않는 게 아닌 매번 일어서는 것”〉, 3장 〈버텨야 하는 순간-“슬픔은 깊이를 만들고, 아픔은 강인함을 만든다”〉, 4장 〈홀로 서야 하는 순간“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별은 빛난다”〉 등이다. 모두 18명의 위대한 화가의 작품과 그들의 간단치 않았던 삶을 담았다. 18명의 화가가 각 장의 테마에 맞게 나뉘어 있다. 격식에 맞게 분류하다 보니 길게 설명되어 있지만 위로, 용기, 인내, 자립을 각각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18명의 화가 이야기는 모두가 극적이고 위기 극복의 노력,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듯한 열정 등이 드러난다. 안정적인 엘리트 법률가의 길을 뒤로하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바실리 칸딘스키, 불안 때문에 평생 진정제와 불면증 치료제를 달고 살았던 잭슨 폴록, 집안의 반대에도 화가가 됐지만 오십이 넘어서야 세상에 알려진 폴 세잔, 특유의 성실함으로 기나긴 무명 생활을 견딘 알폰스 무아···. 〈헤럴드경제〉 기자이자 미술 스토리텔러이어서인지 이들의 삶과 그림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무척 잘 쓴 글로 대하는 것은 독자로서 부러움과 감동을 모두 준다. 저자 이원율은 이 책에 나오는 위대한 화가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고 단언한다. 불안하고 외로운 날들을 재료 삼아 되려 위대한 작품을 완성했다는 점이다.
앞서 저자에게 깨달음의 단초를 주었던 하메르스회에 대한 설명부터 들어본다. 책에 따르면 하메르스회는 태생적으로 조용한 화가였다. 그가 가장 오래 머문 곳은 다름 아닌 집이었다. 동료 화가들이 외광(外光)을 좇고, 둥글게 모여 예술의 현재와 미래를 놓고 떠들 때에도 대개는 홀로 방에서 쉬었다. 점잖은 그로서는 이들의 험한 모험에 동참하는 일도, 시끌벅적한 토론에 섞여드는 일도 쉽지 않았기에, 이처럼 하메르스회에게 방에 있는 순간이란 원래는 강제된 휴식기에 가까웠다. 하메르스회에게 어느 날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집에서 움튼 고용한 세계, 방에서 형성되는 사색의 행성이 그것이었다. 그는 명상에 잠길 만큼 잠잠한 실내가 더 좋아졌다. 이곳은 어수선한 바깥과는 달리 내면에 집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장소였다. 이때부터 하메르스회는 자기 집 풍경을 화폭에 정성껏 담았다. 어린 소녀의 초상〉에 대해 인상주의 대가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극찬했다. 하지만 기성 화단은 당시 아카데미즘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그림을 탈락시켰다.

하메르스회는 당시 유럽 대륙을 압도한 인상주의의 물결에 녹아들지 못했다.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당장의 전위예술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유학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나는 주류 감성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방구석 화가'가 된 하메르스회가 가장 많이 모델로 세운 인물은 아내 이다였다. 이다는 차분하고 가정적인 여인이었다. 책을 읽는 이다, 그릇을 닦는 이다, 창문을 보는 이다 등 홀로 있는 이다의 모습을 화폭에 옮겨 담았다.
"그렇다면 하메르스회는 왜 이다의 정면이 아닌 옆모습과 뒷모습에 주목한 걸까. 인간은 오롯이 자기의 옆모습이나 뒷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의식적으로 어떤 감정을 꾸며내거나, 연출하는 게 쉽지 않다. 하메르스회는 어떤 가장도 할 수 없는 완연한 휴식을 표현하기 위해 이러한 구도를 강조했을지 모른다. 혹은 일부러 눈, 코, 입을 뚜렷이 볼 수 없도록 해 감상자의 몰입을 최대한 도왔을 수도 있다.(p.56)
이 책에서 독자의 어렸을 때 추억을 끌어당기는 이름을 발견한다. 바실리 칸딘스키다. 저자는 칸딘스키를 설명하는 글을 이렇게 시작한다. "태양처럼 떠 있는 커다란 원과 산 같은 삼각형, 마음껏 부유하는 여러 모양의 도형, 그리고 종잡을 수 없이 통통 튀는 다양한 색···. 산만한 선과 형태, 무지갯빛이 떠오를 만큼 알록달록한 색채는 서로 조화롭게 어우려져 경쾌한 분위기를 이끈다."(p.62) 독자의 어렸을 때 기억이 오버랩 된다. 미술 시간에 늘 스케치북을 준비해 갔는데 대부분이 간단스키와 몬드리안이 표지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독자도 "그림 잘 그리는데" 하는 선생님의 절반의 칭찬을 받은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이후 진학하고 입학하는 시험에 이끌려 한 번도 간딘스키에 대한 화가에 대해서도, 작품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은 듣지 못했다.
책에 따르면 엘리트 법률가의 길을 걷던 칸딘스키는 1895년, 나이가 삼십 줄에 닿은 그때 뜻밖의 전환점을 맞는다. 클로드 모네의 그림 〈건초 더미〉를 본 일이었다. 칸딘스키는 모스크바에서 열린 인상주의 전시회에서 이 그림을 처음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대체 무엇을 그린 것인지 한눈에 알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인상주의는 빛에 집중하는 화풍을 뜻한다. 모네는 그 정신을 받들어 건초 더미를 표현했다.

칸딘스키는 이 그림 곁에 한참을 서 있었다. 그는 모네의 화폭 속 대상을 마음껏 상상하고, 경험과 취향에 맞춰 자유롭게 추측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꼈다. 캔버스 안 눈부시게 가득 채워진 빛 덕분일까. 보다 보면 영혼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 뜨겁게 울컥했다. 훗날 그는 그 순간을 회상하며 "나는 그 그림에 붙잡혔다. 그림이 내게 절대적인 여감을 줘 혼란스러웠다. 동화 같은 힘이었다."라고 말했다. 붕 뜨는 기분을 만끽하던 칸딘스키는 그림의 제목을 본 후에야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색이란 대체 무엇이길래 그 자체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안기는가. 칸딘스키는 30대를 맞이하던 이 무렵, 모든 걸 미루고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다. 화가가 돼 이 기이한 색채에 대해 제대로 탐구하기로 마음먹었다. 모두가 칸딘스키의 갑작스러운 행보를 만류했다. 어릴 적부터 교육받은 기성 화가들 틈에서 비웃음만 살 뿐이라고 말이다.
칸딘스키의 도전은 확실히 무모했다. 그간 쌓아놓은 금자탑만 무너뜨릴 만한 선택이었지만, 생애 처음 느낀 끌림에 뛰어들지 못한다면 삶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끊임없이 조심하고, 모든 일의 장단점을 따지며 산다면 대체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칸딘싀는 용기를 내 새로운 인생을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그림을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칸딘스키는 그림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그때까지 자신이 쌓아온 금자탑은 무너뜨리고 대신 독자적 시각을 얻었다. 그림을 몰랐기에 눈치 보지 않았고, 회화 판에서 잃을 게 없었기에 마음껏 시도에 나설 수 있었다. 이 덕에 끝내 그만의 세상을 개척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의 마음을 통째로 흔든 '색채'가 가장 강조되는 화풍, 즉 추상화였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독자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시간이 없어서' 독서를 별로 하지 못했다. 사실은 핑계란 사실도 모두 알고 있듯이 누군가 "책 읽느냐"고 물어올 때마다 한 답변이고 변명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재택 근무를 많이 함으로써 출퇴근 시간도 줄였고, 신경을 많이 쓰던 옷 등 외모에도 관심을 두지 않음으로써 굉장한 시간이 오히려 남아 돌았다. 그래서 직장 생활 시작하면서 거의 읽지 않았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팬데믹 기간이라 예술에 관한 책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서점에도 나갈 필요 없이 온라인으로 책을 구입했다. 책 읽을 맛이 나는 것 같아 내친 김에 점점 목표량을 늘려 읽기 시작해 이젠 '책벌레'로 돌아간 듯하다. 그런데 처음에는 여성 작가, 화가, 음악가가 거의 없어서 우리 조선시대처럼 여성의 사회적 활동은 통제되었던 것으로 짐작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왜 화가가 별로 없을까?로 궁금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눈에 번쩍 띄는 문장을 하나 발견했다. "러시아 역사에서 예술가를 딱 세 명만 말하자면 문학은 톨스토이, 음악은 차이콥스키, 미술은 레핀이다." 레핀? 독자로선 처음 듣는 이름이다.

저자의 설명을 들어본다. "기분 좋은 휴일, 솧파에 등을 기댄 노인은 조용히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피아노에 손을 올린 여인은 그 음에 맞춰 동요부터 민요, 유행가까지 막힘없이 연주한다. 아이들은 발끝에 닿는 햇빛을 문지르며 까르르 웃음을 터트린다. 그때 하녀의 안내를 따라 한 남자가 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선다. 그를 본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춘다. 공기는 갑자기 무거워진다. 그는 집안의 가장이면서 한 정치 세력의 열성 당원이었다. 사내는 집으로 돌아오는 날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족과의 오랜만의 상봉치고는 분위기가 어색하다."(p.254)
20세기 전후 러시아의 정세는 무척 어수선했다. 제정 러시아는 흔들리고 있었다. 황제와 귀족들은 엄청난 땅을 소유하고도 농민들이 가꿀 토지를 내주지 않고 국민들은 굶주렸다. '차르'의 무능과 귀족들의 부정부패는 극에 달했다. 삶이 점점 고달파지는 농민(러시아의 민중 80%가 농민이었다)과 농노(유럽에서 농노 제도가 없어졌는데도 러시아만 농노제도가 남아 있었다)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추운 겨울에도 내의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스크바의 추운 겨울에도 그들은 장작마저 아껴 겨우 냉기만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르크스 이론에 따른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결국 1917년 혁명 세력은 황제와 황가 사람들을 처형하고 레닌을 지도자로 한 공산사회주의가 들어선다. 이때의 상황을 그림으로 남긴 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어 독자로서는 많은 도움이 됐다.
"레핀은 주로 혁명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렸지만, 단편적 묘사에 그치지 않았다. 투사와 투사의 가족 사이 복잡한 심리를 담은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처럼 한층 더 입체적인 작품을 내놓았다. 이는 인간과 시대에 대한 깊은 고찰이 있어야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이었다."(p.266)
저자 : 이원율
〈헤럴드경제〉 기자이자 미술 스토리텔러.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고 감동을 받아 미술에 관한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미술 비전공자이기에 오히려 어떻게 표현해야 누구나 쉽고 재밌게 그림을 이해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누적 조회 수 1,600만 회 이상, 〈헤럴드경제〉 화제의 칼럼 ‘후암동 미술관’을 세상에 내놓았다. 매주 토요일에 연재되는 저자의 이 칼럼은 이후 여러 언론사가 주말 장편 예술 콘텐츠를 경쟁적으로 선보이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회부와 정치부를 거친 기자답게 집요하고 꼼꼼하게 사실을 되짚음은 물론, 화가의 삶과 그림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눈에 그려질 듯이 생생하게 풀어내는 뛰어난 필력으로 네이버 기자 구독자 수 4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미술은 인생의 해상도를 높인다”라는 말을 믿으며, 독자들에게 미술로 인해 풍부해지는 일상을 선물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 중이다. 저서로는 《사적이고 지적인 미술관》 《결정적 그림》 《하룻밤 미술관》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