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음에는 이유가 있다
김아영 지음 / 북플레저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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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항공사 승무원, MBC 기자라면 누구나 선망하고 부러워하는 직업·직장일 것이다. 이 책 『모든 걸음에는 이유가 있다』의 저자 김아영은 두 번째 직장인 방송사 입사 8년 만에 내려놓았다. 특별한 이유가 없어 퇴직한다는 말에 회사 동료들은 의아해하고 말리기도 했을 것이다. 선망의 직업을 택할 때는 누구나 나름대로 보람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경제적 대우 이전의 문제일 수도 있다. 두 곳의 직장이라면 경제적 대우도 남부럽지 않을 것이고, 자신이 원해서 들어간다면 분명 보람 있는 일에 앞뒤 돌아볼 겨를이 없을 터다. 특히 저자는 MBC 기자로서 ‘한국방송기자대상’까지 수상했다고 하니 갑자기 기자직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놀랐을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을 것이다. 저자 역시 일의 보람을 보고 입사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두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 외로움과 괴로움이 가득했다고 털어놓고 있다. 저자가 털어놓은 속내를 들어보면 한편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다. 저자는 학교 다니면서 강박증을 앓으며 친구들과 멀어졌단다. 이런 경험을 강박증이라고 표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학우들과 그리 원만한 관계를 이루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때때로 모든 소음이 제거된 공간에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다. 어느 날은 하굣길에 근처 편의점에 들러, 과일 맛 아이스크림을 샀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아이스크림을 냉동실에 넣어두고, 샤워를 한 뒤 TV를 켰다. 좋아하는 드라마마의 재방송을 보기 위해서. 상대 배우가 칠 대사를 입으로 나지막이 중얼거리곤 했다. 좋아하는 장면을 또 보는 게 좋았다.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으며, 아무도 없는 집에서 한낮을 즐겼다. 이 일과는 남은 반나절을 시작하기 위한 나만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30분 동안 TV를 보고 나면 침대로 가서 쿠션을 등에 기대고 앉아 책을 읽었다."(p.6) 

몇 줄의 문장으로 강박증 여부를 파악할 수 없겠지만 여자중·고등학교 시절이라면 꿈 많고 하고 싶은 일이 많을 때다. 친구들과 어울려 별일 아닌데도 깔깔대며 웃어젖힐 나이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좋다고 한 남학생도 있었지만, 그 남학생이 어쩌다 보낸 메시지는 "너, 혹시 학교에서 왕따니?" 하고 의문을 품을 만한 일이 있었던가 보다. 매일 혼자 집에 가는 것도 목격했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면 가능한 추측 아니겠는가? 좋아하지 않은 남학생이 쫓아다니거나 추근대면 싫겠지만, 전화번호를 줄 정도라면 그래도 호감은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고, 자신에게 대하는 쌀쌀한 모습이 남학생으로부터 그런 의심을 끌어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독자가 단순 판단한 말이다.


성격이 그렇다고 학교를 다니기 어려운 심각한 상태는 아닐 것이다. 흔히 말하는 정신과적 문제가 아니니 학교도, 또 직장에 들어가 직장생활도 훌륭하게 해냈을 듯하다. 중학교 때까지 누구보다 많은 책을 읽었을 것이고, 그만큼 나중 사회인이 되어도 훌륭한 사회인으로서 역할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저자는 그러나 책의 〈프롤로그〉에서 밝힌 말은 조금은 정도가 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불행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취미생활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끝나게 되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교실에 갇혀 있었다. 학교가 감옥 같았다. 아무렇지 않게 수업을 듣고 학교생활을 즐기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같지 않다. 나는 숨이 막혔다. '왜 여기 있어야 하지?'" 

저자는 야간 '자울학습'은 자율이 아니었고, 부모님 돈을 내고 듣는 보충수업은 반 강제였다고 말한다. 저자가 느끼기에는 비정상적이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3년만 뛰면 된다고 말했다. 저자도 남들보다 빨리 뛰어서 이기면 멋진 세상에 도착해 소설책 따위는 실컷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기기 위해 경주마처럼 뛰었다. 뛰려면 무거운 소설책은 모두 버려야 했다. 더 빨리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급하게 필독 도서들만 읽었다. 더 이상 책에 줄을 긋지 않았고, 페이지를 접지도 않았다. '그때까지만 참자'고 다짐하며 공부에 매달렸다고 저자는 밝힌다.

항공사 승무원이 된 후 자신의 성격과는 안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저자의 단순 생각인 듯하지만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특히 서비스 직인데다 늘 직장에서나 고객들에게나 '을'의 자세로 살아야 하는 것이 싫을 수도 있다. 독자가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저자가 항공사 퇴직 이유를 '낮아진 자존감'으로 괴로웠다'기에 드는 생각이다. 그러나 두 번째 직장이 된 MBC 기자직은 직장 내에서는 취재 나가거나 출입처에 오갈 때는 '을'보다는 '갑'의 위치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기자들의 주 출입처가 되는 공공기관은 대부분 기자가 '갑'이 되는 경우다. 더욱이 열심히 한 덕분에 ‘한국방송기자대상'도 수상했다면 열정적인 기자 생활을 했다는 증거 아닌가? 

‘한국방송기자대상'이 어느 정도의 무게감을 갖고 있는지 독자로서는 알 수 없지만, 저자의 방송기자로서의 능력은 충분히 인정받은 것으로 독자는 판단한다. 그러나 저자는 더 잘해내야 한다는 주변의 소리에 그저 달리기만 했다고 고백한다.



"몸에 암세포가 자라나고, 불면증에 시달라면서도 계속해서 나아가기만 했다."는 표현은 현재도 투병 중인지 여부가 잘 드러나지 않아 판단을 미룬다. 저자는 아직도 수능 시험을 치는 꿈을 꾼다고 털어놓는다. "꿈속에서 저자는 늘 공부를 다 끝마치지 못한 채 시험장에 들어갔다. 악몽에서 깨고 나면, 다시 짐을 싸서 취재 현장에 나가곤 했다. 현장에선 다른 언론사 기자와 경쟁을 했다. 부서가 바뀌면 또다시 인정받기 위해, 매일 증명의 단두대 위에 올라서야 했다."(p.8)

스무 살, 대학생이 되었다. 학과에서 수석을 하고, 좋은 성적을 받아서 가고 싶었던 학교로 편입했다. 그러나 달리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치열하게 준비해 방송 기자로 입사했고, 입사한 뒤에는 경력직으로 이직했다. 항상 무언가를 끝내고 나면, 그 다음 단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덧 8년 차 기자가 됐다. 달려야 한다던 목소리들은 언제부턴가 조금씩 희미해지다가 사라졌다. 그것으로 끝났으면 별 문제 없이 아마 방송 기자를 계속하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달리기를 독촉하는 목소리 대신 저자를 매일 평가하는 눈빛들이 생겼다고 말한다. 잠시라도 눈을 떼면 휴대 전화 메시지가 수십 개씩 쌓여 있었고, 초조한 마음으로 급하게 횡단보도를 걸었다. 엘리베이터가 빨리 오지 않으면 한숨부터 나왔다. 보폭은 커졌고, 걸음은 빨라졌다. 이렇게 무언가에 쫒기듯 살아야 했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자신의 무조건 달리기를 성찰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변을 돌아보면 나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인생의 정답에 다다른 듯한 이들이 보인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직장…. 그 결과 ‘더 열심히 살아야 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해’라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무작정 앞으로 내달리기만 했던 시절에 대한 성찰일까. “힘내!” “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말은 더 큰 좌절로 상대방을 이끌기도 한다. 거센 파도 앞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헤엄쳐도 한 치도 나아갈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힘내도 더는 나아갈 수 없을 때가 있다고 저자는 항변하듯 말한다. 이쯤해서 이 책을 읽는 독자나 앞으로 읽을 많은 독자들도 공감할 것이다. 공감하는 이들에게 저자는 "흔들리면 좀 어때요?"라는 단단한 위로를 건네려고 책을 썼다. 그의 삶 역시 무수히 흔들리고 무너졌기에 할 수 있는 위로다. 문득 하늘의 보랏빛 노을, 주변의 기분 좋은 소음, 친구를 위해 준비한 작은 선물,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보내는 문자 한 통 등 수많은 것들을 놓치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작은 것들 사이에서 자신이 찾아 헤맸던 행복이 숨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달리는 것을 멈추고 행복을 찾기로 결심한 끝에 자신의 첫 에세이 『모든 걸음에는 이유가 있다』를 완성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저마다의 인생에는 미로가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미로에는 중간 중간 작은 선물이 놓여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미로에는 함정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그 미로를 평생 걸어야 한다. 미로를 걸으며 스스로 즐기지 못한다면 우리는 평생 앞만 보고 가다가 죽게 되는 것이다. 나의 미로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을 발견해보자. 그리고 그것들로 삶을 채워나간다면 우리의 삶은 무채색에서 유채색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한 걸음'으로 표현했다. 가까운 세 나라를 여행했다. 첫 번째 걸음(1장)은 대만을 무대로 삼았다. 두 번째 걸음은 일본, 세 번째 걸음은 베트남으로 향했다. 마지막 장인 네 번째 걸음은 다시 우리나라로 와서 고향으로 돌아온 마음으로 차분하게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 대한 달라진 인식으로 보고 느낀 모습들을 담았다. 각각의 장은 1장 「잃었던 행복을 찾아서」, 2장 「소중한 것들을 찾아서」, 3장 「나를 살게 하는 것들을 찾아서」, 4장 「나를 지켜준 것들을 찾아서」이고 〈에필로그〉엔 「아빠는 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돌아보지 않았을 뿐」으로 아버지와의 추억을 주로 그리고 있다. 마지막 고국으로 돌아와 가족, 아버지에 대한 그의 글에는 성찰과 애수의 느낌이 가득 담겨 있다. 

우리와 감성이나 사는 모습이 비슷한 일본, 대만, 베트남에의 여행은 간혹 그곳에서 느낀, 삶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도 있지만 그들이 사는 모습과 자신이 고국에서 살아오던 모습을 오버랩해서 성찰하는 글이 많다. 여행이지만 한편으론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한 성찰 혹은 순례 여행인 듯한 느낌이 강하다. 단순히 보고 즐기는 모습이 아닌, 자신을 돌아보고자 떠난 여행이어서 이 에세이의 매력이 크다. 이를 테면 첫 번째 대만에 가서 저자는 자신이 권태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 여행 가서 오히려 자신의 모습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기회가 됐던 듯하다. "인간이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쳐다보라는 신의 뜻이 아닐까. 때로는 상대방의 슬픔을 알아차려서 어루만져주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에게 빠져 있지 말고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배울 점을 찾아보라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 속에서 나는 인생의 퍼즐을 찾아나갔다. (p.18) - 「방황이라고 쓰고 성장이라고 읽는다」 중에서



두 번째 장의 이야기 중 일본 여행의 어느 날 후쿠오카 오호리 공원에 앉아서 본 모습을 회상한다. "온 세상이 너그러워지는 것 같은 시간, 오후 4시다. 한없이 여유 있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보이고 하늘도 한낮의 더위가 좀 가신 때다. (중략) 호수가 보이는 카페 창가로 자리를 옮겼다. 문득 창밖을 봤는데 등이 굽은 백발의 할아버지가 휠체어를 천천히 밀며 걷고 있다. 그 휠체어에는 똑같이 백발이 된 할머니가 앉아 있다. 할머니는 빨간 조끼를, 할아버지는 한 걸음 한 걸음 느리지만 힘껏 휠체어를 밀며 지나갔다." 할머니는 석양에 천천히 물들어가는 호수를, 싱그럽게 불어오는 꽃향기를, 아름다운 새 소리를 만끽하고 있다는 생각이 저자의 머리를 스치듯 지나갔던 것 같다. 되돌아 생각해보니 저자에겐 그 순간 놓쳐버린 인생의 조각들이 슬며시 나타났다고 말한다. 

"그 순간 놓쳐버린 인생의 조각들이 슬며시 나타났다. 100킬로미터로 달릴 때는 휙휙 지나가버려서 내 눈에 흐릿하게 포착돼 있던 장면들이다. 퇴근 후에 힘들다며 건성건성 받았던 부모님의 전화, 집 앞에 새로 생긴 밥집에 같이 가지 않아 서운해했던 남편의 표정…. 항상 “나중에”라고 말하고는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라고 생각하며 돌아서버렸다. 그들을 보며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인생 끝자락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떠올려보니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패인 내가 서 있었다. 그맘때쯤이면, 피부과 기계로도 어떻게 안 되는 주름이겠지. 아침저녁으로 소중히 가꾸던 내 외모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미래의 그 날에는 내 직업도, 세상의 평가도, 내가 입는 옷도 지금처럼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p.162) - 「오늘 나는 잃었던 오후 4시를 다시 주웠다」 중에서

저자의 글들을 천천히 읽으면서 비슷한 경험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슬며시 자신의 삶을 성찰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강렬한 기억이지만 그때 떠오르지 않았을 수도 있고, 다른 복잡한 생각이 먼저 머릿속을 채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뒤늦게라도 이런 강렬한 기억은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전달해준다. 베트남에서의 단상 한 편도 기억의 편린 속에서 살아난다. "살다보면 사람 때문에 인생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다시는 사람을 믿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고, 사람을 멀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믿는 것이 있다. 인간은 인간과 함께 있을 때 가장 강하다는 것. 지치지 않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그 한 가지는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p.204 - 「불 속에서 피어난 뜨거운 연대」 중에서 


저자 : 김아영


행복을 향해 걷는 이방인. 소설책과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던 아이였지만, 더 높은 곳으로 향하라는 사회의 압박에 지금까지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계속해서 달리는 삶을 살아왔다. 그 결과 대한항공에서 승무원으로, G1 방송에서 기자로 일하며 “한국방송기자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후 MBC에 입사해 8년차 기자로 커리어를 쌓던 중 돌연 회사를 퇴사하고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글쓰기를 좋아하던 어린 시절의 꿈을 이뤄보고 싶었다. 지금은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쓰며 매일매일 작은 행복을 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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