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랜드 엘레지
아야드 악타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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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이 소설 작품 『홈랜드 엘레지』는 퓰리처 수상 작가인 악타르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회고록과 소설, 역사와 문화 분석이 경이롭게 조화를 이룬 역작'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아메리칸 북 어워드도 수상했다. 또 앤드루 카네기 메달상 후보에도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저자 악타르의 자전적 소설인 이 작품은 아버지가 도널드 트럼프 심장 주치의이었다. 이슬람계 이민자인데도 트럼프의 주치의를 했다면 어딘가 어색하지만 사실이고, 팩트란다. 저자는 2세대 이슬람계 이민자 극작가 아야드 악타르(자신)를 주인공으로, 트럼프와의 화려한 식사 자리와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 뒤편부터 할리우드힐스와 스크랜턴의 낙후된 공장 지대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역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미국'과 '미국적 삶'의 이면을 과감하게 파헤친다.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미국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아야드 악타르는 미국의 이민자에 대한 혐오와 자본주의의 폭력을 날카롭게 포착한 희곡과 소설 들로 대중과 평단의 뜨거운 관심을 받아 왔다. 특히 911 테러 이후 강화된 이슬람 혐오로 인해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을 그린 희곡 「수치Disgraced」로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큰 화제를 몰고 왔다. 미국에서 살아가며 정체성의 딜레마를 겪는 무슬림으로서 조국(미국)에 대한 분노와 애증을 담아 써 내려간 이 강렬한 자전 소설은 예술, 금융, 인종, 종교, 학계, 국가 등 다양한 주제를 관통하며 트럼프 시대의 실패한 「아메리칸드림」을 세련된 블랙 코미디로 탁월하게 그려 낸다.

표제어에 들어간 '엘레지(elegy)'란 우리말로 바꾸면 '비가(悲歌)'로 원뜻은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 또는 침통한 묵상의 시를 가리킨다고 한다. 친절하게 출판사 측의 소개글에도 어원부터 설명해 놓았다. 그리스어의 엘레게이아(elegeiã, 애도가)에서 유래된 말로 비가(悲歌)·애가(哀歌)·만가(輓歌)라고도 한다. 내용적으로는 애도, 철학적 논고, 죽은 사람의 위로로 구성되어 있으며, 친애하는 인간의 죽음을 계기로 해서 인생의 의미와 죽음에 대한 각오 등 작자의 생사관(生死觀)을 토로하는 시이다. 백과사전의 풀이를 덧붙이자면 괴테의 『로마 엘레지』, 밀턴의 『리시더스』, 토마스 그레이의 『시골 묘지에서 읊은 만가』, 셸리의 『아도니스』가 있으며, 20세기 최대의 엘레지는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를 꼽는다.

이 작품은 특히 미국 유수의 언론사에서 '『위대한 개츠비』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는 듯한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이를 민승남 번역가가 멋지게 번역해 훌륭한 작품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정서적 차이를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완벽에 가깝게 옮겼다. 사실 『위대한 개츠비』란 소설 작품은 1920년대의 미국의 상황을 잘 표현해낸 작품도 드물다.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는 그의 위대한 작품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1920년대의 미국 사회를 설득력 있게 표현하였다는 아낌없는 평가를 받았다. 1920년대의 미국 사회를 흔히 '재즈 시대'라고 부른다. 역사상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참혹한 결과를 빚은 제1차 세계대전 후 서구 문명에 깊은 회의를 보이면서 젊은이들이 재즈 음악에 심취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재즈 시대'와 관련하여 피츠제럴드는 한 작품에서 "그것은 기적의 시대였고, 예술의 시대, 과도의 시대, 풍자의 시대였다"고 밝힌 바 있다. 피츠제럴드를 두고 흔히 '재즈 시대의 왕자'라고 일컫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하다.

이 시기는 비단 경제만이 아니고 문학과 예술에서도 찬란한 꽃을 피운 때였다. 미국 문학으로 좁혀 말하자면 너새니얼 호손과 허먼 멜빌 그리고 에드거 앨런 포 등이 활약한 19세기 중엽의 '미국의 문예부흥'에 버금가는 문학의 황금기였다. 그리하여 어떤 문학 비평가는 이 시기를 미국 문학의 '제2의 개화기'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피츠제럴드는 많은 장편소설과 무려 160편에 이르는 단편 소설을 썼지만 이 소설 『위대한 개츠비』처럼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혀 온 작품은 없다. 1924년 한 출판사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피츠제럴드는 이 작품과 관련하여 "마침내 참으로 내 작품이라고 할 그 무엇을 썼다"고 자신만만하게 털어놓고 있다. 흔히 모더니즘의 대부로 일컫는 엘리엇은 이 소설에 대하여 "헨리 제임스 이후 미국 소설이 내디딘 첫 걸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알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 고전'의 반열에 올라와 있는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의 중·고등학교와 대학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 독자들로부터도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 소설은 미국에서만 해마다 30만 권 이상 팔리고 있으며, 외국에서 팔리는 것까지 계산에 넣는다면 그 수는 참으로 엄청나다.

그런데 왜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이 책 『홈랜드 엘레지』와 비견되며 평가되어질까? 『위대한 개츠비』는 작가가 살아온 고단한 삶의 궤적이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작품은 작가의 정신 편력을 기록해 놓은 자서전이나 전기로 읽어도 무리가 없다. 무엇보다도 작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랑과 젊음, 재산과 그것이 가져다주는 안일과 여유는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1920년대 미국의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미국이 세계사의 주역으로 떠오르며 막강한 미국의 능력이 실제 전쟁에서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은 땅덩어리만 넓은, 역사도 문화도 없는 중심이 없는 국가로 조소를 받아왔다. 그러나 종전 후부터 미국에 대한 평가는 180도 달라졌다. 과학과 각종 무기의 결합이라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탱크, 배, 비행기 등의 제조 능력이 어느 나라보다 탁월했으며 자원력, 인구, 산업력 등 유럽의 전체 나라와 바교해야 할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이로써 미국의 1920년대는 절제력이 없는 시기이기도 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도덕적 타락은 이 소설의 화자이면서 동시에 작중인물로 등장하는 닉 캐러웨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작중인물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도덕적 타락과 부패 그리고 무책임성은 톰 뷰캐넌과 데이지를 비롯하여 개츠비의 친구요 후견인으로 조직 폭력계의 대부인 마이어 울프심과, 데이지의 친구이며 프로 골프선수인 조던 베이커에게서 드러난다. 쾌락과 안일만을 좇는 톰과 데이지는 여러모로 도덕적 마비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위대한 개츠비』는 마치 시대 의상처럼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의 사회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 무렵 경제 성장의 그늘에는 도덕적 타락과 부패가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었다. 데이지의 남편으로 제이 개츠비와 연적 관계에 있는 톰 뷰캐넌과 개츠비가 타고 다니는 번쩍거리는 고급 승용차, 개츠비가 주말마다 벌이는 사치스런 파티, 마치 '불빛을 쫓은 부나비처럼' 환락과 쾌락을 찾아 헤매는 젊은이들, 톰과 데이지가 보여주는 도덕적 혼란과 무질서와 무책임은 바로 전쟁이 끝난 뒤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방황하던 젊은이의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을 잘 보여준다.

피츠제럴드의 한 단편 소설의 제목 그대로 이 무렵의 미국은 말하자면 '현대판 바빌론'이라고 할 수 있다. 톰의 저택이나 개츠비의 파티처럼 겉으로는 우아하고 고상하며 화려하지만 막상 한 꺼풀만 베껴놓고 보면 탐욕과 이기와 정신적 공허감이 도사리고 있다.

이 책 『홈랜드 엘레지』는 오늘날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 문제 중 가장 큰 문제점은 역시 인종 차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자신의 조국은 분명 미국법에 따라 미국인이 분명하고 자신 역시 미국인으로서 자긍심과 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는 건전한 미국 시민임을 자부하고 있지만 인종적 문제에 부딪치면 이런 사실이 모두 허구라고 드러나는 듯한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게 미국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아버지, 할아버지의 조국으로 돌아간다 해도 자국에 사는 자국민들의 대우도 해주지 않는다. 어디가 잘못된 것이다. 아니면 둘다 잘못된 것일 수도··· 제1차 세계대전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힘은 다시 한 번 인정받았다. 이젠 사회체제를 달리한 소련만 제외한다면 미국이 옛 로마제국 이상의 힘을 가진 나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점을 인정 받은 미국은 세계의 패권국가로서 대우를 받길 원했다. 다만 공산사회주의 체제와의 체제 싸움을 계속해야 했다. 소련과의 체제 싸움에서 미국은 다시 승리했다. 소련 붕괴로 실제로 공산사회주의는 무녀진 것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소련 영향력 하에 있던 많은 유럽 나라들과 식민지 체제에서 허덕이던 많은 나라가 독립의 기쁨을 맞기도 했다. 우리도 공산사회주의 체제인 북한과 휴전 상태이어서 소련 붕괴로부터 뭔가 통일을 위한 뭔가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소련이 무너진 것이지 공산주의가 무너진 것이 아니란 점을 곧 깨달아야 했다. 소련 대신 중국이 나섰다. 조용히 죽은 듯 내실을 다졌던 중국은 등소평의 개방 정책 30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세계 2위의 대국(G2)으로 올라섰다. 미국 사회를 이야기하다 이야기가 다소 빗나가고 있다. 독자들의 양해 바란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가 지니고 있는 꿈이나 환상은 개인적 차원을 뛰어넘어 좀 더 넓게 국가적 의미를 지닌다. 다시 말해서 그의 꿈과 이상은 상징적으로 '미국의 꿈'으로 이어진다. 제이 개츠비를 장례 지낸 뒤 닉 캐러웨이는 동부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고향으로 떠나가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개츠비의 집 앞 해변에 앉아 300여 년 전 부푼 가슴을 안고 미국 땅에 처음 도착한 네덜란드 상인들의 눈에 비쳤을 "신세계의 싱그러운 초록빛 가슴"을 떠올린다.

『홈랜드 엘레지』의 첫 장은 「트럼프 취임 1주년 기념일에」 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으로 시작된다. 성공한 극작가인 아야드와 트럼프 주치의였던 아버지가 갈등을 빚는 장면이다. 저자 자신이자 소설 속 화자이기도 한 극작가 아야드는 무슬림의 미국적 딜레마와 고통을 글에 담아내어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대표적 무슬림 출신 작가로 부상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와 비슷한 느낌이다. 저자 악타르는 무슬림의 배타성, 미국의 약탈적 자본주의를 동시에 비판하며 무슬림과 미국, 양쪽에서 배척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파키스탄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 온 아버지는 「위대한 기회의 땅」 미국을 사랑하는 인물로, 1993년 트럼프의 심장 주치의로서 잠깐 교류한 기억으로 그를 추억하며 2016년 트럼프가 대선에 출마하자 남몰래 그에게 표를 주기도 한다. 

『홈랜드 엘레지』 역시 미국 사회의 풍요로움 속에 깊이 뿌리 박혀 내재적으로 부패되어 가는 사회 문제를 지적하고 가감없이 그려냄으로써 폭로에 그치지 않고 제대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을 표현해낸다는 점에서 비슷한 소설로 평가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에서 살아가며 정체성의 딜레마를 겪는 무슬림으로서 조국 미국에 대한 분노와 애증을 담아 써 내려간다. 

이 책 『홈랜드 엘레지』는 가족 드라마, 사회 에세이, 희곡 등 다양한 형식을 자유로이 넘나든다. 소설의 첫 장은 성공한 극작가인 아야드와 트럼프 주치의였던 아버지가 갈등을 빚는 장면이다. 이토록 사상과 가치관이 전혀 다른 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로부터 뻗어 나간 소설은 이제 아버지의 친구이자 어머니가 남몰래 진정으로 사랑했던 인물, 미국에 살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 빈 라덴을 비롯한 무슬림의 독립을 지지했던 '라티프'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아버지 세대와 자신의 세대 시선으로 미국과 파키스탄 간 관계의 역사를 르포 형식으로 재조명한다. 라티프는 '이슬람 테러리스트 스파이'로 지목되어 암살당하고, 악타르는 미국에서 살아가는 '미국인'으서의 자신의 자아와 무슬림으로서의 자아로 살아가는 민족의 믿음이 다름에서 오는 분열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악타르는 911 테러 이후, 미국인들로부터는 「테러리스트의 민족」으로, 무슬림 연인으로부터는 무슬림의 정체성을 지지하지 않는 '미국인'으로 여겨지며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극렬한 아이러니를 겪게 된다.

이후 그는 대출 평가 사업을 운영하며 빚을 팔아 자본을 굴리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또 다른 무슬림 리아즈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빚과 자본이 초국가적 힘을 가진 수단과 논리가 되어 수많은 하층 계급의 삶을 파괴하는 것을 본 동시에 바로 그 리아즈가 주선한 주식으로 크나 큰 부를 거머쥐게 된 악타르는 자본주의적 성공에 얽힌 욕망을 거부할 수가 없게 된다. 이후 설상가상으로 도박과 술에 중독된 아버지는 자신의 의료 과실로 인해 죽은 환자 사건을 고백하고, 환자보다도 자본 이익의 증대를 추구한 기업형 의료 네트워크의 비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악타르가 가진 '미국'에 대한 딜레마는 심화되어 간다.

2024년 11월,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재선에 성공했다. 현재 그는 '크고 아름다운 벽'을 강조하며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고 국경 장벽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아이러니하게도 『홈랜드 엘레지』는 2020년 출간 당시보다도 더욱 동시대적이면서도 이후 미국의 행보로 더욱 요동치는 전 세계의 모습을 묘사한 예언서와 같은 작품이 된다. 이 소설에서 악타르는 트럼프가 상징하는 미국의 배제주의와 고국 파키스탄의 역사를 겹쳐 놓고 들여다본다. 그리고 두 나라에서 동일하게 보이는 자본주의적 딜레마의 역학과 원리를 날카롭게 짚어 내며 다음과 같이 쓴다. "그 여행을 회고하면, 미국을 트럼프의 시대로 이끈 것과 똑같은 딜레마의 윤곽이 보인다. 들끓는 분노, 이방인이나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 (중략) 그리고 이 모든 것과 결합한, 못 가진 자들을 희생시켜 가진 자들을 배불리는 부의 재분배의 지속적 가속화".(p.123)

또한 악타르는 '빚'을 팔아 넘겨 자본을 굴리는 시스템의 상인 리아즈라는 인물을 빌려 "이제 성장하는 건 공동체나 경제가 아닌 자본 자체이며, 빚은 수단이자 지배적 문화 논리이기도 했다"(p.243)고 첨예하게 지적하며, 미국 경제의 자본주의 메커니즘과 빚이 수많은 삶을 파괴하는 시스템의 이면을 가감 없이 파헤친다. 이 소설은 미국이 어떻게 지금의 위치에 올랐는지 낱낱이 분석하고, 앞으로 어디로 향하게 될지에 관한 질문을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독자에게 던진다. 우리는 〈왜〉 이런 세상에서 살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이제 앞으로 '어떻게'살아가야 하는가? 「트럼프 이후 시대」를 다시 한번 살게 된 현재의 우리에게 앞으로 흘러갈 세계 정세의 흐름과 방향에 관해 치열한 상상력을 열어 줄 시의적절한 작품이 될 것이다.

"트럼프가 처음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이 소설의 화자 아야드는 그를 인종 차별주의와 탐욕의 상징으로 여기며 트럼프가 세우려 한 '크고 아름다운 벽'에 대해 개탄했다. 4년 후, 연임에 실패한 트럼프가 숱한 논란과 파문을 뒤로 하고 초라하게 퇴장했을 때 많은 미국인들이 그걸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2024년에 MAGA(Make America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을 들고 다시 도전에 나선 트럼프는 싱거우리만큼 쉽게 백악관에 재입성하고, 취임 일성으로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고 국경 장벽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선언한다. 『홈랜드 엘레지』에서 시칸데르와 함께 파키스탄에서 이민 온 의사 술탄은, 미국이 인종의 용광로가 아니라 물질들이 함께 있으면서도 분리된 상태로 유지되도록 만드는 완충액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돌아온 트럼프가 만들 다시 위대해진 미국은 다양한 인종들의 통합과 조화로운 공존의 장이 될지 아니면 분리의 완충액이 될지, 그저 지켜볼 일이다."(p.515~516)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저자 : 아야드 악타르(Ayad Akhtar)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미국의 극작가이자 소설가. 뉴욕주 스태튼아일랜드에서 파키스탄 출신 부모 아래 태어나 위스콘신에서 자랐으며, 브라운 대학교에서 연극학과 종교학을 전공하고 컬럼비아 예술 대학에서 영화 연출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내 인종 차별, 종교, 경제, 이민자 정체성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글을 쓰는 동시에 극 연출과 연기 지도를 하고 스스로 영화에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2세대 이슬람계 이민자로 미국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과 좌절된 소속감, 미국 자본주의의 폭력을 날카롭게 포착한 희곡과 소설로 대중과 평단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911 테러 이후 강화된 이슬람 혐오로 인해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을 그린 희곡 「수치Disgraced」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테러 조직에 납치된 은행원을 주인공으로 자본주의를 들여다본 「보이지 않는 손The Invisible Hand」으로 오비상을 수상했으며, 부채에 지배당한 미국의 역사를 셰익스피어 희곡을 본 따 묘사한 「정크 Junk」로 에드워드 M. 케네디 연극상을 받고 토니상 후보에 올랐다. 파키스탄계 미국인의 성장을 다룬 첫 소설 『아메리칸 데르비시 American Dervish』는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으며 『커커스 리뷰』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외의 여러 작품이 미국 문학예술 아카데미상, 이디스 훠턴 공로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고 24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홈랜드 엘레지』는 악타르의 두 번째 장편소설로, "회고록과 소설, 역사와 문화 분석이 경이롭게 조화를 이룬 역작"이라는 언론의 극찬을 받으며 아메리칸 북 어워드를 수상하고, 앤드루 카네기 메달상 후보에 올랐다.


역자 : 민승남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제15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 E. M. 포스터의 『인도로 가는 길』, 카렌 블릭센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 앤드루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 애니 프루의 『시핑 뉴스』, 앤 카슨의 『빨강의 자서전』, 메리 올리버의 『기러기』,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별의 시간』, 윌리엄 트레버의 『마지막 이야기들』, 폴 오스터의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공역), 시그리드 누네즈의 『그해 봄의 불확실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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