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마치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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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이 책 『3월의 마치』는 인간이 자기 자신과 화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지만 불가능한 방법을 실행에 옮기면서 시작된다. 바로 과거의 나와 직접 대면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결코 쉽지 않고, 한편으론 불가능한 방법으로 생각되기 쉽다. 저자 정현아는 이를 위해 성공한 노년의 여성 배우 ‘이마치’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삶이라는 바다에서 무수한 파도를 넘으며 살아남은 ‘생존자’이기도 한 그녀는 세월이 남긴 깊고 묵직한 상처를 지니고 있다. 그런 이마치에게 알츠하이머라는 병이 마지막 파도로 들이닥치고, 그녀는 과거의 시공간을 복원한 가상현실을 누비며 유실된 기억을 되찾고자 한다. 과연 이마치는 수많은 예전의 자신과 재회하며 삶의 강렬했던 순간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자연의 섭리처럼 밀려오는 상실과 망각의 물결을 막아내는 것이, 그렇게 고통스러운 기억까지 간직하는 것만이 진정한 해피엔딩일까. 이 소설이 탐구하는 것은 기억과 망각의 경계에 있을 것 같다.

이 소설 작품 『3월의 마치』는 매력적이고 환상적인 가상의 무대 위로 우리를 초대한 뒤, 행복과 불행에 대한 갖가지 고정관념을 벗어던지도록 유도한다. 독자는 특히 기억과 망각의 경계선에서 기억을 오롯이 되살려낼 수 있을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신의 영역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우선 망각이란 단어에 집중해본다. 망각을 생각하면 독자는 으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갖다 주자 제우스는 크게 화를 낸다. 제우스는 인간들이 문명에 이르는 데 없어서는 아니 될 불을 일찌감치 숨겨 버렸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올리브 가지를 꺾어 태양 마차에 가까이 다가가 이글거리는 불길에 나뭇가지를 내밀어 불을 붙였고, 땅에 내려와 이 불씨를 인간들에게 전해 주었다. 제우스는 화가 났지만 불을 도로 빼앗아 올 수는 없었다. 불을 도둑맞은 제우스는 복수를 결심하고 인간들에게 새로운 재난을 줄 궁리를 했다. 그리하여 제우스는 판도라라는 여성을 만들어 인간들에게 보내기로 했다.

제우스의 명을 받은, 손재간이 좋은 불의 신 헤파이스토스는 아름다운 여성을 만들었다. 아테나는 이 여성에게 눈처럼 눈부신 옷을 입혀 주고 베일을 씌워 주었다. 머리에는 화관을 씌워 주고 금빛 댕기를 매어 주었다. 신들의 전령 헤르메스는 이 여성에게 재치와 말재간을 주었으며, 사랑의 신인 아프로디테는 그녀에게 온갖 아름다움과 함께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교태를 선사했다. 그리하여 ‘모든 선물을 받은 여인’이라는 뜻의 판도라가 탄생했다.

제우스는 온갖 재앙이 담긴 상자 하나를 판도라에게 주면서 절대로 열어 보지 말라고 경고한 뒤, 판도라를 인간들에게 내려보냈다. 지금까지 이런 여자를 본 일이 없었던 인간들은 이 신기한 창조물을 놀랍게 바라보았다. 판도라는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인 에피메테우스에게 다가갔다. ‘먼저 생각하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주는 선물의 위험성을 미리 알았고, 동생에게 그 선물을 절대 받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나중에 생각하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의 아름다움에 반해 형의 충고를 잊어버리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했다.

판도라는 어느 날 제우스가 준 상자가 생각났다. 제우스의 경고를 잊지 않았지만 호기심이 두려움을 앞서 상자를 열어 보았다. 그 순간 상자 속에서 슬픔과 질병, 가난과 전쟁, 증오와 시기 등 온갖 재난이 쏟아져 나오자, 놀란 판도라는 급히 뚜껑을 닫았다. 그리하여 상자 안에는 ‘희망’만이 남았다고 그리스 신화는 전한다. 인간에게는 그 희망만이 유일한 위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마지막으로 튀어나온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은 것 같다. 언젠가 독자가 읽은 신화에서는 '망각'이었다고 한다. 망각은 나쁜 것들에 속해 일찍 튀어나왔을 것이란 예상에는 맞지 않았지만 독자가 읽은 책에는 운명과 한(恨)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인간에게서 기억을 빼앗아가는 망각은 나쁜 것임에 틀림없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망각'이 없다는 인간은 살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이전까지 인간들은 어떤 고통도 모르고 지냈지만, 이때부터 인간은 영원히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 고통을 주는 것 중에 망각을 포함시킬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남은 것 중에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인간은 생리학적으로 감각기관을 통해 인지한 것을 대부분 기억한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만일 망각이 없다면 불쾌한 일, 원한, 미움, 증오, 시기심 등 온갖 감정을 일으키는 사실들을 잊지 않고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는 말이다. ‘판도라의 상자’는 인류의 불행과 희망의 시작을 나타내는 상징이라고 그리스 신화는 말하지만 독자는 망각이 ‘판도라의 상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과거 기억에만 묻혀 산다면 인간은 미래를 위해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마치의 언니는 6월에 태어나서 '준', 3월에 태어난 이마치는 '마치'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화려한 배우로 명성을 얻었지만, 그녀의 개인적인 삶은 외롭고 우울하다. 할리우드에 진출의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가지 않았고, 배우로서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엔 항상 외롭고 우울했다.

소설의 시작은 60세 생일날 시작된다. 예순번째 생일은 평소보다 더 이질적이다. 배우로서 엄격히 관리해온 체중이 하룻밤 사이 크게 달라진 사실을 발견한다. 이마치의 일상에 감지되는 이상 신호는 그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몇 달 전 이사를 한 후로 기묘한 일들을 겪는 중이다. 갑작스럽게 기억력이 감퇴해 연기 경력에 차질이 생기더니, 혼자 사는 집에서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급기야 집안을 배회하는 유령을 목격하기에 이른다. 

"이마치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몸무게를 쟀다. 그녀의 몸무게는 55킬로그램이었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변함없이 그 몸무게를 유지했다. 그녀는 배우였다. (…) 생일날 아침 이마치는 평소대로 몸무게를 재고 깜짝 놀랐다. 59라는 숫자가 깜빡거리다가 사라졌다. 전날까지 분명 55킬로그램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이렇게 몸무게가 늘 수도 있는 걸까?"(p,7~8) 

그녀는 평소와 다른 신체 변화와 이상한 환영들을 경험하며 점점 자신의 기억이 흐려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의사로부터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으며 점점 기억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기억의 흐려짐과 함께 몸의 변화, 환영과 같은 이상한 현상들이 나타나면서 삶이 무너져가는 공포가 밀려왔다. 그녀는 기억을 되찾기 위해 특별한 병원을 찾아간다. 뇌의학 클리닉을 찾아가 맞춤 제작된 VR 치료를 시작하고,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대면하게 된다. 그곳에서는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해 그녀의 과거를 복원해 주었고, 마치는 잃어버린 기억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배우로서 성공했던 순간뿐만 아니라, 사랑과 상실, 외로움과 고통이 스며든 삶을 마주하며 자신의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이마치는 저주가 깃든 듯한 그 집을 포기할 수 없다. 어려서 실종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수십 년째 지켜온 집이기 때문이다. 최근 재건축을 마친 그 집은 그녀의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고급 아파트이기도 하다.

이마치는 거액을 들여서라도 일상을 되찾으려 뇌의학 클리닉을 찾아가고, 그녀의 기억을 기반으로 맞춤 제작된 VR을 활용한 치료를 받는다. VR을 제작하기 위해 클리닉을 수차례 방문한 끝에 마지막 미팅을 앞둔 그날, 이마치는 60세가 되었고 몸무게가 전날과 달라져버렸으며 클리닉에서는 미팅이 취소되는 등 어딘가 낯선 하루를 보낸다. 아파트로 돌아온 이마치는 연이어 악몽 같은 일을 맞닥뜨린다. 엘리베이터가 전부 고장나 꼭대기 층인 60층에 있는 자신의 집까지 계단으로 걸어올라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때 그녀는 삶의 큰 가르침을 하나 얻었다. 불가능하리만치 먼 길을 갈 때는 절대로 목표 지점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앞을 봐서도, 위를 봐서도 안 된다. 시선은 아래로, 발끝만 보면서 걷는 것이다. (…) 한없이 느리게 올라 마침내 30층을 통과했을 때 어떤 여자아이가 계단을 뛰어내려가면서 그녀의 어깨를 살짝 쳤다. 교복을 입은 긴 머리의 여자애였다. 이마치는 이상한 기시감에 여자애를 흘긋 바라보다가, 다시 계단을 올랐다. 숨이 가빠 고통스러운 느낌이 밀려왔다가 또 밀려가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60층에 도착했을 때, 다리에는 아무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p.72~73)

가상현실 속에서 이마치는 아파트의 각 층을 오르내리며 자신의 과거를 하나씩 마주했다. 갓 태어난 자신, 어린 시절 학대당하던 자신, 젊은 시절 배우로서 빛나던 순간의 자신, 사랑하는 이를 잃고 절망했던 자신까지, 그녀는 과거의 모든 모습과 마주한다. 그들과 대화하며, 때로는 화를 내고, 때로는 연민을 느끼며 스스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기억들이 하나둘 되살아나고, 그녀는 그때 놓쳤던 따뜻한 순간들을 더욱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상처로 얼룩졌던 이마치는 점차 삶과 화해하는 법을 배워고 있었다. 기억을 지켜내는 것만이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해피엔딩임을 깨닫게 해준다.

이마치는 점차 아파트의 구조를 파악해나간다. 한 층을 한 세대가 차지하고, 현관문을 열면 그 안에는 층수에 해당하는 나이의 이마치가 당시 거주했던 집에 살고 있다. 아들을 잃고 비통에 빠진 이마치, 커리어를 포기하고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던 이마치, 갓 데뷔해 천부적인 연기 능력을 인정받던 이마치, 모친에게 학대당하던 이마치, 그리고 갓 태어난 이마치······. 현재의 이마치는 과거의 이마치들을 만나 그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마음을 꺼내놓는다. 또한 충분히 사랑해주지 못했던 자녀에게 애정을 표현하고, 증오스러웠던 어머니에게 복수하기도 하면서, 이마치는 전에 없던 충만함을 느낀다. 그러나 이마치 자신조차 모르고 있던 과거의 비극적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이마치의 전 생애가 담긴 세트장은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

이마치가 되찾아가는 과거는 이마치의 기억과 완벽히 일치하지 않는다. 때로는 그녀 곁의 누군가가 이마치의 삶을 거짓으로 꾸미기도 하고, 때로는 이마치가 스스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왜곡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생이라 여기곤 하는 기나긴 기억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 삶이라는 것에 실체가 있기는 할까. 정한아는 삶이란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상이 아니라 매 순간을 채우는 행위와 감정과 고통 그 자체로만 감각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 순간순간의 고유한 경험이 합쳐져 유일무이한 가치를 지닌 단 한 명의 인간을 완성한다고. 하지만 어떤 순간도 현재성을 잃고 빛바랜 후에는 더이상 삶을 휘두르지 못한다고. 그러니 과거에 더는 얽매이지 말라고. 현재의 강렬한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다보면 우리는 완성될 거라고. 그렇게 정한아가 소설 속 인물의 입을 빌려 건네는 말 앞에서 삶의 무게를 짊어진 우리의 어깨는 한결 가뿐해진다. 

“그냥 놔버려요. 당신이 가진 모든 기억. 당신이 인생이라고 붙들고 있는 것들. 별 대단치 않은 실패들, 성공들, 전부 다요.”(p.228)

기억과 망각의 경계에서 인위적으로 기억을 되살리려 했던 이마치의 노력은 헛된 꿈이다. 더욱이 현재 우리 인간이 노력해 얻은 과학 지식의 한계가 아직 명백한데도 자신의 심리적 갈등이나 선택한 기억만 되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신(神)이 인간에게 내린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것까지는 인간으로서는 뛰어넘지 못하는 현실을 깨닫는 것일 뿐이라고 소설은 보여주려 한 것 아닐까. 저자 정한아는 작품 마지막 〈작가의 말〉에 단초가 될 만한 말을 남기고 있다. 

"킬리만자로에 오른 적이 있다. 스물다섯 살에 떠난 탄자니아 여행에서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단화만 신고 그 산에 올랐다. 수년간 체력을 단련하고, 전문 장비를 갖춰 등반에 도전한 사람들 틈에서 나는 어처구니없는 최약체였다. 다들 나를 가엾게 여겨 옷을 빌려주고, 먹을 것을 나눠주고, 낙오되지 않나 틈틈이 돌아봐주었다. 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아주 높은 곳에 오를 때는 발끝만 바라보고 걸어야 한다는 것도. 정상에 닿았을 때 발밑에 펼쳐진 풍경은 흡사 은총 같았다. 발톱 네 개가 빠졌는데, 고통을 느낄 수 없을 만큼 황홀했다.

이번 소설을 쓰면서 그때 생각을 자주 했다. 쓰고 지우고를 밥 먹듯 했는데, 그 모든 과정이 정말 녹록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끝내 소설을 마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당신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저 설산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거라고. 살아갈수록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여기 일곱번째 책을 보탠다. 대단치 않은 소설이라고 해도 완성하고 보면 언제나 큰 기쁨이 있다. 발톱 열 개가 다 빠져도 좋을 만큼. 살면서 그러한 기쁨을 누리는 것에 숨죽여 감사하고 싶다."(p.285~286)


저자 : 정한아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나 건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05년 대산대학문학상을, 2007년 장편소설 『달의 바다』로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했다. 건국대 국문과 재학 중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등단한 그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작업실에 머물려 직장인과 똑같이 출퇴근 시간을 정해 놓고 글을 쓴다고 한다. 소설집 『나를 위해 웃다』, 『애니』, 『술과 바닐라』, 장편소설 『달의 바다』, 『리틀 시카고』, 『친밀한 이방인』 등이 있다.

그녀의 작품은 장르적인 요소를 반영하거나 실험적인 시도를 하기보다 전통적인 서사에 충실한 편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최근 젊은 작가들이 주로 가지고 있는 판타지나

SF 등의 상상력을 동원한다기 보다는 현실적인 소재 속에서 순진무구하고 명랑한 감수성과 산뜻한 문체를 통해 오히려 신비감을 자아내게한다. 문학동네작가상, 김용익소설문학상, 한무숙문학상,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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