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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와 반 고흐 영혼의 시화전 - 윤동주 전 시집과 반 고흐 그림 138점
윤동주 글,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스타북스 / 2025년 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독자가 윤동주와 반 고흐의 콜라보 시화집을 처음 접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의 기억을 좀 더 정확히 더듬어본다면 고흐의 아몬드나무 그림의 책 표지를 본 적이 있다. 그때 그 책도 윤동주와 고흐의 시화집 형식을 띠었다. 그 책 표지에 선택된 아몬드꽃은 독자로서는 처음 본 것이라 기억에 더 남았던 것 같다. 우리가 간식용으로 먹는 게 그 아몬드나무의 열매이다. 반 고흐가 아몬드 나무를 즐겨 그렸다는 것도 나중에 책을 통해서 알았다. 아몬드는 땅콩처럼 생긴 편도나무 열매다. 왜 고흐가 아몬드나무와 꽃을 좋아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조카에게 선물로 준 그림이 아몬드나무를 그린 작품이었다고 한다. 어쩌면 추위에 잘 견디거나 혹은 자손 번성을 위한 의미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동주와 반 고흐 영혼의 시화전』라는 표제어를 가진 이 책은 우리의 광복80주년이자 윤동주 시인이 서거한 지 8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는 특별 제작판이다. 올해 2025년이다. 국내외에서 윤동주 시인에 대한 추모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고 출판사 측은 전한다. 특히 윤동주가 다녔던 일본의 도시샤대학에서는 ‘죽은 사람에 대한 명예학위 증정’이라는 예외 규정까지 만들어 학장단 회의에서 열여섯 분 전원 찬성으로 서거일인 2월 16일에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기로 했다(독자가 신경을 쓰지는 못했지만 이 서평을 쓴 날 기준으로 이미 행사는 끝났으리라). 고하라 가쓰히로 도시샤대학 총장은 “우리는 자유를 탄압하는 군부에서 윤동주를 지켜내지 못한 분함이 있다. 명예박사 학위는 그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윤동주 시인은 80주년이 아니더라도 이미 한국, 일본, 중국은 물론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의 수많은 단체에서 추모하는 세계적 시인이 되었다. 따라서 날이 갈수록 인기를 더해가는 윤동주 시인의 추모 열기는 올해인 2025년에 최고에 달할 것이다.

그림에서 자화상은 자기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말한다. 시인 윤동주는 자신의 모습을 자화상이라는 제목으로 시로 남겼다. 이 시는 동주가 연희전문학교 재학 때 쓴 시로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의 현실 속에서 부끄럽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처 보듯, 우물을 들여다보는 행위를 통해 자아성찰의 상징적 공간으로 활용하는 자신의 내면을 형상화하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는 특히 자화상을 많이 그렸는데(독자의 기억으로는 생애 10점의 자화상을 남겼다) 유명한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은 병원에서 동생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린 것이라고 책을 통해 들은 바 있다. 고흐는 걱정하는 동생 테오에게 "편지보다는 초상화가 내 상태를 더 잘 보여줄 거라고 믿는다."며 이 작품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의 자화상은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이에 굴복하지 않고 창작에 대한 열정이 그의 눈빛에서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별'에 대한 갈망도 두 예술가의 영혼을 교차하게 만든다. 윤동주는 ‘별 헤는 밤’에서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라는 절창을 남겼다. 고흐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나를 꿈꾸게 한다. 나는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 갈 수는 없는 것일까.”라고 쓴 별에 대한 글에서 두 사람이 닮아있는 것을 너무도 생생히 느끼게 한다.
이 시화집을 보면서 독자는 두 예술가의 모습을 그려본다. 시공간이 다르지만 저변에 흐르는 감성과 예술혼은 순수하고 맑다. 우리 민족 최대의 위기라고 일컬어지는 일제강점기는 윤동주의 출생과 서거와 겹쳐 있다. 당시 한국인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고 나라 없는 엘리트 지식인으로서의 부끄러움, 참담함을 넘어 참회록으로 점철돼 있다.
일제 강점기 시집은 정음사에서 출간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년 초판, 1955년 증보판, 1979년 증보판 그리고 윤동주 탄생 100주년기념으로 전 작품이 담긴 스타북스의 2017년 출간된 『윤동주 전 시집』으로 나뉜다고 출판사 측은 밝힌다.

이에 따르면 윤동주의 시집은 그가 죽고 3년 뒤 1948년 정음사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윤동주 시집으로는 최초로 출간되었다. 이 시집에는 윤동주가 후배인 정병욱에게 맡긴 19편과 릿교대학에서 친구인 강처중에게 편지와 함께 보낸 5편과 그 외 7편을 더 찾아 총 31편이 실려 출간 된 시집이다. 그 후 1955년 정음사에서 윤동주 서거 10주년을 기념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증보판이 나왔다. 증보판에는 초판본에 더해 시와 산문 62편이 추가되어 총 93편이 실렸다. 추가된 시와 산문은 1948년 12월 윤동주의 여동생 윤혜원이 서울로 남하하면서 고향집에 있던 오빠의 모든 원고와 즐겨보던 책 등 유품을 가지고 와서 공개된 작품들이다.(당시 윤혜원은 감시가 심해 사진 앨범은 가져오지 못했다. 잘못하면 감시원에 발각되어 소중한 원고까지 빼앗길까 봐 앨범은 나중에 찾을 계획으로 친척집에 보관해 둔 채로 왔는데 사정이 생겨 찾지 못했다. 윤혜원은 두고두고 이를 아쉬워하며 가슴 아파 했다고 한다.)
그리고 1979년 정음사의 마지막 증보판에는 윤혜원이 용정에서 가져온 시들과 새로 발견된 윤동주의 작품 중에서 그동안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 수록을 보류했던 23편이 추가되어 116편이 되었다. 정음사가 없어지고 2017년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미완성이거나 원고에서 삭제 표시한 시를 포함해 기존 윤동주 시집에 실리지 않은 작품 8편을 더해 124편 전 작품을 수록한 『윤동주 전 시집』이 탄생했다.
이번에 출간된 『동주와 반 고흐 영혼의 시화전』은 영혼과 정서가 가장 닮은 두 별이 시대를 넘어 한 공간에서 만나 감동을 주는 가장 아름다운 콜라보 에디션의 시화전 북이다. 따라서 이 책은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위로와 함께 격조 높은 윤동주의 시를 읽으며, 정서가 닮은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명작 중의 명작 138편을 시와 가장 잘 어울리게 디자인하여, 보는 즐거움과 함께 독자들의 영혼에도 별이 반짝일 것이다.

반 고흐는 얼마 전 3월 16일 끝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대표작 70여점이 전시됐다. 반 고흐 전시회는 우리나라에서 익숙하다. 그만큼 우리의 명화 애호가들에게 인기 있는 화가이고 작품이다. 짧은 생애, 그것도 빈곤과, 거의 정신적 이상 증상을 보이는 가운데 불태운 예술혼이 살아 있는 작품이어서 더 인기가 있는 것 같다. 이번 전시는 반 고흐 전시답게 뜨거운 열기 속에 108일간 열렸다. 고흐는 살아생전에 그림이 팔리지 않아 고독과 빈곤 속에서 살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작품성이 인정돼 현재는 전 세계인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로 우뚝 서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작품은 천문학적 가치를 기록하며 경매장에서 팔렸다고 해서 더 유명해지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2007년 '불멸의 화가 반 고흐', 2012년 '반 고흐 in 파리' 전시 이후 12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고흐 전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책 『동주와 반 고흐 영혼의 시화전』에도 전시회에 전시된 작품은 거의 모두가 실려 있다. 고흐의 작품은 시대를 넘어 영혼과 정서가 너무 닮은 윤동주와의 콜라보를 이룬 시화집이다. 두 천재의 시와 그림이 만나 시화전을 펼치는 내용으로 시는 그림이 되고, 그림은 시가 된다. 이 책에는 윤동주의 전 작품 124편과 반 고흐의 그림 138편을 담았다. 두 사람의 작품 속에 담긴 별, 자화상, 고향, 해바라기, 그리움, 부끄러움, 그리고 희망과 자아성찰의 영혼은 너무 닮아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의 사람처럼 느끼게 한다. 이 시화집에 실린 한 편, 한 점 감상하면서 두 사람이 너무 많이 닮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모두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2장 〈흰 그림자〉, 3장 〈밤〉, 4장 〈팔복〉, 5장 〈산울림〉, 6장 〈식권〉, 7장 〈산문〉, 8장 〈나중에 발굴된 시〉 등이다. 각 장은 제목 앞에 '#' 표시를 한 것은 시나리오 장면처럼 시각화를 암시하는 듯해 편집의 묘를 보여주는 사례로 보인다. 〈프롤로그〉에는 윤동주의 시 「서시」와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바람」이 나란히 실려 완벽한 하모니를 보여준다. 함께 놓고 읽고 보고 감상하면 독자는 마치 파리의 밤 어딘가에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쓴 윤동주의 싯구가 당장이라도 읊조릴 수 있을 것 같다.

고흐가 남프랑스 생레미의 「생폴 정신병원」을 그린 그림과 윤동주의 「병원」이 나란히 놓여 있다. 독자로서는 부끄럽게도 윤동주의 시에 「병원」이라는 제목의 시를 처음 알았다. 아를에서 귀를 자르는 사건 이후 반 고흐는 1889년 5월 3일 생레미의 생폴정신병원에 입원한다. 그곳에 입원해 있던 1년 동안 고흐는 자주 심각한 발작을 일으켰고, 발작이 멈추었을 때에는 또다시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알려져 있다. 1889년 가을과 겨울에 반 고흐는 생레미 정신병원의 실내와 정원을 그릴 수 있었는데, 이때 고흐에게 그림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존재를 지탱해 주는 마지막 보루 같은 것이었다고 후세 평자(評者)들은 말한다.
그림 앞쪽으로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옆에 남자가 한 명 있다. 뒤쪽으로는 병원 건물의 전경이 보이고, 병원 입구의 문앞에도 한 사람이 서 있다. 소나무와 땅의 거친 붓터치가 두드러져 보인다. 그림 왼쪽에 길게 가지를 늘어뜨린 소나무는 이미 단순한 나무가 아니고, 뒤편의 건물들과 그 위의 하늘도 눈에 보이는 대로의 사물이 아니다. 나무와 하늘, 집, 인간, 땅 등 모든 것들은 그림 속에서 하나의 움직임 속으로 끌려들어가면서 생명의 가장 원초적인 힘을 뿜어내고 있다.
살구나무 그늘로 얼골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려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어 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어 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포기를 따 가슴에 꼽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그 자리에 누워본다.(P.30) -윤동주 「병원」 전문(全文)

시와 그림의 절묘한 조화는 분명 각기 다른 시공간의 사람들이지만 영혼이 통했을까. 이 시화집에 나온 시와 그림은 마치 시인과 화가가 한 시대, 같은 곳에서 얼굴을 맞대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시화집을 내기로 약속한 것도 아닌데 하모니를 이룬다. 그것이 몇 편, 몇몇 그림에서 발견되더라도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는데 이 책의 시와 그림은 마치 시인과 화가가 같은 사람이거나 동시대 같은 곳에서 사는 사람인 것처럼 조화롭다.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는 이미 우리에게는 유명한 시다. 일본 땅(남의 나라) 어느 하숙집 밤비가 속살거리며 내리는 다다미 방(육첩방)에서 대학을 다니는 자신의 소회를 적은 시로서 윤동주 문학의 특징 중 하나인 '참회'의 느낌을 담고 있다. 옆의 그림은 고흐가 아를에서 자신(「작업하러 가는 화가」)를 그려 자신의 생활비와 병원비를 내주는 동생 테오에게 보내기 위해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각자의 영혼에는 이처럼 애절한 무엇인가가 담겨 있다는 사실에 독자로서는 다시 한 번 놀란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육첩방은 남의 나라,//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한 줄 시를 적어 볼까,//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대학 노-트를 끼고/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생각해 보면 어릴 때 동무들/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나는 무얼 바라/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시 : 윤동주(尹東柱)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우리 것이 탄압받던 시기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 실을 가슴 아파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짧은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윤동주는 청춘 시인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시 ‘동주야’에 의하면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글을 구사하면서 작품을 발표한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만주 용정과 경성 신촌 일대에서 문학청년들과 몸을 부대끼며 시를 썼기에 청춘의 고뇌가 담겨 있다. 1925년(9세) 4월 4일, 명동 소학교에 입학했다. 1927년 고종사촌인 송몽규 등과 함께 문예지 [새 명동]을 발간했다. 1931년(15세)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1932년(16세)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1934년(18세) 12월 24일,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시 작품을 썼고 이는 오늘 날 찾을 수 있는 윤동주 최초의 작품이다. 1935년(19세)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로 편입했다. 같은 해 평양 숭실중학교 문예지 [숭실활천]에서 시 ‘공상’이 인쇄화되었다. 1936년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숭실학교를 자퇴하고 [카톨릭 소년]에 동시 「병아리」, 「빗자루」를, 1937년 [카톨릭 소년]에 동시 「오줌싸개 지도」, 「무얼 먹고 사나」, 「거짓부리」를 발표했다. 1938년(22세)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했고 1939년 조선일보에 「유언」, 「아우의 인상화」, [소년(少年)]지에 「산울림」을 발표하였다. 처음 윤동주 시들은 노트에 봉인된 채, 인쇄되지도 않았고 신문 지면에 발표되지 않았다. 그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숨지고 난 후 동문들이 그의 노트에 있던 시를 모아 정음사에서 출판한다. 유해가 안치된 지 3년 후, 그러니까 1948년, 조선은 대한민국으로 국호가 바뀌어 혼란한 시기에 청춘 시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광복 후에 정병욱과 윤일주에 의하여 다른 유고와 함께「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만주 북간도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 「달을 쏘다」, 「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를 발표하였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교토 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복역 중이던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여섯 달 앞두고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였다.
그림 : 빈센트 빌럼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영혼의 화가’로 불리는 네덜란드 인상파 화가. 불꽃같은 열정과 격렬한 필치로 눈부신 색채를 표현했으며, 서양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브라반트 북쪽의 작은 마을에서 엄격한 칼뱅파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869년에서 1875년까지는 미술품 매매점의 점원으로 일했고, 1877년에는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실패한 후 전업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1881년 12월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1890년 7월 29일 자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모두 879점의 그림을 남겼다. 그리고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을 팔았다. 37년이라는 생애 동안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며 늘 고독했던 고흐는 그의 후원자이자 동반자였던 네 살 터울의 동생 테오와 1872년 8월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는 668통이나 되고 그 밖에 어머니, 여동생 윌, 동료 화가들에게 보낸 편지들이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