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맛있게 먹는 7가지 방법
송주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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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맛있는 그림'이란 표현이 재밌다. 미술 감상에 관한 이야기지만 어린이들을 위한 미술 교육에는 꽤 어울리는 말이다. 이 책 『그림을 맛있게 먹는 7가지 방법』의 저자 송주영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입소문 난 한국일보에 2년 동안 칼럼을 연재한 미술칼럼니스트다. 이 책에 나온 글들은 대부분 신문에 게재되었던 칼럼을 다듬고 묶었다. '그림'을 '맛'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린이 교육 상 매우 적절하다고 독자는 공감한다. 저자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즈음부터 아이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그림 수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맛그림' 수업은 6년 동안 60명이 넘었다고 「그림을 맛있게 먹는 7가지 방법」이란 제목의 〈서문〉에서 저자는 귀띔한다. 표제어와 서문의 제목이 같다. 이 책은 저자의 첫 번째 글모음집이다. 미술교육자이자 디자인 이론가로 활동 중인 저자의 『그림을 맛있게 먹는 7가지 방법』은 이제껏 맛볼 수 없었던 흥미로운 그림 식당이다. 

책은 7부로 이뤄져 있다. 저자는 그림 감상 7가지 방법을 각 부에 하나씩 소개한다. 단순히 그림 감상법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유명한 미대 출신의 저자는 그림을 직접 그리는 것보다 학생들 교육을 위해 실기보다 이론에 더욱 매진했다고 한다. 물론 미술 교육에 더 관심이 갔다고 미대 출신이 할 일에서 벗어나는 일은 아니다. 의사도 법률가도 자신이 실제 유명한 의사와 변호사가 되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본인 의지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더 선호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실패한 예술가 지망생'이라고 표현한 것은 잘못된 것일 게다. 더욱이 자본주의에 잠식된 현대예술이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고 회고하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 책은 1부 〈개인 취향 존중 시대의 그림 감상법〉, 2부 〈오래전 미술 다시 보기〉, 3부 〈반전 있는 그림 보기〉, 4부 〈근현대 미술 다시 보기〉, 5부 〈동시대 미술 다시 보기〉, 6부 〈그림 속 여자, 그림 그리는 여자〉, 7부 〈내일을 위한 미술교육〉 등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에는 한국일보에 2년 넘게 게재된 미술칼럼 43개 중 28개를 선별해 실었다. 저자는 〈서문〉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1부부터 7부까지 순서대로 맛보는 것, 그림을 맛있게 먹는 방법이다."고 촘촘히 읽어줄 것을 독자들에게 주문한다. 미술 감상을 하듯 책을 읽어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란 조언이다.

이 책의 각 글들은 예술과 미술에 관한 깊고 풍부한 이야기들이 탁월한 필치로 맛깔스럽게 전개된다. 저자가 신문에 실은 것 중 테마별로 나눠 그림과 함께 풍부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 200여점의 그림 수록으로 독자들의 감상과 이해를 돕고 있다. 특히 120여 개가 넘는 풍부한 주석은 일상적으로 자주 쓰이지 않아 독자들이 일일이 찾아보는 불편함을 크게 줄였다. 맛있는 음식은 오감을 모두 만족시키는 법이다. 하나라도 만족하지 못하면 맛은 그만큼 혹은 훨씬 더 좋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특장점은 오감을 자극할 뿐 아니라 '영감'을 주는 것이다. 즉 읽고 그림을 보고, 다시 읽고 그림을 다시 보는 촘촘한 독서가 이루어지면 미술, 그림, 화가, 스스로 가장 선호하는 그림 분야 등이 느껴질 것이다. 말 그대로 삶의 기억에 남을 '맛있는 식사'가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1부에서 저자는 현대인들이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과정은 보통 두 가지로 흐른다고 말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 그리고 '몰라도 느낄 수 있다'는 두 방향의 협업에서 감상은 이루어진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르면 그림을 둘러싼 시대적 배경, 상황, 창작자에 대한 정보 등 그림을 이루고 있는 배경지식이 많을수록 그림에 대한 감상은 깊어진다. 그러나 아무런 사전 정보나 배경지식이 없어도 놀라운 감동으로 남는 그림이나 예술 작품을 만나는 일이 우리 삶에서는 흔히 일어난다. 성실하게 학습하고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몰라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의외로 작품 감상에서 큰 부분을 담당한다고 설명한다. 여기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과 그 시대의 '시대정신'이 얼마만큼 잘 담겨 있는지가 중요하다. 대중적 콘텐츠일수록 '몰라도 느낄 수 있는' 지점이 필요하다. 특정 언어와 경계를 넘어 수용횔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신념처럼 가진 그림 감상관(觀)이다. 

저자는 또 아무리 유명한 예술 작품도 자신에게 의미가 없다면 텅 빈 감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미술이 어렵거나 예술이 부담스러운 분, 미술 분야로 진로를 탐색하는 청소년, 잠시 예술 입맛을 잃은 분들에게 이 책이 우연히 만난 괜찮은 식당이면 좋겠다고 말한다. 미술 감상의 즐거운 미각이 되살아났던 저자의 경험처럼 독자들에게도 간이 잘 밴 나물 같은 맛이 느껴지면 좋겠다는 소망, 생명과 건강을 위해 먹는 한 끼 식사처럼 맛있는 그림 보기로 더 건강하고 행복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는 그림 감상 하면 으레 서양화를 떠올린다. 그만큼 서양 미술은 우리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독자는 우리 그림이나 동양의 그림에 대해 무지(無知)에 가깝다. 왜 우리 것보다 남의 것을 더 좋아할까?(좋아한다는 말은 지나친 표현이겠지만) 아마 한국 현대사의 불행 때문일 것으로 독자는 짐작한다. 현재까지 우리가 '학교'를 다닌 지는 불과 100년 조금 지났을 터다. 조선시대에는 서당이라고 해서 간단한 한자의 뜻이나 예절에 관한 책을 읽고 또 읽고 외우는 것이 전부였다. 예체능 교육이 따로 없었다고 한다. 근대화된 교육은 나라 문호 개방부터 시작됐다. 특히 일본의 식민지 정책의 첫 피해국인 조선은 시간이 갈수록 조선말, 조선글을 가르치지 못하게 되었다. 해방 직전에는 우리말 시간 자체를 학교에서 없앴다. 그러다가 갑자기 해방을 맞았고, 다시 한국전쟁을 겪었다. 우리 것이라 해도 조선시대의 산물 정도일 것이다. 이 책 1부 〈개인 취향 존중 시대의 그림 감상법〉에서 조선시대 김홍도의 〈노상파안(路上破顔)〉이라는 작품을 텍스트로 삼아 눈길을 끈다. 

저자에 따르면 예술 작품의 감상은 어느 한쪽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서 감상자 개인의 경험이 더해지는 과정이다. 이 사이를 조율하는 감상 테크닉이 있다. 바로 상상력, 즉 스토리텔링이다. 스토리텔링은 이미지에서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이다. 이는 미디어 리터러시 감도가 빠른 사람일수록, 즉 이미지의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배경과 상식에 기초를 두고 해석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그림을 보자마자 자동적으로 실행하는 첫 번째 과정이다. 셜록 홈즈와 같은 탐정가의 시선으로 그림을 뜯어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저자는 이 과정을 김홍도의 〈노상파안〉을 첫 사례로 설명한다. 김홍도는 정통 궁정화가이자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조선시대 최고의 '스타 아티스트'였다. 〈노상파안〉은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 중 하나다. 밑도 끝도 없이 '길 위에서 미소짓다'는 제목만이 이 그림에 대한 정보의 전부다. 그저 조선시대의 한 풍경일 뿐 구체적으로 전해지는 지식이 없는 작품이다. 그러나 오히려 정해진 이야기가 없기에 우리는 마음껏 상상해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어 그림을 보며 마음속으로 감상하는 방법과 순서를 기술하고 있다. ① 먼저 그림 속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핀다. ② 몇 가지 지식들을 덧붙여 정황을 파악한다. ③ 그림 속 주인공의 스토리를 상상한다. 

이처럼 저자는 김홍도의 〈노상파안〉은 예술과 역사에 대한 풍부한 상식이 있어도 좋지만, 아는 것이 적어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그림이다. 좋은 그림이란 무릇 사전 지식이 있어도 즐겁고, 몰라도 상관없이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책의 1부 2장(章) 「형식과 내용으로 그림 보기」에 대해 살펴본다. 저자는 어린이들도 쉽게 관심을 가질 정도로 쉬운 이야기 형식으로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형식’이라는 남성과 ‘내용’이라는 여성이 있다. 이들은 서로 사랑에 빠졌고, 여느 커플과 마찬가지로 깨소금 쏟으며 좋다가도 폭풍우 치는 밤처럼 싸우기도 한다. 둘은 함께 있을 때만 서로의 존재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싸우다가도 화해하고 평생을 붙어 다니며 그렇게 해로한다. 흔한 말로 둘은 천생연분인 셈이다. 형식 군과 내용 양은 헤어질 것도 아니면서 맨날 서로 투덜거리지만 결국 함께 붙어 다니는 커플이다. 예술 작품 안에는 이러한 형식 군과 내용 양의 러브스토리가 있다.(p.22)

그림을 감상하는 또 하나의 좋은 방법은 형식과 내용을 보는 것이다. 모든 예술 작품에는 반드시 형식과 내용이 있다. 형식은 작품을 이루는 외형, 윤곽, 형태나 구조를 뜻한다. 내용은 그 형태 사이로 배어 나오는 생각, 정신, 이념이나 이야기를 이룬다. 작품 안에 담긴 형식과 내용은 철학적인 사고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를 도식적으로 아름다움(美, 형식)은 선(善, 내용)이기도 하고, 선이 아니기도 한다는 내용으로 풀이한다. 그림 실례로는 16세기 라파엘로 산치오가 그린 〈아테네 학당〉은 고대 철학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작품 한가운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플라톤은 오른손을 높이 들어 하늘을 가리키며 '진리는 저 높은 곳에 있다'는 형이상학을 상징한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손으로 땅, 즉 자연 세계를 가리키며 '진리는 현실과 경험에 있다'는 형이하학을 대변하는 모습이다. 서양철학의 가장 큰 두 흐름은 모두 여기에서 출발하고 정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세계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지금도 이 두 개의 흐름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아테네 학당〉에서 함께 나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엄격히 말하면 같은 세대는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플라톤은 BC 427년에 태어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BC 384년에 태어났으니 43년의 차이가 있다. 스승과 제자쯤으로 한 공간에 있었던 것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저자가 미술 감상으로 〈아테네 학당〉을 택한 이유는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바를 그림으로 그려낸 것을 감상하는 태도를 비교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책에 따르면 플라톤과 아리스토델레스의 영향권 안에 있는 서유럽인들은 '아름다움'이란 곧 '선'이라고 여겼다. 르네상스 이후 근대로 접어드는 18세기에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가 이러한 고전 미학을 야무지게 정리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칸트는 인간의 경험을 '내용'으로 보앗다. 그리고 경험과 상관없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인식 능력이 있는데, 이것이 예술의 경우 '형식'을 통해 드러난다고 보았다. 절대신과 상관없이 인간은 스스로 내용을 형식으로 창조해 아름다움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판단력이 있고, 쾌락으로서 '미'를 판단(감상)한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칸트는 예술이란 관조의 대상일 뿐 과학을 통해 아름다움을 분석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예쁜 아이의 얼굴은 누구에게도 예쁜 아이로 보이기 때문에 이걸 따져 묻지 말라는 말과 비슷하다. 이때까지 작품의 형식과 내용은 서로 반목하지 않고 그 자체로 하나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이러한 칸트 미학에 새로운 질문들이 제기됐다. 당시 과학 발전의 영향을 받은 일부 학자들은 예술 작품을 관조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연구 대상으로 삼고 예술심리학, 형태이론, 예술사회학, 실험미학, 정보이론 등 다양한 이름으로 해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예쁜 아이 얼굴이 왜 예쁘게 보이는지, 누가 어떻게 왜 예쁘다고 여기는지 과학적으로 따져 묻자는 생각이다. 본격적으로 작품의 형식과 내용은 사이가 좋았다가 싸우기도 하는 커플처럼 소란스러워졌다. 예술 작품 안에서 형식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다룬 연구가 바로 형태이론, 형태심리학이다. 내용과 관련해서는 예술 작품의 맥락적 의미를 파고드는 예술사회학, 예술심리학에서 다뤘다. 이러한 연구들은 결과적으로 예술을 '탈신비화'하고 인간과 예술 사이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찾아보려는 시도였다. '저 높은 곳에 있는 예술'이 아니라 '실제의 삶 속에서 의미가 있는 예술'을 만나려는 노력이다. 예쁘거나 아름답지 않아도 예술이 되고 작품이 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예술 감상의 대상은 늘 예술 작품이다. 그것을 예술 작품이라고 규정 짓는 것은 예술가이고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다. 때문에 시대에 따라 예술이나 미적 감각이 달라지고 탐구 대상도 달라진다. 또 묘사 방법이나 농담(濃淡), 색, 선, 문자, 음표(소리) 등 도구에 따라 달라지고 분야별로 나뉘기도 한다. 신화시대의 그림과 중세의 그림, 또 르네상스 이후의 그림이 표현하는 것이 다르다. 결국 인간의 삶을 인간이 표현하기 때문에 다양하게 분화, 발전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7개 테마로 나뉘어 감상법을 설명하지만 독자들은 어떤 시대 어떤 그림이 가장 좋은지, 가장 인상적인지 하나 하나 꼽아보며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독자의 경우 가장 최근의 전쟁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묘사하는 그림을 그린 러시아 예술가의 이야기가 무척 감명 깊다. 그가 86세의 나이에도 벌금을 내면서까지 반전(反戰)벽화 이야기가 무척 감동적이다. 

2023년 12월 〈뉴욕타임스〉는 「손에 붓을 든 러시아 벽화가, 자신만의 전쟁을 벌이다」라는 타이틀로 블라디미르 옵치니코프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모스크바에서 토목공학자로 살다가 1998년 은퇴 후 모스크바 인근 칼루츠카아주 브롭스크에 머무르며 2000년부터 벽화를 그렸다. 그는 '브롭스크의 뱅크시'라고 불리는 잘 알려진 그래피티 아티스트(벽화 예술가)다. 그러나 그는 이 별명이 못마땅하다. "나는 뱅크시처럼 숨어서 벽화를 그리지 않는다. 벽화에 내 이름을 남기고 벌금을 내고 또 그럴 것이다." 폭격으로 부서진 우크라이나 건물에 벽화를 남긴 익명의 뱅크시는 안전하게 세상의 주목을 받지만, 같은 메시지를 담은 블라디미르의 벽화는 벌금이 부과되고 지워지는 수난을 겪고 있다. 우크라이나 소녀의 모습을 담은 벽화로 그는 징역 5년형에 준하는 3만5,000루블(당시 한화 약 53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심지어 전쟁을 지지하는 마을 주민으로부터 눈덩이를 맞기도 했다. 이 86세의 예술가는 묻는다. "평화를 요구하는 그림이 왜 범죄가 되는가?"라고.(p.225) 


저자 : 송주영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한 후 중국 베이징 중앙미술대학을 거쳐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The Ohio State Univ.)에서 미술교육학 석사를 마쳤다. 재정경제부 국제언론홍보실, KBS 2TV 작가, 월간 [디자인] 기자, 갤러리현대 큐레이터, 디자인하우스 전시 코디네이터로 일했다. 캐나다 앨버타대학(Univ. of Alberta)에서 교육학 박사과정을 시작했으나 출산과 육아를 선택한 후 번역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맛그림 미술교육’을 운영했다. 한국화학공학회 [NICE], 한국일보에 ‘맛있게 그림보기’ 칼럼을 연재했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독서IN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한국의 예술가와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미술교육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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