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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의 심리학 - 예술 작품을 볼 때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오성주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3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독자는 코로나 팬데믹 발발 이후 미술 감상을 위한 책이나 서양 미술사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최근 5년 동안 미술에 관한 책을 10권 가까이 읽은 것 같다. 덕분에 멀게만 느꼈던 미술 감상이나 화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 서양 미술사의 흐름에 꽤 접근한 것 같다. 물론 그림 문외한이었던 탓에 기초부터 차근차근 공부하듯 읽은 것은 아니지만 서양 미술에 대해 초보 단계는 벗어났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어떤 책에서도 '예술 심리학'이란 학문이 있다는 말은 듣거나 읽지 못했다. 이 책 『감상의 심리학』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저자 오성주에 따르면 예술을 심리학적 분석 대상으로 삼는 학문인 ‘예술심리학’은 역사가 100년 이상이 되었다. 예술 심리학은 100년 이상의 시간 동안 예술을 실험적이고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서울대에서 약 10년 동안 학부생을 대상으로 예술심리학 강의를 진행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예술 심리학의 흥미로운 실험과 결론을 소개하면서, 예술가와 예술 작품의 뒷이야기도 재미있게 풀어낸다.
예술 심리학이란 용어가 낯선 것은 '예술'이란 철저히 주관적이고, 예술 작품은 창작자의 영감이나 광기, 시대적 우연의 산물이기 때문에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기존의 관념 탓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창조의 영역인 예술에 대해 과학의 영역인 심리학으로 분석하거나 감상을 돕기는 부적절하다는 인식 때문이라는 말로 독자에게는 읽히는 부분이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의 집필은 예술 감상이나 이해를 위해 심리학적 분석이란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저자는 예술 심리학이 예술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를 통해 일반 감상자들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통찰을 줄 수 있고, 예술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고 이 책을 통해 강조한다.
심리학 자체도 과학의 영역에 들어간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닌 듯하다. 심리학은 인간의 행동과 심리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경험과학의 한 분야로 정의한다. 인간과 동물의 행동이나 정신과정에 대한 다양한 질문의 답을 찾는 과학 중의 하나가 바로 심리학이라는 뜻이 정설로 굳어져 있다. 심리학이라는 단어는 영혼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psyche와 어떤 주제를 연구한다는 의미의 logos가 합쳐진 것으로, 초기에는 심리학을 ‘영혼에 대한 탐구’라고 했다고 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현대 심리학이 과학의 영역에 들어간 것은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프로이트, 카를 융, 아들러 등이 원조들이다. 카를 융이 창안한 분석심리학은 의식과 무의식간 관계를 확립하고 이해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프로이트(Freud)로부터 무의식의 중요성에 대해 영향을 받은 융은 무의식의 개념을 확장하여 체계적 이론을 구축하였다. 상담심리학은 아들러(Adler)가 창안하고, 그의 후계자들이 발전시킨 분야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개인심리학 초기 정신역동적 심리치료 발전에 크게 기여한 아들러는 9년간 〈비엔나 정신분석 모임〉에서 프로이트(Freud)와 함께 정신분석을 연구했지만, 입장 차이로 결별한 이후 자신만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프로이트가 인간의 성격을 자아, 초자아, 원초아로 구분하고, 인간은 이러한 부분들 간의 갈등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로 본 것과 달리, 아들러는 인간을 전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하여 자신의 이론을 개인의 분리불가능성(indivisibility), 즉 나눌 수 없는(in-divide) 전인이라는 의미를 넣어 '개인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이라고 명명하였다. 여기서 개인이란 내담자 한 사람에 초점을 맞춘다는 뜻이 아니라 따로 나눌 수 없는 전체성을 의미한다.
개인심리학은 기본적으로 정신역동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주의적 상담의 이론적 기틀을 조성하였다. 이는 현대 상담 및 심리치료이론가에게 방대한 영향을 주었고, 그로 인해 아들러는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개인심리학의 인간관은 전체적 존재(사람의 행동, 사고, 감정을 하나의 일관된 전체로 봄), 사회적 존재(인간이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이며, 사람의 행동은 사회적 충동에 의해서 동기화되므로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사회적 맥락 속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봄), 목표 지향적·창조적 존재(목표, 계획, 이상, 자기결정 등이 인간행동에서 매우 실제적인 힘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더 나아가 목표를 지향하는 인간은 자신의 삶을 창조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으며 자기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존재로 보았다. 또한 인간은 제3의 힘, 즉 창조력이 있기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목표를 향해 도전할 수 있다고 봄), 주관적 존재(현상학적인 관점을 수용하여 개인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주관성을 강조한다. 인간을 단순한 반응자가 아닌 창도자로 봄)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과학적으로 심리학을 더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분야가 카를 융과 아들러의 이론을 계승한 제자나 학자들에 힘입은 바 크다. 예술 심리학도 예술을 심리학적으로 접근해 보다 논증적인 이해를 하자는 의미에서 시도되었다고 본다. 물론 작품뿐만 아니라 화가의 심리도 포함된다. 개인심리학의 특징은 행동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목적을 분석하고(목적론), 인간을 분할할 수 없는 전체로서 파악하여 이성과 감성, 의식과 무의식 등의 대립을 인정하지 않고(총체론), 객관적 사실보다 객관적 사실에 대한 주관적 의미부여 과정을 중요하게 보고(현상학적 관점), 내적 정신세계보다 대인관계를 분석하고(대인관계론), 주체적 결단능력을 중요시한다(실존주의)는 것이다. 주요 개념으로는 열등감과 보상, 우월추구, 생활양식, 허구적 목적, 공동체감과 사회적 관심, 가족구도와 출생순위, 삶의 과제 등이 있고, 변화를 위한 핵심 요인으로 격려를 강조한다.
아들러의 분석 심리학을 구체적으로 여기에 적는 이유는 예술 심리학이 대체적으로 예술과 작가의 심리적 접근을 꾀하기 때문이다. 저자 오성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미술관에 가면 그림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지만, 막상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막막한 순간이 온다. 제목과 설명을 읽어도 어렵고, 어린아이 낙서처럼 보이는 작품의 의미를 파악하려다 보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때로는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유명 화가의 그림을 보면서 “이게 좋은 그림인가?”라는 의문이 들면서도, 누군가에게 물어보기 민망해서 질문을 속으로 삼키기도 한다. 이렇듯 미술 감상이 어렵게 느껴졌던 적이 있다면, 『감상의 심리학』이 그 답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예술 심리학의 개요와 이 책의 집필 취지가 제대로 이해되는 대목이다.
최근 미술 감상의 기회가 많이 늘어나면서, 시중에는 미술 전문가들이 쓴 다양한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의 책은 작품의 역사, 시대적 배경, 화가의 생애를 중심으로 미술을 설명하는데, 이러한 접근법이 감상의 전부일까?

책에 따르면 연극의 3요소로 ‘희곡’, ‘배우’, ‘관객’을 말하듯이, 미술의 3요소를 꼽는다면 ‘그림’, ‘화가’, ‘감상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미술책의 주인공은 보통 화가와 작품이다. 화가의 심리 상태나 그림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분석은 많이 접할 수 있지만, 감상자의 마음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설명을 찾기는 어렵다. 감상자가 없는 미술은 무의미함에도 그렇다. 강미정(미학 박사, 서울대학교 미학과 강사)는 〈추천사〉를 통해 "우리의 시각 체계는 0.1초만에 눈앞의 장면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색채보다 형태를 먼저 지각하며, 얼룩이나 다름없는 이미지에서 친숙한 대상을 알아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 오성주는 헤르만 폰 헬름홀츠, 루돌프 아른하임, 대니얼 벌린 같은 저명한 심리학자들의 이론을 그림 감상의 도우미로 삼는 한편, 몬드리안이 수직, 수평의 구도를 선호한 이유를 해명한 연구를 포함하여 여러 심리학 실험들을 소개한다. 저자의 친절하고 유쾌한 설명은 미술 지식이 없는 독자들을 자연스럽게 객관적인 그림 보기의 길로 인도한다."고 평가했다. 또 이 책은 의문의 여지없는 심리학 서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리학의 울타리에 갇혀 있지는 않다고 강미정 박사는 강조한다.
이 책이 쓰인 배경에는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인 AI의 역할이 광범위하게 확대되면서 인간을 넘어서는 창의력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인간의 우려가 확대되고 있어서 명확한 분석을 통해 AI의 창작과 인간의 창작의 비동일성을 강조하는 데까지 나아가길 독자로서 희망해 본다. 저자는 「인공지능이 그림을 대신 감상해줄 수는 없다」란 제목의 〈서문〉에서 "미래에 최첨단 인공지능이 그림을 창작하고 평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림 앞에 서서 감상하고 있는 감상자의 마음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공지능이 그림을 감상하고 분석한다고 치더라도 그림 감상 자체는 타인 또는 다른 존재와 절연된 감상자만의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공상과학 영화에서처럼 먼 미래에 자신은 집에 가만히 누워 있고 자신의 아바타가 미술관에 가서 감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경우에도 결국 감상의 느낌은 그 아바타가 아닌 집에 있는 '나'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그림 감상은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훌륭한 도구가 될 것이다.

이 책은 모두 12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눈과 감상〉, 2장 〈감상의 과정〉, 3장 〈집단화와 구성〉, 4장 〈과장과 정점 이동〉, 5장 〈풍경화와 생태적 감정〉, 6장 〈색, 마티에르, 공감각〉, 7장 〈몸으로 감상하기〉, 8장 〈인물화와 그로테스크〉, 9장 〈움직임과 리듬〉, 10장 〈문제해결로서의 감상〉, 11장 〈이상한 그림과 기대 오류〉, 12장 〈성격, 사회, 문화〉 등이다. 제목이 『감상의 심리학』으로 표현돼 있듯 이 책은 감상자가 주인공이 되는 미술 교양서다. 이 책은 미술 감상을 감상자가 그림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라, 감상자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능동적인 심리적 과정으로 본다. 이에 따라 지금껏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았던 감상자의 경험에 주목하면, 다양하고 흥미로운 질문들이 제기된다. 사람들은 그림 세계와 실제 세계를 다르게 인식할까? 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은 그림을 얼마나 오래 볼까? 왜 사람들은 풍경화를 좋아할까? 어떤 그림을 볼 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인상주의 그림이 인기가 있을까? 정지된 그림에서 역동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림을 볼 때 몸은 어떤 역할을 할까? 왜 어떤 그림들은 역겨울까? 그림에 대한 지식, 제목, 설명은 감상에 도움이 될까?
책에 따르면 한 심리학 연구팀은 제목과 설명이 그림 감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밝히기 위해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실험 참여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눴다. 세 그룹은 각각 아무런 정보 없이 그림만 감상하는 그룹, 제목과 함께 감상하는 그룹, 제목과 설명문을 보면서 감상하는 그룹이었다. 참여자들은 그림을 보면서 그 그림을 얼마나 이해하고 의미를 파악했는지를 스스로 평가했다. 실험 결과, 그림에 대한 정보가 더 많이 제공될수록 감상자는 그림이 더 의미 있다고 평가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런 경향은 그림이 추상적일수록, 그리고 제공되는 정보가 작품과 직접적으로 연관될 때 강해졌다.
예술심리학의 실험은 어떻게 해야 그림 감상 경험과 관련한 유용한 영감을 준다. 앞선 실험 결과를 예로 들면, 전시 기획자와 큐레이터는 관람객의 그림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 어떤 정보를 제공해야 할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림과 직접 연관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특히 추상화와 같이 무엇을 표현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일 때 더 적극적으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추천사〉에서 짧게 설명했지만 미술관 관람객의 행동을 분석한 심리학 연구들을 보면 미술관에서 어떤 감상 전략을 취해야 할지 알 수 있다. 인지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그림을 0.1초만 보고도 상당히 많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미술관에서 진행된 연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처음 접하고 10초 이내에 그림을 더 볼 것인지 말 것인지 판단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절반 이상의 관람객이 그림을 한 번씩 쭉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그림으로 다시 돌아와 재감상을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저자는 심리학 연구들을 검토하면서, 아주 짧게 휙 미술관을 둘러보면서 마음을 끄는 그림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그 그림들만 집중적으로 감상하는 전략을 제안한다. 저자는 감상자들이 예술에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새로운 도구를 제공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집필 취지를 밝히고 있다. 특히, 이 책은 미술과 심리학을 모르는 사람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저자는 전문적인 용어나 어려운 개념을 최대한 배제하고, 친근한 어조로 설명하며, 자신의 경험과 감상을 곁들여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미술과 심리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그림과 심리학을 좀 더 편안하게 느낄 수 있으며, 자신의 감상 방식과 생각을 더욱 깊이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감상의 심리학』은 예술을 사랑하는 누구나, 감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미술 감상과 이해법이다.
한국의 옛 그림에서도 점묘법을 찾아볼 수 있다. 겸재 정선은 금강산을 그리면서 점을 찍어 숲의 농도를 달리했다. 그림에서 산 능선은 진한 점을 찍고 그 사이에서는 점진적으로 점을 줄여나갔다. 또한 왼쪽 작은 산은 훨씬 밝은 점들로 숲의 무성함을 표현하여 원근감을 높이고 있다. 점으로 숲의 농도와 깊이를 표현한 기법은 그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데, 그의 실험 정신이 얼마나 투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p.104)
저자 : 오성주
2011년 이후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지각심리학, 예술심리학, 로봇심리학 등을 가르치고 있고, 최근에 주식 투자와 관련한 수업인 주식심리학을 개설했다. 착시와 게슈탈트 심리학 연구에 관심이 있다. 전북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뉴저지 주립대학교(Rutgers-Newark) 심리학과에서 지각심리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에 오기 전에는 경남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전임강사로, 전북대학교에서 연구교수로 근무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