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의 역사 - 중세부터 현재까지 혼자의 시간을 지키려는 노력들
데이비드 빈센트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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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이 책 『사생활의 역사』의 표제어로 쓰인 '사생활'은 영어로 '프라이버시(privacy)'로 표현되는 단어다. 이 단어는 사전적 의미로 "가족을 비롯한 사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개인적인 일이나 관계를 말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빈센트도 「혼자 있을 권리의 시작, 중세 시대」란 제목의 1장(章)에서 '사생활(프라이버시)'이 개인에게 국한된 개념은 아니라는 걸 분명히 밝힌다. 이에 따르면 프라이버시의 어원인 '프리바투스(privatus)'라는 라틴어에는 공권력의 통제를 받는 집단의 문제와 가정이라는 사적인 공동체의 문제가 구분된 합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이런 구분이 무시될 때가 있었다. 그 시작은 변호사인 새뮤얼 워런과 루이스 브랜다이스가 1890년 《하버드 로 리뷰》에 〈프라이버시의 권리〉를 발표하며 프라이버시를 '혼자 있을 권리'로 정의하면서부터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사생활'이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할 정도로 사회 문제가 된 것은 중세 시대부터라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 의견이다. 14세기 중세 런던의 빽빽한 거리에서 벌어진 분쟁은 수도 없이 많았다. 런던에서는 12세기부터 방해죄가 존재했는데 여기에는 사적인 방해와 공적인 방해가 모두 포함된다고 저자는 풀이하고 있다.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방해를 받은 사람은 누구든지 재판소에 소를 제기할 수 있었다. 재판소 심리에서 쟁점이 된 것은 '사적인 가정생활이 보호받아야 한다'였다.(p.14)

두산백과에 따르면 프라이버시란 개인이 사생활에 대한 부당하거나 원치 않는 타인의 개입을 받지 않는 상태를 일컫는다. 이는 서구 근대 역사의 산물로, 프라이버시에 대한 요구는 17세기에 처음 관찰되었고 18세기에 프라이버시 권리의 제도화를 위한 초석이 마련되었다. 영국의 1689년 권리장전과 프랑스의 1789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의 선언이 선언한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 신체·안전의 자유 등에는 프라이버시의 개념이 함축되어 있다.

19세기 중산계급 가정의 형성은 프라이버시의 발전에 있어 중요했다. 중산계급 가정을 통해 ‘사생활’에 대한 개념이 구체화되었고 실재하는 것이 됐다. 금전적 여유가 되는 중산계급에게 가정 생활은 매우 실재적이고 실질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신보다는 가족과의 밀접한 관계를 삶의 중심에 두었다. 가정의 영역을 보호하고 유지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는 남성 가장의 관리 하에 개인적 지식을 공유하는 것으로 이어졌으며, 사회적·정치적 실권자가 그것에 개입할 권리는 없었다.

20세기에 이르러 프라이버시는 공적 영역으로 확대됐다. 아동 방치의 증가는 국가가 가족의 사생활에 개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미국에서는 1908년 어린이 법안과 1918년 산모와 아동 복지법이 제정됐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아동 성적 학대는 1908년 '근친상간처벌법'의 제정으로 공권력의 개입을 받게 됐다. 가족의 생활 환경 또한 1919년 도시계획법, 1923년과 1924년 주거법에 의해 정부의 관여 대상이 됐다.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프라이버시는 사적 열망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로 재정비 되어갔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문은 그 누구도 프라이버시에 대한 임의적인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고, 유럽연합의 기본권 헌장의 제8조항은 모든 개인은 자신의 사생활, 가정 생활, 개인적인 서신을 존중 받을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부터 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함께 프라이버시는 위기를 맞기 시작했다. 1969년 제리 로젠버그*의 《프라이버시의 죽음》은 국립 컴퓨터 시스템이 개인과 단체의 정보를 무한으로 저장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경고했다. 1973년에는 스웨덴의 정보보호법을 시작으로 프라이버시의 위기에 대응한 법적 조치가 취해졌다. 1983년 인터넷의 등장 그리고 1993년 범세계통신망의 등장과 그에 따른 개인 컴퓨터의 보급과 함께 다시 한 번 프라이버시의 위기가 제기됐으며, 2006년 데이비드 홀츠만은 《프라이버시 로스트》를 통해 빠른 기술 발전의 속도에 힘입어 법 체계가 따라가지 못할 만큼 빨리 무너지고 있는 프라이버시의 위기를 경고했다.


*로젠버그(Rosenberg) : 미국(유대계)의 부부. 줄리어스 로젠버그(Julius Rosenberg), 에셀 로젠버그(Ethel Rosenberg) 모두 뉴욕에서 출생했다. 남편은 전기 기술자, 아내는 타이피스트였다. 결혼(1939) 후에 뉴욕에서 기계상을 경영했다. 1950년 이들 부부는 원자 폭탄 설계의 스파이(원자 폭탄 설계의 비밀을 소련에 제공) 용의자로서 연방 검찰청에 체포되고, 에셀의 친동생의 밀고라는 유일한 증거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3년간의 옥중 생활에서 부부는 최후까지 자기의 무죄를 주장하고 세계의 각층인으로부터 구명 운동도 있었으나, 결국 전기의자에서 처형되었다. 두 부부 사이에 10세와 6세의 두 아들을 남겼는데 부부를 위해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운 변호사 블로크(Emmanuel H.Block)는 그 후 원인 불명의 사망을 했다. 부부의 옥중 서간 『죽음의 집의 편지(사랑은 죽음을 넘어서) Death House Letters(1953)』는 각국어로 번역됐다.(인명사전, 2002)

반면 폐쇄적인 가정의 영역과 그 안에서 일그러지는 인간을 우려하는 관점은 사생활에 대한 사회의 개입을 옹호했다. 1967년 에드먼드 리치는 현대 사회의 가정이 고립돼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로 인해 가정은 바른 사회의 기본 단위이기보다는 우리 모두의 불만족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개인의 정신적, 감정적 건강을 위해 개인의 삶이 은밀하고 폐쇄적인 가정 생활에 지배되지 말아야 한다는 시각이 프라이버시를 주장하는 측과 대립을 이루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서문〉을 통해 프라이버시의 역사는 소음과 침묵의 기이한 혼합물이라고 정의한다. 또 프라이버시의 개념에 대한 문헌은 많지만 확정된 결론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저자는 이 책에서 오랫동안 이어진 프라이버시의 발전에 관한 설명을 제사함으로써 보다 명확한 시간적 관점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저술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책의 출간에 맞춰 내놓은 출판사 소개글에는 사회적인 동시에 지극히 개인적인 인간의 프라이버시는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해왔을까?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이 책이 중세부터 현대까지 변화무쌍했던 프라이버시의 역사를 흥미롭게 추적하는 책이라고 밝힌다. 이에 따르면 ‘혼자 있는 시간’이 다양하게 실천되어온 모습을 신선하게 풀어낸 『낭만적 은둔의 역사』의 저자인 역사학자 데이비드 빈센트가 이 책에서는 적극적으로 사생활을 지킨 개인의 노력을 이야기한다. 조용한 고독이 필요해진 시대, 혼자인 삶이 많아지는 시대에 사람들에게 품격 있는 인생의 레퍼런스가 되는 내용이다.

『사생활의 역사』라는 제목답게 책은 중세 시대와 풍요로운 19세기를 거쳐 1, 2차 세계대전과 70년대 이후 대두된 디지털 혁명, 2000년대의 소셜미디어까지 개인과 세상의 관계를 흥미진진하게 설명한다. 프라이버시의 개념은 오래된 역사만큼 다채롭게 변화해왔다. 중세부터 근대까지 프라이버시의 개념이 개인을 중심에 둔 문화와 관습의 차원이었다면 2000년대 이후로는 시민의 권리로 확대되는 양상을 띤다. 한 예로, 14세기 런던에서는 ‘방해죄 재판소’에서 각종 사생활 침해에 대한 개인과 개인의 소송이 줄을 이었다. 700년 전에도 방해받지 않는 삶에 대한 갈망은 지금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혼자 있을 권리’가 좌절될 때 개인은 적극적으로 맞서 왔으며 이는 조지 오웰의 예언적 소설 『1984』와 에드워드 스노든 사건을 거쳐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서 살펴본 1장, 2장 「군중 속에서 나를 지키다」, 3장 「19세기의 풍요가 불러온 감시자들」, 4장 「전쟁이 개인의 사생활에 끼친 영향」, 5장 「조지 오웰, 스노든, 다음은?」 등이다. 저자는 연대순으로 프라이버시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지만 "인간은 필연적으로 은둔과 고독을 추구한다."는 기저 인식을 바탕에 두고 있다. 또 인간은 외롭다고 토로하면서도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외로움을 갈망하는 모순적 존재다. 이러한 복잡한 인간의 내면이 사생활을 절실하게 지키려는 노력으로 이어졌고, 이는 프라이버시의 역사 속에 고스란히 새겨졌다. 사생활이 타인에게 노출되는 것을 격렬하게 싫어하여 줄소송을 감행했던 14세기의 이사벨이나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그런 점에서 같은 생각과 같은 행동을 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게 저자의 논리 전개에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을 완독하면 사적인 시간과 공간이 몇 배 더 소중해지고 더욱 간절해질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고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사생활이 공동체의 규범과 가치에 의해 제한되었다고 한다. 신(神)의 존재를 믿는 시대에 개인의 프라이버시란 하찮거나 숨겨야 할 나쁜 비밀로 간주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프라이버시가 정식으로 사회 문제로 부각되는 시기는 인간 중심의 세상 즉, 르네상스와 근대 이후부터라고 추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근대에 들어서야 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강조되었다는 말과도 같다.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개인의 사생활은 더욱 중요하게 여겨졌고, 이는 법적, 사회적 차원에서 보호받기 위한 다양한 제도와 관행으로 발전했다. 이는 서양의 시대 구분에 따른 경우이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논어』에 이미 "군자는 혼자 있을 때일수록 개인의 몸과 마음 가짐을 바로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2,500년 전의 일이다. 프라이버시를 강조하는 말은 아니지만 자신을 다스리는 일을 한시도 게을리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대목이어서 프라이버시와는 다소 결이 다르지만 사생활도 중요한 덕목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가르침의 전통은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문화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이 책은 설명하고 있다.

책의 성격상 프라이버시의 역사적 쓰임새에 대해 상당 부분 기술했지만 집필 의도는 마지막 장에 집중되어 있다고 독자는 이해한다. 4장 「전쟁이 개인의 사생활에 끼친 영향」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대적 현상과 분석을 통해 프라이버시의 역사를 기술했다면 5장 「조지 오웰, 스노든, 다음은?」은 현대 사회의 사생활도 아직 완전하게 보장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개인의 사생활은 자본과 계급, 사회 환경에 밀접하게 연결돼 있으며, 이는 소셜미디어와 같은 새로운 매체에서도 여전히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소셜미디어는 개인의 정보와 사생활을 공유하는 플랫폼이지만, 동시에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위험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중적인 성격은 현대 사회에서 국가와 사생활의 개념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프라이버시 보호 문제가 세계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원인은 첫째, 프라이버시가 일종의 인권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프라이버시가 언론의 자유와 같은 다른 소중한 가치와 충돌할 때 프라이버시의 힘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둘째, 디지털 혁명으로 이는 개인의 정보 통제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가져왔다. 디지털 혁명의 영향은 처음부터 막연하면서도 광범위하게 인식됐다. 이전의 기술 혁명에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개인정보 관리를 국제화했다는 점에서는 유사성이 있었지만 그런 발전만으로는 단일하고 포괄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하지 않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p.240) 개인의 정보가 온라인에서 쉽게 유통되는 시대에 사생활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사생활의 역사는 개인과 사회 간의 복잡한 관계를 반영하며,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해왔다. 5장 발제문에서 저자는 프라이버시의 종말은 1960년대 중반 시작되었다고 전제한다. 1960대 중반부터 미국의 의회 청문회가 사생활 침해에 대한 대중의 우려에 바탕해서 열렸다. 1969년 경제학자인 제리 로젠버그의 책 『프라이버시의 죽음』이 출판되었다. 이 책은 국가 컴퓨터 시스템이 개인들의 다양한 활동에 관한 정보를 부지불식간에 저장하고 서로 결합하여 버튼 하나만 누르면 찾아낼 수 있는 무한에 가까운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담았다. 개인의 공간과 정보 통제의 중요성은 여전히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이슈로 남아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논의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사생활의 역사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초가 될 것이란 믿음에 기초해서다.

1970년 영국에서 국가시민자유협의회 후원으로 작성된 디지털 데이터뱅크에 관한 보고서는 사회가 벼랑 끝에 서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보고서는 즉각적이고 급진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프라이버시의 종말이 예견된다고 밝혔다. 컴퓨터의 정보 처리 및 저장 능력이 감시 체제의 중심부가 되어 사회를 투명하게 바꿔놓을 것이고 그런 사회에서는 개인의 가정, 개인의 재무 상태, 개인의 인간관계가 수많은 임의의 관찰자에게 그대로 노출될 것이라는 얘기였다.(p.217)

- 「조지 오웰, 스노든, 다음은?」 중에서


프라이버시 위원회 보고서, 일명 ‘영거 보고서’를 발표한 노동당 정치인 케네스 영거 경은 ‘혼자 있을 권리’라는 대담한 선언이 영국에서 새로운 법률 제정의 토대가 될지 회의적이었지만, 개혁을 위한 구체적인 권고 사항은 모두 감시를 피하고 사생활이 함부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개인을 고려한 것이었다.(p.227)

- 「모두가 프라이버시의 죽음을 외치다」 중에서


저자 : 데이비드 빈센트(David Vincent)


유럽의 역사학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갖는 석학. 영국 노동 계층 연구를 시작으로 점차 주제를 확대하여 개인 삶의 다양한 면모를 사회학적, 역사학적으로 탐구하며 저술과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대중의 문해력에 대한 변천사, 개인과 국가의 관계 변화, 중세 이후 변화되어온 프라이버시의 개념, 팬데믹 이후 사회 변화 등 개인의 삶에 밀접한 요소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한다. 그의 연구는 정치 제도와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등 거대 담론과 개인의 감정과 일상 사이를 오가며 연결 고리를 찾는 것으로서, 결과물은 책과 강연 등으로 보통의 역사가와 달리 적극적으로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영국의 공립 방송통신대학교인 개방대학교(Open University)에서 오랜 기간 연구와 교육을 이어온 이유와도 무관하지 않다. 영국 왕립 역사 학회와 왕립 예술 학회의 회원이며, 옥스퍼드 대학교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예술, 사회과학 및 인문학 연구 센터에 연구 교수로 재직했다.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낭만적 은둔의 역사》가 있다.


역자 : 안진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대학원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했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영혼의 순례자 반 고흐》 《헤르만 헤르츠버거의 건축 수업》 《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 《타임 푸어》 《마음가면》 《포스트자본주의: 새로운 시작》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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