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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 - 프로메테우스의 꿈과 좌절
테리 이글턴 지음, 박경장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5년 1월
평점 :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이념에 따라 새롭게 건설된 구 소련(소비에트 연방)은 사회주의 체제가 이론대로 실현되기 어려운 국가 체제란 사실만 확인한 채 도입 100년도 안 돼 무너졌다. 20세기 초반 노동자 농민이 모두 농노의 상태로 전락하는 동안 로마노프 왕조의 제정 러시아는 부정부패에 휩싸여 있었다. 서유럽은 물론 튀르키에와도 늘 대립 관계에 있어 누구 하나 손을 내밀지도 않았다. 널따란 알래스카 주를 미국에 판매(1867)해 전쟁 자금과 권력 유지에 사용하는 등 대다수 국민들은 농노의 상태를 벗어나지도 못한 채 굶어죽는 자가 도시에서도 속출했다고 한다. 지배 계층의 무능과 권력욕은 마르크스가 주장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도화선이 되는 요소다.
이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주장하는 마르크시즘의 기본적 토양이 제정 러시아에서는 이미 충분히 갖춰진 셈이다. 레닌이 이끄는 좌익의 다수파(볼셰비키)가 러시아의 10월 혁명을 주도하고 '노동자 농민'의 나라라는 '소비에트 연합' 정부를 세웠다.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왕 니콜라이 2세와 그의 가족들은 혁명 다음해(1918) 처형당했다.
이 책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는 지난 100여 년간 마르크스에게 들씌워진 철저한 몰이해와 극단적 곡해를 벗겨 내려는 저자 이글턴의 극진하고 핍진한 노력의 소산이다. 이 책은 그동안 부르주아 반동들에 의해 끊임없이 자행되어 온 ‘마르크스(주의) 비판 10가지’를 뽑아서 이글턴이 직접 재비판·반박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저자 이글턴은 논리와 분석을 근간으로 하는 철학자의 방식이 아니라 유머와 위트가 서린 비유로 종횡무진하는 문학비평가의 방식으로써 마르크스의 핵심 쟁점들을 시의적절하게 전달하고 있다. 자칫 지루하거나 딱딱하게만 느껴질 세간의 정치·경제 비판에서, 이글턴은 아주 활력 넘치는 필치로 읽는 내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생동감을 더해 준다. 출판사 측의 소개글에 적힌 내용처럼 이글턴은 우리 시대 독보적인 마르크스주의 문학(문화)평론가로 평가되고 있다. 이글턴은 1943년 영국 샐포드에서 태어났다. 영국 신좌파의 대부이자 문화 연구의 창시자인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제자로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했다. 옥스퍼드대학교와 맨체스터대학교 영문학 교수를 거쳐 현재 랭커스터대학교 영문학 석좌 교수로 있다. 19세기 이후 영미 문학을 주로 연구하며, 문학사상론, 포스트모더니즘, 정치·이념·종교 등의 분야에서 50여 권의 저서를 펴냈다.

2011년 첫 판을 펴낸 후 이번 출간된 책은 개정판이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이 개정판 번역본의 가장 큰 특징은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 마르크스·엥겔스의 저서가 인용된 경우에는 영어 원서를 독어판 원전과 일일이 대조하여 오류를 바로잡고 번역의 정확성을 기했다. 둘째,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각 장에 대제목과 소제목을 넣고, 삽화·사진 등도 추가하여 흥미를 돋우었다. 책 내용에 좀 더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첫 출판된 데에는 영국 BBC방송이 1999년 뉴 밀레니엄 시대로의 진입을 앞두고, '지난 1,000년간 가장 위대한 사상가'를 묻는 조사에서 카를 마르크스가 1위로 선정됐다고 보도한데 힘입은 바 크다. 곧 이어 미국의 TIME지도 마찬가지 결과를 발표했다. 이 책의 저자 이글턴은 마르크스 사후 100년간은 전 세계 절반의 국가가 그의 사상을 실험했고, 나머지 절반의 국가는 그를 거의 악마의 화신처럼 여겼다고 말한다. 단연코 인류사에 마르크스만큼 절대적으로 신봉되고 절대적으로 불신된 사상가는 없었다. 그만큼 그는 몰이해되고 곡해되었다는 주장이다.
독자들이 보았다시피 이 책의 표제어를 수식하는 문구에 그리스 신화의 인물 '프로메테우스'가 들어 있다. 원전인 그리스어에서 프로메테우스란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란 뜻이라고 한다. 제우스가 감추어 둔 불을 훔쳐 인간에게 내줌으로써 인간에게 맨 처음 문명을 가르친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불을 도둑맞은 제우스는 복수를 결심하고, 판도라(Pandora)라는 여성을 만들어 프로메테우스에게 보냈다. 이때 동생인 에피메테우스(Epimetheus, '나중에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는 형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아내로 삼았는데, 이로 인해 ‘판도라의 상자’ 사건이 일어나고, 인류의 불행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제우스의 장래에 관한 비밀을 제우스에게 밝혀 주지 않았기 때문에 코카서스(캅카스)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날마다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고, 밤이 되면 간은 다시 회복되어 영원한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리스 신화를 토대로 저자 이글턴은 마르크스주의는 현재 도전에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올바른 이념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이 책은 모두 1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표제어에서 언급한 10가지가 각 장에 하나씩 배정된 셈이다. 즉 비판성 가제 혹은 공인된 이론에 대한 반론의 성격을 갖고 있다. 우선 이 책의 각 장의 제목을 보면 마르크스주의를 잘못 인식하고 있는 가설이나 비판성 이론에 대해 비판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독자가 임의로 번호를 붙여 나열해본다. ① 마르크스주의는 끝나지 않았다 ② 마르크스주의는 도그마가 아니다 ③ 마르크스주의는 결정론이 아니다 ④ 마르크스주의는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았다 ⑤ 마르크스주의는 경제 환원론이 아니다 ⑥ 마르크스는 기계적 유물론자가 아니었다 ⑦ 마르크스주의는 계급 강박증이 없다 ⑧ 마르크스주의는 폭력 혁명을 옹호하지 않는다 ⑨ 마르크스주의는 국가를 믿지 않는다 ⑩ 마르크스주의는 급진적 운동에 기여했다 등이다.
저자는 이번 개정판 〈서문〉의 첫 문장을 "2011년 이 책이 출간된 후 마르크스 사상은 적어도 한 가지 측면에서 극적으로 확인되었다."고 썼다. 마르크스가 이루려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정부가 실패했다고 공감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저자는 무거운 일침을 가하는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저자가 마르크스를 보는 시각은 평등과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 가지는 가치라는 마르크스주의의 전제를 목표로 착각하는 데서 온다고 강조하는 듯 보인다. 저자는 이어 쓴 〈서문〉에서 "마르크스는 자유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 영역과 이른바 '시민 사회'(사회적·경제적 존재를 의미하는)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 영역, 예컨대 투표함에서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고 자율적이며 각각 한 표로 집계된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일상생활에서 실제적인 분열과 불평등, 그리고 종속성을 은폐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것은 마치 이런 조건들로부터 정치적 차원이 추상화되어 시민들이 스스로 창백한 가짜 인간(simulacra)이 되는 것과 같다 민주적인 자치정부가 시민 사회 자체-예를 들어 노동자의 자주관리-로 확장되어야만 그 간극이 좁혀질 것이다."(p.5)
즉 마르크스에게 자유민주주의 정치 영역은 완전히 실재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이 책 출간 이후 서구에서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사람들은 단지 정치 그 자체에 대한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좌파가 아니라 우파의 포퓰리즘이 자본주의 자체에 내재된 모순의 한 극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사실 저자는 2011년 초판 〈서문〉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로 알려진 역사적 대상의 정체-자본주의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법칙으로 작동되며 어떻게 종식될 수 있는가-를 최초로 규명했다"고 밝혔다. 뉴턴이 중력 법칙으로 알려진 보이지 않는 힘을 발견하고, 프로이트가 무의식으로 알려진 보이지 않는 현상의 작용을 밝혀냈듯이, 마르크스도 우리 일상생활의 이면을 파헤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 알려진 감지할 수 없는 실체를 드러냈다고 저자 이글턴은 말했다. 이 방면에서 보여 준 마르크스주의 저작들의 비범한 풍부함과 생산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마르크스주의 유산에 나란히 놓여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게 저자 자신의 생각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소외, 사회적 삶의 '상품화', 탐욕과 공격성과 무분별한 쾌락주의와 점점 확산되는 니힐리즘 문화, 인간 실존에 대한 의미와 가치의 꾸준한 내부 출혈 같은 문제들에 대한 지적 노의 중에서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크게 빚지지 않은 것을 찾기란 어렵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1장 「마르크스주의는 끝나지 않았다」의 발제문은 "마르크스주의는 끝났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마르크스주의는 공장과 식량폭동, 광부와 굴뚝청소부, 만연한 빈곤과 집단 노동계급의 세계와 어떤 관련이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점차 계급이 사라지고, 사회적으로 유동적인 후기산업 사회와 분명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마르크스주의는 너무 완고하거나 겁이 많거나 착각에 빠져서 세계가 영원히 변해 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자들의 신념이라고 지적한다.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인 사회계급론은 21세기 탈산업화시대엔 더 이상 적용 가능하지 않다는 일반적이 비판이 거세다. 이 비판에 대해 이글턴이 말하는 역비판의 핵심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가 모든 역사 체제 가운데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이 체제에는 이상하게도 정태적이고 반복적인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자본은 여느 때보다 더욱 집중되고 약탈적이며, 노동계급은 양적으로 늘어나고, 부와 권력은 엄청나게 불평등하며, 국가는 점점 억압적으로 되어 갔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내적 모순으로 마르크스주의가 거의 두 세기 동안 성찰하고 비판해 온 문제들이다. 그러므로 자분주의 체제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게 1장의 요지이다.

독자는 '마르크스'나 '공산주의'란 이름이 들어간 책은 대학 시절 접한 적이 없다. 당연히 그럴 것이 군사독재 시절 공산주의나 마르크스에 관한 책은 북한의 김일성 사상의 책과 다름없이 금서로 지정돼 출판 자체가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서 가운데는 언급한 내용 이외에 중국 공산당이나 마오쩌둥 사상도 금서였고, 심지어 우리 반체제 인사들이 저서 가운데도 공산주의 체제에 대해 쓴 책은 쉽게 읽을 수 없었다. 90년대 군사독재가 끝난 무렵에야 상당히 자유스러웠다. 그러나 이미 실패한 공산주의와 마르크스주의라는 사회 비판 여론에 의해 관련 책은 잘 출판되지 못했다. 이젠 팔리지 않아서 출판사 측에서 출판을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군부독재를 거치고 나서야 이념이나 사상 면에서 크게 자유스러워졌다. 거기에 혼신을 다해 산업화에 매진한 세대들은 OECD 가입, 금융실명제, 해외 여행 자유화 등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행복한 느낌을 만족해 했다. 그러나 지나친 과신이었을까? 다시 교과서에서나 듣던 IMF를 겪고 나서야 현실 경제, 자본주의 경제 등이 걱정하던 부익부빈익빈의 부정적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다행히 온 국민이 함께 IMF 위기를 극복하고, 스포츠 부분에서의 도약, 국가 경제력 강화 등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틈내서 읽은 책들은 자본주의 경제의 허점과 부정적인 면을 하나둘씩 깨닫게 해주었다. 아직 사회주의 체제에 머무르며 국방력만 강화하는 북한, 부분적 경제 개방 정책으로 30년만에 국가 경제력 2위로 올라선 중국, 연방체제는 무너졌지만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 체제를 유지하고 미국과 맛서고 있는 장기 집권하고 있는 푸틴의 러시아 등의 소식은 우리의 경제력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이글턴의 저서 중 『더 리얼 씽』이란 문학비평서를 읽은 기억이 있다. 이글턴은 『더 리얼 씽』에서 '미(美)'라는 것이 계몽주의 시대에 등장한 부르주아적 개념이라고 말한다. 이 '미'의 범주가 현대 유럽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예술이 부르주아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위한 투쟁의 핵심에 놓이게 되면서부터라고 주장하고 있다. 초기 부르주아 사회에서 사회적인 삶의 현상은 사물화에 시달리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전통적인 철학의 개념인 정체성 개념은 더 이상 가치에 관한 담론들의 적절한 출발점이 되지 못하게 된다는 것. 따라서 그러한 담론은 관념주의적인 것이 되고 만다. 가치라는 것은 그 자체에 기초를 두거나 직관에 의거해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데, '미'의 개념은 그 두 가지 방식에 중요한 모델이 된다는 등의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문학을 평가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졌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