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음조
한병철 지음, 최지수 옮김 / 디플롯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생각의 음조』는 우리나라보다 유럽에서 더 주목받는 철학자 현병철의 강연을 번역 출판했다. 독자는 개인적으로 생소한 분이다. 그러나 유럽에서 강연과 책을 쓰는 가장 많이 읽히는 철학자로 이미 명성이 자자하다고 한다. 책의 번역자 최지수는 저자 현병철에 대해 '첨예한 시선과 독창적 사유, 문학적 문체가 돋보이는' 철학자라고 소개한다. 현병철의 책은 세계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고, 독일과 한국은 물론,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책의 말미에 〈옮긴이의 말〉을 통해 밝히고 있다. 역자는 왜 세계는 한병철에게 열광하는가를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역자는 또 ‘진단과 명명의 철학자’ 한병철의 사유는 무엇으로부터 발화되는가. 그의 시선은 지금, 무엇을 직시하고 있는가? 등 많은 질문이 담겨 있고,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사유의 여정을 이 강연 번역서에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생각의 음조』는 한병철의 가장 고유한 목소리를 담아낸 유일한 책이라고도 역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한병철의 사유의 유래와 음조와 지향, 그리고 그가 펴낸 숱한 책들을 관통하는 사유의 궤적까지 담아냈다고 밝힌다. 피로사회와 불안사회 너머 희망의 정신을 향해, 지금 세계가 가장 사랑하는 철학자 한병철의 목소리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아리아처럼 흐른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과 스페인어권 최대 규모의 출판사 〈플라네타〉는 2024년부터 2026년까지 강연과 클래식 연주를 함께 진행한 후 텍스트, 사진, 영상을 책의 형태로 펴내는 특별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이 책은 ‘한병철 콘퍼런스 트릴로지’의 첫 책으로, 한병철의 가장 내밀한 고백과 사유의 정수를 담고 있다. 디플롯이 펴내는 한국어판은 한병철이 직접 집필한 독일어 원고를 저본으로 삼아 우리말로 옮긴 뒤, 다시 스페인어 출간본과 비교하며 문장 하나하나를 다듬었다고 한다. 이는 ‘한병철의 목소리’를 가장 온전하게 담아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역자는 설명을 덧댄다.

철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그의 저서를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독자는 철학을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고, 접해본 적도 별로 없다. 학교 졸업 후 철학 서적을 읽은 경험은 이번 코로나 팬데믹 때부터다. 재택 근무를 하는 동안 남아나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책을 이것저것 읽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독자는 학교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거의 책을 읽지 않았다. 기껏 읽어봐야 베스트셀러, 특히 소설 작품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이 독자에게는 책을 다시 손에 잡는 좋은 습관을 가져다 주었다. 읽다보니 베스트셀러에 나오는 것들이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읽기에 좋은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소설, 특히 판타지와 스릴러 소설 등이 대부분이었고, 정신 의학, 철학, 예술 분야의 책들이 많이 나왔다. 이들 중 상당수는 베스트 셀러에 이름을 올리고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다.

이들 책들은 대부분 위안과 철학적 사유를 담은 책들이었다. 이 책 『생각의 음조』는 독자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그러나 막상 읽어보니 쉽지 않다. 독자의 개인적 무지에서 비롯되겠지만 문장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강연 내용을 번역하다 보니 우리 작가가 쓴 글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미 독자들은 아는 사실이니 굳이 변명거리는 되지 않다. 철학적 사유나 철학과 다른 분야와의 접목으로 깊이를 더하는 책은 전문가들에게는 쉽게 통하겠지만 문외한인 독자가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여느 때 같으면 조금 읽다 말 책이지만 이젠 조금 더 어른스럽게 생각해야겠다는 다짐 후 읽은 책이니만큼 조금 더 시간을 들여서라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몇 번이고 읽어볼 욕심이 생긴다. 처음 읽을 때보다 두 번째는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같고, 공감되는 부분도 더 많아진다. 더욱이 저자는 고려대 금속공학과를 다니다 독일로 유학을 간 철학자라니 더 관심이 갔다. 

음악과 철학의 하모니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철학과 음악의 상호 동화 작용이라고 봐야 하나?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철학 자체도 어렵고 힘든 독자에게 이 책은 철학의 새로운 방법을 알려주는 느낌을 받게 돼 어려움이 많이 가셨다. 또 이해 가능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믿고 용기를 내니 한결 진의에 수월하게 다가설 수 있게 해준 책이다.

표제어 '생각의 음조'는 2023년 4월 23일,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 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샤론 프루샨스키가 한병철의 강연에 맞춰 바흐와 슈만의 곡을 연주했다고 〈기획자의 말〉이란 〈서문〉을 통해 밝히고 있다. 이날 저자 한병철은 '생각의 음조'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자신의 사유에서 음악이 갖는 의미를 이야기했다고 책의 기획자는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현병철에게 음악은 단순히 배경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 날개를 달아주는 동시에, 그 안에 깊이 깃들어 있는 존재잉. 이 음악적 고백은 그의 철학을 관통하는 음조와 주제로, 즉 대지의 고양, 형이상학적 갈망, 진정한 생물학으로서의 신학으로 발화된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프랑스 모음곡〉과 슈만의 〈어린이 정경〉 등 항상 그가 함께하는 음악을 경유하며 한병철 사유의 음조가 드러난다. 지금까지 자신이 펴낸 책들은 반복이 아니라 변주곡, 즉 위대한 개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음표라고 말한다. 이 때의 강연 제목이 그대로 이 책의 표제어가 됐다고 기획자는 알린다.

이에 앞서 같은해 4월 11일, 포르투에서 저자는 '에로스'를 주제로 강연했다. 이 강연에서 한병철은 신체적, 인격적 접촉이 점점 사라져 타자가 소멸된 사회를 이야기하며 사랑의 의미를 물었다. 오늘날 우리가 실제 만지고 접촉하는 거의 모든 것은, 심지어 치과에서 통증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것은 스마트폰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이틀 후 포르투갈 가톨릭대학교 인문과학대학 50주년 기념 강연에서 한병철은 '희망의 정신'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그에 따르면 희망은 "우리를 우울과 지친 미래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도약이자 열정"이며, 이 미덕의 초월성에 대해 성찰한다. 흐망은 '영혼의 차원'이 되어, 즉 마음과 정신의 이정표가 되어 우리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준다고 기획자는 전한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생각의 음조〉, 2부 〈에로스의 종말〉, 3부 〈희망의 정신〉 등이다. 1부에서 저자는 피아노와의 인연을 소개한다. 역자 최지수에 따르면 한병철이 두 대의 그랜드피아노를 즐겨 연주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한병철의 피아노와의 인연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었다. 그것을 날개 삼아 사유한다는 이야기는 '그랜드피아노'와 '날개'가 독일어로 같은 단어임을 생각할 때 일견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날개'는 동시에 검은 광 나는 기도용 염주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를 날아오르게도, 수련하게도 만드는 모순은 그의 생각의 음조를 이룬다. 그는 자신의 저작들을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아리아에 빗대기도 하고, 〈사라방드〉, 〈시니의 사랑〉 등 다양한 곡과 연결 짓기도 하며 풀어낸다. 음악이라는 은유를 통해 그가 사유하는 방식을 설명할 때 우리는 그 어떤 백 마디 말보다 더 빠르게, 더 직관적으로 한병철의 '생각의 음조'를 이해할 수 있다. 

저자 한병철은 음악을 매개로 자신의 사유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두운 빛, 어두운 영롱함, 밝은 슬픔’과 같은 역설이 생각의 음조를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진실은 이러한 ‘모순적 아름다움’에서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그의 책들이 너무 많이 반복한다고 불평하지만, 그는 자신의 책들이 반복이 아니라 변주곡에 가깝다고 말한다. 마치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처럼, 멜로디는 변하지 않으면서 숱한 변주를 통해 멜로디는 명징해지고 밀도가 높아지며 아름다움이 깊어지는 것처럼. 한병철은 프리드리히 횔덜린, 베르톨트 브레히트, 롤랑 바르트, 로자 룩셈부르크, 페터 한트케, 가브리엘 단눈치오 등의 텍스트를 경유하며, 자신이 추구하는 사유의 음조와 글쓰기의 이상을 풀어낸다.

2부에서는 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꽃에 둘러싸인 저자의 안락한 방, 그리고 먼 타국에서 만난 플로레스 호텔 이야기는 우리가 일상에서 과연 얼마만큼이나 '꽃향기'를 찾아 맡으며 살고 있는지 돌이켜보게 한다. 계속되는 강연에서, 접촉 없는 사회에 대한 그의 경종은 삭막한 '타자의 결핍'에 대한 더 깊은 성찰로 우리를 이끈다. 타자 없이 '자기참조'에 갇힌 자기애적 성과 주체인 우리는 외로운 성공 우울증에 빠지곤 한다. 반면에 그가 말하는 '에로스'는 타자를 고유의 타자성 안에서 경험하게 하며 자기애적 지옥에서 빠져나오게 한다. 우리는 타자를 내 눈 안의 거울을 통해서가 아닌, 진정으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에로스'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꽃과 연관된 감각과 열정은 진정한 사랑, 진정한 자유, 진정한 타자와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성찰하게 한다.

3부는 앞서 언급한 피아노와 꽃을 다시 거론하며 축제와 희망의 개념으로까지 나아간다. 축제 없는 현대 사회, 노예이자 가축이 되어버린 신성이 부재한 지옥에서 우리는 '고양된 시간'과 '초월의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 축제 없는 시간은 곧 희망 없는 시간으로, 그러한 시간은 앞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기존의 것, 뒤의 것만을 향해 있다. 한병철이 말하는 '희망의 정신'은 무언가를 단순히 바라는 차원을 넘어, 바츨라프 하벨의 말처럼, '저 너머'의 궁극적인 새로움을 '그럼에도 불구하고'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하이데거의 불안의 현상학과 함께 설명한다. 2부와 3부는 지금껏 한병철이 펼쳐왔던 사유의 정수를 다시 한번 변주하되 마침내 그가 도달한 희망의 정신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피로사회』 『투명사회』 『에로스의 종말』 『타자의 추방』 『고통 없는 사회』 『정보의 지배』 『관조하는 삶』 『서사의 위기』 『오늘날 혁명은 왜 불가능한가』 등 핵심 저작들을 비롯해 가장 최근에 출간한 『불안사회』(원서 제목은 『희망의 정신(Der Geist der Hoffnung)』)까지 아우르며 평생 천착해왔던 사유의 궤적을, 그리고 바로 지금 그를 사로잡고 있는 ‘희망의 정신’을 고도의 우아한 언어로 이야기한다.

이 책의 즐거움은 무엇보다, 예컨대 하이데거의 철학 이야기뿐만 아니라,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피아노를, 바흐의 〈샤콘느〉로 바이올린을,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으로 독일어를 처음 배웠다는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는 점이라고 역자 최지수는 강조한다. 그동안 조각조각 접해온 음악과 꽃에 대한 한병철의 사랑, 그리고 그의 철학이 변주곡처럼 하나의 그림을 만드는 듯하다. 역자는 이 책을 통해 한병철의 철학적 사유를 이해하는 것에 더해, 언어와 생각, 세상을 향해 가지고 있는 그만의 음조, 그리고 그의 아리아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인다.

“짐승은 주인에게서 채찍을 빼앗아서 자기가 주인이 되기 위해 다시 자기 자신을 채찍질한다”고 카프카는 썼다고 한병철은 인용한다. “우리는 각자 고유해지고 싶어 하는 복제인간”으로, “가축의 떼” “절대적 노예”로 전락한다. 신자유주의적 성과사회는 끊임없는 자기 착취를 요구한다.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스스로를 최적화하며 ‘나’의 자유의지로 자신을 착취한다. 성과사회는 필연적으로 불안사회로 이어진다. 우울이 감염병처럼 창궐하고 불안과 혐오가 곳곳에서 촉발한다. 불안은 권력과 체제의 도구로 사용되며 희망의 씨앗을 질식시킨다. 저자 한병철은 바로 이 지점, “역사적 기로에서” 희망의 본질을 탐구한다. 그리고 희망의 정신을 건져 올린다.

비평가들은 비관주의자라고 비난하지만, 한병철은 자신을 희망의 사람이라고 선언한다. 희망하는 사람만이 사유할 수 있다. 희망의 사람은 낙관주의자들과는 달리 세상의 비극과 삶의 부정적 측면, 그리고 예측 불가능성을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구조에 의문을 제기하고 완전히 다른 삶의 형태를 열망하며 행동으로 옮긴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긍정성 숭배는 사회를 탈연대화하지만, 희망은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화해와 연대로 이끈다. 긍정성의 주체는 ‘나’이지만 희망의 주체는 ‘우리’다.

“희망한다는 것은 ‘희망을 확장’하고 ‘희망의 불꽃을 퍼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희망은 혁명의 누룩, 새로운 것의 발효제, 즉 비타 노바(vita nova)의 시작점입니다. 불안의 혁명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불안은 모두를 복종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불안한 사람은 지배자에게 복종합니다. 다른 세상,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것만으로도 혁명의 잠재력이 자라납니다. 오늘날 혁명이 가능하지 않다면, 그것은 희망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불안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며, 살아남기의 삶으로 축소되었기 때문입니다.”(p.169).


저자 : 한병철(Han Byung-Chul)


1959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뒤 독일로 건너가 브라이스가우의 프라이부르크대학교와 뮌헨대학교에서 철학, 독일 문학, 가톨릭 신학을 공부했다. 베를린예술대학교 철학·문화학 교수를 지냈다.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그의 대표작 『피로사회』는 2012년 한국에도 소개되어 주요 언론 매체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한국 사회를 꿰뚫는 키워드로 자리 잡았으며, 이후 『투명사회』, 『에로스의 종말』, 『서사의 위기』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저자는 최신작 『불안사회』에서 불안이 잠식한 사회에서 끊어져 버린 연대와 만연한 혐오에 경종을 울린다. 짙은 불확실성과 깊은 무기력에 빠진 현대인의 삶에 필요한 것은 ‘희망의 정신’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희망에 관한 그간의 무지한 착각에서 벗어나 위기를 극복하고, 비로소 생기로운 삶을 되찾을 것이다.


역자 : 최지수


영어 및 독일어 번역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국제회의통역전공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 통역사로 일하며 경제, 법, 제약,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문서를 번역했다. 현재 출판번역 에이전시 글로하나에서 영미서와 독일서 번역 및 리뷰에 매진하면서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통번역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역서로는 『프렌드북 유출사건』 등이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