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사람을 위한 미술관 - 명화가 건네는 위로의 말들
추명희 지음 / 책들의정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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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대상이 되는 것들은 대부분 자연이나 인간의 삶이다. 신화의 내용을 문학이나 그림으로 나타나는 것은 신(神)들에 대한 이야기처럼 묘사하고 감정의 표현을 담았다. 마치 신들의 이야기를 표현하지만 기저에는 인간의 삶과 감정을 담고 있다. 역으로 생각한다면 인간의 삶을 신들에 덧씌워 상징한 것에 다름 아니다. 신이 인간의 감정을 가졌다는 설정 자체가 문학의 원형이 된 이유다. 그림 역시 자연을 모사하고 묘사하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신화의 내용을 담는다. 역시 인간의 감정을 가진 신의 모습으로 그려내려는 것이다. 이 책 『상처받은 사람을 위한 미술관』은 화가의 삶을, 그들이 그려내는 인물에 투영한 것들에 바탕하고 있다. 아픔이 녹아든 그림이 명작이 되듯, 상처를 견뎌낸 삶은 작품이 된다는 명제에 가깝게 다가선다.

우리의 삶은 대부분 고통과 치열한 싸움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예술은 표현한다. 표현의 방법이야 다르지만 인간의 삶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은 예술 작품은 그닥 독자나 관람자들의 호평을 받기 어렵다. 독자나 관람자들이 자신들이 가진 감정을 표현해야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출판사 측은 예술을 통한 감동이 작품에 어떻게 나타나고, 독자나 관람자, 청중이 왜 감동하는지에 대해 예술론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다.

"마음이 지치고 힘든 날,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김광석의 노래에 위로받아본 적 있는가? 쉽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스크린도어에 적힌 짧은 시 한 편에 절절히 공감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지치고 힘들 때 내 마음을 달래고 대변해 주는 메시지 하나에도 깊은 위안을 받는다. 힘들수록 마음을 달래줄 밝고 행복한 작품을 보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지만, 사실 고통과 아픔의 시간 속에서는 나와 닮은 작품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공감이 훨씬 더 큰 법이다."

저자 추명희는 「상처를 받아들일 때 삶은 더욱 숭고해진다」란 제목의 〈서문〉을 통해 아무리 큰 행운일지라도 모두가 다 누리면 더 이상 기쁘지 않고 아무리 큰 불행이라도 나만 겪는 게 아니라면 그리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한다. 그게 범인들의 심사라고 밝힌다. 시대적 고난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모두가 가난했고 모두가 힘들었던 그 시절이 그래도 좋았다"고 회고하는 이유일 것이라고 역자는 주장한다. 
인간 심연에 자리 잡은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게 예술의 본질이라고 역자는 생각하는 듯하다.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은 원래 그런 거야"라는 체념적 긍정으로 생에 대한 애착을 간신히 붙들고 있는지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역자는 이처럼 버티며 한 발짝씩 나아가다 보면 종국엔 허무를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이상을 품은 채 인간은 살아간다고 단언한다. 체념적 긍정을 넘어선 진실로 순수한 긍정에 도달할 수 있으리란 희망을 건져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저자는 인생은 살 만한 것이 아니라 살아가야만 하는 것인지도, 살아간다는 것은 늙어간다는 것이고 늙는다는 것은 섧디설운 일이라고 한다. 우리들의 일상의 고요와 평안은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지고 상념과 상처는 파도처럼 지칠 줄 모른다. 마음속에 거센 비와 바람이 휘몰아치는 나날들, 위로가 필요한 순간, 그럴 때 우리보다 먼저 삶의 풍랑 속에 스러져 간 에술가들이 남긴 그림에서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찾아내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저자는 이 책을 펴내기로 했다고 〈서문〉에서 밝힌다. 그런 예술가들은 그림에 위로와 격려를 남겼다. 그것을 찾아내는 일은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일반 사람들에게 찾아내 전하려고 이 책을 펴냈다는 말이다. 

미술관에 걸린 완벽하고 화려하기만 한 것 같은 그림들도 마찬가지다. 프리다 칼로, 에드바르 뭉크, 클로드 모네 등 수 세기가 지나도 빛을 잃지 않는 명화를 탄생시키며 우리에게 위안을 건넨 예술가들의 삶은 그들의 작품과 달리 그리 빛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힘든 마음을 달래기 위해 예술을 찾는 지금의 우리처럼, 깊은 어둠 속에서 홀로 화폭에 자신의 모든 고통과 고뇌, 혼란을 녹여내며 상처의 시간을 견뎌내곤 했다. 자신의 삶 속으로 기꺼이 고통을 끌어안은 17인의 예술가. 그들은 빛나는 명화를 통해 위로의 말을 건넨다. 저자가 그러했던 것처럼, 상처의 순간을 버티고 견뎌내다 보면 언젠가 독자들의 삶도 작품이 될 거라고 강조한다. 독자들이 가진 모든 상처가 빛나는 색채로 밝아질 날이 올 거라고 저자는 권유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쇼펜하우어도 톨스토이도 소크라테스도 말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고. 그들의 말을 믿고 거울 속에 비친 초라하고 어설픈 나를 인정해보려고 해도 말처럼 쉽지 않다. 고개만 조금 돌려보면 나를 제외한 온 세상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것들투성이인 것만 같다. 세계를 감동시킨 화려한 미술관 속 수많은 명화도 그렇다. 섬세한 붓질과 조화로운 색감, 그림을 가득 메운 아름다운 피사체까지 완벽하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아우라를 풍긴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액자 속 그 완벽한 그림 너머에는 우리처럼 고통 속에 몸부림친 불완전한 인간이 살아 숨 쉬었음을,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인 이들이 결국 빛나는 작품을 탄생시켰음을 말이다.

삶의 고통을 끌어안은 채 그림을 그려 나간 수많은 예술가. 어쩌면 그들은 슬픔과 괴로움, 외로움과 고독을 물감으로 작품을 만든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그저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인 고흐의 초상화에서 우리가 어떻게 깊은 고독감을 느끼고, 모네가 그린 평화로운 정원의 풍경에서 슬픔을 읽어낼 수 있겠는가. 저자의 그림 감상법은 치열하다. 그들이 남긴 작품을 통해 그들의 삶을 읽어낸다. 또 그림을 통해 예술가들은 숨결과 눈빛, 얼굴 색마저도 그들이 영혼을 담아 표현해냈다. 그들이 그린 그림에는 삶속 모든 고통이 담겨 있다. 그림 속에 들어 있는 그들의 삶을 읽어내는 것은 예술과 예술가의 삶과 고통을 모두 담았다는 전제 하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 예술가들이 작품 속에 피와 눈물로 새겨 놓은 답은 사랑이라고 저자는 주저없이 단언한다. "그림과 인생은 닮았다. 깊은 상처를 견뎌낼수록 더 단단해지는 인생처럼 그림도 작가의 고통 속에서 더욱 숭고해진다. 삶의 허무를 노래한 옛 시인들은 저마다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자체가 이미 미궁에 빠진 것'이라고 귀띔한다. 그렇다면 어둡고 캄캄한 미궁 속에서 그 누구보다 섬세하고 예리한 감각을 가진 예술가들은 빠져나가는 길을 찾았을까."(p.5)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당신의 손을 잡을 때 세상은 색채로 물들고〉, 2장 〈때때로 인생은 황량한 벌판 같지만〉, 3장 〈누구도 가지 않은 길에 나 홀로 서서〉, 4장 〈우리는 먼지 한 톨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등이다. 1장에선 프리다 칼로, 살바르도 달리, 구스타프 클림트, 파블로 피카소, 카미유 클로텔 등 5명의 화가들이 등장한다. 2장엔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에드바르 뭉크, 프란시스코 고야 등이 담겨 있다. 3장은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 폴 세잔, 에곤 실레, 앤디 워홀 등의 생애와 작품론이 실려 있다. 마지막 4장엔 요하네스 베르메르,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로렌스 스티븐 라우리, 렘브란트 판 레인 등이 기술되고 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화가는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삶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프리다 칼로(1907~1957)의 삶과 작품이 설명된다. 프리다 칼로는 삶과 예술, 사상 거의 모든 세계의 전선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웠던 '혁명적 예술가'로 지칭되고 있다. 저자는 프리다의 삶을 어려서 죽음의 문턱 아니 어쩌면 그 너머에까지 갔다가 돌아와서인지 일찍이 인생을 깨달아버린 듯하다고 서술한다. "물리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을 인용한다. 프리다 칼로 역시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한다.

프리다 칼로의 짧은 삶에 그토록 많은 고통과 불행이 함께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프리다는 1925년 9월 어느 날, 그녀가 타고 가던 버스가 옆을 지나가던 전차가 탈선하며 충돌하면서 고통의 삶이 시작됐다. 자궁이 손상되고 오른다리는 열한 군데 골절, 오른발은 뭉개지고 요추와 골반, 쇄골, 갈비뼈, 치골 등에 다발성 골절상을 입었다. 프리다를 본 의사들은 모두 그녀가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몇 주 지난 뒤에 가까스로, 기적적으로 눈을 뜬 프리다의 몸은 견인기와 석고 깁스로 단단히 고정돼 있었다. 아홉 달 동안 꼼짝없이 누워 천장만 바라보아야 했다. 열여덟 살의 프리다는 통증보다 더 고통스러운 지루함과 싸우며 깨달았다고 한다. 지루함을 이겨낼 무언가를 찾아내지 않으면 그냥 빨리 죽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작이었는지 그녀의 삶과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사진관을 운영하며 손기술이 좋았던 기예르모는 프리다가 금속 코르셋을 끼고 누운 자세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특수 이젤을 제작해주었다. ······ 병실 벽에 자신의 그림들이 하나둘 채워질수록 우울한 분위기는 물론 그녀 마음속 먹구름도 걷히는 듯했다. 문득 그녀는 어쩌면 그림이 자신을 구원해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들떴다. 폐허가 된 그녀의 삶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내리쬐고 있었다."(p.14~15)

고통 그 자체인 삶에서 칼로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미술에 대한 열정뿐이었다. 3년 후 자신이 아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디에고 리베라를 찾아갔다. 여느 날처럼 멕시코 궁립궁전을 위한 벽화 작업을 하고 있던 그는 갑자기 나타난 작은 소녀를 보고 첫눈에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디에고는 프리다에 대한 첫인상을 이렇게 회상했다.

"프리다의 태도는 얼핏 봐도 남달랐다. 그림에 대한 평가를 기다리며 나를 바라봤을 때도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위엄과 자신감이 있었고, 눈동자는 야릇한 빛을 뿜었다. 그녀는 아직 어린아이처럼 귀여우면서도 또 어딘가 모르게 성숙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멕시코 국민 화가였던 디에고는 호색한이었다. 그는 이미 불륜으로 인해 두 번의 이혼을 한 상태였고 늘 여러 명의 여자와 동시에 연애를 즐겼다. 프리다와 디에고는 공산주의에 대한 열정적 신념을 공유하며 점점 관계가 깊어졌다. 그는 다른 여자들을 모두 정리한 후 프리다와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디에고는 상상이나 했을까? 해바라기처럼 자신만을 바라보는 이 작고 연약한 소녀가 인간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자신을 넘어설 것이라는 사실을. 청혼받은 프리다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1929년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스무 살의 딸이 마흔세 살의 바람둥이와 결혼하겠다니 어느 부모가 찬성하겠는가. 또 프리다는 죽을 때까지 의학적 치료를 받아야 하고 디에고는 그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당할 것인가도 의문이었다. 실제로 프리다는 26년 동안 무려 서른 번이 넘는 외과수술을 받았다.
이후 프리다는 세 차례나 임신에 성공했지만 자궁과 골반에 입은 손상 때문에 유산을 반복했다. 디에고는 출산이 그녀의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의사의 권고를 받아들이자고 프리다를 설득했으나 소용없었다. 디에고의 아이를 낳는 것은 그녀의 간절한 꿈이었다. 프리다가 아이를 낳고 싶은 갈망과 싸우는 동안 디에고의 바람기는 봉인이 해제되고 있었다. 그런데 '바람'의 상대가 프리다의 여동생이었다는 사실은 또 한 번의 참담한 고통이 된다. 그러나 디에고가 바람기를 주체하지 못하듯 프리다 역시 디에고에 대한 사랑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후 프리다는 벽화 화가인 이그나시오 아기레와 불타는 연애를 했고 곧이어 일본계 미국인 조각가 이사무 누구치와 육체는 물론 감정적으로도 깊은 연인 관계를 유지했다. 그녀의 욕망은 헝가리 출신의 사진작가 니콜라스 머레이를 거쳐 급기야 러시아 혁명가이자 정치가인 레온 트로츠키에게까지 가닿았다.

1940년 8월 어느 날, 트로츠키가 러시아 비밀 경찰에게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파리의 공산당 서클을 돌아다니던 프리다는 즉시 경찰에 끌려가 열두 시간이 넘는 심문을 당하게 된다. 샌프란시스코 주니어 칼리지의 벽화를 작업 중이던 디에고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녀에게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올 것을 종용했다. 의지할 곳이 필요했던 프리다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짐을 꾸려 그가 있는 샌프란스시코로 떠났다. 재결합은 프리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루어졌으나 디에고의 바람기는 말릴 수 없었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두 번의 큰 사고를 당했는데, 첫 번째는 전차와 충돌한 것이고, 두 번째 사고는 디에고이다. 두 사고를 비교하면 디에고가 훨씬 더 끔찍했다."(p.26)


‘아, 저 사람들이 〈지옥의 문〉을 조각하고 있는 나의 존재를 알까?’ 아버지의 말이 옳았다. 카미유는 로댕의 동반자이자 뮤즈이면서 동시에 그의 일을 해주는 일꾼으로 전락했다. 때때로 저녁이 되면 그녀는 다리가 아파서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었고 머리는 먼지투성이에다 신발 속에는 돌가루와 진흙 덩이가 가득했다. 그녀는 세 곳의 아틀리에를 바쁘게 뛰어다녔고 이따금 로댕을 위해 몇 시간 동안 모델을 서기도 했다. 아버지가 가끔 “지금 무슨 작품을 작업하고 있느냐”고 물을 때면 잊고 있던 회의감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p.105)- 「카미유 클로델 -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많이 고통받는다”」중에서


저자 : 추명희


서강대학교에서 문학사와 정치학사,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언론학 석사를 마쳤다. 〈월간조선〉, 〈톱클래스〉, 〈더 트래블러〉 등 언론사에서 10여 년간 기자로 일했으며 예술가들의 삶과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미술 칼럼을 정기 연재하기도 했다. 평생을 외로움과 고독, 공포와 억압 속에 살다가 결국 그림을 통해 상처에서 아름다움을 피워낸 예술가들처럼, 우리의 삶도 아픔의 흔적을 통해 더 빛나는 작품으로 태어나리라 믿는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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