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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닫히면 어딘가 창문은 열린다 - 구십의 세월이 전하는 인생 수업
김욱 지음 / 서교책방 / 2024년 11월
평점 :
이 책 『문이 닫히면 어딘가 창문은 열린다』의 저자 김욱은 소년시절 소설가를 꿈꿨다. 그러나 소설가가 되기 전에 호구지책으로 신문사에 입사했다. 소설은 아니지만 글 쓰고 싶은 욕심은 기사를 쓰면서 조금은 상쇄되었을 것이다. 신문사 기자 생활을 오래 하고, 어느덧 정년도 맞이해 퇴직한 후의 생활도 어느 정도 보장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번의 투자 실패로 평생 일해 받은 노후 생활 자금을 모두 잃어버렸다고 한다. 채워지지 않던 욕심의 글쓰기가 단 한 번의 투자 실패로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더욱 왕성하게 살아났다는 것은 그나마 좋은 대안이었다고 독자는 이해된다. 자신의 희망대로 소설은 아니지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쓸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라면 자신의 실패로 얻은 삶에 대한 의지는 글쓰기에 좋은 소재가 될 것이라고 내심 자신감을 가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남들처럼 즐겨야 할 70 노년에 들어서야 제대로 된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저자는 〈서문〉에서 밝힌다.
「오래된 육신의 낡은 생각들을 정리하며」란 제목의 〈서문〉에 따르면 날로 비루해지는 육신에서 후회와 절망이 싹트는 경험은 늙어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인생 최대의 공포다. 지금 거울 속 내 모습은 나의 기억 속 그 어떤 얼굴과도 닮지 않았다. 내가 이런 얼굴과 이런 표정을 짓는 사람이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원하던 삶의 근처를 배회하며 상처받았고, 그에 대한 보상처럼 기대하지 못했던 삶과 사람들을 선물 받았다. 인생은 극단의 좌표들만 골라 나를 인도했다. 새로운 시대는 늘 낯설었고, 나는 끝내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해지지 못했다. 삶의 모든 순간에 '계획'이라든지, '순리'라는 자연발생적 법칙 같은 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찰나의 순간에 생존과 종말이 교차하는 치열한 긴장, 그 압박감을 이겨내고 다음 단계로 한발 나아갈 때면 어김없이 나의 얼굴은 타고난 표정 하나를 잃었다.
저자는 20년 간의 글쓰기를 계속하면서 어느새 아흔의 노인이 되었다. 그사이 남들처럼 직장에서 일도 해봤고, 집도 가져봤고, 전 재산을 잃어도 봤다. 가난을 대물림하기 싫어 자식도 낳지 않으려 했는데 어디 세상일이 뜻대로 되는가. 나이 쉰에 아들도 얻었다. 이 노 작가가 담담하게 자신의 지나온 삶을 반추하는 글을 읽고 있으면 과연 그가 백 살에 가까운 ‘노인’이 맞는가 싶다. 그의 고민과 생각이 요즘 우리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그가 읽고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톨스토이, 쇼펜하우어, 디자이 오사무의 글들은 지금도 많이 읽히는 책이다. 아흔 노인의 글이 지금에도 낡지 않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와 같으리란 짐작을 해본다.
독자는 김욱 저자의 글을 처음 읽는 것은 아니다.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니체의 말』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저자는 흔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임이 확실하다. 남들은 손에서 일을 놓는 일흔에 번역자로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잘나가는 중앙지 기자에서 한 번의 투자 실패로 남의 집 제사를 지내주는 묘지기로 추락했을 때, 저자는 남들과 다른 선택을 했다. 사람들은 이제 ‘끝’이라고 그를 ‘실패한 인생’이라고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저자는 하늘을 날지는 못해도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펭귄처럼 자신의 새로운 하늘로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스스로 출판사 문을 두드려 번역일을 찾고,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약간의 거리를 둔다』 등 지금까지 200여 권이 넘는 책을 번역하는 동시에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니체 아포리즘: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등의 책을 썼다고 한다. 일흔에 맞이한 시련을 그동안 돌아보지 않았던 ‘글을 쓰겠다’는 꿈을 찾는 기회로 삼았다. 과연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실패 경험이 글쓰기의 원동력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70살이 되기까지 살아오면서 누구나 '실패'의 경험을 갖기 때문이다. 원동력은 글쓰기에 대한 어렸을 적의 욕망이 전부를 잃어버리는 실패를 겪었을 때 기어이 살아내겠다는 의지와 투지가 생긴 게 아닐까 추정해 본다.
남다른 행보를 보인 저자의 곁에는 언제나 문학과 철학이 있었다고 한다. 저자가 ‘인생은 그 자체로 비극이라는 쇼펜하우어의 글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제대로 살아남고 싶다는 한 인간의 갈망이 내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고 한 말에는 세상사에 흔들릴지언정 한 사람의 주체로서 당당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 했던 삶의 자세가 담겨 있다. ‘남들 눈치 보느라 인생을 허비하지 마라’, ‘인생은 원래 외로운 것이다’, ‘실패에서 배우는 길밖에 없다’와 같은 메시지는 굳이 철학에서 찾지 않더라도 저자의 삶 그 자체였다고 볼 수 있다. 그의 글쓰기 의지가 일단 되살아나면서 그가 펴낸 책이 200여 권이라니 입이 쩌억 벌어진다. 마치 몸속의 신기(神氣)가 분출되었을까? 200여 권의 책을 전부 읽은 사람도 평가하기에 많은 시간이 걸릴 텐데, 한 권 읽은 독자가 평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조용히 저자가 성찰을 통해 내놓은 말에 귀 기울여본다.
다행히 이 책에서 저자는 말한다. 누군가 자신에게 망한 이야기를 써달라고 하면 기고만장한 얼굴로 책상 앞에 앉는다고. 실패가 결국 실패가 아니었고, 실패가 있었기에 지금의 행복이 있다는 것을 삶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표제어로 쓰인 〈문이 닫히면 어딘가 창문은 열린다〉는 5장(章)의 제목이기도 하다. 5장에는 소제목이 달린 7개의 글이 등장하는데 그 중 「망한 이야기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으면 나는 아주 기고만장한 얼굴이 된다」라는 긴 제목의 글에 70세에 처음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가 잘 나와 있다.
"실패는 즐겁다. 실패와 절망이 미래를 결정지을 수 없다는 사실만 기억한다면 몇 번이든 감수할 수 있다. 쓰러짐은 대수롭지 않다. 쓰러진 후에 다시 일어서고 싶은 마음이,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쓰러지는 것이 무섭지 않다는 용기가 중요하다. 넘어졌다 일어나 보면 쓰러지지 않는 한 가지 방법을 알게 된다. 넘어졌더라도 다시 일어설 용기만 있다면, 두 번이든 세 번이든 넘어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서 있는 자신을 보고 놀라게 될 것이다."(p.251)
우리는 늘 실패를 두려워하고 인생이 왜 이렇게 힘드냐고 한탄한다. 그래서 그것밖에 실패하지 못한 나 자신이 분하고 억울해 한숨이 절로 나온다고 투정을 부리는 저자의 진심이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책에 따르면 실패를 기억하는 것처럼 멍청한 짓은 없다. 지나간 실패를 기억하며 새로운 도전을 의심하는 것처럼 나약한 생각은 없다. 에디슨은 필라멘트 전구를 만들 때 육천 번이나 실패를 경험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육천 번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필라멘트 전구를 만들 수 없는 육천 가지 방법을 알아냈다며 능청을 떨었다. 좌절은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은 나만의 노하우다. 어째서 실패했고, 그 실패가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증언해 주기 때문이다. 실패는 역사다.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겪는다. 그 지긋지긋한 경험이 나만의 역사가 되어준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며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그랬고, 혹은 지금도 그렇게 도망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도망쳐도 결국은 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 인간이다. 차라리 마음을 내려놓고 그냥 한 번 더 실패하고 말겠다는 자포자기가 큰 능력이다.
저자가 앞에서 언급한 5장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삶의 지혜를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제목은 「망한 이야기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으면 나는 아주 기고만장한 얼굴이 된다」고 남의 실패를 글로 옮기며 즐겁다는 뜻으로 잘못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의 속뜻은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보상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이만큼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보상이 될 때가 있다."란 문장이다. 이 장에는 따로 떼어 아포리즘으로 만들 만한 문장이 많이 나온다.
"지구상에 등장한 생물 중 미루는 것을 발견한 종은 오직 인간뿐이다." "인생을 '승부'로 바라보면 삶은 경기가 된다." "인생에 '정상'이 있다고 믿는다면 삶은 내내 오르막이다." "산다는 것은 결국 반복되는 시간의 연속이다."
사람들은 인생의 시기를 나누고 각각의 시기마다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다고 믿는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하지만 백세시대가 되면서 우리는 긴 시간 이어져온 많은 관습과 관념들을 바꾸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저자는 아들, 남편, 직장인, 아버지가 아니라 ‘나’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노년의 모습을 제시했다. 또, 저자는 ‘죽음’마저도 달라지지 않으리라 법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톨스톨이의 죽음에서 해답을 찾았지만, 그것이 모두의 해답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그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저절로 삶과 자신을 사랑하는 자세를 배우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아흔의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잘 살았다’는 평가는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4장 〈쇼펜하우어처럼 살다가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가운데 소제목 「나는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란 글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죽음에서 얻어낸 노 작가의 통찰력이 나타난다. 저자는 이 글의 첫 머리를 "삶이라는 단어보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나의 오늘이다."라고 썼다. 이런 상황에서 남은 자신의 목표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짓게 될 표정, 마지막 말들과 흘릴 미소, 영원한 안식에의 도달을 스스로 계획하여 실천할 수 있겠는가, 라는 가능성의 증대로 집약된다고 문장을 완성하고 있다. 저자는 요양병원과 요양원이 전국 각지에서 운영되는 현실을 보며 '죽음이 사육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즉음의 대기소라고도 덧붙인다. 저자는 자신의 오늘은 그간 경험했던 수많은 '오늘'과 바꾸지 못할 단 하루라고 표현한다. 이어 어제보다 못하고 내일보다 덜 소중한 오늘은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므로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감히 입에 담지 못한다는 거짓말로 살아온 시간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톨스토이의 죽음 이야기가 뒤따른다.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학대받는 사람들, 가난한 농노들의 해방과 자유를 그려낸 작품으로 큰돈을 벌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그가 쓴 소설이 세상에 전해질수록 자신의 재산은 증식되지만 주인공인 고통받는 자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말을 전한다. 톨스토이는 고민 끝에 그 괴리에 책임감을 느끼고 저작물에서 얻어지는 인세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환원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가족들이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가족들은 톨스토이의 재산이 유실될까에 눈을 켜고 감시한다. 톨스토이는 결국 1910년 10월 27일 톨스토이가 잠든 것을 확인한 아내와 아이들, 출판업자가 톨스토이의 서재를 뒤졌다고 한다. 혹시나 유언장에 엉뚱한 말을 쓰지는 않았는지, 그들이 모르는 재산상의 다른 서류가 있는 건 아닌지 뒤져본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 잠에서 깨어나 서재에 들른 톨스토이는 이 장면을 목격했다. 늙은 소설가는 격노했다고 한다. 새벽까지 가족들과 심하게 다툰 톨스토이는 마음을 정리했다. 그는 주치의를 데리고 집을 나간다. 노구를 이끌고 새벽녘에 몰래 뒷문으로 빠져나간 늙은 작가는 살아서 가족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톨스토이는 이미 러시아의 가난한 백성들을 돌아보고 위로하다 길에서 죽으리라 다짐했다고 한다. 같은 해 11월 7일 기차여행의 피로와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급성 폐렴에 걸려 사망하고 만다.
저자 : 김욱
서울대학교 신문대학원에서 공부한 후 서울신문, 경향신문, 중앙일보 등 언론계 최일선에서 일했다. 안정된 노후가 보장된 그였지만, 퇴직 후 잘못된 투자로 전 재산을 잃었다.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번역 일을 시작했고, 이참에 평생 한으로 남았던 꿈까지 이뤄보자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다 끝난 것 같은 그때 인생 2막이 시작되었다. 남들은 손에서 일을 놓는 나이 일흔에 시작한 번역본이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인도에 살 수도 없고』, 『약간의 거리를 둔다』, 『황홀한 사람』, 『지적 생활의 즐거움』, 『지식생산의 기술』 등 200여 권이 넘는다. 늘 문학과 철학을 가까이했던 그는 일생에 큰 영향을 준 철학자를 깊이 있게 공부했다. 그 결과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니체 아포리즘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를 집필했다. 번역의 영역을 넘어서 기획하고, 전문 영역을 넘어서 폭넓게 글을 썼기에, 아흔의 나이에도 현역 작가로서 활동할 수 있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