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그 두 번째, 포르투갈 길 - 리스본에서 피니스테레까지 순례길 700km
정선종 지음 / 작가와비평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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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나이로 들어서면서 그나마 아침마다 한 걷기 운동도 최근에 거르기 일쑤다.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정말로 걷는 일을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든다. 나이가 들어서 가벼운 운동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근력이 떨어져 운동은커녕 걷기마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얼마 전 건강 관련 책에서 읽은 건강 지식이다. 걷기는 모든 운동의 기본이 되기도 하고, 또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적절한 운동으로 많이들 하는 것 같다. 뛰는 것과 직접 스포츠에 참여하는 일이 힘들어질 경우 걷기는 최소한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게 의사들의 한목소리다. 걷기는 힘이 비교적 덜 들고 속도나 운동량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기에 노년의 운동으로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 『산티아고 그 두 번째, 포르투갈 길』은 유럽의 곳곳에 산재한 성지 순례길을 걷는 70대의 한 순례객의 완주기다.

사람은 매일 걷는다. 출근을 위해 또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어디론가 향하기 위해 우리는 걸어야만 한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행위이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특별한 능력이기도 하다. 걷는 동안 아름다운 풍경을 접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걷는 이의 상황과 마음가짐에 따라 길은 다르게 다가온다. 이러한 걷기의 미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길은 단연 ‘산티아고 순례길’이라고 이 책 『산티아고 그 두 번째, 포르투갈 길』의 저자 정선종은 말한다.

이 책은 산티아고로 향한 두 번째 여정을 담은 여행에세이이다. 걷기에 빠진 저자가 “나는 왜 걷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부터 시작한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출발하여 목적지인 산티아고를 거쳐 땅끝마을 피니스테레에 이르기까지 36일간 걸은 700km의 순례길을 생동감 넘치는 문장으로 담아냈다. 저자가 찍은 사진과 함께 동반자인 아내의 스케치를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포르투갈 길의 풍경을 더욱 생생하게 전한다.

저자는 「나는 왜 걷는가?」란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 한 부류는 산티아고 길을 걸은 사람이고 또 한 부류는 그 길을 걷지 않은 사람이다. 그리고 산티아고 길을 한 번도 걷지 않은 사람은 있지만 산티아고 길을 한 번만 걸은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독자는 이미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어 700~800km에 달하는 순례길을 걷기에는 체력에 자신이 없어졌는데 저자는 평생 걷기를 즐겨 하신 분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독자는 평소 30분 걷기도 힘들다고 최근 산책을 겸하는 그 시간을 버텨낼 정도의 체력도, 자신감도 이미 소진됐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그 걷기도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평소 다니던 의사의 권고로 시작했었다. 젊었을 때는 체력은 되지만 시간 탓하며 못 걷고, 나이 드니 이젠 체력이 안 따라준다. 이 책의 저자에 비춰볼 때 몸 관리에 성실하게 임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 책을 읽기에는 걷기에 대한 자세부터 바뀌어야 할 듯하다는 느낌이다. 저자는 자신의 건강 관리를 위해 걷기를 시작한 것은 맞지만 다른 어떤 일도 앞서서 걷기가 생활에 일부로 만들었으나, 독자는 시간 날 때 타인의 권유로 짐짓 걷기를 해본 척했다는 자책감마저 든다. 저자의 걷기 예찬은 이 책 끝날 때까지 계속될 터이니 잘 읽고 걷기에 대한 영감이라도 얻어 30분 걷기를 다시 실천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기 위해 걷기의 속도로 천천히 읽어나간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리스본에서 출발해 목적지인 피니스테레까지 700km를 도시 구간별로 나누었다. 1장 「Before the Camino」, 2장 「Lisboa~Tomar」, 3장 「Tomar~Porto」, 4장 「Porto~Tui」, 5장 「Tui~Santiago 그리고 Finisterre」 등이다. 모두 원어로 표시돼 있어 읽기 불편해도 책을 읽어나가면서 불편함은 해소될 것이다. 1장은 본격적으로 걷기 전의 이야기로 저자와 포르투갈의 인연을 들여다볼 수 있다. 2장부터 5장까지는 설렘과 고난이 교차하는 순례길 위의 이야기이다. 출발지인 리스본부터 토마르, 포르투, 투이를 지나 목적지인 산티아고, 그리고 덤으로 걷는 길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 매일의 기록을 특유의 솔직담백한 문체로 담아냈다. 독자 역시 전문 글쓰기 작가가 아닌 저자의 소탈한 문장과 함께하며 유쾌한 시간을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두 번째 도전이다. 그러나 걷기는 국내 및 미국 등 해외 유명한 길을 모두 섭렵할 정도로 오랜 기간에 걸쳐 걷기를 삶의 일부로 실천했다. 부록으로는 산티아고 순례길 준비 방법과 장비, 역사가 실려 있으며, 날짜별 루트 요약도 있어 전체 여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여행정보를 담은 여행 안내서가 아니다. 저자가 현직(삼성전자 포르투갈 법인장)에 있을 때 딸을 불의의 교통사고로 잃는 비극적 경험 이후 30주년 되는 해 이 길을 다시 선택한 것은 이번 순례길이 단순한 여행의 성격이 아니라고 한다. 김낙희(토마스) 전 제일기획 사장은 〈추천사〉를 통해 저자의 딸에 대한 추모와 사랑을 담은 여정이라고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이번 산티아고 길은 당초 2020년 봄, 칠순을 기념해서 걷기로 예정했지만 느닷없이 닥친 코로나 팬데믹에 의해 가로막혔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리스본 직항편을 운항하던 아시아나 항공도 비행기 길을 취소했다. 저자는 이 팬데믹 기간을 오히려 국내의 길을 더 걷는 기회로 삼았다. 4년간 코리아둘레길 가운데 해파랑길 750km, 남파랑길 1,470km, 서해랑길 1,800km를 걸었다. 또 지리산둘레길 300km도 걸었다. 이제 나이도 70을 넘겨 중반으로 치닫고 있다. 저자는 나이를 이유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열정이 건강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자신의 건강보다는 동행할 아내의 건강에 대한 염려이다. 

포르투갈 길을 이미 직접 경험한 저자의 이번 여정에는 현실적인 조언이 듬뿍 담길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현지 경험과 열정, 건강 상태 등이 한데 묶인 까닭이다. 앞으로 산티아고 포르투갈 길을 경험해 보고 싶거나 다녀올 계획이 있는 분들에게 저자의 이야기는 좋은 조언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수없이 선택해야만 하는 인생길을 걸어가는 이들이 저자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면서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끝까지 나아갈 용기도 얻게 되기를 저자는 기대한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사실 중국의 고대 사상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이 해야 할 일, 의지로 이루어낼 수 있는 일, 그것을 중국의 공자는 길(道)로 표시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순례길도 같은 의미로 들린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산이 높은 것을 확인하려고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듯, 거기 길이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 길을 걷는 것 또한 아니라고 말한다. "산이 거기 있어도 내가 오르지 않으면, 길이 거기 있어도 내가 걷지 않으면 산도 길도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힘들게 오르면서 걸으면서 고생도 하고 후회도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더욱 성숙해지고 내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p.16)

산티아고 순례길 중 가장 많은 사람이 걷는 루트는 프랑스 길이라고 한다. 저자 역시 2017년에 첫 산티아고 순례길로 프랑스 길을 다녀왔고 두 번째로 선택한 길이 바로 포르투갈 길이다. 포르투갈로 떠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리스본에서보단 제2의 도시 포르투에서 출발을 하는데, 리스본에서 포르투까지 숙소와 식당 등의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지 않기도 하고 대체로 차도를 따라 걷는 구간이 많아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저자는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고서 포르투갈 길을 온전히 느끼고자 수도 리스본에서 출발해 산티아고를 거쳐 피니스테레까지 모두 721km의 순례길을 따라 걸었다. 프랑스에 비해 순례자에게 친절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고 마음씨 좋은 포르투갈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고 책에서 회고한다. 매일 기록을 잊지 않고 실천한 저자의 부지런함 덕분에 독자들에게도 포르투갈 길만의 매력이 그대로 전달된다. 지친 길 위에서 마주한 오렌지 한 바구니처럼, 이 책은 따뜻한 위로와 기분 좋은 웃음을 선물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자는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느 길 앞에서건 주저하지 않는다. 또 ‘천천히, 꾸준히 그러나 끝까지’ 걷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빠름보다는 느림을 추구하며 주변을 돌아보는 그의 모습을 통해 “나는 왜 걷는가?”라는 질문이 결국 “나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기나긴 길을 걷는 일과 같다. 길을 걸으며 어디서 묵고, 무엇을 먹을지 등을 선택하듯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지 앞에 서게 된다. 길이 있어도 걷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저자의 말처럼 인생은 순간의 결정들로 완성되고 나만의 삶의 의미로 채워진다. 『산티아고 그 두 번째, 포르투갈 길』은 매일 목적지를 향해 걸으며 보고 느끼고 사유한 순례의 여정을 통해 지금도 묵묵히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삶을 천천히 음미하는 법을 알려줄 것이다. 모든 독자들이 이 책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영감을 받을 수 있기를 저자는 바란다.

2장이 실질적 순례길의 시작이다. 책의 목차에 「Lisboa~Tomar」로 표기돼 있다. 7일간 여정으로 163km에 이른다. 3일차 'Via Franca~Azambuja(20km)' 구간이다. 저자의 서술을 살펴본다. "오늘은 빌라 프랑카에서 아잠부자 마을까지 20km를 걷는다. 오른쪽에는 태주강이 흐르고 왼쪽으로는 철길이 달려가는 평탄한 길이다. 형형색색 들꽃들이 길을 따라 지천에 깔려 있다. 눈이 즐겁다. 클로버, 엉겅퀴, 양귀비, 데이지··· 아는 꽃 이름은 거기까지다. 

숙소를 나서서 한 2km쯤 왔을까.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이 길에서 처음 만나는 카미노 순례자다. 스웨덴에서 왔다는 30대쯤으로 보이는 여인이다. 오늘 아침 숙소 식당에서 우리를 봤단다. 얼마를 같이 걷다가 여인이 앞서간다. 반갑지만 우리 아줌마들 걸음이 느리니 계속 같이 걸을 수는 없다. 인연이 있으면 어디선가 또 만나게 되겠지. 원래 카미노란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그런 길이니까.

20km를 걷는 내내 쉬고 마실 것이 보이지 않는다. 기차역이 보여 들어섰더니 아무것도 없다. 철길을 따라 건너 멀리 마을에 가면 뭔가 있을 법은 하지만 갔다가 되돌아오는 수고까지 감당하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그냥 물이나 마시고 가자."(p.88~89)

독자도 유럽 여행을 다녀 왔지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들이다. 이는 서양 문명의 초기부터 전해오는 결과다. 오늘날 서양 문명의 발상지라고 하는 그리스에 가보면 그들이 대형 건축물(신전)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느낄 수 있다. 처음에는 신전을 지었지만 점차 왕궁이나 정치적 건축물, 또는 공공건물 등의 아름답고 웅장한 자태는 2,500년이 지난 건축물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그리스 문명을 받아들이고 유럽 대제국을 건설한 로마 문명도 대형 건축물에 많은 돈과 신경을 썼다. 로마는 다신교이었고, 피지배국에 일정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고, 또 불이익을 주지도 않았다. 그러다 기독교를 결국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성당 건물이 엄청나게 유럽 전역에 올라갔다고 한다. 서로마 멸망 이후에도 유럽은 다시 기독교 문명으로 통일된 제국을 이어온 셈이다. 어차피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 시작을 포르투갈에서 시작했으니 오늘날 포르투갈의 국가 위상으로 보아 브라질 대제국을 건설했으리라고는 쉽게 짐작되지 않는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로마의 지배를 받다가 5세기 경부터(서로마 제국 멸망 시기쯤으로 추정) 12세기까지 오랜 시간 아랍 무어족의 지배를 받았다. 토마르는 무어족의 중심도시였다가 12세기 기독교 영토회복 후 십자군 기사단의 본부가 되었던 도시다. 그래서인지 토마르시의 심벌 마크도 십자군 기사단이 사용했던 원형십자가 방패 모양이다. 시내에는 성당과 성채, 다리 등 많은 역사적 유물이 남아 있는데 대부분 16세기 포르투갈의 전성기에 확장, 재건된 르네상스 양식들이라고 저자는 전한한다. 

"엊그제 산타랭에서 얘기했던 산타 아레네 성당도 이곳에 있어 들어가 보니 제대 뒤에는 성모나 예수 십자가 대신 이레네 성녀가 자리하고 있다. 시내 중심가에서 바로 계단을 타고 으로면 토마르성으로 올라간다. 로마 때부터 건설돼 무어족 지배 시절, 그리고 십자군 기사단까지 사용했던 성채라서 그런지 곳곳에 기독교는 물론 아랍 냄새도 풍긴다. 긴 회랑을 걷다가 보니 언뜻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성채 내부에는 '그리스도 수도원(Convento de Cristo)'이라는 화려한 성당도 있다."(p.128)


카미노에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시기는 나쁜 날씨가 이어질 때가 아니라 구름 한 점 없는 땡볕이 계속될 때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보다 잘 견디는 사람이 더 훌륭하다. 진정으로 멋진 사람은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사람이다. 힘든 걸 겪어 내야만 인생의 달콤함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카미노는 인생 길이다.(p.239)


저저 : 정선종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삼성 그룹에 입사하여 회장 비서실 홍보팀, 삼성전자 수출부장, 스페인 포르투갈 법인장, 제일기획 부사장 등을 역임하며 35년간 삼성에 몸을 담았다. 삼성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골프가 좋아 인생 2막은 골프에 미쳐 보기로 결심한다.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골프 대학 PGCC(Professional Golfers Career College)를 졸업하였고 단국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골프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13년부터는 4년간 대교 그룹에서 운영하는 마이다스 골프클럽(청평, 이천)의 경영을 책임졌다. 지금은 아내와 함께 국내외를 돌아다니면서 명문 골프장 탐방을 하고 있고 틈틈이 국민대 등에서 골프 강의도 하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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