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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한국괴물관리협회 ㅣ 안전가옥 오리지널 42
배예람 지음 / 안전가옥 / 2024년 1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이 소설 작품 『사단법인 한국괴물관리협회』의 저자 배예람은 〈작가의 말〉을 통해 "나의 인생 한편에 늘 존재했지만 결코 만날 수 없었던 친구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러브레터"라고 말한다. 우리는 괴물에 대해 "꿈에 나타날까 무섭다"는 말로 일축한다. 사실 우리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괴물은 대부분 그리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다만 구전이나 설화로 내려오는 이야기들에 교훈적인 내용을 담아 '도깨비'처럼 선한 인상을 남긴 괴물들도 간혹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부정적이다. 일단 외모가 무섭다. 외모가 무서우면 사람들은 당연히 가까이 하기 어렵고 꺼려한다. 권선징악의 우화나 전설에서 선행을 하는 괴물들은 우리 사회에서 악을 행하는 무리들을 징벌하기 위해 무서운 외모로 등장하기도 한다.
최근 소설의 경향이 빠르게 SF 판타지로 옮겨진 느낌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최고의 과학의 시대를 맞이하고서도 판타지 소설이 주류를 이룬다는 것이 왠지 부조화스럽다. 과학의 어깨 위에 올라타서 판타지 소설을 집필한다면 더 멀리 넓게 볼 수 있어서일까? 아니면 독자들의 취향이 판타지를 이끌고 있는 것일까? 문학을 공부하거나 직접 쓰는 작가가 아닌 일반 사람으로서 궁금하지만 속내를 읽을 수 없어 답답하지만 판타지는 과학만 함께 엮는 게 아니라, 범죄와 미스터리 등 합동하는 영역을 무한히 늘려가고 있다. 우주의 생성과 소멸 등을 밝혀낸 21세기 과학은 무한하게 발전하고 있다. 실제로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한가운데 들어선 느낌이다. 과거에 상상했던 게 눈앞에서 현실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인류는 과학으로 접근하면 인류가 풀지 못할 문제는 없다는 듯이 거침없이 발전하고 있다. 자율주행뿐만 아니라 우주여행도 민간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에 대해 의문을 갖든 풀지 못할 것은 없다는 태세다.
그러나 인류가 우주를 지배할 꿈은 아직 근본적인 문제인 '속도'와 '시간'이다. 두 물리적 현상이 지금까지의 해결하지 못한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시간을 초월한 타일 슬립 소설, 차원의 문제로까지 확대시킨 '순삭(공간 이동)'까지 많은 SF 소설의 전성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전설이나 민담에 자주 등장하는 귀신(괴물)의 문제는 작가의 상상력에서 그 모습을 바꿔가기도 한다. 기괴한 모습의 괴물들은 사실 우리에게 "괴물은 무섭다", "귀신은 나쁜 일을 한다" 등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 『사단법인 한국괴물관리협회』의 저자 배예람은 괴물에 대해 공포나 무서운 느낌을 벗어난 친근한 이미지로 변신하고 있다. 저자에게 괴물은 친구이고 애정의 대상이다. 그래서 거침없이 러브레터도 쓴다. 이 책이 러브레터다. 저자는 장르 소설 독자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과 기대를 받아 온 분이다. 이 소설도 두 번째 장편소설이자 장르소설이다. 괴물과 귀신이 공존하는 현대를 배경으로,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오컬트 판타지를 선보이고 있다.
귀신을 보는 ‘눈’을 가졌지만 괴물을 다루는 ‘손’은 갖지 못한 주인공 보늬는 그럼에도 사단법인 한국괴물관리협회에서 꿋꿋이 버티며,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 애쓴다. 3년 동안 사무실 붙박이로 지낸 보니는 어느 날 회사에 나타난 전래 동화 괴물을 물리친 일을 계기로 신입 직원 지운과 함께 ‘임시 파견팀’을 꾸리게 된다. 앞으로 그들의 눈앞에는 또 어떤 괴상하고 기이한 괴물이 나타날까?
저자에게 괴물은 내쫒거나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니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었을까? 저자가 이번 작품에서 내세운 주인공 보늬는 저자의 분신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늘 자신을 한심하게 묘사하지만, 언제나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이 책을 출판한 〈프로듀서의 말〉에서도 명확하게 지적되고 있다. "보늬는 아주 큰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매일매일 내가 재능이 없다는 걸 확인받는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일지, 그럼에도 그런 하루하루를 버티며 좋아하는 것 옆에 있고자 하는 마음은 얼마나 큰 것일지 쉽게 짐작할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심지어 자신이 훨씬 더 큰 재능을 가진 대안이 명확이 보이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그런 보늬의 용기와 괴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감동하여 마음 한구석이 시큰거린다."(p.397)
괴물과 귀신이 공존하는 현대의 대한민국. 일반인들에게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중으로부터 괴물을 격리하고 보호한다는 사명을 지니고 암약하는 〈사단법인 한국괴물관리협회〉(이하 한국괴물관리협회)가 있다. 대외적으로는 〈사단법인 한국실뜨기협회〉로 알려진 협회는 전국에 다섯 개의 지부가 있으며 괴(怪)와 관련된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한다. 비밀 조직이라는 점 외에는 일반 회사와 다를 게 없는 협회에서는 괴물을 다루는 ‘손’을 가진 ‘괴물 전문가’들이 일하고 있다. 그리고 이 협회에서 유일하게 괴물을 다루는 ‘손’ 대신 귀신을 보는 ‘눈’을 가진 인물, 강보늬가 있다. 괴물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손’을 갖지 못한 보늬는 파견팀 소속이면서도 3년 내내 사무실 붙박이 신세다. ‘손’이 없는 보늬는 괴물에게 생채기 하나, 흠집 하나 낼 수 없고, 따라서 파견을 나가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협회 사람들은 그런 보늬를 본체만체하기 일쑤이고, 그럴 때마다 보늬는 탕비실 구석에서 여자 귀신과 잡담을 나누거나 회장실에서 목이 없는 괴물 무두괴와 커피를 마시며 마음을 달래곤 한다. 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일에 재능이 없는가. 그렇게 보늬는 늘 괴로워하면서도 사단법인 한국괴물관리협회에서 꿋꿋이 버틴다.
사무실에 남은 인력이 없어 모처럼 구 팀장과 파견을 나간 보늬는 잡으러 간 도깨비에게 연민을 느껴 그냥 보내 주고 만다. 구 팀장은 화가 나서 보늬에게 협회를 그만두라고 말하고, 다음 날 사직서를 제출하려던 보늬는 밤마다 사무실에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을 듣는다. ‘귀신’이란 두 글자에 귀가 번쩍 뜨인 보늬는 스스로 귀신을 잡겠다고 나서서 탐문을 시작한다. 모두가 귀신인 줄 알았던 존재는 알고 보니 전래 동화에 나오는 괴물이었고, 보늬는 신입 직원 지운과 함께 전래 동화 괴물을 물리친다. 이 일을 계기로 보늬는 지운과 함께 ‘임시 파견팀’을 꾸리게 된다. 앞으로 이들의 눈앞에는 또 어떤 괴상하고 기이한 괴물들이 나타날까?
이 소설 작품은 모두 8개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돗가비와 돗가비」「어서 눈을 떠서 저를 급히 보옵소서」「웰컴 투 해피랜드」「요술 맷돌」「여우 누이의 재앙」「도근천의 비밀」「나랑 같이 먹지」「에필로그」 등이다.
첫 장의 「돗가비와 돗가비」에서는 한국괴물관리협회의 직원들의 역할과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한다. 특히 한국괴물관리협회는 괴물들의 등급을 정하고 자료화해 관리하고 있다. 이를 테면 제목에 있는 '돗가비'는 도깨비의 옛말이다. 이 도깨비의 출현이 인지되면 직원들이 출동한다. 출동하는 직원들은 괴물 잡는 '손'을 가지고 있다. 형사가 범죄자를 잡아들이듯 괴물을 잡아 완전히 굴복시켜 관리한다. 물론 범죄 조서 쓰듯이 일일이 신상 정보는 물론 '범행 사실'을 바탕으로 낱낱이 관리 카드에 저장된다. 여기서 보늬는 '손'이 없어 현장 출동엔 갈 수 없다. 대신 괴물을 보는 '눈'이 있지만 이는 현장 출동의 부적격 요소다. 손이 없으면 괴물을 제압하거나 잡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도깨비는 위험 괴물은 아니다. 흉악한 범죄자는 아닌 것으로 협회 직원들은 분류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보늬도 함께 출동은 했지만 차량 안에서 기다릴 것을 지시 받는다. 직접 제압은 불가능하다는 이유다. 직접 제압하려고 출동한 직원들의 대화로 봐서는 보늬가 자격이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직원 구 팀장이 지금 잡으러 가는 도깨비는 '백(白) 등급'으로 분류되어 있다고 고지하며 혼자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손가락 하나로도 제압 가능하다는 표시다. '핑거 스냅'.
저자가 달아놓은 주(註)를 통해 한국괴물관리협회에서 괴물을 분류하기 위해 부여하는 등급의 내용을 알 수 있다. 백 등급의 괴물은 사람을 해치려는 목표가 아닌 다른 특정 목표를 가지고 있거나, 괴물 전문가의 힘으로 통제가 가능한 괴물을 말한다. 백 등급의 괴물은 한번 확보되면 보안실에서 지내게 된다고 설명이 달려 있다. 또 '청(靑) 등급'도 있다. 이 등급의 괴물은 사람을 해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우호적인 괴물로, 인간과 소통이 가능하거나 인간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괴물을 포함한다는 말이다. 이 등급의 괴물은 보안실을 나와 사무실 구역을 돌아다니도록 풀어놓기도 한다는 주석의 설명이다. 구 팀장의 핑거 스냅은 수많은 괴물들을 체포하면서 슬슬 권태에 빠져든다. 그 핑거 스냅으로 제압이 충분하다는 구 팀장은 선배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엄청난 실적을 올린다. 도깨비 다음에는 어둑시니였고, 다음에는 불가사리. 불가사리 다음에는 생사귀(까만 모습에 머리에는 다섯 갈래로 나뉜 뿔이 달린 괴물)였다. 그 이후로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단피몽두(사람의 두세 배 정도 되는 크기에 얼굴에는 몽두를 쓴 괴물), 쌍두사목(머리가 둘 달린 듯한 느낌을 주느 괴물. 눈이 네 개이며 뿔이 달렸다), 식인충(고운 망사 같은 껍질에 싸인 벌레로 사람을 빨아 먹는다)······.
이 소설 작품 『사단법인 한국괴물관리협회』에는 다양한 전래 동화 속 괴물들이 등장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전래 동화가 사실은 괴물들의 탄생 설화라는 흥미로운 설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어떤 전래 동화 괴물이 등장하는지는 책을 통해 직접 만나보기를 권한다.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한 가지 주제는 빗나간 재능에 관한 이야기다. 보늬는 어릴 적부터 괴물을 사랑할 운명을 타고났다고 믿었고, 한 번도 이를 의심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외할머니와 엄마처럼 괴물을 다루는 ‘손’을 갖게 될 거라 믿고 있던 보늬에게 찾아온 것은 귀신을 보는 ‘눈’이었다. 보늬의 마음 한편에서는 언제나 괴물을 향한 순정이 반짝거렸지만, 보늬는 오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무난한 학과를 졸업해 무난한 회사에 다니고, 무난한 현실을 살던 어느 날, 보늬는 한국괴물관리협회의 회장인 외할머니 귀순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스물여섯 살 보늬는 모든 걸 내팽개치고 한국괴물관리협회에 들어간다. 사랑하는 것들 옆에 있기 위해서.
사랑하는 일에 재능이 없음을 깨닫는 일은 괴롭지만, 어른이 되어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망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보늬의 모습은 읽는 이에게도 용기를 선물할 것이다. 이 소설의 또 한 가지 주제는 괴물과의 공존에 관한 이야기다. 보늬에게 괴물은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징그러우면 징그러울수록 어여쁜 친구들’이지만, 모든 이에게 그런 것은 아니다. 함께 임시 파견팀을 꾸린 지운 역시 괴물에 대한 애정이 충만한 보늬를 이해하지 못한다. 누구보다 괴물을 아끼는 보늬는 인간이 괴물을 ‘다스리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 끊임없이 고민한다.
괴물도, 인간도, 그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뿐인데 인간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괴물을 다스리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 이는 단지 인간과 괴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에게 적용되는 이야기일 수 있다.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문제이지만, 소설을 읽어나가며 자신만의 답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괴물 '옹고집'에 대한 자세한 보고서가 고딕활자로 지면에 드러나 있다. 물론 다른 괴물들도 모두 하나씩 차례로 활자화돼 지면에 모습을 나타낸다. 이 가운데 첫 번째 옹고집에 대한 보고서를 여기에 발췌, 정리한다.
개체 이름: 옹고집
일련번호: KMMA-448
등급: 황(黃) 등급*
종류: 인간형 괴물(둔갑)
활동지역: 전국
탄생(일부 『월야괴담』 발췌): 옛날 옛적에 황해도 옹진에 옹고집이라는 부자가 살았다. 그는 심술궂고 끔찍한 구두쇠여서, 여든 살 노모를 차가운 방에 재우고 식사도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 불효를 저질렀다. 그는 습관처럼 노모를 구박했을 뿐 아니라 남녀 종들을 심하게 부려 먹고 폭력까지 행사할 정도로 사악한 인간이었다.
심지어 그의 행패와 폭력을 견디다 못한 종들이 죽는 사건마저 발생했다. 죽어 나가는 종들이 많아 집 안에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도는 등, 분위기가 흉흉해지자 한 스님이 시주를 받으러 와 집 안의 불길한 기운을 물리쳐 주겠다고 나섰다. 당연히 옹고집은 스님에게 오물을 뿌리는 등 푸대접했고, 이에 크게 화가 난 스님은 지푸라기 인형을 만들어 옹고집을 벌하는 주술을 걸었다. (중략) 소문을 듣고 찾아온 괴물 전문가들에 의해 격리되었다. 괴물 전문가들은 괴물에게 옹고집이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붙였고, 이 사례는 진짜 옹고집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로 변형되어 일반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 황(黃) 등급: 황 등급의 괴물은 사람을 해치거나 죽이려는 목표를 가진 괴물로, 이 등급의 괴물은 제거해야 한다.
저자 : 배예람
잔인하고 끔찍한 이야기를 즐겨 쓴다. 밤마다 침대에 누워 내일 무엇을 쓸지 상상만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지독한 게으름뱅이. 게으름을 이겨 내고 한 줄이라도 쓰는 것이 매일매일의 목표. 2019년 안전가옥 앤솔로지 『대스타』에 수록된 「스타 이즈 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안온북스 ‘내러티브온’ 소설 편 『왜가리 클럽』에 수록된 「인어의 시간」을, 안전가옥 앤솔로지 『호러』에 수록된 「엔조이 시티전(傳)」을 썼다. 오래오래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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