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블랙박스를 요청합니다
세웅 지음 / 팩토리나인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 작품 『죽은 자의 블랙박스를 요청합니다』는 처음 실시될 때부터 개인 사생활 침해라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민 안전을 위한 시설물로서 범죄 예방이나 범인 체포에 엄청난 기여를 할 것이라는 'CCTV'가 모티프로 작용했다. 여기에 '100세 시대'의 뒤안길에서 홀로 사는 노인 등 1인 가구의 '고독사'가 급증하는 등 사회 문제로 부각됨으로써 작품 구상의 동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작품의 배경이 된 시점은 근미래이고 장소는 대한민국이다. 가파르게 증가하는 고독사와 의문사 문제로 골치를 앓던 정부는 〈더 블랙(뇌과학연구소)〉와 손잡고 사람의 뇌에 블랙박스를 이식하는 놀라운 기술을 개발한다. 2050년, 전 세계에서 최초로 전 국민의 뇌에 블랙박스를 이식하는 ‘휴먼 블랙박스 프로젝트’가 실시되었다. 

이 프로젝트로 죽은 사람의 마지막 영상을 이용한 수사가 가능해지면서 미제사건 역시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안전을 담보로 감시받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은 더 이상 사생활 침해나 정보 오용의 위험성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않게 되었고, 모두가 머리에 블랙박스를 달고 사는 데 익숙해졌다. 하지만 어느 날 사망자의 마지막 영상을 확인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다. 현장에 출동한 ‘별난 경찰’ 큰별은 이례적인 상황이 수상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리고 블랙박스 이식 기술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더 블랙〉 본사에서 또 다른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서 본격적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평온했던 일요일을 보낸 월요일 새벽 2시. 막 잠자리에 든 은하를 깨운 것은 아빠의 저노하였다. 새벽에 걸려오는 전화는 언제나 불길하기만 하다. 특히 그 전화가 따로 떨어져 사는 부모님에게서 온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은하야, 진 이모가 돌아가셨어. 엄마랑 아빠랑 경찰서에 와 있고, 이모 시신은 내일 아침 비행기로 도착할 거야. 아침에 세인병원 장례식장으로 바로 오거라." 

역시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건조했다.(p.7)

앞서 언급한 CCTV는 오늘날 우리가 차량에 달고 다니는 블랙박스를 말한다. 이 기술이 발달돼 사람의 뇌에 이식함으로써 사람들의 시각 정보를 있는 그대로 재생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자신이 자기 죽음의 증인이자 CCTV가 되는 셈이다. 2050년 상용화에 성공함으로써 1밀리미터보다 작은 기계에 한 사람이 평생 접하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이로써 경찰은 사망 사건 피해자나 목격자의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신속한 수사가 가능해졌고, 목격자를 찾지 못해 해결하지 못하는 사건도 점차 사라졌다. 사람들은 안전한 일상과 명확한 죽음을 위해 자신의 정보를 자발적으로 내놓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없는 평화로운 세상. 하지만 과학 기술의 발전은 범죄자들이 이용할 때는 언제나 오히려 인간을 공격하는 흉기로 돌변할 수 있다. 이미 수십 년부터 예고되고 실제 피해를 본 사람들도 당장 눈앞의 삶이 안전하기를 더 희망한다. 이런 사람들의 욕구는 고통의 결과를 수반한다. 

어느 날 이 세계에 미세한 균열이 발생한다. 사망 사건 현장을 찾은 강력반 형사 큰별은 여느 때처럼 〈더 블랙〉 연구소에 블랙박스 영상 추출을 요청한다. 평소라면 10분도 채 걸리지 않을 일이지만, 이날 큰별은 블랙박스 영상을 받지 못했다. 단순 기계 오류이고 사인은 평범한 심장마비라는 답변에 큰별은 꺼림칙한 기분을 떨칠 수 없고, 며칠 후 〈더 블랙〉 본사에서 발생한 사망 사건에서 또 다시 영상을 줄 수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 큰별은 피해자 윤현태의 주변인을 조사하다가 예전 연인이었던 은하와 만나게 된다. 

자신의 직감을 믿고 사건을 파헤치려는 ‘별난 형사’ 큰별은 옛 연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려는 ‘작가 지망생’ 은하는 함께 자신들만의 조사를 계속해나간다. 직접 발로 뛰며 범인을 추적하는 ‘진짜 경찰’이 되고 싶은 형사 큰별은 옛 연인과 함께 공조한다. 목표는 사건의 전말을 밝히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두 사람이 진실에 한 걸음씩 다가갈수록 점점 더 믿기 힘든 음모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두 사람이 현태의 여자 친구 양민아를 만나게 되면서 사건은 더욱 빠르게 흘러간다. 큰별과 은하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양민아 역시 목숨을 잃게 되고, 마침내 두 사람이 베일을 걷어내고 마주하게 된 진실은 세상을 발칵 뒤집을 만한 것이었다. 과연 그들은 사건의 전말을 밝혀내고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들의 원통함을 풀어줄 수 있을까? 사람들의 머리에 이식된 블랙박스는 안전한 유토피아 사회의 출발점일까, 아니면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 속 ‘빅브라더’ 시대의 청사진일까? 소설 속에서는 인간의 삶이 기록되고 통제되는 부작용을 예고했지만 그때는 너무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닥치고 겪어본 2050년 사람들은 '블랙박스 뇌 이식 기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기도 하다. 저자의 작품 모티프가 된 블랙박스와 고독사 문제는 과학기술이 해결해 줄까? 이 소설은 미스터리 사건을 추적하는 추리소설처럼 보이지만 첨단과학화된 근미래의 사회 비판적 풍자소설에 가깝다. 

과연 2050년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들이 희망하는 대로 안전한 사회에서 안락한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현대사회의 문제와 기술의 발전을 흥미롭게 엮어낸 스토리와 흥미진진한 서스펜스가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탄탄한 구성으로 독자들에게 읽는 즐거움과 더불어 생각할 거리를 함께 선사한다. 과연 우리 앞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 것인가?

저자 세웅이 그려낸 미래의 모습은 그다지 낯설지는 않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가 가속화되고, 이로 인해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믿을 만한 ‘목격자’와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워 ‘미제사건’이 다수 발생하는 것이다. 지금도 종종 듣게 되는 미제사건이 많다. 전국적으로 10년 이상된 미제 사건도 수백 건이 된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CCTV는 카메라를 돌려 찍은 영상을 재생할 수 있는 기구로 유사시에 재생장치를 다시 돌려 그때의 상황을 눈으로 보듯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요성이 컸다. 그러나 헤드칩의 기술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사람의 생각까지 모두 영상으로 녹화, 재생 가능하다는 말이다. 저자는 정체된 도로 위에서 ‘지금 보고 듣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남겨진 가족들이 볼 수 있다면?’이라는 해괴한 상상에서 이 소설을 구상했다.

어떤 사건의 피해자가 보고 들은 것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면 많은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미제 사건은 거의 남지 않을 수도 있다는 추정은 가능하다. 그러나 '생각을 영상으로 재생한다면'이라는 약간의 의문이 든다. 물론 과학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상상력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은 믿는다. 그렇다고 가까운 미래에 생각을 영상으로 재생시킨다는 말은 상상 이상의 몽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오늘날 AI 기술의 가공할 만한 발전 속도를 보고 있노라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현재의 기술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나온 의문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근미래의 기술은 아닐 것이다.

소설 속에는 과도한 상상도 있고, 있을 법한 설정도 버무려진다. 저자의 상상을 따라가려면 '불가능한 공상'이라고 생각하는 현실적인 자신의 벽부터 깨야 할 듯하다. 저자는 구상으로만 끝나지 않고 이를 실현시키고 있다. 그 과정과 광경을 함께 보면서도 공상이라는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독자는 과학기술 지식 부족을 탓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다가는 저자의 속도감 있는 소설 전개를 결코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 영화감독 정진은 〈추천평〉에서 "이 작품의 이야기는 우리를 활자경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고 말했다. 또 심수미 JTBC 기자는 "나를 둘러싼 블랙박스와 CCTV를 보며 안도감과 함께 묘한 두려움을 느낀다. 안전을 담보로, 감시받는 기분. 그래도 ‘안전’이 우선이라고 조금 더 안도해왔다. 하지만, 뇌에 블랙박스를 심어놓는다면?! 정보는 힘이다. 부도덕한 집단이 정보를 독점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숱한 사례로 확인했다. 작가의 ‘현실적인 상상력’에 단숨에 소설을 완독하며 바랐다. 부디 진실은 ‘별난 경찰’의 편이길."이라는 〈추천평〉을 내놓았다.(책 뒷 부분) 저자 세웅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흥미로운 설정 아래 기묘한 살인 사건과 이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의 줄다리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다. 읽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이 작품은 미래의 이야기 속에 현실을 투영해 보여준다는 문학의 역할에도 충실하다. 이야기가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독자들은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느끼는 동시에 우리가 직면하게 될 언젠가의 미래 모습을 상상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윤현태 씨의 통신 기록을 자세히 들여다봤어요. 업무상의 연락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전화 통화 외의 문자나 메신저 등의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일반적인 연인들의 대화 내용도 많더군요. 6개월 정도 사귄 사이로 보이고, 사이는 좋았던 것 같아요.”

큰별은 윤현태와 양민아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은하 눈치를 봤다. 은하의 표정이 변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현태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마지막 통신 기록이 조금 의심스러운데, 양민아 씨가 보고한 내용에 대해서 윤현태 씨가 ‘그냥 모르는 척하라’고 비밀 메시지를 보낸 내용이 있었어요. 만약 윤현태 씨의 죽음에 정말 무언가 있는 것이라면, 모르는 척해야만 하는 무언가가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양민아 씨도 무언가 알고 있다는 말이네요.”(p.108) - 「공조1」 중에서


소설 작품이니만큼 소설의 줄거리를 미리 이야기하는 것보다 앞의 시작과 전개 부분만 보여주는 것이 독자들의 구미를 더 당기게 할 것으로 생각한다. 결말을 아는 영화는 재미가 덜 하듯이. 특히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의 이야기가 좀 더 세밀하게 드러나야 독자들은 눈길을 주니까 더욱 그렇다. 저자 세웅은 앞서 독자가 표현한 대로 '해괴한' 상상을 하게 된 게 교통사고 당한 피해자(유가족)들이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생생하게 재생해 확인할 수 있다면, 사고를 당하는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명백하게 알 수 있게 돼 오히려 도움이 되리라는 상상에서 비롯됐음을 밝히고 있다. 또 가까운 친척 두 분이 고독사를 한 불운한 죽음을 알게 되면서 작품의 모티프가 됐다는 점도 밝히고 있다. 저자가 책 뒷 부분 〈작가의 말〉을 통해 쓴 문장으로서 확인된다. "언제나 새로운 기술은 생겨나고, 그 기술은 또 다른 문제점을 낳고, 기술과 문제에 대한 새로운 법이 나오고······. 변증법 적으로 사회는 발전할 것으로 생각하니까. 늘 그래왔던 것처럼."(p.245)


저자 : 세웅(SeUng) 


서강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과 경영학을 전공하고, 20년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공연, 전시회, 영상콘텐츠 등의 문화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이번에는 자신이 상상한 이야기로 즐거움을 주고자 『죽은 자의 블랙박스를 요청합니다』를 썼다.

인스타그램 @cromx55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