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들린 아이 캐드펠 수사 시리즈 8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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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귀신 들린 아이』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여덟 번째 작품이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21권이 18년에 걸쳐 출간됐다고 하지만 각 권마다 독립된 사건을 다루니만큼 어느 책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다만 독자처럼 가톨릭이나 기독교를 잘 모르는 독자들은 이 책에 나오는 주요 인물이나 지명 및 역사적 용어 등은 미리 알아두는 것이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실명으로 나오는 도시, 성당, 수도원 및 수도원장 이름 등에 대해서 헛갈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별도로 백과사전이나 교회용어사전을 찾아 뒤질 필요는 없다. 이 책 뒷 부분에 주(註)를 저자 엘리스 피터스가 따로 지면을 할애해 별도로 정리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 『귀신 들린 아이』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서기 1140년 9월 중순, 슈롭서의 두 영주, 즉 슈루즈베리 북쪽에 사는 영주와 남쪽에 사는 영주가 같은 날 수도원으로 심부름꾼을 보내왔다. 각각 자기 집안의 아들을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 넣고 싶다는 것이었다. 한 아이는 교단으로 들어왔고, 다른 한 아이는 거부되었다. 수도원 측에서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것에는 중대한 이유가 있었다." 저자는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주인공 캐드펠 수사는 신에게 자신을 의탁한 수도사이며,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던 전직 군인이자, 약제학 전문가이다. 이러한 캐드펠의 삶의 이력은 덜리 지역 약국의 약 조제사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해군으로 참전했던 저자 엘리스 피터스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처럼 보인다. 캐드펠 수사의 인간적 따스함과 영적인 깊이 역시 작가 자신의 성숙한 내면을 반영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 : 잉글랜드 슈롭셔주에 위치한 수도원으로, 원래 성 베드로에게 헌정된 작은 목조 교회였으나 11세기 후반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두 사도에게 헌정한 석조 건물로 개축되었다.

저자 엘리스 피터스는 시리즈 전편을 통해 중세 영국을 통째로 옮겨다 놓은 듯한 치밀한 묘사,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들의 희로애락을 충실히 구현했다. 이 시리즈에서는 인간에 대한 신의 연민을 닮은 탐정 캐드펠의 시선을 느낄 수도 있다. 또한 독자에게 중세의 수도원에서 저잣거리로, 안개 낀 다리 밑에서 허브밭과 약제실로 종횡무진 여행하는 재미와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 어느 날 귀족 가문의 젊은 청년 메리엣이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했다며 수도원으로 찾아온다. 하지만 이 청년은 수도사가 되기에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그의 표정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했고, 수도원의 규율에 적응하지 못하며 악몽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밤마다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나고, 이를 목격한 다른 수도사들은 그의 영혼이 고통 속에 갇혀 있다고 믿는다. 특히 메리엣이 악몽을 꾸는 원인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점차 커져간다. 메리엣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비밀을 품고 있는 듯 보였고, 그의 이상한 행동은 수도원 전체에 불안을 안겨준다.

이 와중에 왕의 특사로 활동하던 한 성직자가 인근 지역에서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성직자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었던 터라, 그의 실종은 지역 내에서 큰 논란이 된다. 실종된 성직자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그의 행적을 마지막으로 본 이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한다. 메리엣의 이상 행동과 실종된 성직자의 사건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직감한 캐드펠 수사는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조사에 나선다. 수차례의 탐문 끝에 캐드펠 수사는 귀족 가문 내에서 벌어진 갈등과 정치적 음모, 그리고 그로 인해 파생된 비극적인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게 된다.


"제 형태를 잃지 않은 채 숯으로 화한 통나무들이 굴러떨어지면서 주위에 매캐한 재의 연기를 피워 올리는가 싶더니, 나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메리엣의 발치께로 굴러떨어졌다. 얼핏 보아서는 식별하기 힘들 만큼 까맣게 그을리고 갈라진, 바싹 마른 가죽으로 된 물건. 기다란 앞부리에 변색된 버클이 고정되어 있는 승마화였다. 그 승마화에서 길고 딱딱한 것, 불에 타 너덜거리는 넝마들 사이로 상아처럼 하얗게 빛나는 어떤 것이 비어져 나와 있었다. 메리엣은 영문을 모르고 한동안 그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p.180~181)

저자는 신에게 자신을 의탁한 수도사이며,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던 전직 군인이자, 약제학 전문가인 캐드펠 수사의 요즘 말로는 탐정이나 수사관의 역할을 담당하게 했다. 캐드펠 수사는 약초를 이용한 범죄부터, 당대 사람들의 종교적 신념, 내전을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까지, 중세 유럽의 사회적 배경과 정치적 갈등을 손에 잡힐 듯 잘 파악하고 있다. 중세의 수사는 모든 일의 중심이 수도원에 의해 처리되고 수도원이 일반인들의 중심에 있다. 종교적 중심일 뿐 아니라 경제·사회의 중심 역할을 맡았다. 수도원 중심의 중세 사회는 이 비밀스러운 공간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된 사회였다. 심지어는 전쟁에도 관여하는 권력의 집합체이기도 했다. 살인 사건이나 정치적 역학 관계의 중심엔 늘 수도원이 있는 사회다. 이를 저자 피터스는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들은 고도의 지적 게임 같은 살인 미스터리의 성격을 지녔으면서도, 중세 시대의 복잡한 사회 구조와 인간의 존재 의미를 탐구함으로써, 추리소설을 탐독하는 독자에게 독특한 재미와 대체 불가능한 감동을 선사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자 엘리스 피터스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해군으로 참전했다고 알렬져 있어 이 경험이 소설 집필에 많은 도움이 됐을 거란 추정은 쉽게 가능해진다.


"청년 곁에서 그의 어깨를 장난스레 두드리는 연인 또한, 청년과 짝을 이룰 만한 여자였다. 쭉 뻗은 날씬한 몸매에 제 오빠를 닮은 외모. 오빠의 훤칠하고 매혹적인 면면이 우아하고 화사한 아름다움으로 탈바꿈한 것 같은 그런 인상이었다. 타원형의 얼굴은 반투명해 보일 정도로 고왔으며, 눈은 오빠 못지않게 맑고 푸르렀다. 붉은빛이 감도는 곱슬곱슬한 금발이 그녀의 동그스름한 얼굴 양쪽을 감싸고 있었다. 이것으로 메리엣이 성직자가 되고자 한 이유는 충분히 설명된 셈일까? 메리엣은 사랑에 좌절한 나머지, 그리고 형의 행복에 실낱만큼의 슬픔이나 고통의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으려는 마음에 여자들이 없는 세계로 미친 듯 도피하려 한 것일까? 하지만 그는 제 고통과 번민의 상징을 수도원으로 가지고 들어오지 않았는가. 그게 과연 이치에 맞는 일일까?"(p.126~127)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인간의 도덕적 갈등, 죄책감과 구원을 다룬 작품으로, 엘리스 피터스의 이야기 구성력과 깊이 있는 심리 탐구가 눈에 띄는 소설이다. 여덟 번째 작품 『귀신 들린 아이』는 수도원에 들어온 신입 견습 수사의 어두운 비밀에 접근해 들어가는 스토리다. 저자 피터스는 인물들의 내면적 갈등, 중세 사회의 다양한 모습 등을 함께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 창출에 놀라운 솜씨를 보여준다. 이들 캐릭터를 통해 인간 본성과 도덕적 선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인기를 끈 이유다.

수도원에 새로 들어온 견습 수사의 괴성과 고함으로 수도원 내 모든 사람들이 공포에 떠는 소동이 벌어지는 와중에 슈루즈베리를 지나던 한 사제가 돌연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연히 캐드펠 수사는 사건을 밝히는 일에 뛰어든다. 캐드펠은 동떨어진 두 사건이 서로 연관돼 있다고 예감한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정황 속에서 캐드펠 수사는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귀신 들린 아이』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주제는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신앙, 그리고 죄책감이다. 메리엣이라는 인물은 수도원에 들어옴으로써 과거의 죄로부터 도망치고자 했지만, 죄책감은 그를 밤마다 괴롭히고 그의 심신을 망가뜨린다. 캐드펠 수사는 사회의 법과 질서보다는 인간의 감정과 내면의 진실에 더 깊은 가치를 두고 사건을 해결해나가고자 하는데, 그가 고심한 부분은 인간이 자신의 잘못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진정한 용서와 구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 작품은 뛰어난 이야기 구성력과 심리적 깊이가 돋보인다. 추리소설적 재미뿐 아니라, 도덕적 선택의 중요성, 죄책감과 용서의 의미를 다룸으로써 짙은 여운을 남기는 수작이다. 캐드펠 수사는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냉철하면서도 따뜻하고 기지 넘치는 다면적 매력을 한껏 뿜어낸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은 역사와 추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이라는 데 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스티븐 국왕과 모드 황후 사이의 왕위 계승 내전으로 혼란스러웠던 12세기 중세 잉글랜드로, 정치적 음모와 전쟁의 여파가 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소설 속 사건들을 일으키고, 전쟁과 혼란 속에서도 평화와 정의를 추구하던 캐드펠은 각종 살인사건과 비극의 진실을 좇게 된다.

사건 해결을 주도하는 캐드펠 수사는 완전무결한 순백의 성직자라기보다는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갈등을 지닌 인물로 등장한다. 치밀한 추리력과 과감한 행동력을 발휘하면서도 연민이 가득한 시선으로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을 끌어안으며, 인간의 심리, 선과 악, 정의와 용서의 복잡한 본질을 탐구한다. 이러한 캐드펠 수사의 인간적 면모는 단순한 사건 해결을 넘어 죄와 용서, 정의와 자비 등 삶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캐드펠 수사가 신념과 연민 사이에서 매순간 갈등할 때마다 독자들도 그 고뇌를 함께 느낄 수밖에 없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인문학적 성찰까지 아우르는 역사추리소설의 원형이자 ‘지적 미스터리’ 고전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은 이 같은 특성 때문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미국, 프랑스, 일본 등 22개국에서 번역 소개된 밀리언셀러로, 영국 BBC에서 드라마화되기도 했다고 한다. 장장 18년 동안의 집필 끝에 1994년에 완성됐으며, 국내에선 1997년에 처음 소개됐다. 이번에 새롭게 출간되는 개정판은 쉽게 읽히는 문장, 긴박하게 전개되는 스토리, 치밀한 추리의 세계, 생생한 묘사 등 원텍스트의 묘미를 최대한 살려 편집하였으며, 세련된 디자인으로 역사추리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을 만족시킬 것이다. 이후 21권까지 순차적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그건 사실입니다.” 캐드펠은 조용히 대꾸했다. “그 아이가 자신의 죽음을 얼마나 가까이 느끼는지 직접 얘기해보고도 모르겠습니까? 하긴, 그건 당신도, 또 우리 모두 마찬가지지. 다들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죽음이라는 병을 안고 나오잖습니까. 태어난 날부터 내내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셈이에요. 중요한 건, 어떤 식으로 그 시간을 보내느냐 하는 겁니다. 당신도 그 아이의 말을 들었죠. 그는 자기가 피터 클레멘스를 살해했다고 자백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 소문이 퍼지지 않았을까요? 그건 나와 마크 수사, 그리고 휴 베링어를 빼면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죠. 메리엣은 사법 당국에서 자기를 중범으로 감시하고 있으며, 그 헛간이 곧 감옥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당신에게 분명히 얘기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애스플리. 그의 자백을 들은 우리 셋 가운데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다들 그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마음 깊이 확신하지요. 그 아이의 아버지인 당신이 그 얘기를 들은 네 번째 사람이자 그가 죄인이라 믿는 유일한 사람입니다.”(pp.274~275)


저자 : 엘리스 피터스


움베르토 에코가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으며 애거사 크리스티를 뛰어넘었다고 평가받는 세계적인 추리소설 작가 엘리스 피터스(본명 에디스 파지터 Edith Pargeter)는 1913년 9월 28일 영국의 슈롭셔주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덜리 지역 약국에서 조수로 일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해군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그녀가 쌓은 이러한 다양한 경험과 이력은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1939년 첫 소설 『네로의 친구 호르텐시우스』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63년 『죽음과 즐거운 여자』로 미국 추리작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에드거 앨런 포 상을 받았다. 1970년에는 '현대문학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치사와 함께 '마크 트웨인의 딸'이라는 호칭을 얻었으며, 1977년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을 발표하며 시작된 캐드펠 수사 시리즈로 큰 사랑을 받았다. 1981년에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The Chronicles of Brother Cadfael)의 한 권인 『수도사의 두건』으로 영국 추리작가협회에서 주는 실버 대거 상을 받았다. 영국 문학에 기여한 공로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훈장(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수여받았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문학적 성취와 함께 역사와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를 드러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고전으로 손꼽힌다. 1995년 10월, 생전에 지극히 사랑했던 고향 슈롭셔에서 여든두 해의 생을 마쳤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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