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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 아일랜드
김유진 지음 / 한끼 / 2024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이 책 『센트 아일랜드』는 청소년 소설이다. 독자가 이 책을 선택할 땐 우리 청소년을 위한 소설의 발전을 직접 체험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이 책은 자연스럽게 독자의 청소년 시절을 되새기게 한다. 독자의 청소년기는 우리 사회가 산업화해 가는 과정이었다. 책은 모두 대학입시에 맞춰져 있었다. 선생님들도 입시 대비해 가르쳤다. 즉, 시험에 나올 것과 나오지 않는 부분을 잘 가름했다. 그래서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교사로서도 능력이 인정된다. 그때 국어 교과서 외의 책은 별도로 읽기를 권장하지 않았다. 서양 고전이나 동양의 고전에 해당되는 몇몇 권만 독서를 권장할 뿐이었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 문학이 발전할 토양이 제대로 갖추어질 수 없었다. 작가도 학교도 소설은 시간 보내기였을 뿐 오히려 소설 읽을 시간에 입시 공부해라고 다그칠 정도였다.
청소년기는 정서적으로 방황할 때다. 뿐만 아니라 이성에 관한 관심이 높아질 때다. 연애 소설이나 멜로 소설을 읽고 싶은 호기심은 충만하다. 그러나 선생이나 가정에서도 연애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대학을 포기한 사람이나 하는 일이었다. 대학 입시를 위한 귀중한 시간의 낭비였다. 그래도 문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대부분 외국 고전으로 소개된 비교적 순수한 사랑이야기를 읽어야 했다. 장래 희망이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런 것은 대학에 가서 정해도 될 일이었다. 소설가들도 청소년을 위한 책은 별로 쓰지 않았던 것 같다. 독자의 청소년 시절에는 시대 상황이 그랬다. 그리고 독자는 연애 소설 한 권 못 읽고, 장래 희망을 결정할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지금껏 훨씬 어려운 책을 읽고 있다. 심리학, 정신의학 등 꼭 읽어야 할 많은 책들은 나중에 관심이 생겨야 읽게 됐다. 이것은 결국 자신의 직엄과 관련되지 않은 책은 거의 읽지 못한다는 의미와도 동일하다.
이 책을 보면서 독자의 느낌은 무척 행복했다. 청소년들의 꿈과 희망을 펼칠 많은 것을 소설에서 녹여내고 있다. 그리고 이 꿈과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도 내포하고 있다. 청소년기에 무엇을 읽느냐에 따라 꿈도 바뀌고, 세상살이에도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을 텐데···. 독자 세대는 그것이 생략돼 있다.
이 책은 열아홉 살 다린이 열 살 때부터 꿈꾸었던 '센트 아일랜드'에 입사해 향기 전문가가 되려는 과정과 노력이 잘 표현돼 있다. '센트 아일랜드'는 전 세계 향기 산업의 핵심 집합체이자 복합 연구 단지이다. 이곳은 매년 한 차례, 후각이 뛰어난 19세의 ‘인턴 연구원’을 선발한다. 뛰어난 후각은 필수다. 다린은 센트 아일랜드 인턴이 되기 위해 하루하루 향기 공부에 매진했다. 드디어 시험을 볼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치른 1차 필기시험에서 합격하면서 2차 시험을 치르기 위해 산업단지로 들어간다. 네 차례에 걸친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그토록 기대하던 센트 아일랜드에선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곳에서 응시자로서 함께 숙식을 하며 테스트를 받는 친구이자 경쟁자들과 만나 벌어지는 예상치 못한 사건과 사고가 묘사된다. 저자 김유진은 소설의 묘미를 돋우기 위해 이 연구단지와 엄마의 과거를 엮어 이야기를 끌어간다. 다린은 이 시간을 무사히 견뎌 내고 기다리던 ‘합격’하고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최근 우리에게 닥친 코로나 감염병처럼 이 소설 속에서도 감염병 바이러스 시대가 묘사된다. '향기'는 이 바이러스 시대를 이겨내는 치료제를 개발한 센트 아일랜드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이때 감염병으로 후각을 잃은 사람들이 많아지며 센트 그룹은 향보리 추출물을 통한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사람들의 후각은 전보다 더 예민해졌다. 초기에 치료제만 만들던 센트 그룹은 향과 관련된 다양한 것을 연구·제조하는 대단위 산업단지화 할 정도로 커졌다. '센트 월드'를 만들어 단순히 향을 맡는 게 아니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향을 체험하게 하자, 사람들은 센트 그룹을 더 열광하게 된다. 이 가운데 최고의 인기인 센트 아일랜드는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섬이다, 섬 가운데 보라색 퍼플산이 자리하고 있다. 센트 아일랜드는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센트 그룹이 만든 첨단 시설이 어우러져 더욱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연보랏빛 모래사장, 절경에 조성된 용암 온천, 분화구 옆에 설치된 거대한 케이블카, 센트 아일랜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출입은 불가하지만 멀리서 보이는 대규모 향 연구 단지까지···. 그야말로 향기 치료제를 위한 대단위 산업단지다. 사람들은 센트 아일랜드는 죽기 전 꼭 한번 방문해야 할 관광지로 손꼽기도 한다. 다린은 가장 먼저 엄마에게 1차 합격 소식을 전하지만, 뜻밖에도 엄마의 강한 반대를 마주한다. 엄마와 한바탕 설전을 벌이고, 결국 응원조차 받지 못한 채 찝찝한 마음으로 2차 시험을 위해 시험장으로 떠난다. 7,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지원자들은 센트 아일랜드로 가는 크루즈선에서 네 차례의 테스트를 치른다. 모두가 상위 1% 뛰어난 후각을 가진 친구들이다.
이 테스트에서도 경쟁자들의 등수는 나눠진다. 테스트마다 1등과 꼴등이 발표되고, 꼴찌는 그 즉시 짐을 싸서 돌아가야 한다. 가혹하다시피 엄격한 경쟁이다. 예상치 못한 방식에 응시자들의 긴장감은 고조되고 급기야 부정을 저지르는 일까지 발생한다. 와중에 다린은 센트 연구소에서 우연히 엄마의 흔적을 발견한다. 엄마가 왜 이곳에? 엄마의 에 조금씩 다가가는 다린. 과연 다린은 엄마가 반대했던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사실 다린은 이미 센트 월드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다린이 열 살 생일 기념이었다. 다린은 센트 월드에서 후각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센트 그룹에 입사하는 꿈 하나만을 위해 달려왔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향을 분석하고 공부하며 전력을 다해 꿈을 좇았다.
그렇게 센트 아일랜드 인턴 2차 시험장까지 왔다. 센트 아일랜드에 도착하기 전, 모두가 모인 연회장에서 갑자기 연기가 나오면서 향기를 맞추는 사전 테스트가 진행된다. 사전 테스트는 룸메이트 별 팀전. 연기의 향을 맞춰, 금고를 열고 그 안에 있는 옷과 배지를 착용해야만 센트 아일랜드에 입성할 수 있다. 팀원 중 단 한 명이라도 제한시간 내 도착하지 못하면 다시 육지로 돌아가야 한다. 크루즈선은 마치 향기를 위한 배처럼 향에 관한 배답게 호화롭기도 하고, 향기를 내는 거의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 음료를 마실 때도 자신이 원하는 향을 추가해 마시도록 돼 있고, 시험을 위한 것이니만큼 응시자들은 향에 관한 기억을 담아야 한다.
이곳에 와 알게 된 로라와 다린은 같은 팀에 배치된다. 팀원들이 힘을 합쳐 미션에 응해, 통과해야 한다. 또 다른 팀 메이트 지나는 몸이 굼뜬 편이라 느렸지만, 팀을 도와 공동으로 미션에 통과한다. 그렇게 도착한 센트 아일랜드. 교육생들은 센트 아일랜드를 돌아보며 각각 자신이 원하는 연구소들을 방문한다. 뚜껑이 달린 하나의 큰 물병처럼 생긴 센트 오리지널, 공간의 향을 연구하는 센트 스페이스, 색조 화장을 한 듯 팔색조 매력을 선보이는 하나의 아이섀도우 팔레트처럼 생긴 센트 뷰티 등 연구소들은 각각의 특성에 맞추어 독특한 형태의 외관을 자랑하고 있다. 일랑은 센트 뷰티, 지나는 센트 푸드, 다린과 로라는 센트 스페이스로 향한다.
저자 김유진은 등장인물과 배경이 생동감 있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앞선 문장처럼 머릿속으로 그리고 따라가다 보면 마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시각적인 즐거움을 독자들은 느낄 수 있다. 또 강한 성격의 캐릭터들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향기가 느껴지는 듯한 후각적인 상상력을 채워준다. 숙소로 돌아온 이들은 각자 탐방한 연구소를 얘기하며 다사다난했던 센트 아일랜드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한다. 센트 아일랜드에서의 둘째 날, 두 번의 테스트에 성공하며 우쭐해하던 다린은 시궁창 냄새를 없애야 하는 개별 테스트에서 냄새를 덮는 데만 급급해 결국 순위권에서 밀려난다. 다린은 인생 첫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그동안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몇 차례의 테스트를 거치며 다린을 포함한 로라, 지나, 일랑. 룸메이트 4인방은 때로는 경쟁자이자 때로는 조력자로 함께 웃고, 울며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낸다.
크루즈선에서 실시되는 테스트는 묘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안녕하세요, 4박 5일간 여러분의 인솔자 고도명입니다." 무대에 오른 듯이 원형 버스의 중앙에 선 인솔자가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한다. 그의 목에 걸린 배지가 허공에서 대롱대롱 흔들린다. 다른 센트 그룹 직원들이 그렇듯이 그도 보라색 재킷을 입고 있다. 그는 세 가지 수칙을 일러 주고 간단한 인삿말을 대신한다. ① 촬영 금지 ② 외부 연락 금지 ③ 시험장 녹화 촬영 등 이미 안내문에 고지된 내용이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어딘지 수상쩍은 점이 엿보인다.
2차 테스트에 임하는 응시생들이 치러야 하는 일은 경쟁적이라기보다 생존경쟁 같은 처절함이 묻어난다. 요즘 대기업 입사보다 훨씬 더 엄격하고 처절함마저 느껴진다. 얼마 전 유행했던 '오징어 게임' 같은 살아 남기 게임 같다.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꿈의 씨앗을 겨우 찾는다 해도 누군가는 그것을 심는 데에 그치지만, 다린은 씨앗의 소중함을 알아보고 끊임없이 물과 양분을 주며 가꾸고 돌본다. 상상도 못한 테스트를 마주하면서도 향에 관한 일이라면 진심으로 맞부딪히는 다린에게서는 소설 속 말처럼 ‘꿈 냄새’가 난다.
"꿈이 있는 자들에게는 꿈 냄새가 나. 꿈이 있는 한 네 몸에 밴 꿈 냄새는 절대 지워지지 않아." 아빠가 다린에게 해준 말이자 힘든 순간마다 다린이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말이다. 이 말은, 하고 싶은 일을 좇으며 하루하루를 진심으로 애쓰는 우리 모두 그리고 독자들에게도 깊이 각인해야 할 말이기도 하다.
『센트 아일랜드』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자신의 목표가 뚜렷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일랑은 선천적으로 뛰어난 후각을 타고나서 1차 시험에 통과했지만 아직 확고한 꿈은 없다. 하지만 센트 아일랜드에서 다린과 다른 친구들을 만나 자신의 꿈을 찾아 나간다. 로라는 아빠 때문에 목표를 갖게 되었지만, 친구들을 만나며 선의의 경쟁이라는 재미를 느낀다. 서로 열정과 꿈을 나눠 가지며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그들의 모습은 눈부시다. “꿈이 있는 자들에게는 꿈 냄새가 나.”라는 소설 속 대사처럼 이 책은 독자들에게, 다린과 아이들처럼 자신의 꿈을 돌아보고 주변 친구(혹은 동료)와 ‘꿈 냄새’를 함께 나누는 계기가 되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마침내 합격자 발표 시간이 되었다. 어쩌면 이날을 위해 10여년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 있는 자들에게는 꿈 냄새가 나. 꿈이 있는 한 내 몸에 밴 꿈 냄새는 절대 지워지지 않아."(p.288)
저자 : 김유진
““꿈 깨.” 처음 글을 쓴다고 했을 때 들었던 얘기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주인공 ‘다린’에게 꿈을 주입했습니다. 무작정 저에게 꿈을 불어넣었으면 팡! 하고 터졌겠지만, 다린에게 꿈을 불어넣자 『센트 아일랜드』가 탄생했습니다. 그즈음 7년간의 회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글쓰기에 매진했습니다. 현재 한 평 남짓한 서재에서 글로, 온 세계를 그려 나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