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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말 지식 - 29년 교열전문기자의 지적인 생활을 위한 우리말 바로잡기
노경아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4년 8월
평점 :
2024년 대한민국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온갖 이미지와 영상이 범람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글을 쓰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글을 소통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SNS, 메신저, 이메일 등으로 오히려 글을 쓰는 도구는 훨씬 늘어났다고 할 수도 있다.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가 바뀐 것이다. 특히 '어르신 세대'로 지칭되는 중년층 이상은 문맹률 0% 세대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고유의 문자도 갖고 있다. '한글'이다. 그러나 한글 반포 60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문법은 아직 완전한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글을 반포한 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맞춤법, 띄어쓰기는 물론 우리 고유어는 오히려 줄어드는 상태다.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도 불리워질 만큼 우수성을 인정받았지만 역사만큼 완전히 정리되지 못한 느낌이다.
이는 한글 반포 이후 정부나 글을 아는 사람들은 한자를 사용한 데 따른 것이다. 한글은 외부 활동에 제약이 있는 여성, 한자를 모르는 일반 양민이나 천민 등에서만 썼기 때문이다. 반포 시점부터 우리 문자를 사용했다면 고유어 확대는 물론 우리말 문법은 확립되었을 것이다. 한글은 24자의 자모음으로 이루어져 서양의 26자에 비해서도 적다. 쉽게 익힐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대학을 마쳐도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등은 아직도 틀리는 사람이 많다. 사실 우리말을 제대로 배운 것은 100년도 안 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의 말과 글을 말살하려는 일제의 박해를 피해 〈1933년의 한글맞춤법통일안〉이 처음으로 공표됐으며, 〈1988년 한글맞춤법〉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달라진 표기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분철을 하며 기본 형태를 밝혀 적는다는 대원칙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한글학회나 한글학자들의 말이다. 다만 사문화된 규정이라든가 미비한 규정, 언어 변화를 따르지 못한 규정, 일관되지 못한 처리 등에 대해서는 정비를 하였고 이에 따라 표기가 달라진 예가 일부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전면 개정이라기보다 보완의 성격을 띤다. 이를 테면 종결형 어미 '-오'는 '요'로 소리나더라도 '오'로 적고 연결형에서 사용되는 '-이오'는 '이요'로 적기로 하여 구별하는 정도다. 또한 '새로와, 가까와'와 같이 적던 것을 발음의 변화를 인정해 '새로워, 가까워'로 적도록 했다. 부사에 '-이'가 붙어서 다시 부사가 되는 경우 그 원형을 밝혀 적기로 하여 '더우기, 일찌기'로 적던 것을 '더욱이, 일찍이'로 적도록 했다.
이 책 『어른을 위한 말 지식』에도 언급되지만 한자어에도 사이시옷을 적던 것을 곳간·셋방·숫자·찻간·툇간·횟수(p.161) 등 6개의 한자어에만 사이시옷을 붙이고 그밖의 한자어는 사이시옷을 적지 않도록 했다. 준말에 있어 '-지-않'을 '-잖-', '-하지-않-'을 '-찮-'으로 적도록 했고 '가하다, 흔하다, 생각하건대'의 준말을 '가ㅎ다, 흔ㅎ다, 생각ㅎ건대'로 표기하던 것을 '가타, 흔타, 생각컨대'처럼 적도록 바로 잡았다. 의문을 나타내는 어미 외에는 된소리를 사용하지 않기로 하여 -껄, -ㄹ쑤록'과 같이 적던 것을 '-ㄹ걸, -ㄹ수록'으로 적도록 했으며 '-ㄹ께'도 '-ㄹ게'로 바꾸었다. 띄어쓰기에서는 성과 이름을 띄어쓰던 것을 붙여 쓰도록 바꾸었다.
맞춤법은 그렇다 치더라도 잃어버린 고유어가 너무나 많다는 게 안타깝다. 뒤늦게 깨닫고 다시 모아 표기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언어란 시간이 흐를수록 변하기 마련이다. 즉 발전한다는 의미다. 자주 쓰이는 말은 살아남지만 쓰이지 않는 말은 사장된다. 언어의 특성이 그렇기에 우리가 써오던 말을 잊지 않으려면 모아 사전 등으로 남겨야 하는데 이미 잃어버린 우리말이 너무 많아 이젠 그 작업을 하기에는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안타깝지만 한글학자 등의 고달픈 노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문제는 우리말 우리글 쓰기는 가능하지만 우리 말과 글의 70% 이상이 한자의 독음을 통일한 것일 뿐 원래 우리가 사용하는 고유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점이다. 한자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말 쓰기, 우리글 쓰기는 구두선에 그칠 뿐이다.
이 책 『어른을 위한 말 지식』은 문자보다 대략 그만큼 쉽게 쓰고 쉽게 틀리는 우리말을, 29년간 언론사 교열기자를 지내며 기사 속 오류를 잡아내 온 노경아 저자가 생활 속 이야기와 함께 편안하게 바로잡기 위해 집필했다. 저자는 어문 규칙이나 문법적 설명으로는 도통 익히기 어려웠던 우리말을 재미있는 어원과 생생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여 쉽게 이해되고, 고운 우리말을 만나는 기쁨도 함께하도록 집필했다고 말한다. 늘 쓰는 말 중에 헷갈리는 단어들의 구분, 잘못 쓰는 한자어의 예, 고운 우리말 소개, 사이시옷과 띄어쓰기에 대한 생각까지, 막연하고 모호했던 우리말 지식이 보다 분명해지는 즐거운 경험이 펼쳐진다.
각 장의 도입부에 마련된 쉬운 듯 어려운 맞춤법 퀴즈는 독서의 즐거움을 더한다. 우리말의 최전선에서 29년의 시간을 쏟아온 저자의 지식과 통찰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써내려간 이 책은 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하는 ‘어른’들을 깊고 넓은 교양의 세계로 이끌어줄 것이다. 디지털 문화가 발전하면서 읽고 쓰는 양은 오히려 많아졌고, 정보의 편의성과 접근성은 높아졌다. 예전에 영어 공부하듯 사전을 뒤적이며 한글 사전을 찾는 일은 이제 직접 할 필요도 없다. 한글 맞춤법에 어긋날 경우 컴퓨터가 자동으로 인식하여 빨간 밑줄로 표식해 줘 더 주의를 기울이면 오탈자를 훨씬 쉽게 줄일 수 있도록 된 시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역설적이게도 깊이 있게 사유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감정을 찾는 일에 멀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최근 언론에서 청소년이 '심심한 사과'. '사흘' 등의 단어를 모르는 심각성에 대해 수차례 보도한 사실도 있었다. 학교 현장의 교사들은 일찍이 학생의 어휘력 저하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는 반응이라는 말을 꺼낸다. 교과서의 등장하는 어휘의 상당수를 이해하지 못하여 교과서를 읽지 못하고 학업 실패를 겪는 학생들이 적지 않은 안타까운 교실 모습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학생들의 어휘력 저하 문제는 더 이상 촌극으로 넘길 수 없는 사태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학생의 어휘력 부족은 학생들의 기초 학력 부진과 직결되며, 유감스럽게도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학생의 어휘력 문제를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해서는 안 되며, 이제 교육적인 개입과 노력을 보여야 할 때라고 주장하는 한 한글학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요즘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보도 탓인지 문해력을 높이기 위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문해력이 뒤떨어지면 사실 공부 노력의 결과가 늘 미흡하다. 문해력이 떨어지면 소통도 쉽지 않다.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독자가 몰라서 하는 말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문해력이 부족하다면 어휘력이 부족함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어휘력은 앞서 언급한 대로 한자어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않는다면 어휘력 신장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모두 4개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어원을 알면 더 재미있는 우리말〉, 2부 〈무엇이 맞을까? 아리송한 우리말〉, 3부 〈올바르게 쓰고 싶은 우리말〉, 4부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말〉 등이다. 책의 앞 부분 〈프롤로그(들어가며)〉에서 저자는 "공기처럼 익숙한 우리말, 그 익숙함에 소중함을 잊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 역시 동영상 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독서 문화가 사라진 탓이라고 말한다. 말과 글은 편안한 만큼 바르고 품위 있게 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낱말의 뜻을 바르게 알고, 적절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머릿속에 단어가 풍부해 '말밭'이 기름지면 소통하고 공감하는 힘도 커진다. 적절하고 풍부한 말로 자신의 생각을 명료하게 드러내면 품격은 절로 높아진다. 반대로 사용하는 언어가 비루하고 경박하다면 가방끈이 아무리 길어도 지성인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 책은 고운 우리말을 소개하는 데 주력한다. 말의 바른 사용을 위해 어원도 살피고 있다. 말에는 역사와 문화뿐 아니라 쓰는 이의 마음이 담겨 있다. 우리가 어떤 말을 쓰고 있는지 늘 살펴야 하는 이유이다. 무심코 한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잘못 높인 말은 없는지 찾아보고, 올바른 표현도 정리한다. 저자는 표제어의 '어른'은 나이를 떠나 늘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이들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1995년 경향신문 교열기자로 언론 생활을 시작, 현재 한국일보 교열팀장을 지내며, 10년 이상 우리말 칼럼을 써왔다. 교열기자는 기자와 논설위원의 글을 분석하고 맞춤법, 일본어 잔재, 부적절하거나 맥락에 안 맞는 단어, 띄어쓰기, 사실과 다른 내용 등을 바로잡는 일을 한다. “신문사에서 가장 예민하고 철저하게 우리말을 감시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베테랑 교열전문기자의 내공을 담은 이 책 『어른을 위한 말 지식』은 어문 규칙이나 문법적 설명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우리말을 어원과 생생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여 쉽고 재미있게 익힐 수 있다. 각 장의 도입부에는 몸풀기 훈련으로 마련한 맞춤법 퀴즈가 있다. ‘추스르다’-‘추스리다’, ‘애시당초’-‘애당초’처럼 쉬운 듯 어려운 맞춤법 퀴즈는 우리말의 섬세한 감각을 일깨운다. 각 장의 마지막에는 주제별로 고운 우리말을 모아 놓은 단어장도 수록했다. 이 책이 맞춤법, 어휘력, 문해력을 모두 아우르는 우리말 지식 백과로도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하고 추천한다.
책에 따르면 우리말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뜻은 다른데 발음이 같거나 비슷해 헷갈리는 단어들이 꽤 있다는 점이다. “감기 얼른 낳으세요”, “한약 다려 드립니다” 같은 오류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 책은 ‘졸이다-조리다’, ‘낳다-낫다’, ‘매다-메다’처럼 늘 쓰는 말인데 발음이 같아 헷갈리는 단어들의 차이를 생활 속 이야기로 알기 쉽게 구분해준다. “운동화 끈은 매고, 배낭은 메라”는 저자의 한 마디면 복잡한 맞춤법이 단숨에 정리되듯이 말이다.
또한, 말의 어원이나 우리말을 둘러싼 역사와 문화를 통해 교양과 지식을 자연스럽게 쌓을 수 있다. ‘닭개장’을 ‘닭계장’으로 잘못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복달임의 역사를 짚으면 자연스레 바로잡게 된다. 또, ‘한 끗 차이’가 화투 놀이에서 온 말임을 안다면 ‘한 끝 차이’로 쓰는 일은 없을 거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무척 심한 더위’의 줄임말로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무더위’ 역시 ‘물과 더위’가 어울린 말이며 습기 없는 마른 더위와는 다르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처럼 이 책은 단순히 맞춤법 안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을 둘러싼 지식의 범위가 확장되는 즐거운 경험의 장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말에는 쓰는 이의 마음, 한 사회의 시대정신이 깃든다. 우리가 좀더 신중하게 말을 고르고, 올바른 표현에 정성과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다. 이 책은 저질 드라마, 드잡이판 정치와 토론에 ‘막장’을 쓰지 말아야 하는 이유나 ‘장애인’을 친근하게 표현하기 위해 통용되었던 ‘장애우’가 잘못된 표현인 이유, ‘희귀질환관리법’이라는 명칭의 불편함과 같이 무심코 쓰는 말 중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표현들을 짚어본다. 반대로, 직위와 호칭을 표현할 때 잘못 높인 예를 찾아보고, 올바른 표현으로 바로잡는다.
이밖에도 ‘묘령의 할머니’, ‘유명세를 타다’, ‘자문을 구하다’처럼 기자들도 헷갈려 잘못 쓰는 한자어를 소개하고, 말과 글을 다루는 이들의 영원한 난제인 띄어쓰기, 사이시옷, 신조어, 사투리에 대해 지혜롭고 따뜻한 해법을 제시한다. 이 책 『어른을 위한 말 지식』은 국어 문법 시간에 배웠던 어렵고 딱딱했던 우리말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기후 관련해 잘못 쓰이는 말로 ‘악천우’도 빼놓을 수 없어요. 악천후를 ‘비 우雨’가 들어간 ‘악천우’로 알고 쓰는 이가 많기 때문입니다. 악천후는 비뿐만이 아니라 눈이 올 수도, 우박이 쏟아질 수도, 바람이 매섭게 불어올 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몹시 요란하고 나쁜 날씨를 표현한 말이죠. 나쁘다는 뜻의 ‘악惡’에 날씨를 의미하는 ‘천후天候’가 더해졌어요. 악천후보다 우리말 ‘거친 날씨’로 쉽게 말하는 게 좋겠습니다.(P.54)
머드러기는 과일, 채소, 생선 중에서 굵은 것을 뜻해요. 상품 가치가 제일 좋은 것이죠. 과수원 하는 친구네 가면 늘 듣는 소리가 있어요. “머드러기만 따! 굵고 실한 놈만!” 머드러기는 사투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표준어랍니다. 사람 중에도 머드러기가 있어요. 여럿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이를 일컬어요. 군계일학群鷄一鶴, 백미白眉 등의 한자어를 대신할 수 있는 아름다운 우리말이에요.(P.265)
질문 하나 할게요. “오늘은 짬뽕이 땡기네”와 “요즘 물을 안 마셨더니 얼굴이 땡겨”는 바른 문장일까요? 둘 다 “땡”이에요. 우리말에 ‘땡기다’는 없거든요. 짬뽕은 ‘당긴다’로, 얼굴은 ‘땅긴다’로 써야 해요. ‘땅기다’는 몹시 단단하고 팽팽하게 된다는 뜻으로 상처나 수술 부위 등 신체 부위와 어울려요. 내친김에 ‘댕기다’도 알아볼게요. ‘댕기다’는 불火과 관련이 있어요. 불이 옮아 붙는다는 뜻으로 “담배에 불을 댕기다”처럼 쓸 수 있어요. 논란의 불을 댕기기도 하고, 갈등의 불을 댕기기도 하죠.(P.277)
저자 : 노경아
현 한국일보 교열팀장. 1995년 경향신문에서 교열기자로 언론 생활을 시작해 29년째 기사 속 오류와 전쟁 중이다. 경제전문지 이투데이에서 우리말 칼럼 200여 편을 썼다. 지금은 한국일보에서 우리말 칼럼 ‘달곰한 우리말’을 연재하고 있다. 맞춤법 등 ‘법’ 중심의 딱딱한 글이 아닌, 살아가는 이야기에 우리말을 담아 편안하게 우리말을 익힐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어른을 위한 말 지식』은 그런 마음으로 쓴 첫 책이다. 늘 쓰는 말 중 헷갈리는 단어들의 차이를 알기 쉽게 풀이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올바른 표현을 살피며, 예쁘고 고운 우리말을 소개한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