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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너무 낯선 나 - 정신건강의학이 포착하지 못한 복잡한 인간성에 대하여
레이첼 아비브 지음, 김유경 옮김 / 타인의사유 / 2024년 7월
평점 :
이 책 『내게 너무 낯선 나』는 우리가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거식증, 우울증, 조울증, 조현병, 산후우울증, 경계선 인격 장애 등 정신질환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뉴요커〉 전속 기자이자 의료윤리, 정신의학, 사법 및 교육 등을 주제로 다양한 글을 기고하고 있는 저자 레이첼 아비브의 출판 데뷔작이다. 이 책은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재능 있는 신인을 발굴하는 화이팅어워드 논픽션 그랜트상을 수상한 바 있다. 거식증, 우울증에서부터 조현병, 경계선 인격 장애까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정신의학적 해석 방식의 한계에 부딪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현대 정신의학이 정신질환의 증상을 구분하는 방식과 평범한 공동체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 증상을 경험하는 방식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전제한다. 한 중년 남성이 경험한 만성적 외로움은 ‘우울증’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기도, 가정불화로 압박감을 느끼는 소녀의 식사 거부는 ‘거식증’으로 명명되기도 한다는 점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외로움과 우울증, 식사 거부와 거식증이 과연 우리의 생각만큼 직선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개념일까? 저자가 의문을 제시하고 있는 대목이다.
먼저 이 책 『내게 너무 낯선 나』는 이처럼 인간의 고유한 경험과 의학적 진단 사이에서 납작해지다 못해 ‘지워진’ 이야기들을 추적해 그 이야기들이 가능했던 본래의 모습들을 펼쳐 놓는다. 저자 레이첼 아비브가 직접 인터뷰하고 탐구, 복원한 이야기들은 평범하디 평범한 우리, 그리고 우리의 삶 속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는 「레이첼 이야기」라는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거식증' 이야기를 풀어낸다. 저자의 어렸을 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찬찬히 적어가는 이야기는 자신의 주제를 진단으로서가 아닌, 철저히 인물-저마다 열망, 자아 성찰, 상심, 기지 그리고 희망을 갖고 있는-의 차원에서 탐구한다. 『공감 연습』의 저자 레슬리 제이미슨은 "부조리와 불평등으로 얼룩진 사회적 풍경 속에서도, 환자들의 내면에 귀기울이며 그들이 설명하는 이야기와 맞아떨어지지 않는 순간을 레이첼은 잡아낸다"는 지적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으며 설득력을 갖는다.
외롭고 무관심하고 쓸쓸한 이 세계를 살아가다 보면 때때로 자기 자신과 평화롭게 살 수 없는 시기가 찾아오곤 한다. 마흔한 살의 백인 남성 레이도 그러했다. 신장학 전문의이자 잘나가는 투석 회사의 CEO였던 그는 자신의 경영 과실로 회사가 위기에 빠지자 우울과 강박에 사로잡힌다. 부모님이 이혼한 지 1년 정도가 지난 여섯 살짜리 소녀는 3일간 식음을 전폐한 끝에 의사로부터 식이 장애를 진단받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다름 아닌 저자 본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여섯 살의 레이첼은 음식과 몸에 대한 허무맹랑한 생각들을 키우며 거식증에 ‘채용’된 듯 보인다.
책에 따르면 거식증이라는 단어는 너무 강력해서 나는 이를 입에 담는 것조차 두려웠다. 그 당시 발음 규칙을 익히고 있던 중이었으므로, 내게 모든 단어는 의미를 체화하고 있는 구체적인 실체처럼 느껴졌다. 나는 음식의 이름을 말하려 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내게 그 이름을 말하는 것은 그것을 먹는 것과 똑같이 느껴졌지 때문이었다. "그런 단어들이 자기 앞에서 사용되면 레이첼은 귀를 막곤 했다"라고 심리학자는 기록했다. 나는 8(eight)이라는 숫자를 말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그 발음이 '먹었다(ate)'와 같았기 때문이다. 내 고집에 지친 간호사 하나는 나를 "이빨도 안 들어가는 쿠키" 같다고 했고, 당연하게도 그 말은 나를 속상하게 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자신이 여섯 살 소녀 때 거식증 환자로 입원까지 하고, 그 과정에서 환자인 자신의 이야기가 얼마나 반영되지 않은 채 무시되었는지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후 학교로 돌아온 소녀 레이첼은 여섯 살인데도 순수한 의지만으로도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이 가능해 보였다고 쓰고 있다. 만약 자신이 병원에 더 오래 있었거나 학교에 돌아왔는데 아이들이 차갑게 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행히 6주만에 퇴원한 레이첼은 거식증에 관한 많은 책을 읽고 나름대로 탐구한다.
거식증을 가까스로 피했다는 생각 때문에 저자는 정신질환의 초기 상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밝힌다. 정신질환의 초기 상태란, 뭔가 강렬하게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 같지만 아직은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 세상을 재구성할 정도까지는 가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고 친절한 설명도 덧붙인다.
흔히들 정신질환은 만성적이고 고치기 힘들며 삶을 송두리째 삼켜 버리는 힘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렇다면 정신질환의 초기 상태에서 우리가 그 질환에 대해 이야기하는 많은 부분이 과연 그것의 진행 과정을 얼마나 많이 결정하게 될까? 자기 자신에 대한 이러한 이야기들은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이야기에 스스로를 가둬 버리기도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p.41)
저자는 또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들의 정신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관련해 그 진실성을 평가하기 위해 '병식(病識)'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정신의학 분야에서 이 개념은 매우 중요하며 거의 마법적인 힘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34년 〈영국 의료 심리학 저널〉에 실린 중요한 논문에서 정신과 의사인 오브리 루이스는 병식을 "자신에게 발생하고 있는 병리적 변화에 대한 환자의 올바른 태도"라고 정의했다고 안내한다. 이를 테면 '올바른 태도'를 가진 환자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자신에게 갑자기 말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 약을 복용하면 더 이상 듣지 않을 수 있는 어떤 목소리를 듣고 있음을, 그러한 병적 증상에 시달리고 있음을 식별한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자가 입원할 때마다 병식이 평가되는데, 이는 환자의 의지에 관계없이 계속해서 치료를 진행해야 하는지를 결정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개념은 '올바른 태도'라는 것이 어떻게 문화나 인종, 민족성, 신앙에 의해 좌우되는지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게 저자의 합리적 주장이다. 연구에 따르면 유색인종의 경우 '병식이 부족하다'고 평ㄱ랍맏는 사례가 백인에 비해 더 많다.' 아마도 의사들이 유색인종의 표현 방식에 익숙하지 않거나, 아니면 이들이 의사의 말을 잘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병식이란 환자가 의사의 해석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는지를 측정하는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이에 한 가지 사실을 덧붙인다. 50년 전 정신분석학이 정점을 찍은 시기에 병식은 일종의 '계시(epiphany)'와도 같은 것으로 설명되었다는 것이다. 즉 무의식적 욕망과 갈등이 환하게 의식되는 것을 의미했다. 예를 들어 한 환자가 아버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억압된 증오를 스스로 인식하고 그 금지된 감정이 자신의 인격을 형성해 왔음을 인정할 때, 그 환자는 '병식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1980년와 1990년대에 들어서 지배적 이론으로 부상한 생물의학적 질환 설명은 이러한 종류의 병식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올바른 태도'는 이제 새로운 인식에 좌우되었다는 것. 이때부터는 환자가 자신의 뇌에 생긴 문제 때문에 정신질환을 갖게 되었다고 이해할 때 비로소 병을 식별한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생물의학적 접근 방법은 환자와 가족에게 문제가 있다는 식의 도덕적 문제를 해결했고, 따라서 사회적 낙인으로부터 환자를 어느 정도 자유롭게 해 주리라는 기대를 받게 되었다. 1999년 미국 공중 보건부 장관은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데카르트가 처음 제시한 정신과 육체라는 잘못된 이분법"에 근거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정신질환과 다른 질환 사이를 구별하는 과학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단언했다.
물론 그렇게 이야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그러한 생물의학적 프레임이 사회적 낙인 자체를 풀어 준 것 같지는 않다. 연구에 따르면 정신질환이 생물학적이거나 유전적 원인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질환이 환자의 나약한 성격 때문이라는 식으로 가혹하게 반응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정신질환을 환자의 통제를 벗어나 있고 그들 사회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위험방편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의학이라는 사고의 틀이 특히 질환이 진행되고 있는 시기나 위기가 닥친 시기에 지속적인 자아감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해석과 이해를 되려 막아 버릴 수도 있음을 나는 이 책의 제목 『내게 너무 낯선 나』(이 문구는 하바의 일기에서 가져왔다)를 통해 상기시키고자 한다. 「숨어 있는 자아」라는 논문에서 윌리엄 제임스는 "모든 과학의 이상은 자기 완결적이고 닫혀 있는 진리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학자들은 "분류되지 않은 잔여물"을 무시함으로써 그러한 목표를 이루게 된다. 이 잔여물이란 "이상적인 체계에 맞지 않는" 증상들과 경험들을 말한다.
이 책은 그가 말한 '자기 완결적이고 닫혀 있는 진리의 체계' 그 '바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의 삶은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에서 펼쳐지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언어로 묘사할 수 없는 인간 경험의 바깥 가장자리, 다시 말해 '정신의 오지'라고 불릴 만한 곳에서 펼쳐진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러한 소통 불가능성을 극복하려고 했던 환자들의 이야긱와 그 세계를 번역하고자 한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과연 그것이 나인가? 내가 아닌가? 나는 대체 무엇인가?〉, 2장 〈내게 닥친 고난은 나를 완전히 버리라는 신의 계시인가?〉, 3장 〈내 말을 좀 들어 주세요〉, 4장 〈의사는 내 마음을 읽었다. 나는 아무것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등이다. 1장은 우울증의 이야기이고, 2장은 조현병에 대한 사례 탐구로 설명되고 있다. 또 3장은 산후우울증, 그리고 4장은 조울증과 경계선 인격 장애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프롤로그〉는 자신의 거식증 진단과 치료 과정, 이후 정신질환이라 일컬어지는 병에 대한 접근 등을 대체적으로 다루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조차 완벽한 타인이다'는 제목의 〈에필로그〉에서는 앞서 언급한 '하바의 거식증'에 관한 이야기로 마무리짓는다.
각 장에서 발췌된 문장들은 별도로 맨 앞에 따로 배치함으로써 병증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다. 1장(레이의 이야기)의 경우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한다. 맨 앞으로 끌어낸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이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니야." 그의 강박적 후회는 어떤 '상실'에 다가가려는 방편이었다. 그 상실이란 바로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삶을 상실한 것을 의미했다. 레이는 자신이 실패했던 상황과 이유를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도 끝없이 반추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도달했고, 도달할 수 있었던 이상적 모습에 사로잡혀서 자신이 실패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있었다.
2장(바푸의 이야기) '조현병'에는 "저는 종교적 열정을 버릴 수가 없어요. 저 때문에 모든 가족이 혼란스러워합니다." 엄마가 조현병 진단을 받았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지만 가족들 중 그 누구도 이러한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조현병'이라는 낯선 진단명은 엄마의 경험을 이해하기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3장(나오미의 이야기)은 '산후우울증' 이야기다. "자신이 좋은 엄마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인생이 달라져요." 나오미는 자신이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이 모든 일은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흑인 여성이 처한 은폐된 현실에 다름 아니며, 그 현실이 비로소 자신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들 문장은 장의 성격뿐만 아니라 병에 대한 인식의 범주나 의학적 분류 등이 아직도 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들이다.
로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술된 4장은 '조울증 그리고 경계선 인격 장애'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 낯선 사람의 삶에 갇혀 있었던 거예요." 한때 로라는 자신에게 정신질환이 있다는 사실로부터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의식적이든 아니든 로라는 자신의 질환에 맞게 스스로의 삶을 바꿨다. 하지만 자기 삶을 설명해 주고 인식적 명료함과 의학ㄹ적 치유를 동시에 제공해 주리라 약속했던 그 이야기가 실상은 텅 빈 강정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배신감을 느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하바의 거식증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나는 나 자신에게조차 완벽한 타인이다"는 문장이 주는 섬뜩함에 하바는 살을 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으로 가는 방법이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하지만 "완전하고도 완벽한 행복의 상태"인 비쩍 마른 상태에 가까이 다가간 순간, 하바는 다시 자신이 대체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애써 왔는지를 생각한다. "내 인생은 이렇게 흘러가 버리고, 내게 의미 있는 모든 것은 다 희생당하는구나."
레이와 바푸, 나오미와 로라는 모두 제각각 자신의 질병에 대해 글을 쓰려고 했다. 그들이 쓰려는 언어가 그들을 설명하기에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그들은 깊은 자의식을 가지고 자신들의 심리적 경험을 서술했다. 또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감각이 진짜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보여 주고 싶어 했다. 자신이 신과 결혼했다고 믿든, 인종차별주의로부터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믿든 관계없이 말이다. 그들은 자신이 어떻게 그리고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를 권위자들에게 (바푸의 경우에는 영적 스승들에게, 나머지 경우에는 의사들에게) 알려 주려고 애썼다. 그들의 고통은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경험한 고통의 경로와 정체성은 모두 바뀌어 갔다.(p.327)
저자 : 레이첼 아비브(Rachel Aviv)
미시간주에서 나고 자랐다. 2004년 브라운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3년부터 《뉴요커》의 전속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주로 의료윤리, 정신의학, 사법 및 교육을 포함한 다양한 주제와 관련해 글을 기고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정신의학적 설명의 한계에 부딪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내게 너무 낯선 나』. 데뷔작인 이 책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뿐 아니라 《워싱턴 포스트》 《뉴요커》 《커커스》 《북포럼》 《NPR》 등 유수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또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비평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화이팅어워드 논픽션 그랜트상을 수상했다. 이 책이 낯선 사람으로 환영받기를 바라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문처럼 상상되길 희망한다.
역자 : 김유경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M.C. 에셔 : 무한의 공간』 『그는 지도 밖에 산다』 『강조해야 할 것』 『성 정치학』 『별에서 온 아이』 『그렌델』 등이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