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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일로 살아가는 일
오수영 지음 / 고어라운드 / 2024년 7월
평점 :
베스트셀러를 낸 전업 작가가 아니라면 직장과 글쓰기를 병행하는 분들이 많다. 글만 써서는 '밥 먹기 힘들다'는 현실 때문이다. 한 번 글쓰기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은 글과 작별하기가 쉽지 않다. "평생 직업은 아니지만, 한 번 해볼까?" 해서 글쓰기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글쓰기에 진심인 사람들이다. 다른 기회를 갖지 못한 것보다는 기회를 스스로 거부한 사람이 많다고 풀이된다. 그들은 대개 평범하고 안전한 미래를 꿈꾸었던 사람들도 아니다. 평범한 삶을 희망한다면 아예 작가의 길을 택하지 않았을 테니까. 이처럼 미래가 불투명한 직업에 매달리는 사람은 대개가 '작가를 소원했기 때문"에 글쓰는 직업으로 들어선다. 그러나 베스트셀러를 써서 너도나도 인정할 만한 성과가 없었던 사람은 불러주는 출판사도 없다. 호구지책으로 직장을 택하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하지만 직장을 따로 갖고 글쓰기도 병행한다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터, 호구지책 없이 오랫동안 글쓰기에 매달리는 사람들도 많다.
이 책 『사랑하는 일로 살아가는 일』의 저자 오수영은 평범하고 안정된 앞날을 바라보며, 몸에 맞지 않는 유니폼을 입고 생업에 전념했던 분이다. 이 책은 작가라는 꿈도 끈질기게 부여잡은 한 사람의 삶의 분투기이기도 하고, 작가의 꿈을 버리지 못해 끝내 탈진한 한 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오랜 시간들의 결과는 모순적이게도 행복과 안정이 아닌 자기 자신의 상실의 결과로 이어졌다. "강박적으로 성실하고 분주하게 살아가는 태도가 삶의 정답이라고 믿었던 시절의 결과는 다름 아닌 번아웃과 우울증 진단이었다."(p.7) 이런 증상은 보통 삶의 의지가 박약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는 저자는 의사의 진단에 비로소 '오만과 착각'을 깨닫는다.
저자는 치료에 충실하게 임하면서 혼자서도 불안과 우울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썼다고 〈서문〉을 통해 밝힌다. 필요한 물건을 가장 정확하고 빠르게 찾아내기 위해 내용물을 전부 바닥에 쏟아보듯 머릿속의 모든 생각을 쏟아낸 후 문제의 근원을 샅샅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저자는 오랜만에 내면 깊숙이 침잠한 시간을 가졌으며, 이 과정에서 찾아낸 불안과 고민의 단서들을 〈생활일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천천히 실마리를 풀어냈다고 말한다. 덕분에 인생의 중대한 기로 앞에서 미련 없이 원하는 방향을 선택할 견고하고 따뜻한 용기를 얻었다고 털어놓는다. 이에 따라 이 〈생활일지〉는 직장 생활과 출판 활동을 무리하게 병행하다 탈진한 시기에 적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서른한 통의 편지는 구독 기간 동안 화요일과 토요일 밤마다 정해진 발행 시간, 즉 구독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흔쾌히 즐겁게 분투했던 기록인 셈이다.
의사가 진단과 치료 탓인지, 자신이 치료에 성실하게 임했든지 그때는 회복하는 시간이 캄캄한 우물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우물보다는 차라리 연둣빛이 생동하는 숲 속의 작은 벤치에 가까웠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삶에 지친 사람을 너른 품으로 안아주고 미련없이 보내주는 작은 나무 벤치. 그곳에 앉아 온종일 하염없이 나무를 올려다보던 시절을 건너 어느새 오늘에 이르렀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역경과 좌절을 딛고 일어선 자신에게, 그리고 곁에서 늘 응원과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던 구독자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저자는 〈서문〉에서 전한다. "일상의 작은 글쓰기를 통해 무엇이 되거나 혹은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단지 무엇이라도 계속 쓸 수 있게 해준 〈생활일지〉 구독자들께, 그리고 에세이 시리즈의 독자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단순한 흥미나 순전한 응원, 각자의 다양한 이유들로 구독해 주기도 했겠지만, 크고 작은 선택으로 자신의 일년이, 한 사람의 유일한 꿈이,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지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다고 깊은 감사를 전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서른한 편의 편지글을 기초로 출판을 위해 고쳐쓴 글들이다. 날짜를 기록하지 않았기에 정확한 시점을 독자로서는 알지 못하지만 거의 시기 순으로 적은 것으로 보인다. 각 글의 제목을 붙여놓았기에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몇 편만 제목을 여기에 적어 본다. 「두 번째 편지 : 상담의 시작」, 「네 번째 편지 : 약물 치료의 시작」, 「일곱 번째 편지 : 나를 분석하는 시간」, 「열두 번째 편지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감옥」, 「열세 번째 편지 : 북페어와 사람들」, 「열여덟 번째 편지 : 나태함의 재발견」, 「스물다섯 번째 편지 : 평범한 일인 가구」, 「스물일곱 번째 편지 : 오래된 책을 읽는 밤」 등이다.
먼저 「상담의 시작」에 쓴 글이다. '생업인 승무원과 작가라는 꿈 사이의 균형'이라는 소제목을 달아 승무원 이전의 꿈과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승무원과 자신의 이십 대를 살았다는 것. 오직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휴학을 하고 취직과 관련된 모든 것과 거리를 둔 채 혼자만의 방과 상상 속 세상에 스스로 고립된 채 살았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처럼 생각처럼 성과가 나오지 않고, 선배들의 막막한 생활을 목격하고부터는 현실에 목덜미를 부여잡힌 것처럼 겁이 나서 그쪽 세계를 도망쳐 나왔다고 한다. 그러다 운 좋게 항공사에 입사해 승무원 생활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때가 딱 서른 살이었다고. 사회 초년생과 애사심으로 가득했던 시절을 회고한다. 집안에서의 눈길도 꽤 부드러워졌을 것이란 짐작도 쉽게 할 수 있다. 글만 쓰던 시절을 삼 년 이상 보냈더니 "자아가 지나치게 비대해졌다"고 고백하는 장면도 있다. 짐작컨대 글쓰던 시절에는 누구의 지시 받지 않고 조직 생활에 미숙했을 터, 직장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 점이 분명 발견됐을 것이다. 그러나 써놓은 글들이 쌓이고, 쌓인 글들이 한 권의 책이 되고, 또 다른 책을 펴내고··· 어쩌면 도피처의 역할을 글쓰기를 통해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것도 '위태로운' 일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저자에 따르면 겉으로는 잘 다려진 근사한 유니폼을 입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했을지라도 내면은 입사 이후로 단 한 번도 풍랑이 몰아치지 않았던 적이 없었고, 단 한 순간도 글쓰기를 생각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을 만큼 혼란스러웠다. 물론 여유가 있는 삶 속의 배부른 투정으로 들릴 수도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금의 삶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건 회사라는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절했던 꿈이 바로 앞에서 손짓을 하는데 어떻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약물 치료의 시작」의 네 번째 편지글은 저자가 정신의학과 문을 열면서 시작됩니다. 처음 가보았으니 놀랍고 약간은 두려운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더욱이 자신이 오래 다니던 정형외과 위층에 있었다고 하니 정신과 의원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병원으로 생각했을 것 같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대기실의 가득 메운 환자들의 숫자에 또 놀라게 된다. 분명 진료 예약을 하고 방문한 것인데 이렇게 환자 대기 숫자가 많을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것. 단순히 인터넷 검색을 통해 집과 가까운 거리와 의사의 인상을 살펴본 후 선택한 것인데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보던 정신의학과 병원에 이렇게 환자가 많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간호사로부터 검사지를 받아 따로 마련된 자리에서 검사지를 작성하다가 대기하는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독감이 유행처럼 번질 때 가본 내과나 이비인후과도 이렇게 진료 대기 환자가 많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저자는 술회한다. 당연히 "세상에는 각각의 이유로 마음과 정신을 앓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진료실의 분위기는 상담센터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보다 조금 건조하고 사무적인 분위기였다는 것. 병원 분위기는 인테리어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그때 저자의 느낌은 인테리어의 영향보다는 심리적인 긴장감과 압박감의 영향이 컸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의사와의 면담에선 우울을 동반한 공황의 초기 증세라고 진단명을 내렸다고 한다. 저자는 속으로 단순한 스트레스인 것 같으니 병원 치료가 필요 없다고 말해주기를 기대했지만 오히려 선고를 받은 느낌이었다고.
나 번아웃이었구나. 나 우울증에 공황도 앓고 있는 환자였구나. 그것도 모른 채 일상의 의미를 잃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나를 가차 없이 채찍질을 해댔구나. 네가 지금 그렇게 나태하게 있을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당장 일어나서 생산적인 일을 하라고. 누가 봐도 그 숨 막히는 생활의 결과는 탈진이었을 테고 저는 이미 내려진 정답처럼 그 탈진 속에서도 무엇이라도 해내야 한다는 강박적인 허우적거림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죠.(p.58~59)
스무번 째 편지글 「그럼에도 불구하고」에는 '실패를 존중하는 일'이란 부제가 달려 있다. 저자는 〈다큐멘터리 3일〉이라는 KBS에서 방영했던 프로그램 이야기로 말머리를 잡는다. 저자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22년까지 15년간 716회분을 방영했다. 지금은 종영됐지만 다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인기를 끌었던 회차가 선택돼 업로드되고 있다. 저자도 모든 회차를 챙겨보진 않았지만 무작정 채널을 돌리다가도 〈다큐 3일〉에서 고정되는 날들이 많았다. 그만큼 꾸밈없이 서민들의 이야기를 전해줘 몰입감이 남달랐다고 술회한다. 그중에서도 저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회차 중 하나는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노량진 고시촌의 삶을 담은 이야기다. 방송의 제목처럼 72시간 동안 고시생의 생활과 밀착하여 내레이션과 인터뷰 형식으로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전해주는 방식의 프로그램이다.
저자는 며칠 전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통해 우연히 그 회차를 다시 발견하고는 오히려 예전보다 더 몰입해서 시청했다고 말한다. 노량진은 저자에게도 한 시절의 추억의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갓 스무 살이 되던 해의 저자는 얼떨결에 상경해 노량진에서 일 년간 재수 생활을 했고, 특정한 꿈이나 목표도 없이그렇다고 진학하고 싶었던 대학이나 전공도 없이 단지 대전을 떠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과, 당시에 만나던 여자친구가 고려대에 진학하는 걸 보고 비록 같은 대학에 진학할 수는 없더라도 같은 서울에 있고 싶다는 철없는 생각에 이끌렸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다큐 3일〉에도 시험에 떨어진 고시생들이 술집에 모여 넋두리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제 더는 안 될 것 같아 고향으로 내려가야겠다"며 카페라의 시선을 회피하던 청년이 있었는데 아마 재수 시절의 저자라면 그를 한심하게 바라봤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저자로서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미래만큼 사람을 불안에 떨게 하는 것도 없는데 그들은 그 불안을 떠안고서라도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청춘이라는 시간을 온통 들이붓고 있는 겁니다. 그런 삶의 태도를 우리는 용기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때로 용기는 무모해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 미련해 보이기도 합니다만, 용기가 아니라면 우리는 어떻게 삶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p.273)
마지막 편지글에서 저자는 「언젠가 우리 다시」-'일종의 고백'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 글은 〈에필로그〉 성격이다. 저자 스스로의 삶의 태도와 의지, 그리고 미래 전망 등을 다지고 있다. 어제(이 글을 쓸 당시의 시점에서) 올해 첫 북토크를 끝냈다고 쓰고 있다. 느낌과 소회 등이 담겼지만, 저자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은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각오라고 이해된다. 책에 따르면 지금은 누구나 글을 쓰고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라지만, 머지않아 종이책이 사라질 수도 있는 시대라지만, 게다가 활자가 담긴 책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는 시대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알면서도 저자는 이 세계에 자신의 젊은 시절을 통째로 던진 셈이니 그 책임과 감당 또한 때마다 잘 받아들이며 살아가려 한다. 행운이 따라준단면 생각보다 빠른 시기에 글쓰기 인생에 전환점이 생길 수도 잇고, 그게 아니라면 지금처럼 혼자 묵묵하고 꾸준하게 작업을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란 담담하게 의지를 피력한다.
책의 가장 뒷 부분에 「생활일지 후일담」을 따로 지면을 할애한다. 산책으로 마을 곳곳을 걷다가 한숨 대신 심호흡에 익숙해지고 있다고도 말한다. 한숨이 불안을 토로하는 방식이라면 심호흡은 내면을 정화하는 방식에 가깝다고 저자는 믿기 때문이다. 맑은 기운이 온몸을 순환하며 불안과 걱정의 잔여물을 세척하면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오래된 실내 공기를 환기시킬 때 청량한 바랑믜 첫 숨을 들이마시는 느낌이라고 비유적 표현을 쓴다. 걷다가 마주한 익숙한 책방에서 잠시 책을 읽기도 하고, 익숙한 카페에 들러 시원한 커피를 마시기도 하면서 하루하루 삶을 채워나가고 있다. 내일보다 오늘을 살아갈 다짐이라면, 미래의 아쉬움보다 지금 몸을 움직여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저자 : 오수영
일상의 작은 이야기를 쓰고 만든다. 한동안 항공사 승무원으로 근무했고 그보다 오래 작가를 꿈꾸며 살았다. 저서로는 『조용한 하루』 『사랑의 장면들』 『순간을 잡아두는 방법』 『깨지기 쉬운 마음을 위해서』 『아무 날의 비행일지』 『긴 작별 인사』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진부한 에세이』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