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어 - 나의 갈팡질팡 지망생 시절 이야기
반지수 지음 / 송송책방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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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하는 동안 이런 저런 핑계로 책을 읽지 않다가, 코로나 펜데믹 발생 후 재택 근무하다 책꽂이에서 읽다 만 책 한 권을 다시 읽은 게 발단이 되어 적지 않은 책을 읽었다. 5년을 꼬박 읽었으니 정확하게 세지는 않았지만 수백 권 이상 될 듯하다. 물론 읽기에 부담이 없는 에세이·소설 등 문학책이 많았다. 또 의외로 많이 접한 책은 음악·미술 관련 감상법이나 해설서가 많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자주 갔던 콘서트나 전시회였지만 대체용으로 적절했다. 그리고 인문학 서적도 많이 출판되었다. 특히 정신의학과 심리학 책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언제나 가장 많이 판매된다는 자기계발서도 역시 연말 서점 집계에서 최다 판매를 기록한 듯하다. 소설은 SF가 특히 많이 쏟아져 나왔다. '대세는 SF'라고 할 만했다. 일본 책 번역 부분에선 미스터리 소설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덕분에 일본의 유명 미스터리 소설 작가 몇 명의 이름 정도는 알게 됐다. 직장 생활 수십 년 동안 거의 읽지 않은 책이 한 권, 두 권 읽다보니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마치 책을 처음 읽는 사람처럼 무리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들였던 것 같다. 이젠 1,000권을 거뜬히 넘길 정도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읽은 탓인지 내용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책을 들이밀고 독서 여부를 묻는다면 "읽었다" "안 읽었다"는 대답할 것 같은데 어떤 내용이었나?를 질문을 바꾼다면 즉각 응답할 게 별로 없다. 처음에는 나이가 들어서 기억력이 떨어진 때문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 기억력은 다시 예전처럼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책은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읽는 시간과 내용을 단순화했다.

그러던 중 어렸을 때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는 생각을 해냈다. 기억력은 어렸을 때부터 역순으로 무너진다는 사실도 알았다. 우선 그림 설명을 해주는 책을 많이 접했다. 그림 미술에 관한 책을 먼저 집어들었다. 놀랍게도 어렸을 때 그림 그리다 속으로 마음 먹은 것들이 되살아났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그렇게 그림을 설명하는 책과 다시 친해지는 데는 분명 큰 몫을 차지했다.



이 책 『다시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어』도 거침없이 선택했다. “이 책은, 분명 누군가에게 뜨거운 불길이 될 것이다.”란 홍보 문구도 독자의 경우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조용히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놀랍게도 그림을 꿈꾸던 시절부터 그림을 포기하던 때, 그리고 일반 직장에 다니던 때 등 많은 일들이 기억 속에서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이 책의 표지화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그림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과외수업을 받을 때 선생님의 공부방과 비슷하다는 기억도 되살아났다. 그 선생님의 이름과 학교에서 무슨 공부를 하신 분인지도 기억에 살아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표지화부터 관심이 생기는 바람에 저자 반지수 소개란에 먼저 눈이 갔다. 책 속의 몇 장의 그림과 한눈에 훑었다. 꽤 낯익은 그림들이다. 소개란에는 『불편한 편의점』, 『위저드 베이커리』,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달팽이 식당』 등의 표지그림으로 이름을 알린 그림 작가라고 한다. 몇 년 전 에세이 삽화 작가가 펴낸 책을 본 적이 있다. 그 작가의 책에는 글보다 그림이 훨씬 많았다. 글은 시보다 적었지만 그림이 훌륭해서인지 꽤 인기가 좋은 작가라고 소개돼 있었다. 잠깐 옛날 생각이 났지만, 지금처럼 많은 생각이 되살아 나지는 않았었다. 이 책을 보는 순간 많은 기억이 생각났던 것은 저자의 이력과 또 책 속의 글 때문이다. 저자는 독자들로부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살 수 있을까요?" "비전공자인데 그림을 시작해도 될까요?" "나이가 00살인데, 꿈을 좇아도 괜찮을까요?" 하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말한다. 

잘 나가는 일러스트레이터, 애니메이터, 만화가, 온라인 교육 플랫폼 인기 그림 강좌 운영자···. 요즘 흔한 말로 N잡러인가? 할 정도로 여러 곳에 관계하고 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모두 그림과 관련된 일들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저렇게 많은 일을 한다면 시간 관리는 어떻게 할까?란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긴다. 좋아하는 그림을 직업으로 삼고, 그림으로 먹고사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저자 반지수가 '천부적 재능'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노력' 없이는 재능도 발휘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림과는 완전 먼 직업군인데. 저자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미술학원이나 예중 예고에 다닌 적도, 입시미술을 배워본 적도 없다. 사회과학도로서 사회운동에 매진하던 23살, 대학 3학년을 마치고 1년간 휴학을 하고 로스쿨에 가야 할까, 본격적인 사회운동가가 되어야 할까를 고민하던 시기, 다시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휴학을 하고 만났던 많은 이들이 전공을 바꿔 예술 공부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나서였다.

23살에 다시 그림 그리기를 결심하고도 알바를 하고, 사회운동을 하고, 복학을 하고, 영화를 할지, 그림을 그릴지, 그림은 어떤 그림을 그릴지를 고민하다가 다시 그림을 그려도 될까? 근본부터 회의하기를 반복하고, 희망과 절망, 노력과 번아웃, 자기 확신과 불신 사이를 오가며 갈팡질팡하기를 수년 동안 거듭했다고 한다. 매일은 아니지만 멈추지 않고 꾸준히 그림을 그리는 동안 하루하루 성장해 결국은 그림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예전에 책을 펴내고 예스24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셨는데,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을 선택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에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꿈이 화가나 만화가였어요. 대학을 다니면서 내가 다른 일을 하더라도 ‘언젠가는 그림그리는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배운 적도 없고 진지하게 해본 적이 없어서 계속 미루거나 선택을 못 하다가, 무슨 일을 해도 자꾸 그림 생각이 나고, 어떤 일을 해도 그림이나 예술가들의 삶에 관심이 갔어요. 그래서 일단 시작해봤는데, 너무 몰입이 잘 되어서 ‘이게 내 업인가보다’ 하고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해보기로 결정했어요."라고 답했다. 인터뷰라서 그런지 응답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다소 김이 빠지는 듯하지만 말투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자신의 말을 정확하게 옮긴 것으로 보인다. 

그때 낸 책 『보통의 것이 좋아』(에세이)로 인터뷰한 것인데 이런 질문도 있었다. "평상시에 일러스트 작업을 하실 때 어떤 부분에 가장 고민을 하시고, 신경을 쓰시는지요?" 저자의 답변은 일반적이지만 화가로서 가장 적절한 답변으로 생각된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이 담겨 있는가에요. 내가 세상을 보면서 좋았다고 캐치한 부분, 내게 소중했던 순간과 그때의 분위기, 공기. 그게 그림의 모습으로 담겨있는가. 그림을 그리면서도 그 사실을 계속 확인하면서 그려요. 누군가 이 그림의 첫인상으로 그런 ‘느낌’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려요."



이 책 『다시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어』는 모두 23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23개의 장이 크게 두 부분으로 갈라져 있다. 저자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노력과 방황의 시간과 그림에 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가 큰 줄기라면, 장과 장 사이에 그 시절 기록했던 〈작업일지〉를 배치했다. 그러니까 각 장의 내용에 대한 글들의 증거 기록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림으로 마음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화가로서는 이 책에서 글의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마치 해설하듯이···.

이에 대해 저자는 "그리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쓰는 사람이다"고 답한다. 그는 지망생 시절 매일매일 일기를 썼다고 말한다. 읽은 책, 본 영화, 그렸던 그림, 그날그날의 깨달음, 감상, 다짐 같은 것들. 이걸 저자는 〈작업일지〉라고 부른다. 너무 많은 생각과 감정들을 우선 일지에 쏟아놓고, 반복해 다시 읽으며 자신의 상황과 문제를 파악하고 수정하고 개선해나간다. 보통 사람으로는 쉽사리 하지 못할 일이다. 특별한 목적도 없이 하루하루의 일들에 대해 기록하고 다시 읽으며 반성하고, 개선점까지 다시 기록하는 일은 하루이틀이 아니고서야 "그런 사람이 있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특히 저자는 독학자로서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막막함, 제대로 하고 있나 하는 불안, 일반적인 인생 경로를 벗어난 데 대한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 하나씩 스스로 깨쳐갈 때의 기쁨 같은 것들이 생생히 기록했다고 고백한다. 뱅뱅 맴도는 것 같은 일상도 매일의 기록을 길게 나열하면 나선처럼 상승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더딘 오늘을 견디는 힘이 된다고 장담하듯 밝힌다. 독자로서도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실천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인다. 갈팡질팡하는 지망생이었지만, 하루하루 끈기 있게 고민하고 탐구하고 실행했던 그 기록들이 오늘치의 힘듦을 감당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생생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큰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의 끝없는 ‘갈팡질팡’을 읽다보면 “열심히 하지 않는 법을 모른다”는 저자의 삶의 태도에 감동받지 않을 수 없다. 맞다. 요즘 말로 이른바 '중꺾마'라고 한다던가? "중요한 건 하고 싶다는 마음, 멈추지 않는 시도 아닐까?"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불현듯 새로운 각오가 마음속을 소용돌이친다.



정치외교학과를 다니며 갑자기(?) 그림을 그리겠다고 '자퇴 소동'을 빚은 저자는 덕분에 7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고 한다.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도 겸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들은 개인적인 이유로 갑자기 그만 두기가 어려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휴학을 하고 느긋하게 하고 싶었던 경험과 활동, 대화와 여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가장 불태워야 한다고 여긴 것이 공부보다 독서였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일이 '생각을 계속 써 두는 일'이었다. 그런 일을 계속하다 보니 가치관이 많이 변해가더라는 것. 목적을 두었던 변호사라는 직업부터, 법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고, 내가 가고 싶은 또 다른 곳들을 발견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로 인해 더 활동적이고 열악한 곳으로 가고 싶어졌고, 사람이 생에서 단 하나의 직업만 가질 거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게 되었고, 자신의 무지를 깨달았다고 책에 적고 있다. 

세상은 너무나 넓고 다채롭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일까? 외도(?)도 어느 정도 했는지, 저자의 발걸음은 다시 학교로 간다. 학생운동을 하는 동안 예술과 병행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학생운동은 계속했다는 점을 매우 잘한 일로 생각하는 모습이다. 세상을 공부하고 매일 생각이 맞는 친구들과 모여 세상, 예술, 사회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고 행동하는 것을 체득했다고 한다. 그 어떤 것보다 자신다운 모습이었고 아름다웠다고 저자는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1년 더 학교를 다녔는데도 또 졸업을 하지 못했다. 정말 '꾸.역.꾸.역.' 다녔다고 책에서 기술하고 있다. 그렇게 어영부영하다가 2016년 여름이 되어서야 졸업했다. 처음 자퇴를 하겠다고,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은 게 2012년이었으니 4년이나 더 학교에 발이 묶여 있었던 셈이다.

이 책은 저자가 다시 그림을 그리기로 한 시점까지 얼마나 고민하고, 힘들게 생각하고, 직접 행동했는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독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자신이 현재까지 걸어온 길을 기록에 남긴 대로 다시 써 '젊은 날의 방황' '청춘의 고민' '삶의 열정' 그 시기의 모든 것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독자들이 얻어갈 것이 많은 책이다. 


저자 : 반지수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던 스물세 살, 다시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다. 이후 수년간 독학으로 갈팡질팡하며 지망생 시절을 보냈다. 희망과 절망, 노력과 번아웃 사이를 오가는 막막한 날들에도, 하루하루 성장해 결국은 그림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되었다. 저서로 『보통의 것이 좋아』, 『반지수의 책그림』, 『두 고양이와 산책, 사계절 컬러링북』, 그림작가로 참여한 만화책 『너의 인스타-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볼래?』가 있다. 『불편한 편의점』,『위저드 베이커리』,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달팽이 식당』 등 책표지 그림을 꾸준히 작업하고 있다. 앞으로는 그림책, 만화, 에세이, 화집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만들고 싶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평생 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일한 꿈이다.

나, 반지수는 그림과 관련된 여러 일을 한다. 일러스트, 애니메이션, 또 만화를 그리며 글을 쓴다.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될 줄 알았건만 정신 차리고 보니 책 일을 하고 있다. 하루 중 대부분 시간 동안 책을 읽고, 쓰고, 그리는 셈이다. 먹고살기 위해 표지 일러스트를 그렸고 세 권의 책을 그리고 썼다. 『불편한 편의점』,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위저드 베이커리』, 『달팽이 식당』, 『책들의 부엌』 등 표지를 꾸준히 그려왔는데, 감사하게도 작업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출판계로부터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다. 앞으로는 나의 그림으로 그림책, 만화, 에세이, 화집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만들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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