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축일 캐드펠 수사 시리즈 4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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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성 베드로 축일』은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21권이 18년에 걸쳐 출간됐다고 하지만 각각의 권마다 개별적으로 독립된 사건을 다루니만큼 어느 책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다만 독자처럼 가톨릭이나 기독교를 잘 모르는 독자들은 이 책에 나오는 주요 인물이나 지명 및 역사적 용어 등은 미리 알아두는 것이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실명으로 나오는 도시, 성당, 수도원 및 수도원장 이름 등에 대해서 헛갈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별도로 백과사전이나 교회용어사전을 찾아 뒤질 필요는 없다. 이 책 뒷 부분에 주(註)를 저자 엘리스 피터스가 따로 지면을 할애해 별도로 정리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 『성 베드로 축일』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사건은 슈루즈베리에 위치한 베네딕토회* 소속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의 수도사 평의회에서 시작되었다. 1139년 7월 30일의 일이었다. 그날은 성 베드로의 탈옥 축일*** 이틀 전이었다. 성 베드로의 이름을 내건 수도원 입장에서 이 축일은 종교적 의미에서만 아니라 수익 사업으로서도 대단히 중요한 행사였다. 아침 회의는 전적으로 축일 의식 준비에 할애되었고, 사소한 잡무는 뒤로 미뤄졌다."고 저자는 축일을 앞둔 수도원의 일상을 꽤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책의 첫 머리에 세 개의 주가 달린 것을 볼 수 있다. 저자는 책의 뒷 부분 주석면에 친절하게 풀이했다.


* 베네딕토회 : 베네딕토 규칙을 바탕으로 공동 생활을 하는 가톨릭 공동체. 6세기 '누르시아의 베네딕토(성 베네딕토)'가 몬테 카시노에 창설해 전 유럽에 퍼진 수도회의 일파다. 청빈, 순결, 복종을 맹세하고 규율이 매우 엄격한 삶을 강조했다. 집단적인 예배도 중요시해, 수사들은 하루에 일곱 번씩 모여 찬송하고 기도하는 성무일도를 수행했다. 

**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 : 잉글랜드 슈롭셔주에 위치한 수도원으로, 원래 성 베드로에게 헌정된 작은 목조 교회였으나 11세기 후반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두 사도에게 헌정한 석조 건물로 개축되었다.

*** 성 베드로의 탈옥 : 성 베드로가 헤롯 왕에 의해 감옥에 갇혔으나 한밤에 천사가 나타나 쇠사슬로 결박된 그의 몸을 풀어 탈옥시켜준 것을 기리는 축일.



이 작품은 복잡한 도시와 주변의 정세를 바탕으로 드라마틱한 사건과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세련되면서도 담백하게 풀어내고 있다. 저자 엘리스 피터스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고 출판사 측은 소개한다. 소설의 배경은 중세 영국 슈루즈베리라는 도시다. 내전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슈루즈베리에서 성 베드로 축일장이 열린다. 축일장의 수익 배분을 두고 수도원과 시민들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가운데, 각지에서 내로라하는 장사꾼들과 구경꾼들로 오랜만에 활기를 띤 슈루즈베리. 삼 일간의 축일장을 준비하던 중 한 거상이 알몸으로 단검에 찔려 죽는 사건이 벌어지고, 피해자의 아름다운 조카딸과 캐드펠 수사는 진상을 밝히기 위해 영리한 게임을 시작한다. 복잡한 정세를 바탕으로 드라마틱한 사건과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세련되면서도 담백하게 풀어내는 작품으로, 엘리스 피터스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이 유감없이 드러난 역사추리소설로 꼽힌다.

두산백과사전에 따르면 현재의 슈루즈베리는 영국 잉글랜드 웨스트미들랜드 지방 슈롭셔주의 주도(州都)다. 슈롭셔주에서는 텔포드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중세 건축물이 많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듯한 전통적인 시장도시(중세에 시장 개설권을 획득한 거주지)이며 중심부 광장에는 역사적인 시장광장이 현존한다. 세번 강변에 위치하며 전통적으로 웨일즈와의 양모 거래에서 중요한 도시였다. 잉글랜드의 중요한 방어도시 역할을 했으며 에드워드 1세의 '철의 고리(Ring of Iron, 북부 웨일즈에 세운 8개의 성)'의 일부를 이뤘다. 도시에는 15~16세기의 목조건물을 포함해 660개가 넘는 역사적인 건축물이 남아 있다. 적색 사암으로 만들어진 성채인 슈루즈베리성과 과거 베네딕트 수도원이었던 슈루즈베리 수도원은 슈루즈베리의 노르만 백작 로저 드 몽고메리가 각각 1074년과 1083년에 설립했다.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이 태어나서 27년간 생활한 곳으로 웨일즈 인근 웰시 마치스로 알려진 지역에 속한 도시다라고 한다. 웨일즈 접경에서 불과 약 15km 거리에 위치해 웨일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주인공 캐드펠 수사는 신에게 자신을 의탁한 수도사이며,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던 전직 군인이자, 약제학 전문가이다. 이러한 캐드펠의 삶의 이력은 덜리 지역 약국의 약 조제사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해군으로 참전했던 저자 엘리스 피터스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처럼 보인다. 캐드펠 수사의 인간적 따스함과 영적인 깊이 역시 작가 자신의 성숙한 내면을 반영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시리즈 전편을 통해 중세 영국을 통째로 옮겨다 놓은 듯한 치밀한 묘사,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들의 희로애락을 충실히 구현했다. 이 시리즈에서는 인간에 대한 신의 연민을 닮은 탐정 캐드펠의 시선을 느낄 수도 있다. 또한 독자에게 중세의 수도원에서 저잣거리로, 안개 낀 다리 밑에서 허브밭과 약제실로 종횡무진 여행하는 재미와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슈루즈베리 최고 축제 중 하나인 성 베드로 축일을 앞두고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은 새로 부임한 라둘푸스 수도원장과 함께 축일장 준비에 분주하다. 그런데 시 유지들이 전쟁 복구에 수도원이 일조해야 한다고 축일장 수익의 재배분을 요구하며 수도원과 시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우린 모두 적의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살고 있소.” 인생의 절반 이상을 치열한 전쟁터에서 보낸 캐드펠 수사가 대꾸했다. “평화가 좋을 거라고 누가 그러오? 내가 아직 수도원장의 의중을 꿰뚫을 만큼 그 속을 아는 건 아니오. 그분의 약한 면도 본 적이 없지. 하지만 그분은 자신의 소명과 이 수도원에 대해 서약을 했소. 그러니 시간을 좀 드립시다. 당신 경우를 생각해보시오. 내가 당신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을 때도 시간이 해결해주었지.” 예전 일이 떠올랐는지 캐드펠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배었다. “어쨌든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요! 곧 라둘푸스 수도원장에 대한 판단이 서겠지. 자, 저 포도주 병이나 이리로 좀 건네주시오. 난 이제 들어가서 송아지에게 먹일 약을 저어야겠군. 마지막 기도 시간까지 얼마나 남았지?”(p.37-38)



잉글랜드 전역에서 상인과 구경꾼들이 몰려와 슈루즈베리는 오랜만에 왁자지껄한 축제의 흥분에 휩싸인다.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과 상인들 간에 난장판이 벌어지고 그날 밤 대상인 브리스틀의 토머스가 알몸으로 단검에 찔려 죽는다. 슈루즈베리시 측은 난장판을 벌인 젊은이들의 우두머리 필립 코비저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체포한다. 하지만 또 다른 절도 사건과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필립은 혐의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피해자의 아름다운 조카딸 에마 버놀드와 캐드펠 수사는 진상을 밝히기 적극적으로 나선다. 중세 때는 수도원 안팎의 사건들에 대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고 범죄자를 체포해 처벌하는 권한을 수도원에 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 『성 베드로 축일』에는 슈루즈베리 행사에서 벌어진 수수께끼의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우리의 눈을 가리는 거짓의 장막을 걷어내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 남녀 주인공이 등장한다. 행정 장관 휴 베링어 부부가 피해자의 조카딸 에마를 보호하는 가운데 에마는 수상쩍은 행보를 보인다. 젊은 영주 이보 코르비에르가 사건의 주변을 맴돌면서 에마에게 접근하고 둘 사이에 사랑이 싹트면서 사건은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 에마가 숨기고 있는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에마는 정체 모를 살인범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캐드펠과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렸던 필립이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기 일보 직전, 이보는 에마의 보호를 명목으로 에마를 데리고 자신의 영지로 떠난다. 화염 속에 휩싸인 음산한 저택에서 밝혀진 뜻밖의 진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저자는 제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성 베드로 축일을 기념하는 축제에 방문한 사람들의 면면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모드 황후'와 '스티븐 왕' 간의 치열한 전쟁 와중에 서로에 대한 정보를 은밀하게 캐내기 위해 정체를 숨기고 축제를 즐기는 척하는 사람들과, 음모의 한복판에서 추악한 야욕에 의해 희생된 피해자들, 그리고 정치적 입장과는 별개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등 캐릭터들도 매우 직선적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저자는 그들의 성격에 맞춰 사건을 조사해가면서도 치밀한 구성을 통해 사건의 진실에 한 발 한 발 다가선다.


영국 슈루즈베리 도시 풍경(사진은 현재의 모습이며 지적재산권과 관련없음)

축일장 첫 날, 내방객과 하인과 마부들로 온통 들끓고 마굿간으로는 말들이 쉴 새 없이 들락이고 있다. 캐드펠 수사와 마크 수사는 광장의 활기찬 거리를 구경한다. 작년에는 내전 중이어서 슈루즈베리로 들어올 꿈도 못 꾸었을 텐데 올해는 성황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수도원장이 시내 복구에 쓰라고 수익을 떼어줄지는 미지수다. 젊은이를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는 마크 수사에게 "보기에 즐거운 외모보다 마음"이라고 캐드펠 수사는 이른다. 그리고 영속할 마음을 지녔다고 칭찬처럼 늘어놓는다. 마크 수사는 캐드펠의 말에 기분 좋게 웃는다. 그때 반가움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기의 요람을 사러온 얼라인이다. 휴 베링어는 아내에게 소식을 들었다고 전하며 포도주를 사이에 두고 회포를 푼다. 베링어도 새로운 수도원장과 시장이 맞붙은 일을 이미 알고 있다. 시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진지하게 경고도 한다. 아직 내전이 끝나지 않은 것 같고, 사건은 언제 터질지도 모를 일이다.

캐드펠 수사는 도움을 청하는 전갈을 받는다. 몰드에서 온 웨일즈인 로드리에게 성문 길을 안내한다. 두 사람은 활기 넘치는 광경을 내려다 보며 웨일즈어로 대화를 나눈다. 캐드펠 수사는 결사대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뒤따라 가본다. 상인들을 향해 호소하는 코비저의 말을 무시하고 일에 몰두하는 상인들 사이에 토머스가 코비저에게 주먹을 날린다. 양쪽다 성마른 사람들이라 평화롭고 품위 있는 시위는 끝나고 난투극이 시작된다. 주동자는 빠져나가고 소동은 끝을 본다.

휴와 캐드펠 수사가 대화하는데 토마스 삼촌을 찾는 에마가 찾아온다. 수색대가 꾸려지지만 소용없다. 알몸 상태의 토마스 시체는 도기 장수가 발견한다. 토마스는 칼에 찔리고 옷이 벗겨진 채 살해되고 유기되었다. 토마스에게 조롱을 당하고 모욕을 느낀 사람들이 스무 명은 된다. 금품을 노린 우발적 살인의 가능성까지 고려한다면···. 캐드펠 수사는 생각이 깊어진다. 난동을 피우던 청년들은 이미 감옥에 있었다. 주모자인 청년이 잡혔다. 과연 필립 코비저가 범인일까? 도난 사건이 일어나고 부스가 털리는 일이 연달아 일어난다. 에마를 향한 의구심과 복잡하게 얽힌 일에 캐드펠은 최선을 다한다. 그녀가 무슨 일에 휘말렸는지 모르지만 위험에 처한 것은 맞는 것 같다. 캐드펠 수사는 또 억울하게 지목당한 한 청년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한다.



새로운 수도원장이 꽉 막힌 사람은 아니다. 베링어와 올바른 판결을 위해 협력하고, 실마리는 자신의 행적을 쫒던 필립이 찾아낸다. 캐드펠의 명석한 두뇌와 꿰뚫어 보는 눈에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십자군 전쟁 참여 기사단은 정의와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전쟁에 나아갔다. 자긍심과 정의를 향한 냉정한 이성도 가졌다. 오늘날 재판관이나 검사 등에서 보여지는 캐릭터다. 그런데 부와 출세를 위해 살인과 배신도 마다않고 벌이는 인간 쓰레기가 감히 에마를 하찮은 존재처럼 대하다니.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용기 있는 자만이 사랑을 쟁취할 수 있다고 믿는 중세 기사단의 면모가 돋보인다. 물론 모든 기사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저자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 전편에서 캐드펠 수사를 따뜻한 사랑과 정의로운 시선으로 악을 응징하는, 신의 심판을 대신하는 캐릭터로 그리고 있다.


지금까지 이보를 신뢰와 진실로만 대해왔는데, 그가 에마를 가두다니. 도대체 그녀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자신이 아름답다는 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보가 그녀를 가지겠다는 욕심으로 이런 일을 벌일 리는 없었다. 에마가 아니라면, 결국 그가 원하는 건 한 가지밖에 없었다. 지금껏 누군가 극단적인 사건을 벌이면서까지 줄곧 손에 넣으려 애써왔던 것, 지금 그녀가 지니고 있는 바로 그것 말이다. 그것이 지나가는 곳마다 죽음이 뒤따랐다. 이보의 종복 하나가 살인을 저질렀고, 이보는 그를 그 자리에서 처단했다. 그저 금품을 노린 절도였고, 그 와중에 우발적으로 살인이 일어났다고, 그 종복의 소지품에서 발견된 물건들이 이를 증명한다고, 다른 사람들처럼 그녀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물론 이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시커먼 구멍을 보지 못한 탓이었다. 그리고 이제야, 그녀는 그 시커먼 구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를 가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이보였다.(p.322)


저자 : 엘리스 피터스


아가사 크리스티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는 세계적인 추리소설작가 엘리스 피터스 Ellis Peters(본명 에디스 파지터 Edith Pargeter)는 1913년 9월 28일 영국의 시로프셔 주에서 태어났다. 화학실 조교와 약 조제사,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중에는 해군으로 참전하는 등 그녀가 쌓은 다양한 경험과 이력은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녀는 1959년 46세 때 스릴러 소설 『죽음의 가면』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해, 1963년 『죽음과, 행복한 여자』로 미국 추리작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에드가 앨런 포 상을 받았고 1970년에는 `현대문학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치사와 함께 `마크 트웨인의 딸`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1981년 캐드펠 시리즈의 한 권 『수도사의 두건』으로 영국 추리작가협회에서 주는 실버 대거 상을 받기도 한 엘리스 피터스는, 1995년 10월 생전에 지극히 사랑했던 고향 시로프셔에서 여든두 해의 생을 마쳤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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