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의 꿈
정담아 지음 / OTD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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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는 세이렌을 매우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마력을 가진 님프(요정)로 묘사하고 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오랜 전쟁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어 세이렌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노래로 치명적 유혹을 하는 세이렌은 선원들을 스스로 바닷물에 뛰어들게 한다는 신화 속의 인물(?)이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전하지 않고, 시대에 따라 세이렌의 외모가 바뀌어 간다. 로마 시대에는 상반신은 인간의 모습이고, 하반신은 물고기 형상으로 바뀐다. 로마의 시인들은 세이렌들이 지중해에 있는 작은 바위섬에 산다고 기록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 그녀들은 노랫소리로 남자를 유혹해서 잠들게 한 다음 잡아먹거나 죽이는 괴물로,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치명적인 여인(Femme fatale)'으로 진화한다. 현대에 쓰이는 응급차, 소방차 등에서 울리는 '사이렌'의 어원이라고 한다. 

독자는 인어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렸을 때 읽은 〈안데르센 동화집〉으로 기억한다.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잘 아는 안데르센 동화 중 하나다. 안데르센도 아마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원형을 찾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인어공주』는 아름다운 문장을 통해 순수한 사랑을 그린 안데르센의 대표작으로 안데르센 자신이 가장 감동적인 동화라고 여기는 작품이었다고 한다. 이후 전 세계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까지 큰 감동을 주는 명작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으며 영화와 연극으로 공연돼 왔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육지의 왕자를 만나기 위하여 마녀에게 자신의 영혼까지 저당 잡히지만, 결국에는 물거품이 되고 마는 인어공주의 애절한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안데르센은 『인어공주』의 바닷속 주인공들을 만들어내면서 여러 가지 요정에 대한 민담과 문학적인 전통을 참고했다. 셀키(인간과 물개의 모습을 한 상상 속 존재), 님프(그리스어 ‘님페(Nymphe)’의 영어식 발음으로 그리스인들은 자연계에 여러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고, 이것을 님프라고 하였다), 닉시(게르만 신화 속 물의 요정), 운디네(물의 요정) 등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바다의 암초에 누워 햇볕을 쬐며 인간을 유혹하면서 아름다운 인간으로 변하기도 하는 물개 셀키에 관한 이야기는 스코틀랜드 연안 오크니 섬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닉시는 인간을 꾀어 죽게 하는 그리스 신화 속의 세이렌과 비슷하다. 또한 바다 왕의 딸과 사랑에 빠진 기사가 그녀를 배신한다는 내용인 푸케가 1811년 발표한 단편 소설 「운디네(Undine)」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도 한다. 『인어공주』의 줄거리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알고 있지만 기억을 되살리는 의미에서 간단하게 소개한다. 

먼 바다의 바다 왕에게는 여섯 명의 공주가 있었다. 모두가 아름답고 예쁜 마음씨를 가졌는데, 그중에서도 막내 공주는 호기심이 많으며 조용하고 사려 깊었다. 공주들은 열다섯 살이 되면 물 위로 헤엄쳐 올라 인간 세상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막내 인어공주도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바다 위의 인간 세상을 구경하러 간다. 물 바깥세상을 구경하던 인어공주는 배의 갑판 위에 서 있는 잘생긴 왕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되고, 왕자가 탄 배가 난파되어 왕자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그를 구해 해안가로 데려온다. 잠시 후 사람들이 왕자를 데려가고, 인어공주는 다시 바다 속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왕자를 사랑하게 된 공주는 혹시 왕자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침, 저녁으로 해안가로 가보지만 왕자를 만나지 못한다. 인어공주는 왕자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면 그녀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는 마녀의 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마녀에게 주는 대신 인간의 다리를 얻어 왕자의 궁전에 도착한다.

왕자는 인어공주가 자신의 생명을 구해주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인어공주에게 그녀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묻는다. 하지만 마녀에게 목소리를 빼앗긴 인어공주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왕자는 인어공주를 아끼고 귀여워하지만 이웃 나라의 공주와 약혼식을 올린다. 왕자의 약혼식날 밤 인어공주의 언니들은 자신들의 머리카락을 마녀에게 주는 대신 칼을 하나 가지고 인어공주를 찾아온다. 언니들은 인어공주에게 칼을 주며 왕자의 심장을 찌르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어공주는 그 칼을 파도 속에 던져버리고 결국 물거품으로 변한다.



인어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왕자보다 집, 사랑보다 생존"을 우선하는 생활밀착형 인간으로 변이됐다. 이 소설 작품 『인어의 꿈』은 바다 생태계가 오염되자 새 터전을 찾아 '육지로 올라온 인어'들의 생존 분투기를 그렸다. 전세 사기로 절망한 인간 친구를 도와 새로운 미래를 그려나가는 인어들의 유쾌·통쾌한 희망 스토리이다. 이 소설은 문학의 예향으로 불리는 전남 목포시가 ‘2023 목포문학박람회’의 대표프로그램으로 진행한 청년신진작가 출판오디션 소설 부문 수상작이다.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상반신은 인간과 같고 하반신은 물고기의 모습을 지닌 인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화와 전설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곤 한다. 절반의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인어는 언제나 사람과 다를 바 없이 희노애락을 느끼는 고등생물로 묘사되었다. 또한 이야기 속에서 인어들은 대개 인간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며 자신의 반쪽 정체성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낀다. 언제나 인간의 모습이 가장 완벽한 피조물로 묘사되고, 인어는 인간이 되기를 열망하지만 운명 앞에 절망하는 슬픈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신인작가 정담아의 『인어의 꿈』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어는 기존의 인어상과 다른 주체적인 새로운 종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인간을 부러워하지도, 인간의 도움을 갈구하지도 않는 정반대의 강인한 종족들로 묘사되고 있다.

바다 생태계가 오염되자 인어들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육지로 사전 탐사대를 파견한다. 파견대원으로 뽑혀 육지에 오게 된 이나는 인어 브로커를 통해 인간인 시현의 집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되지만 이나가 점차 육지 생활에 적응해 갈 무렵, 동거인 시현은 전세 사기를 당해 길거리에 나 앉게 될 상황을 맞는다. 이때 이나는 인어의 방식으로 슬기롭게 위기를 대처해 나가고 인간인 시현을 도와 그에게 자립의 기반을 마련해준다. 인간보다 의연하고 현명한 인어의 모습은, 사뭇 낯설면서도 눈부시다. 인간과 인어가 공존하는 신인류의 세계는, 지금보다 고차원적인, 보다 아름다운 세상이다. 저자 정담아는 〈작가의 말〉을 통해 "상상과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등장인물들을 떠올리며 집필했다"고 밝힌다. 어디선가 나름의 삶을 살아갈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나와 다른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 그리고 혐오와 차별이 없는 사회를,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한다.



이 작품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자신이 바닷속 인어 등 생물이 되어 바닷속을 묘사하고 있다. "검고 푸르다. 어둡고 빛난다. 슬프고 찬란하다. 짙은 어둠 속을 유영하는 하얀 빛무리가 보인다. 눈부신 어둠 속에서 움직임을 잠시 멈춘다. 은하수. 실제로 마주한 적 없는 그 단어를 머릿속에서 한참을 굴려본다. 은하수는 저토록 찬란하게 빛나는 존재일까. 아니면 우리 생에 침투해 서서히 슬픔을 조여오는 위험한 존재일까. 이제 답해줄 수 있는 어른들은 없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멀리서 바라볼 땐 탄성을 자아내지만, 실은 절규를 통하게 하는 저 미세 플라스틱처럼. 알게 뭐람. 중요한 건 이렇게 한눈팔 시간이 없다는 사실이다. 매번 볼 때마다 속절없이 넋을 잃는 게 한심하다. 이래서야 저 먼 곳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제대로 도착이나 할 수 있을까. 잡생각을 떨치기 위해 힘껏 꼬리를 흔든다. 더는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새로 둥지를 틀 곳을 찾아 이제 떠나야 한다."(p.6~7)

미세 플라스틱으로 오염된 바닷속 생물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마지막을 맞이할 운명에 처했다. 그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온 바닷속 삶이 이젠 끝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나머지 살아 남은 생명체라면 살 수 있는 곳(?)으로 도망쳐야 한다.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다. 바닷속에는 위험과 안전을 판단해줄 '어른들은 없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생명체들이 아직 남아 있는 바닷속은 소설 속 화자(話自)의 눈으로 다시 화려하고 찬란하다. 마지막 빛인 줄 모르지만 다채로운 빛깔과 황홀하고 신비로운 풍경을 연출해 낸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있는 어류, 온몸을 흔들어 춤추는 수초들이 보였다. 처음 보는 풍경도 아닌데 또다시 넋을 놓고 말았다. 속절없이 아름다웠다. 스치면 그대로 물들어 버릴 것만 같은 쨍한 색감도. 단색인 이 세계에 함부로 불경한 색을 던졌지만 그래서 황홀했다."(p.11)

이 소설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소설 속 화자 '나'가 인간에 대해 처음 배우는 과정이다. 그들의 겉모습만 알 뿐 아무것도 몰랐지만 이젠 제법 그들에 대해 점차 적응하고 있다. 아직 그들의 언어도 못 알아듣지만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것들은 무수히 많았다. 논에보이는 건 그나마 이해하기 쉬웠지만, 기술과 시스템 같은 것들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나마 로빈이 설명해 주었던 내용에서 몇 개의 단서들을 주워 희미하게 밑그림을 그려보았다."(p.48)



앞서 언급한 대로 오늘날 지구는 온난화, 기후변화, 바닷속 오염 등 지구 어느 한 곳도 성한 곳이 없다. 미세 플라스틱이 점령한 바닷속은 인간에게만 심각한 게 아니다. 우선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명체에게 생존의 위협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어류에게 더 심각한 재앙이다. 신화나 동화에서만 등장하던 인어를 오늘날 되살린 것은 인어의 특성상 '반인반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 것으로 풀이해도 좋을 듯하다. 우리의 머릿속에 아름답고 황홀한 꿈을 심어준 인어가 인간들이 저지른 재앙에 의해 강제로 소환됐다. 바닷속에서는 더 살 수 없는 존재로 이젠 바다 바깥 즉, 육지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저자가 아직 우리 꿈속에 간직해 온 인어를 소설에 등장시킨 것은 인간과 인간의 고향이었던 바닷속 존재의 중간적 의미의 인어가 현재 재앙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기대해서일 듯하다. 여전히 인간은 함깨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이 자주 소설 속에 등장한다. 저자의 의도된 노출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우리 꿈속에 존재하던 인어가, 바닷속에 산다는 인어가 갈 곳은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미래가 더 이상 없다는 점을 암시한다. 지금과 같은 재앙을 초래하는 일을 멈추고 다시 회복에 힘써야 할 때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일 것으로 독자는 판단한다. 그것은 바다가 인간 생명의 원초적 기원이라는 설(생명기원0과 맞닿아 있으며 바다에 더 이상 생명이 존재할 수 없다면 인간의 미래도 더 이상 없다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오랫동안 능력주의 신화에 기대어 살아왔고, 지금도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제는 안다. 이 세상엔 노력과 능력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 참 많음을. 때로는 타이밍이라는 운명과 인연이라는 우연 이 겹쳐 만들어 내는 기적이 필요하다는 것을.(p.279) - 「작가의 말」 중에서


저자 : 정담아


어디서든 살아내고, 어떻게든 써내려는 사람. 글쓰기와 문장, 배움을 통한 위로를 지향하는 ‘감정업사이클’, ‘어른들의 사회생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며, 문장과 책으로 전할 수 있는 감동과 재미를 고민한다. 오랫동안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괜찮은 어른으로 익어가는 게 꿈이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무수한 사람들과 감정들을 따뜻하고 단단한 이야기로 엮어내려 노력중이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공부했다. 가르치는 걸 좋아했지만 더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학교를 벗어났다. 끄적였던 글을 모아 독립출판 에세이집을 출간했고, 이후 꾸준히 글을 쓰고 책을 만들며, 문장으로 전할 수 있는 감동과 재미를 고민한다. 오랫동안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괜찮은 어른으로 익어가는 게 꿈이다. 2023년 목포문학박람회 청년신진작가 출판오디션 단편소설 부문에 출품한 계기로 생애 첫 장편 소설을 쓰게 되었다.

독립출판 에세이 『평범예찬』, 『전문 팩트폭격러의 고백』, 『길의 마음』, 『서울 캥거루의 독립운동기1,2』를 쓰고 만들었으며,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어른들의 사회생활’을 운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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