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 안에서 유영하기 - 깊고 진하게 확장되는 책읽기
김겨울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는 분류상 독서 에세이 혹은 독서 비평 분야로 나뉜다. 지금까지 책을 많이 읽고 쓰는 분들의 '독서 노트'나 '작가 수첩' 등을 읽어보면 주로 책을 쓴 작가들의 인삿말 정도가 많다. 모두 겸손이 밴, 자신을 낮추는 말이 대부분이다. 그것은 본서(집필서)를 쓰는 과정에서의 짧은 소회 등을 주로 쓰고, 관례에 입각해 겸손한 자세의 글을 쓴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독자는 작가들의 독서 노트를 읽는 이유가 평소 작가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가?와 책을 읽을 때 어디까지 사유하나? 등에 관한 관심 때문이다. 독자는 그러나 비평가가 아니기 때문에 작가들의 글이나 메모를 비평할 능력도 없거니와 읽은 책에 대한 즐거움 때문에 작가들의 메모를 거의 100% 신뢰한다. 

저자 김겨울의 첫 책 『독서의 기쁨』이 독서라는 행위에 대해 연서처럼 쓴 책이라면, 이 책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는 한 권의 책이 사람을 어디로 데려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밝힌다. 이 책에는 저자가 본능에 가까운 이끌림으로 선택한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네 편의 소설이 작가의 삶 어디에 자리 잡았는지, 깊고 진지하게 책과 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독자가 짧은 메모를 읽으며 궁금해 했던 대부분이 이 책 속에 담겨 있는 느낌이다. 저자는 운명, 고독, 시간, 상상 등 인간이 처한 조건을 다룬 이 네 권의 책을 토대로 독자와 함께 생각의 지도를 그려보며 새로운 생각의 싹을 틔우는 독서 노트를 공개하는 셈이다. 물론 공개의 또 다른 이유는 독자들도 무조건 책을 읽는 것보다 저자처럼 책의 내용은 물론 책의 주제에서 파생되는 확대 심화된 사유까지 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독자는 이해한다. 

"책이 뻗어 보인 가지들에서 시작해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새로운 가지를 뻗어내기를, 그렇게 가지를 뻗고 뻗어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만나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까마득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따금 언어의 지평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란 저자의 작은 소망의 길에서 만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은 독자의 책 읽기 '텍스트'로 삼을 생각이다. 이번 재출간되는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는 2019년 출간 이후 독자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온 스테디셀러를 저자의 전작 『독서의 기쁨』과 함께 리커버 세트(양장본)로 묶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면 더 나은 책을 쓸 수 있을까 고민했던 초보 작가 시절의 저자의 바람도 책 읽는 기쁨을 더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로서는 재출간이지만 독자는 이 책을 처음 읽기 때문에 책의 신선함까지 읽어낸다.(사실은 독자가 과문한 탓이라 독서 지식이 지극히 짧아서일 것 같다) 이 책은 한 권의 책이 독자들을 어디로 데려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독자는 이 책을 독서 텍스트로 삼기로 했다. 저자는 이번 리커버판 〈서문〉에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책이 단순히 정보나 지식을 전달하는 매체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자신에게 비춰주었다는 것을 안다"고 전제한 뒤 "책은 전혀 모르는 곳으로, 혹은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몰랐던 곳으로 자신을 데리고 나녔음을 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곳'이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확대 사유의 끝, 주제에 대한 심화된 사색의 끝을 말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독서를 끝내고 비로소 자신에게 돌아온 후 되찾은 자신은 책 읽기 전의 자신과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분명하게 작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자신이 못 느끼더라도 차곡차곡 쌓여 삶을 더 풍요롭게 하고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 보는 눈을 더 크게 해줄 것이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2023년 출간한 『겨울의 언어』의 저자 소개는 이런 문장으로 마무리된다"고 말한다. '텍스트 속 타자들을 통해 조금씩 변해왔으므로 자신을 '텍스트가 길러낸 자식'으로 여겨도 제법 정당할 것이라고 여긴다." 집필했던 책의 내용도, 저자 자신도 서로서로 조금씩 발전해왔음을 느낀다는 표현이다. 책 속의 내용이 과장이나 왜곡은 없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또 한 문장, 한 문장에 대해 부끄럼보다는 이젠 당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음을 마음속으로 느끼고 있다고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저자는 『독서의 기쁨』 출간으로부터 수년이 흘렀지만 책이라는 매체에 대한 생각(더 나은 책을 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는 지금도 큰 변함이 없다고 말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한 생각은 더 체계를 갖추고 자리를 잡는다고도 밝힌다.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집필 '경륜'이 쌓이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느낌, 표현 하나하나에 조바심을 냈던 시절에 비해 당당해진 언어 사용, 또 책을 쓰면서 조금씩 늘어가는 삶에 대한 자신감이 오히려 의무감이나 책임감으로 다가왔으리라 독자는 생각한다.

저자의 "글쓰기, 책을 쓰는 것은 못내 부끄러운 일이다. 책에 저자의 결함이 행간에 묻어 있다는 점에서 그렇고, 그 결함을 알면서도 사람들에게 끝내 책을 위한 시간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쓰는 자의 첫 번째 미덕이 성실함이라면 두 번째 미덕은 부끄러움이라고 나는 여전히 믿는다.'는 말에 응원과 찬사를 함께 보내고 싶다. 



이 책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는 저자가 읽고 사유를 늘린 네 권의 책에 대한 이야기다. 네 권의 책 모두 소설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있고 베스트셀러 작가도 있다. 거창한 수상 이력이나 베스트셀러 작가이기에 읽었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기쁨으로 읽었다기보다 '진지하고 차분하게 감상한' 책들이다.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등이다. 모두 본능에 가까운 이끌림으로 선택한 책들이라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여기서 '본능'이란 책을 많이 읽은 독자로서의 '촉'을 이를 것이다. 저자는 이 선택한 책들에 대해 실컷 이야기하고 나서야, 각각의 책들이 인간이 처한 조건 중 일부를 다루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털어놓는다. 저자가 깨달은 것들은 운명, 고독, 시간, 상상이라는 조건들이다. 저자는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몸에 따른 고독, 그 몸을 가지고 통과할 수밖에 없는 시간, 그 안에서 만들어가야만 하는 운명, 그리고 삶에서 탈출하려는 혹은 변화시키려는 상상이라는 조건들은 비단 저자에게만 주어진 것들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네 편의 소설을 이러한 키워드로 읽은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독서 경험이라고 말한다. "다른 독자들에게는 이 소설들이 훨씬 더 풍요롭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며 저자는 독자들의 독서를 권유한다. 

이 책은 일종의 독서 노트지만, 저자는 책에 대한 감상에 그치지 않고 한 권의 책에서 가지를 뻗어 여러 이야기를 했다고 설명한다. 『운명』을 다룰 때는 나치에 대해서도 썼고, 『프랑켄슈타인』을 말할 때는 메리 셸리의 어머니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의 권리 옹호』도 다뤘다. 『백년의 고독』을 이야기할 때는 시간에 대하여 썼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도 다뤘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는 앞서 다룬 인간의 한계들을 뛰어넘으려는 상상에 관해 생각을 더했다.

개략의 설명을 끝낸 저자는 이제 이 책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를 쓴 목적(?), 집필 이유를 꺼낸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자'라는 마음에서, 책이 완성되어 가면서 그 스스로 목표를 빚어냈다고 고백한다. 좋아하는 소설을 소개하고 그 소설이 어디까지 달려 나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일, 생각의 지도를 함께 그려보는 일, 그것이 다시 삶의 어떤 자리에 자리를 잡는지 지켜보는 일, 그래서 조금이나마 쓴 사람과 읽는 사람에게 다시금 새로운 생각의 싹을 틔우는 일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단순히 변화라기보다 확대됐다고 봐야 맞을 것 같다. 물론 저자가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저자는 이 대목에서 독자들에게 하나의 소회와 함께 당부를 남긴다. 독자들은 이 탐색의 기록을 읽으며 하나의 생각이 어떻게 가지를 치고 다른 책으로 연결되는지, 책이 한 인간을 어디로 달리게 했는지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저자는 이 독서 노트를 이용하는 방법을 꺼내놓는다. "목차에 있는 네 권의 책을 먼저 읽고 나서 읽거나, 이 책을 먼저 읽고 나서 네 권의 책을 읽는 것이다. 아니면 한 권씩 읽고 해당하는 장을 읽을 수도 있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 이 책이 뻗어 보인 가지들에서 시작해 새로운 가지들을 뻗어 볼 수 있다면, 그렇게 가지를 뻗고 뻗어 나가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만나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면 이 책의 소임은 다 한 것이다. 이 책이 여러분의 종착역이 아니라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

어쩌다 보니 책을 이야기하는 일을 업의 목록에 추가하게 되었으나 저자는 어디까지나 일개 독자라는 사실에서 멀리 떨어져서 판단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유튜버로서 매주 영상을 만들며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공부하고, 말을 삼키며 보냈던 시간을 이 책으로 조금 변명하고 싶다는 속마음을 담아서 털어내는 말이다. 턱없이 부족한 지식으로 이만큼 올 수 있었던 것도 기적이라고도 그간의 어려움도 삼킨다. 잔뜩 쌓인 기대를 앞에 두고, 비로소 이 책으로 부담을 내려놓는다며 홀가분함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한다. 책을 탈고할 때까지 불안하고 기대되는, 복잡한 심정을 거침없이 내놓는다. '후련하다'는 다른 표현일 것이다. '별것 아닌 일개 독자라는 사실'을 이제는 모두 알아주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일개 독자도 책을 읽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책의 축복이라고 책에게 슬쩍 책임과 영광을 떠미는 듯한 센스도 보여준다. 

이 책에 소개된 네 권의 책 가운데 독자는 불행하게도 한 권밖에 읽지 못했다. 다른 한 권은 영화를 통해서, 줄거리를 아는 정도고 다른 두 권은 읽지 못했다. 『운명』은 읽지 못한 책 가운데 하나다. 저자의 책 소개는 책 읽기와 연결되어 있다. 독자들의 눈을 잡아 끄는 글은 첫 페이지부터 눈에 띈다.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마지막 십여 페이지다. 이십여 페이지를 읽기 위해 우리는 앞의 삼백여 페이지를 끈질기고 끈질기게 읽어내야 한다. 이것은 독서라기보다는 '함께 살아내는' 행위에 가깝다. 페이지마다 통증이 골수에 사무치는 듯하다. 책을 읽으며 우리는 주인공과 함께 고통스러운 두 해를 산다. 물론 이 경험은 주인공만 한참 못할 테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겸허한 간접 체험자로서 주인공을 지켜본다."



『백년의 고독』은 네 권의 책 중 유일하게 독자가 읽은 책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작가는 1982년 이 작품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독자로선 20년이나 지난 후 읽었지만 지금으로부터 생각하면 22년이나 지났다. 사실 기억이 뚜렷하지 않다. 주인공들 이름이나 줄거리조차도···. "리얼리즘의 극치를 보여 주며 일단 한 번 잡기 시작하면 끝까지 손을 놓을 수 없게 하는 소설"이란 당시 번역판의 소개글에 나와 있다. 더듬어 생각해보면 남아메리카를 '라틴아메리카'라고 부르는 것은 에스파니아와 포르투갈이 식민지로 강제 점령했다는 반증이다. 이곳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사회적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소설의 이야기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그의 사촌 여동생 우르슬라와의 근친상간적 결혼생활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남미의 처녀림 속에 마콘도라는 새로운 마을을 건설한다. 이 원시적인 마을은 물질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번화한 도시로 발전했다가 무지개처럼 하루아침에 지상에서 사라져버린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부엔디아 가문과 등장인물 개인의 고독은 결국 빠져나갈 수 없는 돌고 도는 역사로 인한 고독이다. 이미 예언된 것처럼 마지막에 돼지 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마르케스만의 영역을 인정받게 한 이유이라고 소개글에 나와 있다.

저자 김겨울의 평가는 조금은 시각이 다르기도 하고 다른 작품을 이용해 비유적 표현을 해주기에 훨씬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게 한다. "『백년의 고독』이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은 이유는, 환상처럼 존재했다 사라진 한 가문의 일대기가 지극히 초현실적이나 현실적이고, 덧없으나 영원해 보이기 때문이었다. 때로 어떤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생명을 얻어 끊임없이 회자되는 특권을 누린다. 이 권능은 작가를 뛰어넘어 그 스스로 생겨난다. 『이 작은 책은 늘 나보다 크다』는 줌파 라히리의 책 제목처럼, 실은이 책에 수록된 모든 이야기가 그 스스로 생명을 얻은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죽은 사람이 살아 있고 피가 직각으로 꺾어 흐르는 능청스러도록 이상한 세계, 이 세계를 여기서 전부 전달하려면 『돈키호테』를 처음부터 긑까지 똑같이 쓴 삐에르 매나르처럼 『백년의 고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에 베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p.158~1159)


저자 : 김겨울


작가, 독서가, 애서가. 한때 음악을 만들었고 지금은 종종 시를 짓는다.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을 운영하며 MBC 표준FM <라디오 북클럽 김겨울입니다> DJ를 맡고 있다. 『책의 말들』, 『아무튼, 피아노』를 비롯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후 동대학원 철학과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텍스트 속 타자들을 통해 조금씩 변해왔으므로 자신을 ‘텍스트가 길러낸 자식’으로 여겨도 정당할 것이라고 여긴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