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고요한 날에 - 고요한 날에 고유한 우리의 마음을 담아
황녘 외 지음 / 고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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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마음이 고요한 날에』는 아직 작가로서 책을 내지 못한 글쓰는 이들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출판사 측에서 10분의 글쓰는 이들의 글을 책으로 출간한다는 기획 아래 뜻을 모은 분들이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에세이는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다는 장르이긴 하지만 막상 책으로 낸다면 설렘이 있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에세이는 누구나 쓸 수 있다는 장르라서 어쩌면 더 쓰기가 힘들지 않을까?란 생각을 글 안 쓰는 독자로서 해볼 수 있지만 역시 책을 낸다는 것은 설렘과 함께 용기도 있어야 할 것이다. 글을 평소 많이 쓰신 분들이라 생각되지만 용기 내 원고를 모은 출판사 측도, 글을 쓴 작가분들도 좋은 일이 함께하기를 빌며 이 책을 읽는다. 

출판사 측 소개글에는 독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많은 요소가 담겨 있다. "마음이 고요한 날에 이 책을 집어드셨겠지만, 여기 글들은 독자분들의 마음을 마구 요동치게 할 겁니다." 첫머리부터 반전을 노린다. 표제어도 '마음이 고요한 날'이라는 문구가 암시하듯이 조용히 삶과 주변의 일들이 평온함을 유지하는 듯한 관조적 글이 아니라 읽는 이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내용의 글 모음집이라는 도발적 문장은 독자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이 책에는 온통 마음을 뒤흔드는 이야기밖에 없습니다. 첫 글부터 확 빨려 들어가 어느 순간 작가의 예민하고 섬세한 문장 덕에 쿵쾅대는 심장을 마주할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 이야기로 눈물을 찔끔 흘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다 시공간을 여러 번 이동해 누군가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공간에 다채로운 시선이 담긴 글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겠습니다." 약간의 과장이 섞인 듯한 문장이지만 최소한 첫 글 황녘의 「상실의 증명」에서만은 출판사의 소개글이 확실히 맞는다고 독자에게는 읽힌다. 정직하게 표현하자면 소설인 줄 알았다. 우선 단편 소설의 분량만큼 긴 글인 데다 사용하는 언어가 상당 부분 대구적이고 시니컬하다. 세상에 대한 분노가 가득한, 그러나 해소 불가능한 일들에 대한 내용이다. 더욱이 글의 화자가 한 사람이 아니고 세 사람의 시점으로 서술된다.



"눈 감은 낮은 길었으나 깨어 있는 밤은 짧았다. 언제나 낮보다 밤이 짧았고, 시간은 깔때기에 던져진 것처럼 너르게 퍼졌다가도 밤이 되면 빠르게 빨려 내려갔다. 일은 언제나 깔때기의 끝에서 끝났다. 매일의 시간이 넓게 퍼지기 전에 서둘러 눈을 감았다.(p.12)

이 글의 화자는 '김현석'이라는 남자다. 딸과 아들의 아버지이고, 한 여자의 남편이다. 사건 발생은 1996년 11월, 원인 제공자는 김상현이다. 이 글은 그의 입장에서 쓴다고 제목에서 밝히고 있다. 택시 운전을 하는 김상현은 회사 간이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가 아래층(침대 아래칸) 병수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잠이 덜 깬 눈을 거슴츠레 뜨며 본 풍경은 예상 밖이다. 절대로 상상하지 않았던 장면이다. "아이들이 서 있는 장면은 살풍경했다. 나를 올려다보는 큰딸은 눈썹이 시옷자가 되도록 치켜떴다. 이마에 핏기가 가신다." 

회사 숙소에 겹쳐진 아이들, 오려다가 잘못 붙여놓은 것처럼 아이들이 있는 풍경은 기묘했고 잔인했다. 운전 교대 후에 회사 간이 숙소에서 잠든 아버지를 아이들이 찾아온 것이다. 김상현은 드러난 반나체를 아이들은 외면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너희를 외면하고 싶었다. 외면하고 싶은 게 아이들이 맞는가. 아니다. 사실은 나에 대한 부끄럼이었다는 걸 이내 깨닫는다. 나를 외면하려면 아는 어디로 얼굴을 돌려야 할까. 창자가 뒤틀린다. 네 행동의 결과를 이런 식으로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미래를 외면하는 습성 탓에 결과를 마주할 때는 언제나 충격이 동반되었고, 습관이 된 충격은 당연했고 쉬웠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핏기가 가셨던 이마에 도로 열이 찬다. 미간이 오그라드는 걸 막기가 어렵다. 딱딱하게 성난 목소리를 감추고 싶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아빠작 너무 안 와서 찾아왔어요. 

뭐 타고 왔어? 

택시 타고 왔어요.(p.12~13)



이 글은 이후 2015년 8월로 건너 뛴다. 김상현의 시점이다. 그리고 글은 그의 사유 내용이라고 제목에서 밝히고 있다. 김상현은 전 장(章)에서 화자이자 그의 시점(視點)으로 글을 써 내려간 김현석의 아들임을 알 수 있다. 약 20년을 건너 뛴 시점은 아들이 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 동기를 만나면서 이어진다. 대학 동기와의 만남은 사적이고 친교적인 만남이다. 꽤 유쾌한 친구인 덕에 상현은 전화를 받는다. 진동으로 해놓은 전화기가 허벅지를 울리는 것이 '예감이 좋지 않다'. 아버지의 전화다. 

두 사람의 통화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내용이다. 

아빠한테 뭐 해주는 게 싫어?

······. 

나라에서 주는 주거 혜택을 받으려면 부양자가 없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는데, 넌 그거 하나 써 보내는 게 힘드냐? 내가 너한테 돈 달라고 할 것 같아서 그래? 어? 아빠가 너 어렸을 때 어떻게 컸는지 다 알아. 너한테 돈 달란 소리 절대 안 해. 알아들어? 아빠가 절대로 너한테는 손 안 벌린다고. 내가 너한테 뭐 부탁한 적 있냐? 그게 힘들어? 알아들었냐고···.

··· 써 보낼게요.

가족관계단절사유서. 관계를 단절시킨 사유는 나에게 없다. 사유는 응당 제공자에게 묻는 것이 옳을 텐데, 나에게 묻는 사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아빠는 말끝을 떨었나. 사유를 제공하고도 사유서를 쓸 수 없는 것에 답답해서. 

늙고 병든 아빠 김현석은 이제 돈을 벌 수도 없는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가족관계단절사유서가 기초생활수급자 지정에 필요한 서류인 듯하다. 그것을 아빠 본인이 뗄 수 없는 건가? 아니면 각자가 다 써야 하는가? 독자가 알 수 없는 내용이지만 유추컨대 아마 부모자식간 헤어져 산 지 오래됐기에 의무부양자에서 이탈한다는 증명서인 것으로 이해된다.



이어 이 글 「상실의 증명」은 1996년 11월 황혜정 시점으로 '진술'하고 있다. 남편 김현석은 택시 기사로 노름꾼이다. 물론 결혼 전부터 택시 기사는 아니었고 노름도 하지 않았다. 하던 일에 실패하고 그래도 처자식을 먹여 살리겠다고 빨리 쉽게 할 수 있는 택시 기사를 택했다. 그들 중 일부와 어울리다 노름에도 손을 댔다. 노름에서 돈을 따 살림에 보탰다고 하는 말을 독자는 들은 적이 없다. 김현석이라고 에외일 수 없을 터, 결국 회사 임시숙소 간이침대 신세를 지기 시작한 이유가 되었다. 결혼 생활이 제대로 될 리 없다. 황혜정의 시점으로 진술하는 장(章)에서 아내 황혜정은 집을 나가 아이들 이모집으로 가출하먀 결혼 생활의 종료를 안다. 황혜정은 아내의 이름이다. 그도 속을 끓일 만큼 끓였고, 참을 만큼 참았다. 그래도 가출하는 마음은 편치 않을 터, 특히 딸 미주를 두고 떨어져 나오는 어미의 마음은 오죽하랴. 이렇게 황혜정은 표현한다.

지옥 불구덩이 속에 아이들을 두고 나만 살려 도망가는 기분이었다. 기분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도망이었다. 내 머리에 떠 있는 도망이라는 단어를 아이들이 읽어낼 것 같다. 결심은 두터웠지만 가방을 싸는 손은 떨렸다. 이건 도망이 아니야. 그럼, 도피니. 아니야 전략이야, 아니야 너를 속이지 마, 이번엔 다른 걸 알고 있잖아, 도망이라는 단어를 두고 두 아이의 엄마와 술주정뱅이의 아내가 싸운다. 엄마가 지고 아내가 이겼다. 아이들이 지고 남편이 이겼다.(p.30)

2024년 2월 김상현의 '애도'의 글을 마지막으로 이 글은 끝난다. 이 장의 제목이 '상실'이다. 아들 상현의 엄마의 죽음 이후, 무미건조한 날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의 죽음을 '알게 되어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어차피 증명서를 출력하지 않았다면 언제까지고 몰랐을 일. 세상이 약간 더 어두워진 것 같았지만 나의 세상은 원래 회색빛이었으니까, 별다를 것도 없다. 20년 이상 보지 못한 사람에 대한 감정은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본 날보다 못 본 날이 길었으므로 감정과 기억은 흐릿했다. 거기에 흘릴 눈물은 애저녁에 말랐다. 더 이상 예전의 감정은 남아 있지 않았지만 마음은 새로운 감정들을 찾아냈다. 그것은 부로로서의 후회, 삶에 대한 안타까움, 결국 죽어야만 하는 인간의 통한이었다.

아빠의 가족관계단절사유서와 엄마의 가족관계증명서, 살았어도 죽었어도 종이가 매개하는 가족관계는 손끝에서 팔랑거린다. 진한 글씨는 확실했지만, 글씨가 설명하는 관계는 희미하다. 이것들의 목적은 관계의 증명이 아닌 상실의 증명이었다. 이제 나는 상실로써 관계를 갈무리한다.



10편의 에세이 중 「상실의 증명」 외에 오다솜의 「지금, 여기, 백령도」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독자는 이곳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흥미롭다. 우리 국민들 대부분 다 알지만 백령도는 남한 쪽 대한민국의 서해 최북단의 섬이다. 교묘하게도 북한 쪽 황해도 바로 앞쪽에 위치한다고 들었다. 북한의 도발 때 늘 피해 대상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풍경은 오히려 서해 어떤 섬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좋다고 한다.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서 '버킷리스트'로 남겨놓았다. 우리 해병대가 주둔하는 곳이라서 군사도시 성격이라고 한다. 작가 오다솜은 다니던 직장이 도저히 안 맞아 그만두려고 하다 어찌어찌해 이곳 백령도에 스트레스 덜 받고, 흥미롭기도 해서 들어왔다. 회사와의 관계가 자신의 생각과 조금 다른 듯하지만 회사의 발령을 받았다고 하니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르지만 백령도에서의 생활을 쓰고 있다. 독자 역시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 부지런히 읽었고, 사진까지 있어 잘 감상했다. 마음이 고요한 날인데 백령도 여행의 욕구가 강렬히 타오른다. 

무심코 창문 너머 보이는 하늘의 색이 심상치 않게 예쁘다고 느껴 무작정 나가서 삼청각을 향했다. 지금 펼쳐지는 노을의 아름ㄹ다움을 더 가까이 보고 싶어 행동했다. 내일이 오더라도 똑같은 색깔의 노을은 절대 나타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의 자연을 마주하고자 했다. 그렇게 있는 모스 그대로의 자연은 나의 위안이 되었다.

주말 아침이 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들떴다. 들뜸은 주체가 안 되었고 집 밖으로 나가 에너지를 쓰게 만들었다. 백령도 최애 산책 코스를 걷고 또 걸었다. 퇴근하고 피곤할 만한데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그곳에 갔다.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걸었고, 매서운 겨울에도 산책은 멈추지 않았다. 인사이동을 바라는 기대는 마음에서 점차 사라져갔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루를 채워갔다. 그리고 이 시간을 잘 헤쳐나가리라 스스로 응원하며 나에 대한 믿음이 조금씩 채워졌다. 부모님도 나를 믿지 못했고, 나조차도 나를 믿지 못했는데 그걸 가능하게 이끌어준 책 속의 글을 마음에 새기면서.

저자 오다솜의 마음을 그가 인용한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한성희)의 일부를 읽어본다.

"가족은 구성원 개개인을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게 하는 토양이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의 동력으로 삼아 무럭무럭 자라서 언젠가 부모 곁을 떠나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이다."(p.243~244)



저자 : 황녘

글이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믿고 말하고 또한 씁니다.


저자 : 유명숙

오직 한 길을 걸었다. 한 길 만을 묵묵히 걸어 온 영문학의 모든 여정을 <고독에 대한 송사>로 대유한다.

Thus let me live, unseen, unknown;

Thus unlamented let me dye;

Steal from the world, and not a stone

Tell where I lye.

Alexander Pope, 中


저자 : 이한나

카페와 예쁜 공간을 애정 합니다. 공간을 집중해서 관찰하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 취미입니다. 기록으로 일상을 묶어서 소중함을 오래 간직하고, 풍요로움과 다정함을 발견하려고 노력합니다.


저자 : 체리

보랏빛 하늘을 사랑하고, 아날로그적인 것을 애정합니다. 글이 주는 평온함을 사랑하고 유용함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일궈낸 열매, 체리입니다.


저자 : 김영신

책을 좋아하고 생각이 넘치면 글을 씁니다. ENFJ라 무대체질이지만 막상 수줍움이 있어 혼자만의 시간에는 굴을 파고 들어가 겨울잠을 자듯 책읽기로 하루종일 지내기를 좋아합니다.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있으며, 다양한 부캐로 주변을 놀라게하는 재주가 있습니다.


저자 : 임유경

방울토마토처럼 작아도 귀여움이 있고, 붉은색의 열정도 가득하답니다. 물론 영양가도 많죠. 이처럼 내 생각과 글을 통해, 물론 만났을 때도 사람들에게 '영양 가득'한, 한 알의 비타민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저자 : 류하

내용을 기억하기보다 인상으로 간직하는 독서가이자 세상의 다정을 찾아다니는 고독가. 섬세한 눈으로 봐야 보이는 무한의 아름다움들을 지치지도 않고 찾아서 나의 언어로 바꿔 세상에 내어놓는 사람. 살아가기 위해 매일 글을 쓴다.


저자 : 바니

삶을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가득 채운 후 담담하게 비워내고 다시 인생의 파도를 기다리는 중


저자 : 오다솜

마침내 작은 섬에서 벗어나 꿈꿔왔던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중.


저자 : 조재호

계절처럼 피고 지고 뜨겁고 차가워지며 옆에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갈 사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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