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프레드 포드햄 그림, 문형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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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멋진 신세계』는 발표(1932)된 지 90년이 훌쩍 지난 '디스토피아'를 그린, 고전소설이 됐다. 원작 소설은 대부분의 독자들이 알다시피 저자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는 영국 태생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이다. 이 소설은 발표 당시 사람들은 헉슬리를 무모한 공상가나 미치광이쯤으로 여겼다고 한다. 아무리 작품의 배경이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가상의 미래 세계라고 해도, 내용이 당시 사람들의 상상력을 초월할 정도로 황당무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10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헉슬리의 예언은 더 이상 무모한 공상이 아니다. 인류가 현재까지 이룩해놓은 놀라운 과학적 성과로 비추어볼 때,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운 미래에 있는지도 모른다.  

『멋진 신세계』에서 헉슬리가 창조해낸 미래의 '반 유토피아(디스토피아)'는 국가 권력이 시민들의 정신을 너무나 완벽하고 효율적으로 장악하는 바람에 착취와 성취의 경계가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해지는 세계다. 소설 속 세계 국가들의 이상인 사회적 안정은 소비의 증가와 온갖 세련된 기술의 발달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여기에는 피임을 의무화하고 자유로운 성관계를 미덕으로 만든 국가의 인간 독점 생산도 포함된다. 다섯 계급으로 나뉜 사회적 카스트는 자아 만족을 촉진하기 위해 유아기는 물론 태내에서부터 복잡한 조절 단계를 거친다. 지배계층이 그 권력을 유지함으로써, 하층계급이 품을 수 있는 계급 간의 유동성에 대한 욕망은 애초에 제거된다.

세계 국가들의 이상을 모두 잡종 교배한 이러한 철학은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주장한 계급사회와 공리주의적 “행복”의 개념에 모태를 두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성이 개인의 궁극적 표현으로 팔리는 강도를 감안하면 국가 차원의 무조건적인 쾌락 장려는 반직관적이라고 보는 평론가들도 있지만, 금기와 번식에서 풀려난 성은 그 감정적 중요성을 뒤흔들고, 국가 권력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사적인 유대를 제거하는 데 도구가 되어 줄 뿐이다.



결말에서 우리가 “성인 취미”라고 부르는 성과 약물의 무분별한 배양은 이러한 것들을 완전히 무해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멋진 신세계』의 순진한 비판자들에게, 질서란 어차피 상품과 서비스의 조직화된 소비로 성문화된 하나의 끝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야망을 완전히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신념이야말로 세계의 독자들로 하여금 몸서리를 치게 하는 인식일는지도 모른다. 1932년경 세계는 과학의 발전이 사람들의 소비 욕구를 충족시킬 만한 상품의 대량 생산으로 유사 이래 최고의 풍요를 누릴 때다. 정치적으로나, 국가 간 이해 관계에 얽힌 국가의 불안정, 지나친 소비 시대의 부작용 등이 겹쳐 세계 대공황을 가져온 미국 대공황 시대이기도 하다. 최고도화된 과학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세계였다는 말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소설 속에서 인간은 다섯 계급으로 나뉘어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듯 컨베이어 벨트 속 유리병에서 수정되어 태어난다. 대량 생산-대량 소비 시대를 풍자하고 있다. 특히 사랑, 유대와 같은 감정은 오히려 불결하며 본능적 쾌락과 유희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청결하고 살균된 이 세계는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라는 설정은 유토피아란 이 세상에 없는 상상의 세계란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다. 『멋진 신세계』란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를 그린 것이다. 

『멋진 신세계』는 같은 영국 출신의 소설가 조지 오웰의 『1984』와 함께 디스토피아 양대 고전으로 꼽힌다. 『멋진 신세계』는 풍요로운 자본주의 세계의 무분별한 향락과 사치 등 사회적 관점의 소설인데 비해 『1984』는 공산주의 체제의 국가 권력의 전체주의적 지배 양상을 비판적으로 드러낸 정치적 풍자 소설이다. 『1984』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서방 국가들의 새로운 정치적 적으로 떠오른 나치사회주의 체제의 스탈린의 구 소련을 중심으로 한 국가들과의 냉전 분위기 속에서 출판 후 1년 사이에 영국과 미국에서만 약 40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이후 세계 각국에서 잇달아 번역 출판되었다. 따라서 반공 작품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체제를 불문하고 당시의 사회 및 그 연장으로서의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전체주의적 정신풍토를 경고한 작품으로 평가되면서 고전으로 정착했다.



『멋진 신세계』 속의 아이들은 인공수정으로 태어나 유리병 속에서 보육되고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들의 세계는 지능의 우열만으로 장래의 직업과 지위가 결정된다. 과학적 장치에 의하여 개인은 할당된 역할을 자동적으로 수행하도록 규정되고, 고민이나 불안은 정제된 신경안정제로 해소된다. 이에 옛 문명을 보존하고 있는 나라에서 온 야만인은 이러한 문명국에서 살 수 없어 자살하고 만다.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소설이 품고 있는 의미는 크다.

우리는 모두가 똑같이 자유롭고 행복한 세계를 꿈꾼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를 보여 준다. 고난과 슬픔은 없다. 사람들은 행복하고 원하는 것은 뭐든 얻을 수 있으며, 얻을 수 없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고 병에도 걸리지 않으며 그 누구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계이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자면 인간 개개인의 개성과 인간성은 배제된 상태다. 책임 없는 쾌락만이 가득하며 호기심은 말살되었다.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고 사유하지 않는다. 마땅히 따르도록 훈련된 것 외에는 사실상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하도록 길들어진 이들은, 자신들이 자유로우며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믿는다.

이 책 그래픽 노블 『멋진 신세계』는 이 행복하고 멋진 신세계의 단면을 잘라 독자들의 눈앞에 들이밀어 새로운 느낌으로 다시 읽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렇게 잘린 ‘멋진 신세계’의 단면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와 지극히 닮았다. 세뇌하듯 도시 곳곳에서 계속해서 보여 주는 ‘모두가 행복하고 모두가 서로를 공유한다’는 내용의 홀로그램이, 이모지와 SNS의 도상이 화려하고 청결한 도시와 어우러진다. 프레드 포드햄의 각색과 연출은 ‘기술의 발전에 의한 인간성의 상실을 경고하는’ 멋진 신세계의 주제를 직설적으로 보여 준다. 원작보다 직관적인, 그러나 더 날카롭고 강렬한 색채가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듯 우리의 마음에도 물결처럼 번진다고 출판사 측은 소개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울까? 인간성이 말살되어 가는 시대에 인간은 어느 만큼 인간일까? 과연 우리는 안정이라는 이름하에 인간성이 말살된 ‘멋진 신세계’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야만인’의 세계에 살고 있는가. 끊임없이 투쟁하고 사유하기 위해 읽어야 할 필수 고전을 그래픽 노블을 통해 더 쉽고 강렬하게 접한 것은 독서의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독자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번역판)를 두어 번 읽었지만' 그래픽 노블'로 출간된 『멋진 신세계』는 처음이다. 한마디로 그림으로 『멋진 신세계』를 본다는 것은 읽고 상상하는 것과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무엇보다 강력한 느낌은 디스토피아 사회의 적나라한 치부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았다'는 느낌이다. 다행히 원작 『멋진 신세계』를 읽은 지 꽤 오래됐기에 강렬한 인상이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줄거리는 그대로 기억되었기에 가독력은 더 높아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만화 안의 글의 내용보다 인물의 말이나 표정, 배경 등에 눈이 더 자주 가는 여유가 있었기에 더 강렬한 인상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독자가 인터넷, 디지털 영상 시대를 살아오면서 시각적 이미지나 동영상에 익숙해졌기에 일어난 현상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원인이 작용했던 독자에게는 신선하고 강렬한 느낌으로 원작이 표현하는 디스토피아의 세상을 잘 표현한 그래픽 노블로 읽힌다. 

독자는 십여 년 전에 우연히 〈가타카〉(1997)란 영화를 발견하고 본 적이 있다. 영화 파일 사이트에서 발견해 본 것이어서 기억에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그 영화를 보는 동안 몇 군데에서 『멋진 신세계』를 떠올린 적이 있다. 기억에 따라 여기에 몇 줄 적으려 위키백과를 찾아 영화 소개를 받았다. 이에 따르면 가상의 미래 세계에서 인간은 모두 인공수정으로 태어난다. 정상적인 성관계를 통해 아이를 낳는 것을 이 세계에서는 아주 부도덕한 행위로 여긴다. 인간은 거대한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하나의 부품으로 수정 단계에서부터 국가의 관리 감독을 받는다. 앞으로 해야 할 역할에 따라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의 다섯 계급으로 분류되는데, 알파는 사회 지도층에 속하는 엘리트, 베타는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중산층, 감마는 하류층 그리고 델타와 엡실론은 몇 가지 유전자 타입을 가지고 양산되는 단순노동 담당자들이다. 이렇게 수정 단계에서부터 계급이 정해진 인간은 태아 상태에서부터 자신의 계급에 맞는 생각과 능력을 갖도록 철저히 세뇌교육을 받는다. 여러 가지 면에서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연상시킨다.



독자가 집에 가지고 있는 소담출판사 간 『멋진 신세계』(2015)에서 한 대목을 여기에 인용한다.  

“하지만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사실상 당신은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셈이군요.” 무스타파 몬드가 말했다.

야만인이 도전적으로 말했다.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늙고 추악해지고 성 불능이 되는 권리와 매독과 암에 시달리는 권리와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 고생하는 권리와 이(?)투성이가 되는 권리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살아갈 권리와 장티푸스를 앓을 권리와 온갖 종류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할 권리는 물론이겠고요.”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런 것들을 모두 요구합니다.” 마침내 야만인이 말했다.(p.362~363)


원저 :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광범위한 지식뿐 아니라 뛰어나고도 예리한 지성과 우아한 문체에 때로는 오만하고 냉소적인 유머 감각으로 유명한 영국 출신의 소설가이자 비평가. 1894년 7월 26일 서리 지방 고달밍에서 토머스 헉슬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이튼 칼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했다. 지적 정보와 함께 재치와 풍자로 가득 찬 다양한 방면의 저술 활동으로 유명한 헉슬리는 20세기 관념소설의 큰 줄기를 이룬 대표적 작가다. 소설가로서 널리 알려지기는 했으나 그 외에도 수필, 전기, 희곡, 시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멋진 신세계』는 그가 1932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한 미래 과학 문명의 세계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야만인 청년을 통해 두 세계, 즉 유토피아 세계와 원시적인 세계를 제시한 작품으로 문명 비판적 풍자와 도덕적 교훈이 잘 맞물려 현대 문명사회를 희화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진보주의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1958년, 『멋진 신세계』의 예언적 주제들을 심도 있게 검토한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를 발표했다. 활동 후반기에는 힌두 철학과 신비주의에 깊이 끌렸으며 이 경향이 작품들에 반영되었다. 미국에 정착해서 살다가 1963년 11월 22일 캘리포니아에서 사망했다.

1916년 시집 『불타는 수레바퀴』를 출간한 이래 몇 권의 시집을 더 냈으나, 1921년 『크롬 옐로우』가 인정을 받은 후부터 일생동안 소설 창작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그의 대표작이라고 여겨지는 『연애대위법』(1928)은 다양한 1920년대 지식인들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이 소설로 그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이 밖에도 과학문명에 지배되어 가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이 돋보이는 『멋진 신세계』(1932), 열여덟 살 때 완전히 실명했다가 차차 시력을 회복한 경험을 바탕으로 평화운동을 추구하는 작가 자신을 그린 『가자에서 눈이 멀어』(1936)를 발표했다. 이는 헉슬리의 ‘후기파’ 성향을 지닌 첫 소설로서, 그의 작품 세계에서 분기점 노릇을 한다. 또한 폭력의 부정을 역설한 『목적과 수단』(1937), 제3차 세계대전을 가상해서 쓴 『원숭이와 본질』(1948) 등의 저서가 있다.

또 1945년 《영원의 철학》을 통해 그때까지 서구 지성사에 전해오던 ‘영원의 철학’이라는 개념을 핵심적으로 통합하여 종교와 영성에 대한 이해를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주요작품으로는 『어릿광대의 춤(Antic Hay)』, 『하찮은 이야기(Those Barren Leaves)』, 『연애대위법(Point Counter Point)』,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가자에서 눈이 멀어(Eyeless in Gaza)』, 『목적과 수단(Ends and Means)』, 『원숭이와 본질(Ape and Essence)』, 『루당의 악마(The Devils of Loudun)』, 『천재와 여신(The Genius and the Goddess)』, 『아일랜드(Island)』 등이 있다.


글그림 : 프레드 포드햄


1985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대학을 졸업한 후 화가와 강사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그는 우연히 이란 출신 만화가이자 감독인 마르잔 사트라피의 만화를 본 이후부터 일러스트레이터의 꿈을 키우게 됐다. “가볍고 재미있으면서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라고 말한 그는 현재도 [가디언], [피닉스] 등을 통해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그린 책으로는 『해 질 녘』, 『존 블레이크의 모험』 등이 있다.


역자 : 문형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주립 대학교에서 연주학과 실용음악을, 노스텍사스 대학교에서 연주학과 서양종교학을 공부했다. 미국에서 11년간 거주하며 플런트, 이스트랜싱, 달라스 지역의 한국학교에서 강사 및 통번역가로 활동하였으며 현재는 숭의여자대학교 공연예술학과 겸임교수로 재직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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