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 : 근현대 편 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
이즐라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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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철학을 뜻하는 영어 'philosophy'는 그리스어의 '필로소피아(philosophia)'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필로는 '사랑하다' '좋아하다'라는 뜻의 접두사이고, 소피아는 '지혜'라는 뜻이다. 필로소피아는 지(知)를 사랑하는 것, 즉 '애지(愛知)의 학문'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한자로 쓰는 '哲學'의 '哲'이라는 글자도 '賢(어질다)' 또는 '知(알다)'와 같은 뜻이라고 고등학교에서 배웠다. 이처럼 철학이란 글자의 뜻으로 보아서도 단순히 '지'를 사랑한다는 것일 뿐, 그것만으로는 아직 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인지 알 수 없다. 철학 이외의 학문은 대부분 명칭에서 내용을 알 수 있다. 이름만으로는 그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는 학문은 독자가 알기로는 없는 듯하다. 독자의 부족한 지식의 범위 내에서 판단하자면 유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제학이라고 하면 경제현상에 관해서 연구하는 학문이고, 물리학이라고 하면 물리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경제학이나 물리학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그것이 무엇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문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철학의 경우는 그 이름만 듣고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이름을 붙였을까? 많은 백과사전은 철학이라는 학문의 대상이 결코 일정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풀이한다.

무엇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문인지도 모른 채 시작한다면 학문은 어려울 것이다. 대체적으로 구체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학문은 과학·수학 등이고 그렇지 않고 인간의 삶이나 삶의 지혜에 대해 공부하는 학문은 철학 혹은 인문학이라고 표현하지만, 그것마저도 정확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철학은 어렵다"라는 인식은 고대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를 테면 '나'는 누구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인간은 '생각'을 통해 알아내려 했다. 과학적인 인식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고대에도 자연과학이라는 연구와 학자가 있었다고 한다. 자연 현상에 대한 공부의 이유는 인간이 먹는 식량 수확과, 자연 재해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해와 달, 별, 그리고 비와 바람 등에 대한 연구가 벼와 밀 등의 수확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어서일 것이다.



이런 자연 과학에 비해 철학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무엇을 위해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앞서 언급한 대로 인간, 삶, 지혜 등에 대한 공부는 뚜렷하게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데도 많은 학자들은 손에 잡히지 않는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평생을 생각하고 연구했을까? 그리고 수천 년 간 철학은 이어져 오고 있다. 오늘날 우리 인간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학문의 두 가지 분야를 독자에게 꼽으라고 말하면, 독자는 과학과 인문학을 꼽을 것이다. 여기에서 과학은 기본적으로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 우주과학, 의학 등이 해당되고, 인문학은 철학, 문학, 역사학 등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인식이 달라졌지만 지난 세기 우리 산업화 시대에는 철학이나 역사학, 인문학은 푸대접이었다. 산업화에는 문과보다는 이과, 인문학보다는 경제학이나 공학 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적 요구가 이런 상황이니 대학 역시 인문학보다는 공학이나 경제학과 관련된 학과가 훨씬 많았다. 대학 졸업하면 바로 사회에서 이용할 수 있는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추세는 서양 문명,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에 자연스럽게 미국의 학문으로부터 영향 받은 바가 크다. 미국의 학문도 사실 모두 유럽의 문명을 그대로 답습했다.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서두가 길어진다. 이 책 『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근현대편)은 우리가 어렵다고 인식하고 있는 철학과 철학자들의 생애를 바탕으로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쓰인 책이다. 표제어가 받아들이기엔 거리낌이 있다. '지적 허영'이라는 말 때문이다. 저자 입장에서 겸손한 표현을 한 것이겠지만 자칫 철학이라는 학문이 지적 허영을 채우기 위한 학문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철학은 오히려 지적 내실을 기하는 학문이지, 결코 허영심을 채우는 학문은 아니기에 그렇다. 독자도 철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이런 책이 나오면 관심을 먼저 갖는다. 쉽게 설명이 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적 허영심을 채우려고 하는 학문은 아닌 것이다. 만약 그런 인식으로 철학 공부를 한다면 어쩌면 철학의 문앞에 다다르기도 전에 돌아설 것이다. 다만 철학의 체계를 배우기엔 이 책처럼 좋은 책도 드물 것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철학도 학문으로 주욱 이어져 왔기에 분명히 흐름이 있을 터, 그 흐름을 알기에는 그림을 보며 배우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가 작용한 때문이다.



철학책은 문자로 된 책을 대해서는 홀로 공부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철학사를 공부하려 하다가는 고대 철학의 범주에도 벗어나기 전에 어쩌면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안다는 것은 모순적 행위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안다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도 내 생각을 알고 있다는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전제가 모순된다면 평생 공부해도 지혜에 다다르기에는 어림없을 터다. 이럴 때 이 책이 필요성이 커진다. 이번 출간된 책은 '근현대편' 개정판이다. 이전에 고대·중세편에서 18명의 철학자들을 먼저 다뤘다. 이번 근현대편에서는 21명의 철학자들이 나온다. 저자 이즐라는 자신이 철학자라고 고집하지 않는다. 오히려 철학 무용론을 주장한다는 분이다. 그런데 어떻게 철학 책을 내게 됐을까? 

저자는 ‘책을 읽으면 금세 잊어버리는데, 독서나 지식 같은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라는 의문을 품고 ‘우리 삶에 철학이 쓸모 있을까’ 하는 고민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철학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고 깨닫게 됐다. 저자는 이 책을 읽고 난 뒤 철학자의 사상이 기억나지 않거나, 조금만 읽다가 책을 덮어버리게 되더라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읽는 행위 자체가, 지식을 만나고 지성을 채우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허영심 가득한 독서라도, 나만의 의미를 길어 낼 수 있다는 이유다. 정답 없는 사유가 삶과 인간, 세상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해준다고 저자는 믿는다고 밝힌다. 저자는 색다른 인문학, 뭔가 다른 철학책을 원한다면 『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으로 시작해도 좋다고 자신 있게 내민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관련 책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사다가 읽었다고 책 뒷 부분 〈작가의 말〉에서 털어놓는다. 다 읽지도 않을(못할) 책을 잔뜩 샀다. 책을 쓴다는 이유로. 그 자체로 허영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에 책이 많으면 누가 자신을 판단할 때 '지식인' 혹은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주기를 바라면 그것은 '허영심' 맞다. 책을 많이 사는 것과 많이 읽는 것은 다르다. 의미도 다르고 동기도 다르다. 읽지 않을 것을 알고 누군가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허영심에 다름 아니다. 앞에 '지적(知的)'이란 수식어를 붙여도 허영심엔 변함 없다. 그러나 책을 쓰기 위해 읽기도 하고, 인용도 한다면 그것은 지적 탐구심이지 지적 허영심은 아닐 터, 저자의 행위는 지적 탐구라고 독자는 말하고 싶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근현대 서양 철학자 21명이 등장한다. 독자의 빈약한 지식으로는 21명 가운데에도 모르는 철학자가 있지만 아무튼 대표적 철학자들이 주로 쓰였을 것이다. 유명한 철학자들은 깊은 사유도 있겠지만 그것을 책으로 남겨야 그의 철학을 이해하게 된다. 쉽게 표현하면 알려지게 된다. 책이 아니면 누가 무슨 철학을 하고 어떤 사람인가를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책만이 오롯이 그의 철학이나 사유를 담아낼 그릇이었다. 오늘날엔 영상이나 기타 다른 방법으로 남길 수 있지만 근대라는 서양 세계에는 책이 가장 유용하고 좋은 전달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그의 사유의 내용은 무엇인지 모두 저서로 남은 것이다. 가끔은 강연 자체가 남은 것도 있지만 현대, 그것도 최근 21세기에 들어서서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의 21명의 철학자들의 철학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의 유럽 사회의 문명과 사상을 엿볼 수도 있다. 또 그들의 생애에 대해 연구하면 어쩌면 그의 철학의 원천과 원동력을 추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21명의 철학자, 22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 명이 각 한 장을 차지하고 있다. 22장이 된 것은 칸트가 유일하게 2개 장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각 장의 제목은 철학자의 대표 사상, 또는 철학의 성격 등을 내포하고 있다.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을 독자는 권유하고 싶다.

1장 「철학책은 왜 읽는 걸까?」-르네 데카르트, 2장 「어떤 철학자를 가장 좋아하세요?」-바뤼흐 스피노자, 3장 「낙관주의자, 그리고 비관주의자」-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4장 「인식과 존재의 상관관계」-조지 버클리, 5장 「관용에 관하여」-볼테르, 6장 「욕망과 현실 사이」-데이비드 흄, 7장 「여긴 어디? 나는 누구?」-장 자크 루소, 8장 「나는 내가 천재인 줄 알았다」-임마누엘 칸트 Ⅰ, 9장 「먼저 인간이 되어라」-임마누엘 칸트 Ⅱ, 10장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게오르크 헤겔, 11장 「별은 어둠 속에서 빛난다」-아르투어 쇼펜하우어, 12장 「이성에게 자유를, 감성에게 포용을」-존 스튜어트 밀, 13장 「왜, 아직도 마르크스를 찾을까?」-카를 마르크스, 14장 「철학도 예술일 수 있을까?」-프리드리히 니체, 15장 「철학의 쓸모」-존 듀이, 16장 「언어가 뭐기에」-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17장 「형이상학에 대한 형이상학적 끌림」-마르틴 하이데거, 18장 「실수해도 괜찮아」-칼 포퍼, 19장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뭘까」-장 폴 사르트르, 20장 「악이란 무엇인가?」-한나 아렌트, 21장 「아는 것이 힘? 아는 것이 힘!」-미셸 푸코, 22장 「나는 나를 해체할 권리가 있다」-자크 데리다 등이다.



철학에 관심을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독자로서는 이 책에 나온 철학자들의 사상이 대부분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절실한 말들이어서 놀랍다. 대부분의 철학자 이름은 수없이 들어 알고 있지만 처음 듣는 이름도 있다. 조지 버클리와 자크 데리다이다. 책에 따르면 조지 버클리는 영국의 철학자이자 성직자이다. 17∼18세기 영국 고전경험론을 대표한다. 신흥 자연과학의 유물론과 동시대의 무신론·이신론·자유사상에 대하여 그리스도교를 변호하는 호교론(護敎論)에 있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인지원리론(1710)』이 있으며, 그후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복음(福音)을 전하기 위하여 버뮤다섬[島]에 이상적인 칼리지를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아메리카로 건너갔으나 그 계획은 실패했다. 또 카뮈와 사르트르의 영향을 받으며 철학을 공부하는 동안에 반유태주의와 유태 민족주의에 대해 똑같이 반감을 갖게 된 자크 데리다는 자신의 소속 또는 자기 동일성으로 인한 실존적 고통은 ‘고유한 것의 해체’라는 철학적 형태를 취했다. 주저는 『기하학의 기원』(1962)다. 두 사람은 독자가 잘 알지 못하는 철학자여서 이 책을 읽으며 수확한 철학자와 이들의 철학 사상이다. 

독자의 관심을 가장 끄는 철학자는 카를 마르크스다. 독자가 대학 다닐 때만 하더라도 카를 마르크스는 금지인물이었고, 그의 저서는 금서였다. 공산주의 혁명 사상을 이론적으로 확립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북한과 이념적 차이로 분단된 후 전쟁과 냉전 시대를 거쳐 아직까지 공산주의에 대해 비체험적 두려움을 갖고 있는 독자로서는 구 소련이 붕괴되며 무너질 줄 알았던 공산주의 체제가 세력을 많이 잃었지만 아직도 굳건하고 냉전의 연장선 상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대척점에 서 있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의 중요한 철학자이고 그의 저서는 유효하다고 하는 데서 다시 관심권 안에 두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카를 마르크스를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세상을 바꾸려 했던 열성적 혁명가"로서 소개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설문조사를 통해 지난 1,000년 동안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책으로 『자본론』을,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마르크스를 꼽은 적이 있다. 그림 속 화자는 "마르크스가 그렇게 대단해?라고 생각하지만 아인슈타인, 뉴턴, 다윈, 칸트를 제치고 수많은 사람이 마르크스를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생각에 잠긴다. 그림 속 화자는 "사르트르의 말처럼 마르크스주의를 낳은 상황이 극복되지 않았기 때문일까?라고 고뇌하는 모습을 보인다.



저자는 그림과 말풍선, 지문을 통해 마르크스의 출생과 학업, 그리고 철학 공부, 철학 동지(헤겔) 등을 설명한다. 그의 철학적 사유는 헤겔과 맥락이 같고, 〈유물론〉을 제시한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의 견해에 동의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인간 중심의 포이어바흐를 지지하면서도,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사변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 행동하는 인간의 실천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마르크스는 이론의 힘과 현실성을 실천의 문제로 보았고, 자신의 사상을 행동하는 철학으로 정립시킨다. 이후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과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비판적으로 종합하여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역사관을 제시한다. 그는 〈공산당 선언〉에서 "인간의 역사란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마르크스는 그림 속 말풍선에서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책의 지문에 따르면 '생산력'은 사회의 물질적 발전 정도로 생산 수단에 따른 생산 수준을 뜻하고, '생산관계'는 생산 수단의 소유관계를 비롯하여 생산 과정에서 맺어지는 모든 관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계급은 생산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주인과 노예, 귀족과 농노,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특정 시대의 사회는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일치한다. 하지만 생산력은 도구와 기술의 발전으로 나날이 증가하는 데 비해, 생산관계는 구조적으로 조직화되어 굳어져 있다. 이러한 모순이 심화되어 임계점에 다다르면 생산관계에서 변화가 일어나 다음 시대의 역사적 단계로 넘어간다는 이론이다. 마르크스는 분업을 통한 생산력의 발전이 중세 체제를 붕괴시키고 근대 자본주의를 불러왔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마르크스는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비롯한 물질적, 경제적 구조를 토대(하부구조)로 보았고, 그 위에 위치한 정치, 문화, 종교, 법, 예술은 상부구조로서, 하부구조에 의해 규정된다고 생각했다. 즉 마르크스의 생각은 인간의 의식이 사회적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이처럼 마르크스의 이론의 초기부터 결론에 이르는 지문과 그림을 통해 설명해준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저자는 다시 처음의 생각으로 빠져든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이 마르크스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그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냉철한 분석 때문이라기보다 고통받는 사람을 위해 불꽃처럼 투쟁했던 마르크스의 뜨거움 마음에 인간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은 아닐까?하고 깊은 생각에 빠진다.


저자 : 이즐라


쓸데없이 이런저런 것이 궁금해서, 끌리는 대로 이런저런 책을 읽고, 조심스럽게 이런저런 만화를 그린다. 최근에는 뇌의 신비에 깊이 빠졌다. 진작 빠질 걸 그랬다. 내 뇌는 어딘가에 빠지는 걸 좋아하나 보다. 또 무언가에 빠지고 싶다. 지은 책으로는 『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 『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 - 고대·중세 편』이 있다.

leezla@naver.com

https://www.instagram.com/chosik_leezla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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