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원, 은, 원
한차현.김철웅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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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작품 『은원, 은, 원』은 두 가지 점에서 미스터리하다. 하나는 소설 작품을 두 사람이 공동집필하는 게 가능한가?다. 독자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소설 한 작품을 공동 집필했다고 밝힌 것은 여간해선 드문 일이다. 독자 기억으로는 2년 전쯤 미국의 소설 작품을 형제 공동 이름으로 발표한 것을 본 적이 있을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논문이나 논저, 연구서 등은 공동 저자가 가능하지만 소설 작품은 허구를 바탕으로 사실처럼 형상화해 보여주는 것인데 허구(상상)가 공동일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서다. 부부라 할지라도 시나 소설 등 문예 작품 공동 저자로 명기한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모든 작품의 사실 여부는 독자가 모르지만···. 또 하나는 소설 내용처럼 진짜 인간(이런 표현은 쓰기 싫지만 복제 인간에 반대되는 개념을 말할 땐 불가피하다)과 복제 인간과의 사랑 여부다. 복제 인간이라도 피복제된 사람의 기억이나 감정, 이성적 판단이 다르지 않을까? 외모나 혈액형 등은 같을 수 있어도 감정이나 기억을 다스리는 뇌의 복제도 가능한가?라는 의문에 부닥친다. 물론 이 미스터리도 독자의 과학·의학 지식의 부족에서 비롯된 의문이니 독자를 비난한다 해도 할 말은 없다. 독자의 의문에 "소설에서는 가능한 일이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주장하며 독자의 의문을 일축한다면 그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소설가 한차현과 영화인 김철웅이 공동 집필한 'SF 연애소설'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작품 『은원, 은, 원』의 남여 주인공들이 처음 서로를 알게 되는 공간은 물류센터의 야간 아르바이트 현장이다. 남자 주인공 차연은 홀로 사는 반지하 방을 나와 두 시간을 전철과 버스로 달려 일터 현장에 도착한다. 산더미처럼 출력된 송장을 일일이 확인한 뒤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물품 중 해당 품목을 ‘피킹’하는 시급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스물아홉 살의 청년이다. 

그 앞에 나타난 여자 은원은 한 인터넷쇼핑몰에 소속된 서른다섯 살의 팀장이다. 신자유주의와 플랫폼노동 시대의 일면을 응축한 공간에서 시작되는 그들의 소소하고 잔잔한 연애담은 순진한 느낌마저 든다. 저녁시간에 구내식당에 가는 대신 직접 싸온 바나나를 까먹으며 휴게실에서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던 그에게 다가온 은원은 차연이 무심히 건넨 바나나에 은원은 도시락으로, 이후엔 즉석 식품 세트로 화답한다. 두 사람은 인연을 이어가던 중, 은원이 자신의 마음 한구석을 점차 잠식해가는 것을 느끼던 차연은 용기를 끌어모아 그녀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어느 날 은원의 갑작스러운 실종으로 소설은 기이한 미스터리로 변신한다. 그리고 차연이 은원을 되찾고서 은원의 속사정이, 그녀의 정체가 드러난 뒤 『은원, 은, 원』은 누아르 색채를 띤 SF 분야로 확장된다. 이 책에 대해 출판사 측은 소설가 한차현은 그의 열다섯 번째 장편소설 『은원, 은, 원』을 김철웅 감독과 공동 기획·집필함으로써 한 편의 스타일리시한 영화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몰입도 높은 서사를 보여준다고 소개한다. 

출판사에 따르면 한차현은 20년 넘게 소설을 쓰는 동안, 혁명을 꿈꾸는 유전자합성인간, 외계인으로 변신하는 교회 목사, 남성용 정조대에 갇혀 고생하는 여관 여행자, 자신의 허벅지살을 도려내어 그것으로 만두를 만들어 파는 분식점 사장, 가글액으로 외계 좀비를 물리치는 고등학생 등 독특한 인물들을 형상화해온 작가다. 이번 출간한 소설 『은원, 은, 원』에서도 첨단 과학기술에 기반한 인물 ‘은원’을 내세웠다. 또 다른 주인공이자 이야기의 중심인 ‘차연’ 역시 한차현의 소설에 반복해 등장하는 이름으로, “슬프고 음울한”, 그리고 “절절한”(작가의 말) 이 소설을 힘 있게 이끌어가는 캐릭터로 빛난다. 첨단 기술을 소재로 하기에 기존의 연애소설과 결을 달리하는 이 소설은 존재의 근원, 관계의 근원, 끌림의 근원에 질문을 제기하는 작품이다.(독자는 비로소 이 소설의 표제어에 대해 이해한다) 마치 평행우주를 보는 것처럼 과거, 현재, 미래를 섞어놓은 입체적 시간 구성은 이 작품을 더욱 역동적으로 만든다고 출판사 측은 설명한다.

두 사람은 만난 지 600일 기념으로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뒤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은원은 다니던 회사에도 출근하지 않았고, 은원이 살았던 집으로 찾아간 차연의 눈에는 은원의 일상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갑자기 은원이 사라진 것이다. 차연은 은원의 유일한 친구 성이연을 찾아갔다가 의외의 인물을 만난다. 그리고 모든 기억을 잃은 은원을 병원에서 다시 마주친다.



차연은 은원을 찾아다니던 중 만났던 실종수사전담팀 경찰들이 차연을 위로하느라 했던 말을 기억한다. “대한민국은 실종 공화국이에요. 시간당 18세 미만 미성년자 3명, 성인 5.3명이 실종이나 가출로 신고 접수됩니다. 매일 미성년자 71명과 성인 127명의 실종신고가 발생한다는 것이지요. (중략) 천만다행으로, 그들 중 거의 95프로가 일주일 안에 실종해제 처리되곤 해요. 결국은 아무 탈 없이 귀가한다는 의미예요. 세상 모든 실종은 세상 사람들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이유를 갖고 있지요. 그러니 너무 걱정 마세요. 제 말씀은, 걱정을 너무 심하게 하지는 마시라는 겁니다.”(p.72)

그러나 차연은 더 우울해진다. 은원에 대해 아는 것이, 누군가 은원에 대해 물었을 때 대답할 것들이 뜻밖에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600일. 햇수로 3년. 그 누구보다 은원에 대해 많이 이해하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은원은 정말 은원일까. 기억만이 사라졌을 뿐 예전 은원과 같은 사람일까. 차연이 혼란스럽다. 또는 두렵다. 은원을 다시 만난 이후로 하루 또 하루, 어느 결에 나쁜 풀처럼 싹트고 자라고 번진 혼란이다. 곁에서 걱정해주고 격려해주는 친구들이 눈치챌까 봐 혼란스러운 두려움이다. 차이. 보이지 않는 차이. 은원을 다시 만나, 많이 반갑고 조금 서먹한 속에서, 어딘지 이상하다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p.133)

이런 부분은 혼란은 물론, 섬뜩함마저 풍긴다. 독자들에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만 인공지능(AI), 로봇, 더 나아가 복제 인간까지 이르는 상상으로도 공포감을 자아낸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시간, 공간, 질서 등이 한꺼번에 무너지고 차원이 다른 세상으로 자신을 잊은 채 떨어진다는 상상은 죽음의 공포보다 무섭다. 'AI에 지배당하는 인간'의 시대도 끔찍하지만 복제 인간의 세상은 어쩌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산업화 시대 아날로그 감성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갑자기 근미래로 순간 이동하는 듯한 느낌이다. 십여일 후 은원이 나타난다. 그런데 은원에게는 병이 있었다. 〈베르니크 코스타로프 증후군〉이다. 독자로서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다. 베르니크 코스타로프 증후군을 앓으면, 기억상실증이 발병한다고 작품 속에 나와 있다. 뇌신경 이상 등 알 수 없는 이유로 별다른 전조증상 없이 갑자기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해리성 기억상실증이 발생한다고 한다. 은원의 오른손, 검지와 엄지 사이, 초승달과 별 무뉘 타투가 과거와 달라 보인다. 초승달이 커졌고 별의 위치가 다르다. 차연은 혼란스럽고 당황스럽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병에 대해 설명하는 은원의 어머니와 고모. 어머니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인은 언젠가 은원이 보여주었던 폰 사진 속 어느 얼굴을 닮았다. 어머니와 고모가 찾아온다. 아니 연락이 와 만난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은원에게 어느 날 갑자기 개인 고유의 과거 정보들을 대부분 회상 못 하는 해리성 기억상실증이 발병했는데 이 증상이 1년에 한 번 또는 7~8년에 한 번 예고도 없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갑자기 정신을 잃었죠. 기절한 채로, 계속 잠들어 있다가, 사흘 전에 의식이 돌아왔어요." 두 사람은 은원의 첫 발병 이야기부터 가장 최근의 일까지 자세히 들려준다. 차연은 기억을 되돌려 은원과 제주 다녀오던 날 은원의 미심쩍은 행동을 기억해낸다. 작은 변화거리가 필름 돌아가듯 머리를 스치자 '전조 증상'이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은원의 고모가 다시 묻는다. “은원이가 행복하기를 바라나요. 장차 어떠한 경우건, 은원이를 여전히 은원이로서 이해해주고 아껴줄 수 있나요." 차연은 다시 기억을 잃은 은원이 일상을 되찾는 것을 기꺼이 돕겠다고 나선다. 병원에 있는 은원을 다시 만난 차연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은원을 다시 만나 두 사람이 함께했던 과거에 대해 하나하나 찬찬히 들려준다. 그렇게 새로운 시간을 쌓아가고, 공유된 추억을 만들어간다.



이후의 줄거리는 이 작품이 소설이기에 더 이상 쓰기에는 스포일러가 될 듯하다. 줄거리는 줄이고, 대신 소설의 성격과 주제에 대해 출판사 측의 말을 빌어 몇 마디 덧붙인다. "소설 『은원, 은, 원』은 잃어버린 사람, 잃어버린 기억,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아 시간을 넘나들며 방황하는 이들의 초상을 보여준다. 복제인간이라는 SF 소재가 이 작품에서는, 우리와 먼 시간 공간이 아닌 바로 지금 이곳에서 현실적으로 펼쳐진다. 잃어버린 것, 사라진 것을 되찾는 데 결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은 혼란과 두려움 가운데 남은 기억의 힘이다. 그 힘으로, 사라진 연인의 빈자리를 버텨내고, 사라진 연인의 흔적을 추적하고, 사라진 연인의 기억이 되살아나도록 격려한다. 끄떡없이 매몰차고 거대한 줄로만 알았던 비가시권의 권력도, 그 휘하의 사람들도 기억의 서사가 불러온 감동의 물결에 휩싸인다. 그리고 유일한 존재라고 믿었던 연인을 실제로 상실했음에도, 다시 관계 그려가기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우리가 사랑한 것의 근원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저자 : 한차현


고전적인 서사의 안정감과 신세대다운 위트를 이색적으로 조화시켰다는 평을 받으면서 평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아온 작가다. 1970년 서울 동대문에서 태어났다. 1998년 단편소설 「청계산의 남자」를 발표하며 월간문학 소설부문 신인상(제84회)을 받아 등단했다. 1996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양학부를 졸업하고 출판사, 잡지사 등에서 일했으며,1999년 장편 소설 『괴력들』을 발표한 이후 『여관』 『왼쪽 손목이 시릴 때』『영광 전당포 살인사건』 등 장편 소설과 소설집 『대답해 미친 게 아니라고』『사랑이라니 여름 씨는 미친 게 아닐까』『내가 꾸는 꿈의 잠은 미친 꿈이 잠든 꿈이고 네가 잠든 잠의 꿈은 죽은 잠이 꿈꾼 잠이다』를 줄기차게 써냈다. 젊은 소설가 모임 '작업'의 동인이다. 그 외 소설『슬픔장애재활클리닉』이 있다. 황소자리 O형 개띠. 삶이란 즐거움의 완성임을 20대에 깨달았지만, 평소의 소설 쓰기와 음주 음악 음행이 그 진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아직 불확실한 편이다. "속 편한 놈"이란 소리를 어째 나이 들수록 듣게 되는데, 더 많이 더 깊이 더 천천히 느끼는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할 뿐. 2021년 8월 인왕산이 잡힐 듯 보이는 종로구 옥인동 노란 집에서 아내 문은, 딸 교원과 함께 소설 쓰며 술 마시며 안주 만들며 음악 들으며 영화 보며 화분 키우며 고양이털과 싸우며 대충 잘 사는 중.


저자 : 김철웅


1993년 충무로 촬영부로 상업영화 현장 입문. [하피] 조감독, [예스터데이] 제작팀, [동승] 메이킹 등 다수의 상업영화 스태프 경험. 2010년 시나리오 [꾼]으로 제1회 NHN(네이버) 게임문학상 은상 수상. 2018년 중국 동영상플랫폼 아이치이(愛奇藝, iQIYI) 웹영화 [여의주방] 각본 각색. 그간 13편의 독립(단편)영화를 제작하고 22편의 장편 시나리오를 작업했지만 업계 전문용어로 엎어지거나 주목받지 못함.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연출지부 소속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 그 신분을 숨기며 살고 있다. ‘1분에14타’, ‘MC편도준’ 등의 닉네임으로 영화 관련 커뮤니티나 팟캐스트에 자주 출몰했음. 현재 안양과 상암동을 오가며 여러 가지 빅픽처를 구상 중.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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