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평화론 - 전쟁과 폭력의 시대에 다시 읽는
이문영 지음 / 미래의창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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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톨스토이 평화론』은 명확하게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쓰였다. '왜 평화는 오지 않는가?', 그리고 '왜 지금 톨스토이인가?'이다. 저자 이문영은 「전쟁과 폭력의 시대에 다시 읽는 톨스토이 평화론」이라는 제목의 책의 〈서문〉에서 “러우전쟁 후 많은 강연을 하고 방송에 출연했다. 한국 언론이 말해주지 않는 것, 그래서 우리가 몰랐던 전쟁의 이면을 주로 다뤘다. 전쟁에 대한 반대는 사실에 근거해야 하며, 그럴 때만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집필 취지를 밝히고 있다.

세계사를 통틀어 가장 문제적이고 논쟁적인 인물 중 하나인 톨스토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하 '러우전쟁') 지지자와 반대자 모두 자신의 뜻을 알리는 방편으로 톨스토이를 손에 들었다. 푸틴과 지지자는 톨스토이를 앞세워 전쟁의 권위를 세우려 하고, 비판자는 톨스토이를 내세워 전쟁의 정당성을 허문다. 『전쟁과 평화』가 침략자의 최애 소설인 동시에 반전(反戰)의 확고부동한 기호로 함께 쓰이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전쟁 지지와 반대로 갈라진 톨스토이 후손들은 저마다 '톨스토이의 유산'을 근거로 내밀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저자의 답변은 명확하다. 

"비밀은 '두 톨스토이'에 있다. '우리가 몰랐던 톨스토이' 또는 톨스토이 대 톨스토이의 대결'이라는 이 책의 주제도 이와 관련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그의 생애는 '두 톨스토이'들의 공존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성자 톨스토이 vs 사상가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를 쓴 톨스토이 vs 『부활』의톨스토이, 애국자 톨스토이 vs 아나키스트 톨스토이···. 몇 가지만 추려보아도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낼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이 책의 본문에서 여러 차원의 두 톨스토이를 두루 다루지만, 여기 〈서문〉에서는 애국심을 두고 대결하는 두 톨스토이에 대해 말한다고 밝힌다. 한편 러우전쟁은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본격적으로 침공하면서 발발했다. 이젠 2년 4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다. 이는 제2차 크림반도 전쟁으로 명명된 러우전쟁이 당초 짧은 기간 내에 러시아의 일방적 승리로 일찍 종결되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우크라이나의 선전과 러시아의 연이은 패배와 졸전으로 장기화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러우전쟁이 2014년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합병되었을 때 이미 파국의 씨앗이 뿌려졌음을 감안하면 10년 차로 해도 무방하다. 크림과 전쟁 모두 톨스토이와 이리저리 연이 깊다. 젊은 시절 톨스토이는 피 끓는 애국청년이었다. 그가 조국 수호를 외치며 지원한 대표적 전쟁이 바로 '크림전쟁'이었고, 그를 전국구 스타로 만들어준 소설이 바로 이를 다룬 「세바스토폴 이야기」였다. 소설을 관통하는 주된 파토스는 애국주의로, 이는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을 다룬 『전쟁과 평화』도 마찬가지다. 크림전쟁 당시 영국-프랑스-튀르크 연합군과 싸우던 알렉산드르 2세는 「세바스토폴 이야기」를 번역해 러시아인의 애국심을 널리 유럽에 알리라 명했다. 이와 비슷하게, 히틀러와 싸웠던 2차 세계대전 당시 스탈린은 『전쟁과 평화』를 널리 보급해 러시아 군인의 애국심을 진작시키라는 특명을 내렸다.

반면, 노년의 톨스토이는 전쟁 반대, 병역 거부를 목놓아 외쳤다. 『부활』을 팔아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도왔고, 『전쟁과 평화』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라 도발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톨스토이는 내 나라, 내 민족만 귀히 여기는 '애국심은 곧 전쟁'이며, '만악(萬惡)의 근원인 국가'의 기본 동력으로 생각했다고 저자는설명한다. 1904년에 터진 러일전쟁은 톨스토이의 탈애국, 반국가 사상의 진정성을 시험하는 대사건이었다. 그는 사랑을 실천하는 기독교도와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도를 전쟁터로 내몬 차르와 천황을 매섭게 질타하며, 러시아도 일본도 아닌 민중의 편에서 '무조건적인 전쟁 중단'을 호소했다고 강조한다. 크게 보아 전쟁에 대한 톨스토이의 변화의 방향은 당연히 젊은 톨스토이에서 노년의 톨스토이 쪽으로다. 하지만 톨스토이 인생의 장면 장면, 두 톨스토이는 그렇게 깔끔하게 나뉘지 않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크림전쟁의 톨스토이는 애국과 조국 수호를 강조하면서도 전쟁에 대한 근원적 회의를 감추지 못햇다. 「세바스토폴 이야기」, 『전쟁과 평화』에는 전쟁의 부조리, 그 의미 없는 잔폭에 대한 깊은 환멸과 날 선 통찰이 도처에 존재한다. 한편, 러일전쟁의 톨스토이는 애국주의에 결연히 맞서면서도 자기 조국의 패배에 완전히 무감하지는 못했다. 가장 아끼던 작품인 『전쟁과 평화』에 대한 애착도 죽는 순간까지 온전히 내려놓지 못했다."(p.8)



저자는 이번 러우전쟁이 젊은 톨스토이와 러일전쟁의 늙은 톨스토이 사이의 이러한 공존 또는 대결은 그로부터 150여 년 지나 벌어진 크림합병과 러우전쟁을 둘러싼 현재의 풍경 속에 다시 되풀이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저자의 지적은 톨스토이에 대한 연구자로서의 면모를 함께 보여준다. 2014년 푸틴이 크림을 합병한 당시, 톨스토이의 증손자인 블라디미르 톨스토이는 이를 적극 지지했다는 것. 그는 '150년 전 크림의 세바스토폴 요새에서 러시아를 위해 싸운 톨스토이의 후손으로서 너무 당연한 것 아니냐'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당시 푸틴의 문화 고문이기도 했다. 2022년 러우전쟁을 '집단적 서방'과의 한판 승부로 규정한 푸틴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으로 『전쟁과 평화』를 꼽았고, '2028년을 톨스토이 탄생 200주년으로 기념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침공을 고작 3주 앞둔 때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같은 푸틴의 행위는 전쟁의 부조리를 담아내면서도 애국심에 호소한 전쟁을 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왜곡하는 일로 폄하될 가능성이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그러나 전쟁이 터지자 러시아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톨스토이의 또 다른 증손자 표트르 톨스토이는 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단 사실도 저자는 밝혀냈다.

정반대의 현상도 벌어졌다는 점을 저자는 밝혀내고 있다. 푸틴의 전쟁에 반대하는 러시아인은 너도나도 톨스토이를 손에 들었다. 모스크바 시민 콘스탄틴 골드만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들고 반전 시위를 벌이다 구금되었고, 크라스노다르에 사는 알렉세이 니키틴은 "애국심은 노예근성이다!-레프 톨스토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다 체포되었다고 저자는 전한다. 또 모스크바 시의원 파벨 야릴린, 사업가 올렉 테리파스크는 톨스토이의 러일전쟁 반대 문구를 인용한 SNS 포스팅으로 벌금형을 받거나 기소되었던 사실도 적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 세계에 퍼진 톨스토이의 후손들도 움직였다. 톨스토이의 유지를 받든 자손 중에 앞서 거론한 블라디미르나 표트르 같은 사람만 있을 리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2022년 4월 톨스토이 직계자손 112명이 전쟁 반대 연명 서한 'Peace Now, Stop the War'를 발표하고, 이를 푸틴에게 발송했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톨스토이는 러우전쟁 지지자와 반대자 양편 모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푸틴의 행보는 노년의 톨스토이가 부르짖은 평화와 정확히 대척점에 위치한다고 저자는 전제한 뒤 톨스토이가 살아 있었다면 그에게 불벼락을 내렸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장 전쟁을 멈추라"고 호통치며,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푸틴의 '『전쟁과 평화』 넘버원' 운운에 대해서는 '내 이럴까 봐 쓰레기통에 버리라 한 것 아니더냐'라며 톨스토이가 펄펄 뛰었을 것이라는 표현과 함께 저자의 견해를 밝히기도 한다. 저자가 '전쟁 반대'의 편에서 톨스토이에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런 판단은 독자 개인의 느낌이지만 앞으로도 저자의 글에 관심을 크게 가질 만한 요인을 제공한다. 독자 역시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세대로서 '전쟁은 무조건 반대'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어서다. 

여기서 저자는 톨스토이의 내면의 격렬한 싸움을 이해하는 듯한 말을 한다. "두 톨스토이가 생애 마지막까지 그의 내면에서 격투했다 한들, 당사자에게 그것은 고통이고 한계였다"는 말이다. 젊은 톨스토이를 온전히 비워내는 것, 그것이 참회 이후 절대평화주의를 지향했던 톨스토이의 필생의 과제였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럼에도 두 톨스토이의 족적은 톨스토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러시아 문명 속에 자리 잡았다. 그것도 그 문명을 대표하는 가장 거대하고 가장 강력한 상징으로. 러우전쟁을 둘러싸고 푸틴과 톨스토이가 각기 다른 좌표로, 그러나 러시아 문명이라는 하나의 자장 속에 이어졌다 갈라서기를 거듭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저자는 풀이한다. 

러우전쟁 발발 후 우크라이나 문화부 장관 올렌사드르 트카첸코는 이 전쟁을 '역사와 문화를 둘러싼 문명 전쟁'으로 규정하고, 러시아 문화유산과 완전히 절연할 것을 촉구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우크라이나 작가 협회 펜 우크라이나(PEN Ukraine)는 러시아 책에 대한 전 세계적 보이콧을 호소했다. 톨스토이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우크라이나 교육부는 학교 커리큘럼에서 『전쟁과 평화』를 삭제했고, 톨스토이의 여러 고전이 재활용 파쇄기에 갈려 일회용 컵 홀더와 계란판이 되었다. 키이우 도심의 '톨스토이 광장' 역은 '우크라이나 영웅 광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나라 전역에서 톨스토이 동상이 철거되었다. 저자가 전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의 러시아에 대한 깊은 불신과 증오심이 반영되는 일 같아 뒷맛이 개운치는 않다. 그러나 피침략국 우크라이나 입장은 독자로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다. 피해 당사국으로서 뭔들 못하겠는가.



이 책은 2부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톨스토이와 평화: 성자와 전사 사이〉, 2부 〈톨스토이와 아시아 평화〉이다. 1부에는 1장 「참회와 파문」, 2장 「반국가와 탈애국」, 3장 「톨스토이와 세계평화」, 4장 「The Last Station: 위대한 고통의 인간」으로 구성돼 있다. 이어 2부에는 5장 「톨스토이와 인도」, 6장 「톨스토이와 중국」, 7장 「톨스토이와 일본」, 8장 「톨스토이와 한국」으로 톨스토이가 아시아 각국의 반전, 평화주의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를 살펴본다.

이 책은 이렇게 우리가 몰랐던 톨스토이, 특히 성자 톨스토이와 전사 톨스토이의 대결과 공존을 ‘평화’라는 키워드로 다루고 있다. 독자도 톨스토이를 읽기 전에 이런 사전 정보가 있었다면 그의 작품이 얼마나 큰 고통과 고뇌 속에서 탄생했는지 절절히 느끼며 감동을 더했으리란 뒤늦은 아쉬움도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톨스토이, 즉 불세출의 작가이자, 사랑과 용서, 개인의 도덕적 수양을 설교하는 성자(聖者) 톨스토이 뒷모습은 대문호와 귀족 계급의 엄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탈국가, 탈민족을 외치던 근대의 이단아, 적그리스도라 불릴 정도로 파격적인 신앙을 설파하며 기성 권력과 맹렬히 싸운 전사 톨스토이의 모습은 생경하지만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 잡는다. 다시 그의 작품을 재독, 삼독할 터인데 그때마다 느낌이 다를 것이란 생각에 오히려 설레기도 한다. 전사 톨스토이는 국가로 대표되는 모든 제도화된 폭력의 거부, 정당방위조차 허용하지 않는 견결한 비폭력주의를 주장했다. 이러한 절대평화주의는 전투적이고 ‘불온한’ 평화주의로, 안전한 이상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를 대문호라고 칭하는 이유가 충분하게 납득이 된다.

이 책은 독자에게 성자 톨스토이와 전사 톨스토이의 두 모습을 보여줬다. 두 모습의 톨스토이가 우리가 흔히 비유하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이중인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은 독자들에게 대문호의 자질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대문호 톨스토이는 어느 하나를 제외한 톨스토이가 아니다. 이에 따라 저자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성자 톨스토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평화를 위해 싸운 전사로서의 톨스토이가 부각되고 그의 삶의 의미로 더해져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고 동의한다. 말 그대로 ‘비타협적’으로 싸웠던 톨스토이, 그 결과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파문당하고, 비밀요원에게 끊임없이 감시당하고, 혹독한 검열로 자기 땅에서 어느 책 하나 온전히 출판할 수 없었던 저항자 톨스토이에 대한 이야기로 보완될 필요가 있다. 그 이야기의 출발점은 톨스토이의 지난한 투쟁이 발원하는 지점, 바로 그의 평화사상이다. 저자가 쓴 이 책은 이를 다루고 있다.



2부에서 다룬 아시아 평화와 평화론자에 끼친 영향에서 우리의 작가 춘원 이광수가 등장한다. 또 같은 시기 활동한 일본의 작가들도 몇 명 나온다. 자세히 읽기는 했지만 독자의 이광수에 대한 편견 때문에 여기에 적기는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해 저자가 쓴 부분을 일부 발췌해 옮긴다. 독자들의 양해 바란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에 미친 영향도 있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의 핵심은 이런 법적인 조치들에 대한 거부와 불복종, 그로 인해 초래되는 모든 폭력적 처벌을 감수하는 것이었다. 그 토대에는 ‘오직 신의 법칙만을 따르는 기독교인은 국가가 정한 법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나 ‘악을 악으로 물리쳐서는 안 된다’는 톨스토이의 가르침이 깔려 있다. 이후 간디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시민불복종 운동, 즉 국가법에 대한 비폭력적 저항은 이렇게 톨스토이의 『하느님 나라』에서 얻은 각성으로부터 발화한 것이다.(p.147)


한국 근현대작가를 통틀어 춘원 이광수만큼 러시아와 인연이 깊은 사람도 드물다. 그는 문학비평가 김윤식이 ‘히스테리아 시베리아카(hysteria siberiaca)’라 부른, 병적일 정도의 러시아 사랑을 평생 간직했다. 『유정』이 보여주듯이 시베리아를 창작의 모티프로 자주 활용했으며, 작품 번역이 가능할 정도의 러시아어를 구사했다고 한다. 러시아 망명자들의 도시 하얼빈이나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랑하고, 1913년에서 1914년 사이 시베리아 바이칼주의 치타공화국에서 7개월간 살기도 했다. 러시아와의 이런 인연은 바로 이광수의 지극한 톨스토이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p.233)


누구도 감히 저항할 수 없는 강고한 국가주의, 애국주의, 민족주의의 흐름 속에 홀로 반국가, 반애국, 탈민족을 외치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일을 감행하는 것, 그 결과를 감당하는 것, 양자 모두 도저한 윤리적 결단이다. 헤아릴 수 없는 논란과 의혹과 박해 속에서, 무엇보다 고통 속에서 톨스토이는 둘을 모두 해냈다.(p.249)


저자 : 이문영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 노어노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지은 책으로 『톨스토이와 평화』 『평화를 만든 사람들: 노벨평화상 21』(공저), 『폭력이란 무엇인가: 기원과 구조』(공저), 『러시아학 입문』(공저), 『중앙아시아의 문명과 반(反)문명』(공저)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바흐찐의 대화주의와 contradictio in adjecto」, 「Русская массовая музыка, русский рок и их освоение в Корее(러시아 대중음악과 록, 그리고 한국에서 수용상황 연구)」, 「포스트-소비에트 시기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관계」 외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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