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의 인생 수업
이시형 지음 / 특별한서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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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이시형의 인생 수업』의 저자 이시형은 '국민 의사'다. 90세라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그가 에세이를 냈다. 정신과 의사이지만 우리 국민들에게는 '전신과'란 말이 어울린다고 존경 받는 의사다. 그래서 '국민 의사'란 별칭으로 불리우는 것이다. 그가 낸 책은 대개가 치료하는 의사로서보다는 평소 건강을 유지하는 예방에 중점을 두었다. 병은 예방하는 것이 최선의 치료라는 말이 실감나는 부분이다. 잘 모르는 사람이 그를 보면 아마 90세라는 사실을 잘 믿지 않을 듯하다. 그는 타고난 건강 체질이 아니라는데 평생 애쓰고 힘들게 일해 왔는데 건강한 모습은 그가 평소 주장하는 '예방 의학'에 신뢰감을 주기도 한다. 그가 이번에 낸 책은 표제어에 '인생 수업'이란 문구가 있지만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적잖은 위로와 용기를 주기 위해서다. 정신과 의사이자 뇌 과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90년 삶을 지탱해 온 것은 '감사'이고, 살아오면서 만났던 수많은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책의 첫 문장을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살려지고 있다."고 썼다. 삶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기에 자신이 살아가는 것이고, 이는 '살아가다'나 '살아내다'로 능동형으로 써야 하는 것 아닌가? 굳이 능동형이 아니더라도 '살다' 정도로 써야 맞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독자는 늘 그렇게 표현했다.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았을 의사 이시형이 왜 90이 되어서야 '감사'를 이야기할까? 그는 생애 100권 이상의 책을 출간하면서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던 지나온 인생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감사의 마음을 이 책에 가득 담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저자는 「오늘의 나를 만든 사람들」이란 제목의 〈서문(여는 글〉에서 "수많은 사람이 나를 찾아왔고, 거쳐 갔다. 멀리서, 가까이서, 혹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까지 나를 지켜봐 준 것이다. 물어보자. 어느 인생길이 평탄하던가. 평탄하다면 그건 인생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저자 역시 예외가 아니라고 힘주어 밝힌다.

"넘어지기도 했다. 바로 일어나야 하는데 한참 꾸물대기도 했다. 이젠 한 걸음도 더 옮길 형편이 아니다. 이대로 영영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그런 마음이 드는 순간 머리 어느 한구석엔가 '무슨 소리?' 경을 치는 소리가 엄하게 들리고 정신이 번쩍 든다."고 썼다. 그리고 희뿌연 안개에 갇힌 인생 장막이 순간 맑게 걷히고 길이 열린다고 회고한다. 살아오는 동안 이런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이젠 그 일들이 '극적인 의식'으로 느껴지는 모습이다.



저자는 뒤늦게 코로나를 앓았다고 한다. 앓는 동안 할 일이 없으니 죽음 생각도 나고 온갖 지난 일들이 떠올랐다고도 한다. 지난 이야기가 떠오르니 문득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기억 창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일들이 줄줄이 올라온 것 같다. 우리도 누구나 병원에 입원했거나 몸이 아플 때 한 번쯤 해본 생각이고 경험이다. 드물긴 하지만 때론 자부심 같은 것이 가슴 가득 차 오를 때도 있지만 대개가 "내가 이런 일도 했구나" 하는 부끄러움과 자성의 시간을 가질 때가 더 많다. 우리 보통 사람들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평생 환자를 치료하고, 글로써 마음의 위안을 주고 희망과 용기를 북돋운 '국민 의사'이지만 부끄러운 일이 더 많이 떠오른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저자는 '심플라이프'를 책을 통해 말하기도 했던 분으로서, 이 에세이에서도 단순하게 살기를 강조한다.

"어쩌다 헌 서랍 정리를 하다 보면 온갖 잡것들이 다 들어 있다. 도대체 이것들을 언제 쓰려고 마치 보물인 양 이렇게 귀중하게 모셨을까. 버리는 것이 참 어려울 때가 있다. 자칫 내 인생을 버리게 되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p.7)

서랍 안의 잡동사니처럼 내 인생 서랍에도 온갖 잡것들이 다 들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90년을 살아온 삶이 그리 간단하게 정리될 수는 없을 터다. 그러나 사람들과 공유하려면 이것들을 그냥 흩어놓아선 예의가 아닐 것 같아 대충이나마 정리를 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사람들이 읽고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서다. 일단 뽑아 나열해 보니 이거야말로 내가 살아온 '인생 수업'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 에세이에 대부분이 담겨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본문에 들어가기 전 독자들에게 당부의 말도 잊지 않는다. "90년을 잘 살려면 그냥 되는 대로 살아선 안 된다. 인생 계획을 잘 짜야 한다. 젊을 때는 젊다는 그것만으로 가치가 있다. 하지만 고령이 되면 나이가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수가 더 많다. 나이를, 연륜을 기회로 만드는 것은 그냥 되는 게 아니다. 일찍부터,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나는 40세부터 준비하기를 강력히 권한다. 학창 시절 수험 공부하듯 그렇게 열심히 해야 한다. 젊은 날의 공부는 대체로 커리큘럼이 잘 짜여 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냥 따라만가도 평균적인 인생이 된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 그런 체계적인 도식이 없다. 그야말로 텅 빈 벌판에 내몰린 신세가 된다. 길 잃은 양은 되지 말자. 인생에 무슨 결론이 있겠느냐만, 90을 살아온 사람의 경험을 풀어 놓았으니 해여 유용한 것이 있어 주워 담을 게 있으면 좋겠다."(p.9)



이 책은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나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려지고 있다〉 2부 〈인생 수업 9교시〉, 3부 〈인생 수업 인터뷰〉 등이다. 1부에선 「내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나를 이끌어준 세 친구」, 「열심히 길을 찾으면 돕는 이가 나타나고 길이 보였다」, 「멋진 사회인이 되려면 삶을 즐겨야 한다」, 「졸업이란 없다」 등 5개 장(章)으로 구성됐다. 각 장에는 그동안의 삶을 하나하나 특별한 에피소드와 자신의 경험을 적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나 논저가 아닌데도 가감 없는 자신의 에피소드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를 독자들이 추론할 수 있도록 썼다는 말이다. 2부는 「고통」 「존재」 「타인」 「친구」 「부모」 「자녀」 「부부」 「고독」 「행복이란?」 등의 키워드가 제목으로 주어진 사는 동안 만난 소중한 사람들의 명단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물론 「고통」 「고독」 「행복」이란 관념적 단어들은 감정이나 느낌일 것이다. 3부는 저자의 제자인 박상미 심리상담학자와의 인터뷰 형식으로 묶었다. 「인생을 소중하게 만드는 관계에 관해」,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가르쳐라」, 「실패라는 말은 90세가 되거든 할 것」 등의 진정성 깊은 충언과 「남은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해」 등의 반성과 성찰의 삶을 강조하는 모습도 보인다. 

시대에 따라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도 변화한다. 이른바 '꼰대'의 시대는 저물었다. 산업화, 민주화와 함께 아날로그 세대는 저문 새대다. 그렇다고 산업화 민주화가 완성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의 시대는 지났다는 단순한 의미로 독자가 여기에 쓴 것이다. 구세대의 종말과 함께 우리 사회는 나 자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혼밥, 혼여, 혼영 등이 유행하는 시대다. 흔히 MZ세대라고 일컫는 2000년 이후 출생자들의 시대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사회가 변한다고 해도 어느날 일시에 사라지고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세대의 변화는 가는 세대와 오는 세대가 서로 밀접하게 관계되고 스며들면서 서서히 모습을 바꾼다. 변화의 도중에도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국민 의사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아 온 이시형 박사도 인생 여정 90년에 이르러 삶을 돌아본 이유이다. 다만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은 있다. 저자 이시형이 돌아본 삶은 모두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살려지고 있는 것이다.’라는 이시형 박사의 말이 진실되게 다가온다.



저자 이시형의 어린 시절은 그렇게 아름다운 일들은 많지 않다.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후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정체성 혼란과 정치 제도의 변화에 따른 우리 나라 앞날처럼 암울했을 것이다. 해방 때나 반짝 목이 터져라 기뻐했을 뿐이리라. 그러나 물러가는 일본인들을 향해 욕설을 내뱉거나 그들을 때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에게 어떤 삶이 닥쳐올지 모르는 일반 사람들은 당장 먹을 것부터 걱정하고 구해야 했을 테니까 말이다. 저자 역시 어린 시절 "해방되고 일본 패잔병이 긴 행렬을 지어 일본으로 귀환하는데 처음으로 사람 냄새가 났으니 저자는 그때까지 종전의 의미가 무엇인지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국말을 자유롭게 해도 잡혀가지 않는다는 사실뿐이었다. 학교에서 한글을 배우고 태극기를 그리곤 했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짐작만 했을 뿐이다. 독립투사를 두 사람이나 배출한 집안에서 해방의 의미를 아는 수준이 이 정도였다. 아마도 아버지가 철저한 일본 관청의 관리를 받고 있어 생리적으로 한계도 있었으리라. 철이 들면서 들기 시작한 내 의식 세계의 변화다. 대한 독립 만세! 이 구호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우린 목청이 터지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불렀다. 그 소리를 이젠 잘 들을 수 없게 되었다.(p.43)

독립투사를 두 명이나 배출한 가문이니 그 집안이 부유했을 리 없다. 그렇지만 일제 앞잡이 아니고서는 그때 모두가 가난했으니 끼니 걱정하는 게 일상이었을 때다. 저자도 잊을 수 없었던지 하우스보이로 미군 부대에서 잡일을 하다 학교 출석을 꾸준히 하지 못했다고 한다. 학교는 교실을 계속 옮겨 다녀서 학교 가는 날은 어디서 수업하는지 몰라 헤맬 때가 많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 학교는 미 5공군 사령부로 쓰였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빈 곳을 찾아야 했다. 제일 많이 신세를 진 곳은 지금의 동대구역 근처에 있는 기와굴이었다. 보리밭에 여기저기 기와굴이 많아서 거기서 수업하는 날이 많았다. 말만 수업이지 나오는 학생들은 절반도 안 되었다. 우리 학년은 군입대 대상 직전의 나이였다. 우리보다 1년 선배까지 자원입대했고 우리 학년은 당장 입대는 면했다. 내 친한 친구 세 놈은 평소에도 그랬지만 전장 한복판에서도 열심히 공부했다."(p.106~107)



어찌어찌해서 어렵게, 운 좋게 들어간 예일대학교 시절의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저자는 자신의 '천재성'이라고 약간은 반어법을 사용하는데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시절 어떻게 예일대학교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지, 그것도 의대를···. 이 책에 적어 놓은 이유는 '운'이라고 하지만 '운도 운 나름이다'. 교환학생 자격으로 간 것으로 보이지만 하여튼 '사람 운'은 상당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 책의 주제가 삶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살려지는' 것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가 예일대학교도 넉넉지 않은 예산이었는지 매우 검소하게 지낸 모양이다. 책에 그곳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글을 남겼다. 

"예일대학교는 가톨릭대학교도 아닌데 신부님이 두 분 계신다. 주임 신부는 아주 근엄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진짜 신부님 같다. 너무 엄해서 우리가 가까이 잘 가지도 않는다. 또 한 분, 조 신부님은 폴란드 출신인데 한마디로 장난꾸러기다. 우리 기숙사에 문제가 생기면 거기엔 반드시 조 신부가 범인이다. 토요일 밤이면 으레 휴게실에 모여 노래도 하고 흥겨운 만담도 나누고 참 즐거운 밤을 보낸다. 그 주역은 역시 조 신부님이다. 폴란드 출신이라 영어도 서툴고 발음도 독특해서 그 자체가 웃긴다. 우리가 잘 못 알아들으면 닥터 리는 한국 사람이니 그렇다치고 넌 미국 사람이면서 아직도 영어를 못 알아듣느냐고 핀잔을 준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폴란드어로 한참 떠들어대는 것 같다. 그날은 토요일 밤인데도 손님이 별로 없었다. 신부님이 나가신다. 방마다 문을 두드렸다. '야, 이 사람들이 토요일 밤에 무슨 공부를 한다고 그 모양들이냐.' 어쩔 수 없이 불려 나온다. '장작이 다 떨어졌다. 넌 오늘 지각했으니 장작 훔치는 당번이야.' 병원에서도 장작 인심이 아주 고약해서 한두 시간만 지나면 방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럴 때 조 신부님이 나선다 커다란 밴 차량을 몰고 좀 한가한 집 현관에서 조 신부는 망을 보고 우린 장작을 한 아름씩 훔쳐 나온다. 그날도 무사히 잘 지나나 싶더니 갑자기 그 집 현관문이 열리면서 주인 할머니가 인사를 했다. 신부님도 미처 피할 여유도 없이 딱 맞닥뜨린 것이다. '신부님 추운데 안에 들어와서 기다리세요. 젊은이들 작업 끝날 때까지.' 그리고 우릴 향해 고함친다. '이보게들! 그쪽은 비를 맞아 불이 잘 안 붙을 테니 이쪽 창고 안에 있는 걸 가져가!'(p.150~151)



난 워라밸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우리는 그간 마치 일 중독자처럼 일에만 매달린 생활을 하다 보니 일의 노예가 되었고 인생을 즐길 시간이 없었다. 좀 쉬어가고 즐기며 살자는 운동이 워라밸의 의미인 것 같다. 나는 그 의미를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 그 이야길 자주 하는 사람을 찾아 물어봤다.

“이 사람아, 자네 보고 하는 소리야.”

나도 속으로 켕기는 게 있어 물어봤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 그랬다고 하는 대답이다.

한참 전의 이야기지만 미국 유학 시절에 내 주변의 친구들이 나에게 자주 던지는 충고가 있었다.

“You are killing yourself.”

넌 지금 너를 죽이고 있다는 소리다. 쉬어가며 인생을 즐겨야지 그렇게 종일 공부만 하면 그게 어찌 사는 건가. 난 그때만 해도 그런 충고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pp.286~287)


저자 : 이시형(Si Hyung Lee, 李時炯)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 그리고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이자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정신과 신경정신과학박사후과정(P.D.F)을 밟았으며, 이스턴주립병원 청소년과장, 경북의대ㆍ서울의대(외래)ㆍ성균관의대 교수, 강북삼성병원 원장,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실체가 없다고 여겨지던 '화병(Hwa-byung)'을 세계 정신의학 용어로 만든 정신의학계의 권위자로 대한민국에 뇌과학의 대중화를 이끈 선구자이다. 2007년 75세의 나이에 자연치유센터 힐리언스 선마을을, 2009년에는 세로토닌문화원을 건립하고 국민들의 건강한 생활습관과 행복한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수십 년간 연구, 저술, 강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열정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베스트셀러 『어른답게 삽시다』, 『농부가 된 의사 이야기』, 『세로토닌하라!』, 『배짱으로 삽시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서』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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