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즘 - 섹시, 맵시, 페티시 속에 담긴 인류의 뒷이야기
헤더 라드케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에게 엉덩이는 어떻게 인식돼 왔을까? 이 책 『엉덩이즘Butts』의 저자 헤더 라드케(Heather Radke)는 크고 빵빵한 자신의 엉덩이가 수치심과 으스댐의 경계에 서 있음을 깨닫고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섹시, 맵시, 페티시 속에 담긴 인류의 뒷이야기」란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대관절 왜 인류는 이토록 수많은 암시를, 페티시를, 혐오를, 뉘앙스를 엉덩이에게 부과해왔는가?를 탐구한다. 왜 인간은 그저 신체 부위 중 하나일 뿐인 엉덩이에게, 겹겹이 옷을 입혔다가 벗기기를 반복해왔을까? 저자는 큐레이터로 일하며 쌓아온 지식과, 젊은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쌓아온 필력을 십분 활용해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저자의 글쓰기는 계단을 오르며 한 번쯤 생각해본 적 있는가?란 질문으로 시작한다. “아, 내 엉덩이 괜찮나?” 이런 질문은 현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해봄직하다. 옷 등 패션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만큼 현대 여성은 몸에 착 달라붙는 옷을 즐겨 입기에 유난히 딱 달라붙는 바지를 입은 날, 뒤에 아무도 없는 순간에도 여성이라면 본 적 없는 뒤태를 지나치게 의식한다. 마땅히 내 것임에도 어쩐지 당당할 수 없고, 오로지 타인의 시선으로 평가받는 대상. 인류가 세상에 등장하면서부터 엉덩이는 늘 신경 쓰이는 ‘문제’였다. 근데, 엉덩이는 어쩌다 이런 곤란한 존재가 된 걸까?

도발적이면서도 별 문제 아니라는 듯 시니컬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한 책 『엉덩이즘』은, 탈의실에서 낑낑대며 청바지에 엉덩이를 욱여넣던 한 여성의 뛰어난 탐구 정신이 빛을 발한 결과물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큐레이터로 일하며 특유의 집요한 연구력을 장착한 헤더 라드케는 편견과 오해, 목적과 의도라는 수많은 옷을 겹겹이 입고 뒤뚱거렸던 엉덩이의 이력을 낱낱이 파헤친다. 작가로서의 데뷔작인 이 책은 발칙하고 드라마틱한 저술로 이루어진 흥미진진한 르포라는 극찬을 받으며 출간 당시 수많은 언론으로부터 이목을 끌었다고 한다. 2022년 최고의 논픽션 자리를 휩쓸며 독자의 열렬한 간증을 받았다. 수치심에 갇힌 몸과 마음은 자유로워지고, 억압받던 자신감은 강해지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하며 자꾸만 엉덩이를 감췄던 이들에게 해방구 그 자체가 되어줄 것으로 저자는 기대한다. 마치 구호 같은 책 속 문장들을 되뇌며 우리는 당차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엉덩이는 그저, 엉덩이일 뿐이라고.



우리말 '엉덩이'는 ① 볼기의 윗부분 ② 명사 볼기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는 사전적 풀이다. '볼기' 못지않게 자주 쓰이는 '궁둥이'도 ① 볼기의 아랫부분 앉으면 바닥에 닿는, 근육이 많은 부분 ② 옷에서 엉덩이의 아래가 닿는 부분으로 설명하고 있다. 표현만 약간 다르게 했을 뿐 우리가 생각하는, 이 책의 주제이자 소재인 '엉덩이'를 가르킨다. 저자가 부제에서 선택한 '패티시'와 엉덩이는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로 보이는 게 독자가 남성이어서일까? 여성인 저자가 〈서문〉에 쓴 글은 독자가 남성이어서 느끼는 부분이란 말을 무색케 한다. "맘에 드는 바지를 골라 거울 앞에 선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몸을 끼워 넣어본다. 슬그머니 뒤를 돌아 절묘한 각도로 허리춤 아래를 째려본다. ‘너무 커 보이나? 아니면 너무 빈곤해 보이나? 아래로 처진 거 같은데, 너무 빵빵한 것보다는 낫겠지?’ 내 것임에도 나는 볼 수 없는 ‘그 무엇’을 상상하며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밖으로 나선다. 착 달라붙는 레깅스를 입은 채 달리는 여성의 뒤태에도, 걸을 때마다 펄럭대는 아저씨의 펑퍼짐한 바지 밑에도 존재하지만 어쩐지 의미는 제각각인 은밀한 신체 부위로 엉덩이를 설명하고 있다. "우리 뒤에 묵직하게 자리한 채 묵묵히 안녕을 지키는, 엉덩이"라고.

『엉덩이즘』은 혐오와 차별이라는 시선으로 때려놓고, 아름답고 섹시하다며 은근슬쩍 쓰다듬다가, 필요한 만큼 써먹고는 ‘에라, 모르겠다’ 뒤편에 방치했던 엉덩이의 유구한 설움을 담아냈다. 패션 잡지 〈에스콰이어〉의 극찬처럼 “활기차고 철저한 태도로, 새로운 시선을 제기하는” 이 책은 인류의 탄생과 함께해온 엉덩이의 역사를 톺아보며, 엉덩이를 가진 현대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변곡점들을 짚어낸다. 또한 그동안 어디에서도 건강하게 주목받을 수 없었던 엉덩이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매력을 어필하며, 오해를 해명할 번듯한 기회의 장을 제공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다른 사람이 우리 엉덩이를 볼 때, 그들이 정확히 무얼 보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약해진다. 우리는 엉덩이를 남에게 넘겨준다. 엉덩이는 가진 사람보다 보는 사람에게 속한 존재니까. 엉덩이는 타인이 비밀스럽게 관찰하고, 은근슬쩍 곁눈질하고 기분 나쁘게 훑어보는 대상"(p.8)이라고 경험적 불유쾌함을 주장한다. 시선의 대부분은 남성들의 것일 터이니, 엉덩이의 주인인 여자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다만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남성들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남성들은 이를 평가하고, 비평하고, 대상화하고, 탐한다.



왜 엉덩이는 남성들의 은밀한 시선을 끌어들이는가? 저자는 이 책에서 역사학·진화학·심리학·사회학을 넘나들며 질문에 천착해 풀어나간다. 의학·해부학적으로 엉덩이는 근육과 지방을 결합한 큰볼기근으로 설명된다. 문제는 엉덩이를 가진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동물들에게 엉덩이처럼 보이는 부위는 있지만, 엉덩이라 지칭할 수 있는 부위를 가진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는 사실에 저자는 접근한다. 큐레이터로 근무하며 과거의 흔적에서 연구 단서를 찾곤 했던 저자는 사바나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초의 엉덩이를 달고 태어난 고인류,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을 보관한 박물관에 찾아간다. 기원을 따라 찾아간 그곳에서 진화생물학자 대니얼 리버먼과 나눈 대화를 통해, 이족보행 짐승인 인간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자리했던 엉덩이의 역할을 재조명한다. 

순간속도가 빠른 네발짐승으로부터 도망갈 지구력을 선사하고, 큰 뇌를 떠받치며 빠르게 움직이도록 돕고, 아이를 낳고 모유 수유를 하고도 무사히 살아갈 열량을 축적하는 곳. 엉덩이는 정말 인간의 ‘생존’에 관여하는 존재다. 이 책은 의견이 분분한 과학자들이 유일하게 인정한 사실, “엉덩이는 인간 고유의 특징이다”라는 점을 한 번 더 되짚으며 엉덩이가 갖는 해부학적·생물학적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침팬지와 달리 인간의 엉덩이는 훨씬 크다. 네발짐승은 아주 빠르게 달릴 수 있지만 오래 유지할 수는 없다. 빠르게 달리면 체온을 내리지 못해 속도를 늦출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190만년 전 현생 인류의 조상?)의 엉덩이는 장거리를 달려도 다치지 않고 오래 달리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사바나에 듬성듬성 자라는 나무로 달려가 타고 오를 때, 덤불 뒤에 쪼그리고 숨을 때, 포식자로부터 빠르고 민첩하게 도망칠 때 엉덩이가 필요했다. 그는 육상 선수들을 보면 이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고 말한다. “엉덩이가 크게 발달한 선수들은 장거리 주자가 아니라 단거리 주자, 뜀뛰기 선수, 던지기 선수들이죠.” 과학자들은 엉덩이 근육이 존재하는 정확한 이유에 대해선 의견을 달리하지만, 엉덩이가 인간의 진화에 중요하게 기여했으며 인간 고유의 특징이라는 점은 동의한다. 우리가 인간인 건, 어찌 말하면 엉덩이 덕분이다.(p.46~48)


프랑스 플로리스 〈올림포스의 신들〉. 사진은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저작권 보호에 위배 없음. <출처=네이버>


진화론적으로 합리적 이론이지만 인류의 예술사적으로 살펴보면 다소 다른 의견이 제시될 수도 있다. 미술사에서 엉덩이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장 뤼크 엔니그에 따르면 19세기 중반부터 1914년 즉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미술사 속 엉덩이는 대체로 언제나 목욕 중이었다고 한다. 동물행동학자 데스몬드 모리스(Desmond Morris)는 사랑의 보편적인 상징인 하트 모양이 엉덩이 즉 "뒤에서 바라본 여자 엉덩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주장한다. 그러고 보니 여성의 엉덩이는 복숭아처럼 하트 형태를 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처럼 엉덩이가 완벽하게 돌출된 형태를 이루기 위해서는 허리가 쏙 들어가야 한다. 엉덩이는 두 개의 아치형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아름다운 엉덩이의 본격적인 첫 출현은 비너스 칼리피기스(Venus callipygis)일 것이다. 비너스 칼리피기스는 '엉덩이가 아름다운 비너스'라는 뜻이다. 

인류 예술사에서 완벽한 엉덩이는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젊고 활동적인 남성의 엉덩이. 이런 엉덩이의 완벽함이 정점에 도달한 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였다. 하지만 그리스의 청년상들의 엉덩이가 정면으로 표현된 적은 드물다. 엉덩이가 중심이 되는조각이 제작된 적은 거의 없었다는 말이다. 반면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엉덩이는 폭발적으로 등장한다. 바로 미켈란젤로에 의해 남성 엉덩이의 진정한 진경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 특히 〈다비드〉, 〈카시나 전투〉,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속 남자들의 엉덩이를 보라. 한마디로 천지를 진동하는 엉덩이다.(유경희, 〈몸으로 본 서양미술〉) 

엉덩이가 중요한 신체 부위인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엉덩이는 과연 그뿐인가? 우리가 엉덩이를 달고 살면서, 엉덩이를 바라보면서 떠올리는 다양한 감정은 왜 생긴 것이며 어디서 비롯된 걸까? 엉덩이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던 출발점을 더듬으며 저자는 노예제도가 팽배하던 착취의 역사 속에서 기구한 삶을 산 한 여성의 초상과 마주하게 된다. 그는 바로 호텐토트 비너스, 세라 바트먼이다.



책에 따르면 남아프리카 코이족의 여성으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노예로 팔려 간 그는 그야말로 ‘서커스의 곰’처럼 취급당했다. 상상 이상으로 엉덩이에 열광적이었던 19세기 런던 분위기와 커다란 엉덩이를 지닌 바트먼의 몸은 권력가들의 욕망에 절묘하게 맞물렸고, 이는 큰돈과 비이성적인 사회적 편견을 만들어냈다. 작가는 이 기이한 현상이 암묵적인 인종 차별과 성차별을 양산해냈다고 지적한다. 책은 약자의 나체를 대상화해 인종적 위계, 기이한 성착취 구조를 사회에 퍼뜨린 음흉한 서구 열강의 속내를 까뒤집어 보여주고, 이 위험하고 폭력적인 선입견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는 점도 고발한다. 

천박한 엉덩이, 섹시한 엉덩이, 예쁜 엉덩이 등 엉덩이에 위계질서가 생기고 나니 이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적용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이어졌다. 커다랗고 풍성한 실루엣을 만들어 성적으로 어필하려는 19세기 유럽의 아가씨에겐 버슬(bustle)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유형의 부르주아 여성인 플래퍼(flapper)들에겐 호리호리한 몸에 적합한 코코 샤넬의 옷이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다. 대량 생산을 통한 기성복의 시대가 도래했어도 여전히 마네킹 속 ‘이상적인 엉덩이’를 열망하는 사회 분위기는 식을 줄 몰랐다. 여기서 작가는 ‘이상적인 엉덩이’에 수렴하는 엉덩이가 아주 극소수이며, 이 극소수의 엉덩이 소유주조차 자기 엉덩이에 만족할 줄 몰랐다는 사실을 가장 괴이한 점으로 꼽는다. ‘헤로인 시크(heroin chic)’ 유행 속 케이트 모스의 비쩍 마른 엉덩이에도, 섹스심벌로 수많은 인기와 돈을 벌어들인 제니퍼 로페즈의 엉덩이에도 사람들은 좀처럼 마음을 정착시키지 못했다.

이처럼 여성들은 변덕 심한 사회의 시선 속에서 유행이 바뀔 때마다 자기 엉덩이를 미워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자본가들은 사업 확장의 기회로 삼았다. 작가는 아프리카의 트워킹을 자신의 정체성과 시장성 확장의 기회로 삼은 마일리 사이러스, 선정적 이미지와 모호한 인종 정체성을 이용해 큰돈을 벌어들인 킴 카다시안을 예로 든다. 더불어 큰 엉덩이를 떼었다가 붙이고, 하위문화로 취급했던 흑인 문화를 차용하고 제거하는 백인 문화의 선택적 태도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비판한다.



이러한 ‘선택적 글래머’들의 대중없는 폄하로부터 엉덩이를 지키는 방법은, 그동안 외면해온 수치심에 직면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모든 수치심에 근원에서 고개를 돌릴 때, 우리는 남들에게 해를 입힌다. 그리고 우리의 수치심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영영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우리 자신에게도 해를 입힌다”고 강조한다. 수많은 억압과 착취와 차별이 이어졌음에도, 그 존재감을 잃지 않은 채 끊임없이 저항해온 엉덩이들도 있다. 수많은 댄서가 당당하게 선보이는 ‘트워킹’은, 사실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음악과 춤이 번영한 뉴올리언스의 콩고 광장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저자는 노예들이 모여 저항정신을 담아 선보였던 퍼레이드에서, 여성들이 사회운동으로서 췄던 도발적인 춤이 트워킹의 기원이었다는 점을 포착해낸다. 흑인 음악의 정수이자 미국 음악의 밑바탕을 이뤘던 뉴올리언스에서, 노예들의 저항정신으로부터 비롯된 트워킹이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탄탄한 몸매를 여성의 가장 가치 있는 자기관리로 여겼던 피트니스 시대, 당시 모든 미국 여성의 엉덩이 근육을 책임졌던 〈번즈 오브 스틸(Buns of Steel)〉은 ‘운동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사회에 확산시키며 멋지고 강하고 단단한 엉덩이라는 새로운 관념을 탄생시켰다. 이는 새로운 ‘이상적인 엉덩이’를 만들며 또 하나의 강박을 양산하는 데 그칠 뻔했으나, 어떠한 엉덩이든 운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준 계기기도 했다. 위 댄스(WE DANCE), 거거익선(Positively More) 등 ‘뚱뚱한 피트니스’의 열풍을 만들어내며 그들만의 박자와 바운스로 비판 정신을 유쾌하게 표현한, 즐겁고 뚱뚱한 엉덩이들을 독자들은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착취와 억압 속에서도 꿋꿋했던 엉덩이, 눈초리 속에서도 당당했던 엉덩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 행복한 엉덩이 등 시대 흐름 속에서 유의미한 굴곡을 만든 투철한 엉덩이들은 분명 있었다. 간과된 엉덩이 하나 없이 논리정연하고도 발칙하게 세상에 소개해낸 저자는, 출간과 함께 가장 부끄러운 존재를 역대급 통쾌함으로 풀어냈다는 언론과 독자들의 평가를 받았다. 철저한 고증 아래 선별된 유익한 정보들, 정치적이면서도 논리적인 메시지, 유머러스하면서도 섬세한 필치는 이 책이 쉽게 읽히는 윤활유로서의 역할을 한다.



저자는 이 책을 읽는 크고 작은 ‘엉덩이’들에게 결코 특정 태도를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몸을 바라보는 마음에, 환기의 기회가 되길 바랄 뿐이라고 담담하게 적어 나간다. 저자 역시 연구와 집필을 이어가면서, 자신의 엉덩이에 갖는 수치심에서 해방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엉덩이에 드는 혐오감은, 유구하고 익숙하고 평범하다는 이유로 쉽게 좌절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수치심의 근원에 직면하며 생겨난 변화는, 다음 세대의 엉덩이에게 분명히 새로운 의미를 전해줄 것이라고 저자는 확언한다. 우리가 오래된 시선과 편견으로, 정치와 문화라는 수단으로 억압해왔어도 결국 지금의 모양으로 뒤태에 달린 것처럼. 엉덩이는 사회가 정해놓은 청바지와, 문화가 입혀놓은 거들과, 욕망이 뒤엉킨 비키니에 각자만의 부피로 끊임없이 저항할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 몸은 타고나길 통제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엉덩이를 둘러싼 음흉한 페티시를 통렬하게 저격하는 책 속 다정한 일갈이 퍼져나갈수록, 우리 모두의 엉덩이는 언젠가 보란 듯이 해방될 것이다. 당신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당신의 엉덩이에 너그럽기를, 또한 모든 엉덩이에게도 그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엉덩이즘』은 쓰였다.


엉덩이의 역사에 관해 조사하며 나는 내가 품은 수치심을 이해하고 그 배경을 알아낼 수 있었다. 나아가 나의 사고방식과 전제로 품은 가정들에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이제는 거대한 구조적 힘이 덜 막연하게 느껴진다. 내가 내 몸을 어떻게 느끼는지 정확히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나는 희망을 품는다.(p.360~361)

- 「에필로그: 탈의실을 나서며」 중에서


저자 : 헤더 라드케(Heather Radke)


에세이스트이자 저널리스트. 피바디상The Peabody Awards을 수상한 WNYC 프로그램 〈라디오랩Radiolab〉에 객원 편집자로서 참여하고 있다. 〈롱리즈Longreads〉, 〈파리 리뷰Paris Review〉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 글을 써왔으며 컬럼비아 대학교 문예창작 예술 석사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시카고의 제인 애덤스 헐하우스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했다. 탈의실에서 애써 외면해왔던 엉덩이를 직면하고서부터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역자 : 박다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했다. 책 『멍든 아동기, 평생건강을 결정한다』, 『만만찮은 여자들』, 『불안에 대하여』,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관찰의 인문학』, 『죽은 숙녀들의 사회』, 『여자다운 게 어딨어』, 『스피닝』 등을 번역했다. 배우자와 아이, 고양이와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부지런히 찾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