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너머에도 천 개의 태양이 빛나고 있지
유인경 지음 / 테라코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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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독자는 노년 생활, 노후 생활에 대해 불안해 하거나 대비책이 없다고 걱정하지도 않았다. 또 7~8년 전 이른바 '100세 시대' 열풍이 불 때도 들떠 즐거워 하지도 않았다. 나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살 날이 더 많은 사람이 노년생활을 상상한다는 것은, 할 일 없이 시간을 죽이는 오히려 쓸데없는 자해 행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외면했다. 하지만 팬데믹을 지나오면서 많이 바뀌었다. 일상이 바뀌었고, 일에 대한 열정도 많이 식었다. 뿐만 아니라 몸 여기저기가 하나씩 가벼운 증상을 보이며 '노후'이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생각이 천천히 변해갔다. 기본적으로 집과 밥은 연금과 작은 저축액 등으로 해결되겠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막연히 생각했던 일년에 한 번씩 해외 여행이나 죽기 전까지의 건강 관리 등 지혜로운 노년 생활을 신중하게 생각해보니 걱정을 안 할 일이 결코 아니었다. 걱정을 시작하자 대비해야 할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불안감마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비로소 왜 다른 사람들이 노후 걱정을 하는지 실감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 『오십 너머에도 천 개의 태양이 빛나고 있지』는 노년의 생활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담겼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은퇴 후 노년은 이렇게 지내라"라는 안내서이자 영감을 주는 한 작가의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 유인경은 정년퇴직까지 기자 생활을 했고 이젠 어느덧 60대 중반으로 가고 있다고 「스스로 금빛으로 반짝이는 최고의 시기」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밝힌다. 독자도 "벌써?" 하는 생각에 깜짝 놀랐다. 엊그제 방송에서, 특히 아침 TV 방송에서 똑 부러지는 말투와 우렁찬(?) 목소리로 좌중을 압도하던 아우라가 풍기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독자가 아침 방송을 안 본 지도 10년은 된 듯하다. "벌써?" 하고 놀란 이유는 독자 자신에게 있는 듯하다. 책 표제어에도 '오십 너머'라는 문구에 이제 저자가 '50대에 들어섰거나 조금 지났거나'로 예단한 독자의 오산이었다. 저자는 내년부터는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경로 혜택을 받는 나이라니 정말 세월에는 장사가 없구나 하는 실감이 든다. '100세 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것이 인간 최고의 소망 중 하나라고 전국적으로 흥겨워했는데 벌써 노인은 찬밥 신세다.



앞서 독자 개인적인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기술했지만 저자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저자 역시 젊은 시절에 ‘노년’은 화성이나 목성처럼 아득히 먼 곳이며 자신과는 상관없는 세계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어느덧 나이 50을 앞두게 되면,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지게 될지 덜컥 겁이 난다. 노화는 재앙, 뒷방 늙은이, 꼰대 같은 부정적인 말만 떠오르고, 나날이 발전해 가는 디지털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도 걱정된다.

저자에 따르면 인생을 먼저, 오래 살아 본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길 50대 이후부터의 삶은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보는 시간’이라고 한다. 부모나 가족의 요구나 기대 때문에 혹은 사회적 역할 때문에 자신의 재능과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살아왔던 시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으로 삶을 돌릴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시간으로 채우고 물들여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요즘 중장년층들은 취미로 해 보고 싶었던 걸 배우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 자격증을 따고,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장에 가서 즐기고, 이웃을 위한 봉사도 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이에 따라 실상 모든 역동적 소비지출이나 트렌드 변화에 중장년층이 주역으로 떠오르면서 칙칙하게 녹슨 실버가 반짝이는 ‘골드’로 격상되기 시작했다.

저자 역시 나이 들어 가는 게 생각만큼 슬프거나 고통스럽지 않다고, 오히려 근사하고 재미있으며 경험하지 못했던 평화와 보람을 느끼니 그 세계로 들어오는 걸 겁내지 말라고 단언한다. 특히,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면 숫자상의 나이와 상관 없이 인생 최고의 시기, 최상의 구간을 살아갈 수 있다며, 인생 후반기에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 두려운 이들에게 “오십 너머에도 천 개의 태양이 빛나고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는 1982년부터 기자 생활을 하며 수많은 노인과 어르신을 직간접으로 만나고 수많은 책과 자료를 보면서 인생 후반기의 삶을 쓸쓸히 지는 석양이 아니라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밝고 희망차게 살아가는 이들의 특징을 알게 됐다고 회고한다. 그들은 자신의 숫자 상의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젊거나 어려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화려한 과거나 무용담을 내세우지 않고,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드러내고 팔자타령만 하며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인생이란 무대에서 현재 자신이 맡은 연극의 역할과 출연하는 구간에 자신의 진짜 얼굴과 목소리를 내며 충만함을 느끼려고 한다. 인생이 자신의 계획대로만 되는 게 아니란 것도 알고, 꾸준히 한 길을 걷는다고 꼭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게 아니란 것도 알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두려움 없이 직진한다. 늘 어디에선가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해 가며 오늘을 살아간다.

저자는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보고 인생의 전성기와 행복은 나이에 상관없이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시기를 최상의 구간, 즉 프리미엄 피리어드(Premium Period)로 이름짓는다. 그리고 프리미엄 피리어드를 보낼 수 있는 삶의 태도, 마음가짐, 해야 할 일, 인간관계 등을 21가지로 정리해 풍성한 사례와 실천 방법 등을 이 책에 담아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도 인생 후반기를 ‘최상의 구간’으로 만들기 위해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작은 습관, 말 한마디, 사람이나 사물을 보는 각도를 조금씩 바꾸고, 조금 더 유연해지려고 노력 중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이 책은 4개 파트(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최상의 구간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하여〉, 2부 〈최상의 구간에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하여〉, 3부 〈최상의 구간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하여〉, 4부 〈최상의 구간에서 필요한 관계에 대하여〉 등이다. 즉, '노년 황금기'를 살아가는 삶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올바르게 갖추고, 해야 할 일에 매진하되 대인 관게를 축소할 것을 권유한다.



각 파트마다 5~6개의 장(章)을 마련해 키워드로 이를 정리해 독자들에게 제안한다. 각 장의 키워드는 모두 영문자 'P'로 시작하는 단어들로 구성해 독자들의 이해와 머릿속에 각인하기 쉽게 설명을 덧붙인다. 21개의 단어 가운데 눈에 띄는 단어는 역시 자주 접하던 단어이다. 노년은 물론 젊은층 세대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첫째 Present(현재)이다. 부제로 '지금, 이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라'가 붙어 있다.저자는 자신의 기자 생활 중 기사의 질은 인터뷰를 한 대상이나 준비한 자료가 좌우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당시 취재원에 얼마나 집중했는지가 좌우한다는 것이다. 저자도 기자 생활 말년에야 깨달았다고 털어놓는다. 오래 전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이라고 소개한다. 

"인터뷰할 때는 그 사람이 가장 멋지고 내 인생 최고의 상대이며 지구상에서 그 사람과 나만 남아 있다고 생각하면 짧은 시간에 밀도 있는 인터뷰가 가능했다. 시간이 조금 길어져 다음 스케줄에 차질을 빚으면 다음 상대에게 "정말 죄송한데 30분 정도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양해를 구했다. 대부분 양해를 해 주셨다. 그러나 다음에 할 인터뷰 시간이 늦어질까 봐 초조해하면 인터뷰를 당하는 이들도 내 눈치를 보며 건성으로 답했다. 하나에 하나씩, 야구 선수가 자신에게 날아오는 공 하나씩 쳐내듯 하면 된다···.(p.27)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한 가지를 가져라」란 부제가 붙은 "Purpose(목적 의식)' 장(章)에서 저자는 흥미로운 야심(?)을 드러낸다. "60대 중반까지 한결같이 억지로 일일 학습지를 풀듯 건성건성 살아온 나는 최근에 나를 위해 가장 나다운 목표를 정했다. 손자가 태어나고 제법 의사소통이 되면서 나는 그 아이의 귀엽고 재미있고 유쾌한 할머니가 되어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고 싶다"(p.60)는 목표이자 야심이다. 할머니인 자신은 그 아이의 일상을 통제할 필요 없고 성적이나 장래 등에 대한 책임감도 느낄 필요 없이 가장 순수한 관심과 사랑을 줄 수 있어서라는 이유를 붙여놓아 눈에 띈다.



21개의 단어 중 어느 것이 가장 관심이 가는지는 독자마다 다를 것이다. 상황이나 살아온 배경, 앞으로 살아갈 환경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오면서 누구나 맞닥뜨리면서 고통을 느끼기도 했을 'Pick(선택)'의 문제다. 저자는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를 본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유태인 수용소에 끌려간 귀도(로베르토 베니니 분)는 네 살 난아들을 독일군 몰래 수용소 침대에 숨게 하고 아들에게는 이 상황을 거짓말로 설명한다. 여긴 캠프이고 게임을 해서 1,000점을 먼저 따는 사람에게 탱크를 준다고.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거나 배가 고프다고 떼를 쓰면 점수가 깎이니 조용히 지내서 탱크를 받자고. 아들 조슈아는 강제노동에 지쳐 돌아온 아버지에게 오늘 몇 점을 받았느냐고 천진하게 묻는다. 나치를 피해 아들을 쓰레기통에 잠시 숨겨 놓은 귀도는 나치에게 총살 당하러 끌려가면서도 쓰레기통 구멍으로 자신을 보는 아들을 위해 게임을 하러 가는 듯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는 아들에게 거짓말을 선택했지만 덕분에 아들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캠프에 참여한 즐거움을 누렸다.

저자는 선택의 문제에 대해 나이 들어서 선택은 더 나은 것이 아니라 내게 불필요한 것을 골라 버리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특히 자신이 남들에게 휘둘려 피곤해지지 않으려면 내게 질문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일을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인지를 자신에게 물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거절을 선택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나이 들어서야 알았다. 내가 타인의 부탁을 거절한다고 절대 큰일이 생기거나 인간관계가 어그러지지 않는다는 것을···.(p.95)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어야 의미가 있다」란 부제의 'Pass' 장에서 저자는 노후에는 '집착(욕망)을 떨쳐버릴 것'을 강조한다. "과거의 명성이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노후를 비참하게 만든다. 또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꼰 매듭을 푸는 것이 내가 나한테 해 주는 자연 치유법이 아닐까. 과거도, 매듭도 강물에 흘러가게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노후도 평화롭게 흘러간다. 과거의 그림자에 갇혀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기를···.(p.149)



저자 유인경은 이 책에 쓰인 용어 '프리미엄 피리어드'는 대문호 괴테가 후배들에게 한 말 "사는 동안은 사는 것처럼 살아라!"와 일치한다고 〈서문〉에서 밝히면서 책을 시작했다. 저자는 「오십 너머에도 천 개의 태양이 빛나고 있다」라는 제목의 〈에필로그(글을 마치며)〉에서 자신의 '요즘'을 담담하게 쓰고 있다. "나이 들면서 나는 지혜롭거나 현명해지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편안하고 평화로워졌다. 과거 내가 겪었던 고통과 슬픔, 실수와 실패, 참담함과 부끄러움, 원망과 분노, 억울함과 답답함등의 감정들이 더 이상 나를 찌르거나 피를 내거나 쓰러뜨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슬픔 뒤에는 기쁨이, 웃음 뒤에는 눈물이 패키지로 따라온다는 것을 알아서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통해 결국 쓴맛 뒤에 맛보는 달콤함, 구름이 걷히고 나온 햇살의 눈부심, 오해가 이해로 바뀌어 가는 과정의 황홀함, 뒤늦게 발견한 새로운 세상의 맛과 멋과 아름다움에 눈뜨게 되어, 지금까지 그럭저럭 잘 버텨 온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어진다. '이 정도면 괜찮아'라고 말하며 나를 다독여 준다. 나의 노년기를 재해석하면서 고정관념을 깨뜨리기에 집중하고 있다."(p.249)


오래전 미국 신문에 90이 된 할아버지가 “60에 은퇴한 후 나는 나머지 시간을 아무 목표나 목적 없이 살얼음판을 걷는 사람처럼 조심조심하며 살았다. 30년이 흐른 지금, 나는 아직 살아 있고 여전히 건강하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작은 기쁨을 위해서도 목표를 세우고 그 길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가고 싶다”라는 내용의 칼럼을 기고했다는 내용을 인용한다. "나이 들어 간다고 해서 매사 조심조심 익숙한 생활에 순응하며 지낸다면 그건 살아도 죽어 지내는 셈이다. 인생 후반전의 특권이자 의무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에 도전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걸어 보는 것이다. 단, 20대의 속도와 힘으로 달릴 필요는 없다. 진짜 어른다운 지혜와 연륜으로 내 인생의 최고 황금기를 오래 근사하게 보낼 길을 찾아보면 된다." 독자들도 자신에게 좀 더 사랑과 관심을 기울여 또 다른 능력을 발견해 내고 성장해 가며 인생의 가장 빛나는 날, ‘프리미엄 피리어드’를 시작해보길 저자는 권유한다. 


저자 : 유인경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하여 30년 넘게 언론인으로 일했다. 주요 일간지 취재 여기자 중 최초로 2015년에 정년 퇴임을 맞았다.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만난 사람들을 자산으로 여기며, 누구와도 수다를 떨 수 있는 것이 특기이다. 그러나 아킬레스건이라면 돈 버는 재주라고 스스로 말한다. 저서로 『내일도 출근하는 딸에게』, 『퇴근길, 다시 태도를 생각하다』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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