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깊고 아름다운데 - 동화 여주 잔혹사
조이스 박 지음 / 제이포럼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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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라는 말을 한 사람은? 이라는 문제를 내면 열에 아홉은 '백설공주'라고 답할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동화 〈백설공주〉 속 새 엄마인 왕비(계비)가 거울에게 물어본 말이다. 〈백설공주〉는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들었던 동화다. 이 동화는 전래동화와 달리 독일 작가 그림 형제(Bruder Grimm)가 1812년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집』에 수록한 이야기이다. 초판에는 『백설공주』라는 제목으로 실렸다가, 1857년 최종판에서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로 바뀌었다고 한다. 

초판에서는 새 왕비가 아닌 백설공주의 친어머니가 공주를 질투하였으며, 그녀를 숲 속으로 데려간 것도 왕비가 직접 한 것으로 내용이 전개되었으나, 아이들의 시선에 맞추어 점점 순화시키면서 최종판에서는 현재와 같은 이야기로 변형이 되었다고 〈두산백과사전〉은 기록하고 있다. 이 동화는 세계 여러 나라로 전해지면서 알바니아에서는 새 왕비와 두 명의 언니가 주인공을 괴롭히고, 러시아에서는 일곱명의 난쟁이 대신 일곱명의 기사가 등장하는 등 번주가 이뤄졌다.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전해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백설공주'는 영화, 연극, 뮤지컬 등의 소재로도 무수히 사용될 정도로 독특하고 동화 속 착하고 아름다운 공주의 이미지로 굳혀진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에게도 전래동화가 있다. 주로 구전으로 전해져 온 것이 많으며, 조선시대 들어서는 일부 소설 혹은 이야기 책에 적혀 전해진 것도 있다. 전래동화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보다, 어린이들이 직면하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실존적인 과제를 풀어나가는 데 실마리가 될 만한 주제를 은유와 상징, 혹은 알레고리를 통해 돌려서 제시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교훈적 메시지가 담겼기 때문이다. 독자도 어렸을 때 전집류의 동화책을 많이 가졌고, 또 읽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단행본보다는 전집으로 발간되었다. 당시 전집류에는 주로 서양 동화(소설)가 많이 실렸다. 당시 전래 동화는 전집에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끼어들어간 정도로만 인식되었다. 〈세계명작전집〉 혹은 〈세계문학전집〉이라는 이름이 일반적이었으며, 여기에 포함된 책은 대부분 서양 문학이었다. 아마 해방 후 서양문화가 우리 사회에 들어왔고, 또 한국전쟁이 끝난 후 우리나라가 받은 서양문화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동화에는 다양한 신화적 상징이 등장한다. 또한 신체의 절단과 훼손·친족 살해 등의 상징적 사건들도 많다. 이 같은 사건들은 모두 현실의 잔혹함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의 성장과 변화에서 제기되는 문제와 그 문제의 해결을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라고 평론가들은 분석한다. 잔혹한 사건이나 문제 해결의 과정은 종종 환상과 마법의 세계 속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이 환상과 마법은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시에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문제 해결의 과정에서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어린이들의 용기와 자존감을 북돋우고 격려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독자가 어렸을 때 읽어던 전집류의 동화책에는 『그리스·로마 신화』 『소공녀』 『보물섬』 『톰소여의 모험』 『로빈슨 크루소』 등이 늘 들어 있었으며, 어른이 되어서야 지극히 단순하고 잘못 알려진 사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실망한 적도 많다. 이를 테면 『로빈슨 크루소』에서 나오는 모험심과 용기 많은 주인공은 노예 상인이었다는 말이다. 노예무역선을 타고 가다 배가 좌초된 후 무인도에서 홀로 살다가 식인종인 토인(그때는 표현은 '토인'이었다)들이 잡아 먹으려는 한 흑인 아이를 가까스로 구출해 함께 살며 겪는 이야기가 독자에게는 가장 기억이 생생하다. 온갖 난관을 무릅쓰고 결국 그 섬을 빠져나와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의 모험심과 용기에 감동하고 모험심의 상상력을 높이기도 했었다. 동화의 실체에 접근하다 보면 의외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앞서 언급한 대로 상징과 은유가 많아서 해석이 다양하게 나오는지 독자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잔혹함'의 요소가 많이 발견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세계적 동화 작가로 알려진 안데르센이나 그림형제 등의 당초 목적과 일치하는 의견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책 『숲은 깊고 아름다운데』는 「동화 여주 잔혹사」라는 부제를 갖고 있다. 동화 속 여주인공이 권력자의 잔혹함에 피해를 입고 생명을 잃을 정도로 핍박을 받지만 결국은 '백마 탄 왕자'에 의해 구출되는 스토리가 많아서 붙여진 부제인 것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저자는 책의 〈서문(여는 말)〉을 통해 "이 책은 내게 서구의 옛날 이야기를 다시 읽는 작업이자, 오랫동안 이야기 속에 억눌렸던 여성들의 살을 쓰는 작업이기도 했다"고 역설한다. '내 살을 썼다. 당신에게 가서 살이 되기를 빈다'는 이야기에 독자는 공감한다.



출판사 측의 소개글에 추천평을 쓴 문학박사 정희진은 '본디 동화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전승하는 수단'이라고 잘라 말한다. "지배 이데올로기를 담은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독자의 몫이다. 이 시대는 글자 그대로 읽기보다 재해석하는 힘이 중요해졌다. 『숲은 깊고 아름다운데』는 여성의 고난을 피해라고 보기보다는 치유로, 회복으로 재해석한다. 익숙한 이야기를 새롭게 분석한다는 면에서 창의적 글쓰기의 모델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전래동화, 젠더, 젠더화된 동화라는 세 분야를 아우른 빼어난 텍스트이자, 젠더의 관점에서 전래동화 입문서, 교과서, 전문서의 경계를 허문다고 책의 추천사를 썼다.

이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젠더=‘여성 문제’로 간주한다. 젠더에 관한 한 최악의 관점이다. 이 책은 여성성과 남성성의 형성 과정이 어떻게 인류 문명의 토대가 되었는지 보여주고,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인식론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젠더의 지적인 지위를 높인다. 다양한 사례와 다방면에 걸친 저자의 박식함과 통찰 덕분에, 이 책은 여성주의와 글쓰기를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참고문헌이 될 것이다. 여성주의는 세상을 설득하려는 세계관이 아니다. 이 책은 여성주의 시각의 우월성을 드러내므로, 온-오프 세계에서 여성의 ‘무기’로도 더할 나위 없다. 한편 도전과 전복의 연속인 이야기의 힘과 풍부한 콘텐츠는, 성별과 무관하게 모든 어른이 읽고 후대에 ‘전래(傳來)’할 의무가 있음을 증명한다. 성차별이 젠더 갈등으로 둔갑한 이 시대가 혼란스럽기만 한 모든 남성과 여성에게 권한다."

이 책은 모두 1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쌍년이 되는 건 해법이 아니다」, 2장 「소년이 걸어야 하는 자기 몫의 황무지」, 3장 「아무 데도 가지 않아도 세상을 바꾸는 여자」, 4장 「용은 왜 공주만 잡아갈까?」, 5장 「탑에서 나와 광야를 걷는 여자」, 6장 「자식은 죽여도 아버지는 못 죽인다」, 7장 「백설공주 계모 왕비의 거울 뒤, 그놈 목소리」, 8장 「이제는 인간으로 변신할 시간」, 9장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10장 「뜨개질하는 여자를 두려워하라」 등이다. 책의 앞뒤로 「낯선 만큼 매혹적인, 그 이야기의 숲길로」라는 제목의 〈프롤로그〉와 「숲에서 돌아 나오다」라는 제목의 〈에필로그〉가 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숲'을 말한다. 


현재 인간은 숲 밖에서 살아간다. 

숲 밖이 문명이자 이성이고 편리라면, 

숲은, 진정한 의미의 숲은 사라져버렸다.

우리에게 숲은 피톤치트가 뿜어져 나오는 

산림욕과 휴양의 장소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저자는 "옛이야기(동화)는 권력자의 논리를 전하는 통로인 동시에 이야기를 전하는 이들의 지혜가 숨어 있는 보물창고"라고 전제한 후, 우리는 이 책과 함께 옛이야기가 전하는 삶의 무기를 찾아내자"고 제안한다. 저자는 1장의 제목 「쌍년이 되는 건 해법이 아니다」라고 욕설을 섞어 '동화 제대로 읽기'로 강렬한 재해석을 준비한다. 1장에서 저자는 성애의 대상이 되는 것이 여신의 제단에라도 오르는 일인 것처럼 착각해서 낭만화의 허구에 빠지면, 백설공주 꼴이 난다고 주장한다. 착하고 어질게 순종하면서 자신의 욕망도 모르고 욕망의 주체가 되어보지도 못한 채 사는 여성은 백설공주의 어머니 왕비처럼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착하면 호구'라는 세간의 표현은 여기에도 딱 들어맞는다. 사실 의미 없는 존재가 되는 것만큼 인간에게 치명적인 대우는 없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키우지 못하고 남자들의 시선을 가치의 기준점을 삼는 백설공주의 계모 왕비 같은 삶은 비참하다. 여성을 오로지 살덩어리로 여기는 남성들의 가치관에 따르면, 언제나 살덩어리는 새로운 살덩어리, 더 어리고 예쁜 살덩어리로 대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날카롭고도 강렬한 재해석을 저자는 내놓는다.

4장의 용은 왜 공주만 잡아가는 걸까?란 의문은 '살덩어리'론을 뒷받침한다. 배부르게 먹을 거면 통통한 아기나 살찐 아줌마가 낫지 않을까? 씹을 맛 있는 근육질 기사는 어떻고? 저자는 “용이 사실은 여자 그 자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용은, 그러니까 애초에 여자를 잡아간 것이 아니었다. 여자에게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다. 용감하고, 제멋대로인가 하면 신비한 능력과 깊은 지혜가 있다. 여자는 용처럼 제멋대로인 야성과 파워를 함께 지닌 존재이다. 하지만 가부장제가 자리를 잡던 시절, 용맹하고 제멋대로인 여자는 필요 없었다. 멋지고 나이스한 기사는 달려가 용에게 공주를 내어 놓으라고 소리 지른다. 공주는 귀한 신분이 되어 왕궁에서 살아야 한다며, 용과 함께 숲에 있어서는 안 된다며 공격한다. 기사의 공격에 여자는 용의 면모는 버리고, 예쁘고 여린 여린 공주의 모습만 갖고 기사를 따라나선 것이다. 그러니 “용이 공주만 잡아간 것이 아니라 기사가 공주만 구해온 것”이다. 저자는 묻는다. 새로운 시대, 지금도 여자는 공주로 사는 것이 최고일까?



마지막 10장에서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뜨개질하는 여자를 두려워하라」고 주문한다. 저자는 뜨개질하는 여성이 이야기에 등장하면 긴장해야 한다라고 주의를 준다. 그 여성이 바로 이야기를 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음모를 계획하거나, 모든 일의 배후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폭풍의 언덕』에서 화자인 록우드가 직접 보고 겪은 부분은 늙은 히스클리프의 집에서 묵은 경험과 캐서린 주니어와 힌들리 주니어가 등장하는 장면 정도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 이야기는 대부분 넬리가 뜨개질하며 들려준 이야기를 록우드의 입으로 전한 것이다. 다시 말해 『폭풍의 언덕』은 히스클리프와 함께 자란 하녀 넬리가 재구성한 이야기를 록우드가 듣고 옮긴 이야기로, 두 사람의 입을 거친다. 물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때 이야기는 변형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주워 온 고아인데 주인 나리가 된 히스클리프와 두 남자에게 사랑받고도 만족하지 못한 캐서린을 과연 넬리는 어떤 시선으로 보았을까? 개인적인 감정은 하나도 개입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진술할 수 있었을까? 이야기를 지어내는 힘을 지닌 뜨개질하는 넬리는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사랑 이야기에 자신의 감정과 의견을 얼마만큼 끼워 넣고 채색했을까? 저자는 의문의 답을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찾는다. 뜨개질하는 여성의 원형은 '모이라'라는 그리스 신화 속 운명의 여신들로, 한 명은 인간의 생명을 나타내는 실을 잣고, 한 명은 감고, 또 한 명은 끊는다. 이 신화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고대부터 인간의 삶은 실처럼 자아내고 엮는 것으로 여겼으며 이야기를 자아내고 짓는 행위와 늘 동일시했다는 점이다. 즉, 실을 잣고 옷감을 짜고 뜨개질하는 곳에는 늘 이야기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실 잣는 세 여인』이라는 그림 형제 이야기를 보면, 실을 잣는 일은 여성의 몫이고 이를 잘하면 최고의 신랑감에게 시집간다는 교훈을 담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세 명의 실 잣는 여인은 운명의 여신들을 변주한 것이 분명하다는 것. 이 이야기는 실을 잣는 육체적인 노동이 어떻게 정신적인 가치로 환원되는지 보여주는 한 가지 예로 저자는 생각하고 있다. 여왕은 실잣기에 뛰어나다는 소문이 있는 아가씨를 왕궁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사흘 안에 실을 자아내면 왕자와 혼인시켜주겠다고 약속한다. 실잣기는 아가씨가 아니라 세 명의 늙은 여인이 나타나 대신 해낸다. 여인들은 반드시 결혼식에 초대해 달라는 조건을 붙인다. 이 일이 수 세기 혹은 수천 년을 걸쳐 여성들이 노동으로 쌓아 올린 그 모든 업적은 아가씨와 결혼하는 왕자의 결정으로 그 가치가 전도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단순히 재미있고, 조금 낯선 이야기로서 전래 동화뿐만 아니라 그 속에 숨은 내용을 낱낱이 밝혀서 이 시대에 여전히 유효한 내용과 이제 버리고 새로 써야 할 내용은 어떤 것이 있는지 이 책에서 이야기한다. 옛 여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할 책도, 학교도 없었다. 불가에서, 물가에서, 혹은 뜨개질을 하며 전래동화 속에 지혜와 예언과 과거를 이야기에 담아 전달할 뿐이었다. 사람은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특히 여성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옛 여인들이 이야기 속에 숨겨둔 보물을 캐내야 할 때라고 현재를 규정한다.. 또한 저자는 책에서 전래 동화의 문학적 즐거움을 새롭게 조명하고, 동시에 전래 동화에서 배우는 인간 성장의 비결을 이야기한다. 이 시대, 우리가 여전히 옛이야기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성장의 비결을 아는 것. 그리하여 이제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전래 동화를 새롭게 쓰는 것.

사실 걸작이라고 불리는 작품에는 인간이 수천 년간 쌓아온 상징과 이미저리가 층층이 쌓여 있다. 그러기에 아이들은 옛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앞으로 만들어 나갈 이야기이자 소재라고 저자는 말한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랑 받아온 전래 동화에는 깊이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메시지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이야기와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수천 년 깊게 공유해온 집단 무의식의 흐름을 저어가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러나 여자 혼자 변한다고 해서 성장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남자도 자기 몫의 광야를 거쳐야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왕자가 눈이 멀었다고 해도 왕이 있는 성으로 돌아가지 않는 건 이상하다. 흥미롭게도, 이야기에서 눈이 머는 건 주로 남자들이다(여자는 주로 목소리를 잃는다). 사람을 볼 줄 모르는 무지몽매함, 그러니까 여자를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못하는 눈먼 상태가 흔히 일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리고 미숙한 남자는 눈이 먼 상태로 광야를 헤매다가, 영적인 통찰과 인도를 상징하는 노랫소리를 듣고 자신의 여자와 만나 화합해야 한다.

그러니까 라푼젤 이야기는 여자와 남자가 온전한 파트너십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한편, 한 사람 내면에 있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어떻게 온전하게 통합을 이루어야 하는지 알려주기도 한다."(p.126~127)


저자 : 조이스 박(박주영)


영어교육전문가이자 영어교재 저자 및 강연자, 에세이스트로 인천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등에서 교양영어를 가르쳤고 현재 글로벌사이버대학교에서 실용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각종 교육청 및 학원 본사에서 교강사 연수를 주로 하고,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주최하는 전국 공무원 순회 젠더 콘서트 패널 중 한 명으로 활동했다. 영미 문화 강연을 고려사이버대학, 코엑스, 엔씨소프트 삼성전자 등에서 진행했고, 세계시민교육과 영어그림책 강연을 해오고 있다. NGO 러빙핸즈의 이사로도 활동하며 멘토링 및 지원 사업 홍보에 힘쓰고 있다.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부 및 대학원,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TESOL 대학원을 거쳐, 한국외대에서 TESOL 박사를 수료했다. 또한 영국 캠브리지대학교 저지 비즈니스 스쿨의 DEI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저서에는 『조이스 박의 챗GPT 영어공부법』, 『오이스터 영어공부법』, 『하루 10분 명문낭독』, 『내가 사랑한 시옷들』 등. 역서에는 『행복의 나락』, 『2가지 언어에 능통한 아이로 키우기』 등 총 80 여권의 저역서가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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