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제임스 - 문명의 한복판에서 만난 코스모폴리탄 클래식 클라우드 32
김사과 지음 / arte(아르테)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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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난 미국 작가지만 평생 미국보다 런던에서 오랫동안 살며 작품을 많이 썼던 헨리 제임스. 그는 미국의 시민으로 태어났다. 미국의 독립전쟁 직후 아일랜드에서 이주해와 큰 부자가 된 조부 윌리엄 제임스 덕택에 아버지 헨리 제임스 시니어와 손자인 헨리 제임스까지 큰돈을 물려받아 생활하는 데 별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이 책 『헨리 제임스』에는 할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은 300만 달러(현재 가치로 9,000억 원)에 이른다. 아버지 헨리 제임스(이름이 아들과 같다) 시니어는 매년 1만 달러(현재 가치로 약 30억 원)을 지급받아 직업 없이 오랜 세월을 유한계급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 헨리 제임스의 아버지는 엄격한 집안 분위기에 숨 막히는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대학에 진학한 후부터 해방되어 사치스러운 생활에 빠지기도 했다고 한다. 방탕해진 아들의 소식을 전해 들은 할아버지 윌리엄 제임스는 격노했고, 헨리 제임스 시니어는 보스턴으로 도망친다. 몇 년 뒤 아버지의 사망으로 자유를 얻게 된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혹은 자연스러운 귀결로서 정신적 방황에 빠져들게 된다. 그의 형 윌리엄 제임스(할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았다)는 미국의 실험심리학 창시자 중 한 명으로 활동했다. 또 철학에서는 실용주의를 널리 사상운동으로 발전시키고, 현대철학의 주류의 하나로 한 지도적 학자로서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주인공 헨리 제임스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널리 알려진 편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세계 문학계에서 그는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이 책의 저자 김사과는 밝힌다. 헨리 제임스(이하 헨리 제임스는 모두 이 책의 주인공인 미국 작가를 지칭)는 사실상 ‘현대 소설의 아버지’로 인식되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그것은 바로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고난도의 소설 기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헨리 제임스는 인간의 행동과 마음의 내면 작용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헨리 제임스 소설의 특징은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하고, 특히 외부 사건이 개인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코스모폴리탄으로서의 소설가 속 완벽한 망명객의 삶을 자처한 헨리 제임스의 삶과 예술 세계를 이 책은 조명하고 있다.



이 책은 아르테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32번째로, 헨리 제임스의 족적을 따라 미국에서 영국, 프랑스 등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지역을 찾아가며 헨리 제임스의 작품이 탄생한 배경과 그 문학적 성취에 대한 탐구로 가득 차 있다. 미국 소설가였지만 영국 문학의 전통에 속해 있고, 파리를 꿈꾸었으며, 런던에 정착했고, 이탈리아를 사랑했던 헨리 제임스, 극단적 자유를 추구한 그의 예술 세계는 어떻게 축적되었을까?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인 저자 김사과가 붓끝을 따라 코스모폴리탄적 이방인의 유럽과 미국에서의 삶과 문학을 좇아간다. 할아버지의 막대한 유산으로 우리말로 한량처럼 살았던 아버지는 헨리 제임스에게 미국 문화에 대한 부적응자 기질을 물려줬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일단 본인 스스로가 다른 평범한 미국 아버지들과 달랐다는 것이다. 미국 남자들에게 정체성의 상징과 같은 공식적 '직업'이 그에게는 없었다. 한편 아이들을 미국의 주류 종교(개신교)와 교육 방식에서 멀리 떼어 놓았다. 제한 없는 자유를 자식들에게 선사해 주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고. 결과적으로 그의 아이들은 교회와 학교, 즉 당시 미국의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단위에 대한 감각을 익히지 못한 채로 성장했다. 

아버지 영향으로 어른으로 자라난 제임스가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적인 문제에 시달렸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었으며, 삶 자체를 커다란 혼란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 김사과의 분석이다. 첫째 윌리엄은 아버지와 비슷한 신경 쇼크를 겪어야 했다. 셋째 윌킨슨과 넷째 로버트슨은 미국 독립전쟁에서 활약하며 이른 나이에 삶의 전성기를 맛보지만 이후 사업 실패, 심리적 방황, 알코올중독 등으로 불운하게 삶을 마감하게 된다. 또 사후에 일기 작가로 명성을 얻게 되는 막내 앨리스(이름으로 미루어 여성)의 삶은 고독하고 병약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헨리 제임스가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라고 할 만했다. 그는 자신의 정신적 혼란을 문학으로 형상화해 내는 데 성공한, 그리고 평생 코스모폴리탄으로 살아간 희귀한 미국인 예술가였다.



저자 김사과는 헨리 제임스의 족적을 좇아 그의 삶과 문학을 설명하는 핵심어로 '제국'과 '문명'을 꼽고 있다. 이는 그가 국적인 미국과 대영제국의 수도, 런던, 프랑스 나폴레옹이 구축하려 했던 제국과 파리, 로마 제국과 이탈리아에 대한 동경에서 끄집어낸 키워드로 본 것으로 독자는 이해된다. 저자는 「제국의 소설가」란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떠오르는 제국의 수도 뉴욕(사실상 미국 문명의 발상지)을 뒤로 하고, 런던, 파리, 이탈리아 로마 등 영락한 수도를 떠도는 '제국의 유령'을 좇았다고 분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저자인 김사과는 “현실 세계에서 그(헨리 제임스)는 어디에 있든 어색함을 느꼈다. 무신론자로 키워져 뉴잉글랜드의 청교도주의를 이해할 수 없었던 그는 발자크의 파리를 선망했지만 편협한 파리 문학계는 이방인에게 좁은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결국 런던에 정착하는 데 성공했지만, 각광받는 사교계 인사가 된 뒤에도 런던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저 미국에서 온 괴짜 소설가로 여겨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따금 의심했다”라고 쓰고 있다. 이 말로 미루어 짐작하자면 헨리 제임스는 자기 안에 있는 두 세계관의 충돌, 혹은 구세계(유럽)와 신세계(미국)의 충돌을 작품으로 빚어낸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다른 특이점은 그의 작품은 새로운 세계(미국)의 순수함과 활력, 오래된 세계(유럽)의 부패와 지혜를 대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세계의 개성과 문화가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탐구하는 그의 작품들은 종종 예술적이고 부패하며 매혹적인 오래된 세계(유럽)와 종종 거칠고, 개방적이고, 공격적인 새로운 세계(미국)의 캐릭터를 대조시키면서 그 충돌에서 생기는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따라 헨리 제임스는 미국 문학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있다. 그의 생애와 작품은 미국과 유럽, 특히 영국 사이의 문화적 간극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뉴욕에서 태어나, 유럽의 여러 나라를 방문한 후, 영국에 정착하여 삶의 대부분을 보냈다. 이러한 생애는 그의 작품에 깊이 반영되어 있다. 또한 제임스의 작품은 복잡한 심리 묘사와 섬세한 문체로 유명하다.



이 책은 「제국의 소설가」, 「가장 완벽했던 시간」란 제목의 〈프롤로그〉, 〈에필로그〉 외에 「뉴욕」 「파리」 「런던 」「라이」 「소설과 자유」 등 5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뉴욕, 파리, 런던 등은 모두 제국의 수도로 번성했던 곳이고, 세계의 문명에 영향을 끼쳤던 도시들이다. 그리고 뒤늦게 번영한 뉴욕만 아직 명맥을 유지할 뿐 런던과 파리, 두 도시는 영락해 가는 모습의 우울감이 내려앉은 분위기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4장의 '라이'는 영국 본토인 그레이트브리튼 섬의 동남쪽 끝, 서식스 지방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라이는 로더 강, 틸링엄 강, 그리고 브레드 강에 삼면이 둘러싸여 있다. 세 강이 영국 해협을 향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이 작은 마을은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가 말해 주듯, 동화 같은 중세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p.137) 

시간이 흘러 라이를 방문하게 된 헨리 제임스는 램 하우스에서 머물게 된다. 램 하우스는 18세기 수 차례 시장을 지냈던 제임스 램이 장인 소유의 땅이었던 라이 중심가 구역의 건물을 사들여 재건축한 곳이다. 영국의 국왕 조지 1세가 라이를 방문했을 때 이 건물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헨리 제임스는 이 집과 동네가 마음에 들었다. 작고 오래된 영국 소도시의 중심가에 있는 담쟁이넝쿨에 덮인 붉은 벽돌집이라니 근사하다. 우연하게도 제임스가 머물러 있는 지 얼마 되지 않아 램 하우스 주인이 세상을 떠났다. 헨리 제임스는 1897년 램 하우스의 임대 계약을 맺는다. 

제임스가 라이로 이주한 것은 1898년 6월이다. 그는 열정적으로 집과 정원을 꾸몄다. 친분이 있는 귀족 부인을 통해서 조지 왕조 시기 만들어진 마호가니 장식품들을 사들였다. 벽에는 번존스(19세기 영국 화가)의 그림과, 플로베르의 초상화, 『데이지 밀러』에 수록된 일러스트를 걸어 놓았다. 소설가 제임스는 램 하우스의 정원을 특히 아꼈다. 그 가운데에서도 그가 처음 그 집을 방문했을 때부터 있던 커다란 뽕나무와 탐스러운 복숭아나무를 좋아했는데 자신이 미국에서 보낸 유년 시절을 떠오르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지냈던 나날들로부터 한 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램 하우스의 정원은 여전히 근사했다. 집을 둘러싼 붉은 벽돌담을 짙은 초록빛 잎사귀들이 뒤덮고 있는 가운데 그 주변으로 보라, 노랑, 분홍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었다. 저자 김사과의 추적기는 계속 이어지지만 결국 찾아낸 것은 제임스의 후기 걸작 3부작인 『황금의 잔』, 『대사들』, 『비둘기의 날개』가 이곳 램 하우스에서 지내던 시절에 쓰였다는 사실이다. 



독자 역시 헨리 제임스란 인물에 대해 문외한이다. 물론 그의 작품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접하지 못했다. 책 이름(황금의 잔)과 주인공 이름(아메리고)으로 가까스로 기억 반대편에 있던 한 조각 접점을 붙들었다. 어느 책에선가 사례를 들은 것을 잠깐 읽었던 기억이다. 이 책에서 『황금의 잔』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제임스의 후기 걸작으로 꼽히는 데서 그 중요성을 찾을 수 있고, 몰락한 이탈리아 왕족이란 주인공의 이름이 '아메리고'라서 더욱 미국과의 관계 있는 인물임을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가 램 하우스에 머무는 동안 사들였던 장식품 중에 이탈리아 왕족이 남긴 것들이 있지 않았을까 추정되는 대목이다. 꼭 '황금의 잔'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의미의 장식품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과 제임스의 관점이 다르기에 도시에 대한 느낌이 다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을 구별해 주는 상징으로 '황금'이 사용된다. 미국 뉴욕을 떠난 제임스가 왜 제국의 수도를 돌아다녔을까? 어쩌면 제국의 원동력이 되고, 제국의 완성에 가장 큰 힘을 주었던 곳이 수도였기에 동경했던 것일까? 코스모폴리탄으로서 세계 여러 나라를 이방인이라는 의식 없이 돌아다녔을지라도 제국의 수도였던 곳에 집착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저자는 자신의 세계관에 빗대어 분석한다. 제국과 문명, 그것은 여전히 내겐 낯선 세계다. 그리고 제국의 수도, 신기루처럼 반짝이는 문명의 표면을 우아하게 떠다니는 제임스 소설 속 인물들 또한 외계인들처럼 생경하다. 그르이 완벽한 언어와 몸가짐으로 표류하던 그 시기의 유럽은 정치경제적 혼란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전쟁을 향해 돌진하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태였다.(p.18) 

저자는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내용이 19세기 후반 가장 국제적이었던 인간의 진짜 모습과, 그것을 가능케 한 인간 문명의 본질적 폭력성에 대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피라미드의 꼭대기, 정지된 듯 기이한 침묵 속 완벽한 풍경. 제임스 소설 속 인물들은 황금으로 도금된 철창 속에 갇혀 있다. 희생자들의 비명과 핏자국이 솜씨 좋게 제거된 그곳은 문명의 최정점에 놓인 화려한 응접실이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최상위 포식자들, 지배자들, 부자들, 권력자들, 즉 뱀파이어 백작과 암사자 공작부인, 그리고 그들의 불운한 희생자 친구들을 초대 손님으로 하는, 잔혹한 저녁 만찬이다.(p.19)



헨리 제임스의 소설들은 자연의 변화를 시간순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동시에 주인공의 내면을 따라 흐르는 의식을 독자들이 따라가면서 살펴볼 수 있도록 짜여 있다. 이러한 문체는 그의 전 작품을 통해 드러난다. 저자는 제임스가 당시 사회의 다양한 계층과 성별, 그리고 그들의 상호 작용을 이런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마도 이런 문체의 형성은 소심한 개인적 성격에서부터 비롯됐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만났던 여인들에게 속마음을 드러내는 일에도 늘 소극적이었다는 것도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마음속으로만 흠모하던 여인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긴 해도, 작품 속에서조차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하는 데 주저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소심한 성격 자체가 꼼꼼하고 치밀한 세부 묘사에서는 강점을 발휘했으며, 그런 소설 기법으로 인해서 그는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 제임스의 작품에는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주제로 탐구하며 해외 생활의 자유와 도전 사이의 복잡한 상호 작용을 헤쳐 나가는 캐릭터들이 자주 등장한다. 저자는 제임스 자신의 인생 경험과 미국인과 유럽인 사이의 문화적, 심리적 차이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제임스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미국의 문화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적인 측면과 유럽 사회에서 삶에 수반될 수 있는 소외와 모호한 도덕성을 모두 경험하면서 외국 땅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씨름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중성은 개인적 성장, 사회적 기대, 그리고 자신의 고유한 문화적 맥락을 벗어난 진정한 자기 표현에 대한 탐구를 풍부하게 해 준다. 새로운 자유에 대한 유혹과 친숙한 소속감에 대한 갈망 등 이방인으로서의 생활에 내재된 모순은 등장인물이 사회적 압력과 관계없이 자신의 가치를 정의하려고 노력하는 자본주의와 상품 문화에 대한 제임스의 비판을 반영하는 것이다.

제임스는 외국인으로서의 경험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통해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서로 다른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현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을 열었다. 그의 작품은 개인적인 여행과 발견에 대한 서술일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더 넓은 사회적, 문화적 역동성에 대한 논평이기도 하다는 저자의 설득력 있는 분석에 귀 기울이다 보면 헨리 제임스와 삶과 문학에 대해 가깝게 접근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저자 : 김사과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를 졸업했다. 2005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02』 『더 나쁜 쪽으로』, 장편소설 『미나』 『풀이 눕는다』 『나b책』 『테러의 시』 『천국에서』 『N. E. W.』 『바캉스 소설』, 중편소설 『0 영 ZERO 零』, 산문집 『설탕의 맛』 『0 이하의 날들』 『바깥은 불타는 늪/정신병원에 갇힘』 『헨리 제임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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