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에 처음 만나는 예술 - 가우디에서 임영웅까지 인생 후반전, 예술에서 삶을 재발견하다
유창선 지음 / 새빛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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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은 오랜 시간 동안 변하지 않았다. 예술 작품은 제작법이 분야별로 각기 달라 예술가들의 숫자는 늘어나더라도 감상을 위해서는 관람과 전시회 등 제한된 공간과 시간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예술의 시작은 인류의 기원과 같다고 알려지는데 감상은 여전히 쉽지는 않다. 가장 뒤늦게 시작된 예술인 영화는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대량으로 여러 장소에서 관람이 가능하지만 연극이나 오페라, 음악 등은 공연을 통해, 미술은 전시회를 통해 한정된 장소에서만 감상이 가능하다. 또 한정된 장소에서 한정된 연주자(배우)가 직접 실현해야 가능한 탓에 멀리 있거나 다른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감상이 제한된다. 그래도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전 세계 어디든지 하루 만에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고, 특히 출판, 영상, 음향 등의 기술 발달은 그나마 간접적으로 예술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다. 

제한된 수요와 공급으로 예술은 대중에게 알려지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예술가들의 끊임없는 열정으로 결국은 오늘날 대중 다수가 편하게 즐기고 감상할 수 있는 대중적 인기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인쇄술 발명 이전 책은 일부 귀족 계급이나 젊은 지식인들의 전유물이었고, 공연 예술 또한 지배 계급만 향유할 수 있었다. 예술가들 역시 사람이기에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예술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지배 계급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기 마련이었다. 그래도 수많은 삶의 난관과 역경을 딛고 오로지 예술에만 온 노력을 기울여온 예술가들의 작품은 뒤늦게라도 인정돼 그의 작품이 재조명되는 경우도 많다. 바야흐로 현대는 모든 사람이 진정한 보고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예술의 시대다. 예술은 사람에 따라 좋아하는 분야가 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분야라고 그 분야를 폄훼하지는 않는다. 모든 예술은 인간의 삶과 역경까지도 품어 작품 속에 녹여냄으로써 인간 삶을 아름답게 꾸며나가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이 책 『오십에 처음 만나는 예술』은 정치평론가로 주로 정치평론을 하던 저자 유창선이 쓴 예술 에세이다. 이 책은 예술을 좋아하지만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고, 전문지식도 없는 문외한인 독자에게 우선 양적으로 압도감을 준다. 부제로 쓰인 「가우디에서 임영웅까지 인생 후반전, 예술에서 삶을 재발견하다」에서 알 수 있듯이 클래식이든 대중가요든, 거장의 그림 관람이든, 이름 없는 화가의 그림이든 예술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가 왕성한 예술 감상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라면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평론가로서 예술에 늦깎이 입문이라고 말하지만 평소에 예술적 관심은 컸던 것 같다는 느낌을 독자는 지울 수 없다.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예술에 빠져들었다고 「50대에 나는 그만 예술에 빠져 버렸다」란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밝힌다. ‘1세대 정치평론가’로 널리 알려진 저자는 5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학교와 정가를 누볐다. 대학 졸업할 무렵부터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엔 방송과 언론, 그리고 SNS를 통해 정치 얘기만 하면서 살았다다. 그랬던 그가 하필이면 정치의 계절(4월 총선을 앞두고 이 글을 썼다)에 문화예술에 대한 책을 썼다. 무슨 사연, 무슨 생각이 있었던 것일까.〈프롤로그〉에 따르면 ‘예알못’이었던 저자가 예술이 주는 감흥과 행복감에 눈뜨기 시작한 것은 5년 전 병상에서였다. 생사를 가르는 뇌종양 수술을 하고 8개월 동안 병상 생활을 해야 했다. 밤 9시만 되면 일제히 소등하는 병실에서 저자는 밤마다 이어폰을 꽂고는 휴대폰에 담아놓은 음악들을 들었다. 깜깜한 병실에서였지만 쇼팽의 녹턴과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들을 듣다 보면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더 없이 편해졌다. 50대의 나이를 떠나 보내던 마지막 시간에 저자는 병실에서 예술이 주는 위로와 치유의 고마움에 비로소 눈뜨기 시작했던 것이다.



예술 문외한인 독자가 저자의 이름을 책으로는 처음 접한다. 방송에서 가끔씩 들은 기억이 있지만 정치와는 담 쌓은 지 오래된 독자로서는 그의 정치평론을 기억하지도,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할 리 없다. 심지어는 그가 흔히 말하는 진보적 성향인지, 보수적 성향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가 쓴 책을 왜 선택했을까? 독자에게 선택의 이유를 묻는 사람이 있을 리 없지만 독자는 순전히 이 책에 담긴 모든 예술 아이템이 매우 세상 흐름에 민감하게 작용한 것이라는 느낌 때문이다. 또 분야를 막론하고 저자의 예술적 감흥을 최소한 질적으로는 따라가고 싶은 마음에서다. 예술적 공감대는 정치색이나 경제 문제로 가려서는 형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난 세월에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무겁고 날선 얘기를 하며 살다보니 예술의 아름다움과 감흥 같은 것을 느끼고 보존할 마음의 빈자리가 없었다. 머릿속은 내가 아닌 다른 세상으로 향해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니 저자의 시선은 자신이 아닌 저 멀리 있는 광장으로 향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인생의 가장 긴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고 이야기한다. 역사의 무게를 혼자 짊어지기라도 한 듯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무겁고 날선 얘기를 하며 살다보니 예술의 아름다움과 감흥 같은 것을 느끼고 보존할 마음의 빈자리가 없었다고 정직하게 고백한다.

50이란 나이를 정점으로 인생의 오후에 접어든다고 어떤 철학자는 표현했었다. 그 표현을 저자에 적용한다면 저자는 병원에서 나오면서 이제 남은 생은 자신을 돌보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시점이 바로 인생 2막의 시작점이었을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건강을 조금씩 회복하면서 연주회장을 찾기 시작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고 〈프롤로그〉를 통해 말한다. 아직 몸이 불편해서 때로는 문화공연장에 힘들게 도착하지만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선율이 들려오기 시작하면 그런 불편 따위는 모두 잊게 된다고도 말한다. 



특히 저녁 시간에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있는 저자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고 설명한다.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다 나은 것 같은 힘찬 모습이었다고 느끼면서 독자가 홀로 곱씹었을 생각은 예술. 흔히들 얘기하는 치유의 힘일 것이다. 그렇게 저자는 음악을 통해 위로받곤 했다. 독자도 저자의 이 말에 공감하면서 인생의 오후에 예술과 더 가깝게 다가가고 싶고, 더 예술적 삶에 접근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 책을 읽었다. 책의 목차를 들여다보다 깜짝 놀랐다. 이렇게 많은 공연, 콘서트, 전시회, 극장을 찾아다니며 예술을 수년 내에 접근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더욱이 앞서 언급한 대로 대중적이든 클래식하든 문화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는 모든 분야에 심취할 수 기간이 이렇게 단 시간 내에 이뤄질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모두 5부로 이뤄져 있다. 1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2부 〈우리를 위로해주는 영웅들〉, 3부 〈예술가들의 투혼이 낳은 성취〉, 4부 〈슬픔조차 아름답게 들리는 선율〉, 5부 〈자유를 찾아가는 인간의 숙명〉, 그리고 '부록'으로 202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에 대해 〈‘자아’를 지킨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라는 제목으로 5편의 에세이를 보여준다. 작가론과 작품론을 겸한 저자의 감상평이다. 감상평이라기보다 평론에 가깝다. 「아니 에르노의 ‘칼 같은 글쓰기’」, 「내 어머니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아버지와 딸 사이의 거리」, 「사랑의 열정은 정말 단순한 것일까」, 「내 삶은 역사적일 수 있을까」 등이다. 독자 생각으로는 아니 에르노에 천착하지 않고서는 쓰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이 책은 저자가 관람했던 공연, 영화,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예술 작품들에 대한 글들을 담고 있다. 단순한 후기를 넘어 저자가 갖고 있는 인문학적 시선 위에서 작품과 예술가들에 대한 생각을 풀은 글들이다. 독자가 '예술 평론'에 가깝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작품 이상의 인사이트를 얻게 되기를 저자는 소망한다. 작품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관람의 욕구를 부여하고, 작품을 이미 접했던 사람들에게는 그 이면의 더 많은 것들을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책에 따르면 저자는 공연을 즐기는 생활에 빠져들면서 점차 문화를 향유하는 장르도 다양해졌다. 관심과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연결됐다. 오케스트라, 독주와 앙상블, 실내악, 뮤지컬, 오페라, 콘서트, 발레, 국악관현악, 판소리, 연극, 전시회, 영화 등 듣고 볼 좋은 작품들이 있으면 달려가곤 했다. 가족들과 유럽 여행을 갔을 때는 그림들이 너무 좋아 나 혼자 아침부터 저녁까지 끼니도 걸러가며 뮤지엄들을 순례하던 날들도 있었다. 임영웅의 공연을 보려고 ‘피케팅’(피나는 티케팅)을 거쳐 대구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관람을 하기도 했다. 스스로 ‘중독’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문화예술이 좋았고 빠져들었다. 인생 후반기에 예술에 푹 빠져든 사람의 사유가 담긴 현장 기록들을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접할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과 작품명만 열거해도 여러 페이지에 달할 것이다. 이 책의 5개 파트는 각각 2~6개의 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1부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 「케이트 블란쳇 주연의 영화 〈타르〉」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나폴레옹〉」, 「마일리스 드 케랑갈 원작의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등 영화 예술의 이야기다. 2부는 「임영웅 콘서트 〈IM HERO TOUR 2023〉」, 「〈김수철과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 공연」 등 2개 장으로 대중음악에 관한 이야기다. 3부에는 「호암미술관 〈한 점 하늘_김환기〉 & 뮤지컬 〈라흐 헤스트〉」「장욱진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뮤지엄 산에서의 개인전 〈안도 타다오-청춘〉

」 「리움미술관의 카렐란전 〈우리(WE)〉」 「정작 가우디는 고생했고 피카소는 화려하게 살았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등 국적에 관계없이 공연과 건축예술, 전시회 이야기가 실려 있다. 4부는 「벨리니의 오페라극 〈노르마〉」 「서울시립교향악단 〈아주 특별한 콘서트〉」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세계의 포디엄을 누비는 한국의 마에스트라들」 등에 관한 이야기다. 마지막 5부는 「극단 파수꾼의 연극 〈아이히만, 암흑이 시작하는 곳에서〉」 「산울림 편지콘서트 〈쇼팽, 블루노트〉」 「전무송-전현아 부녀의 연극 〈더 파더〉」 「100년만에 무대에 올려진 연극 〈의붓자식〉」 「시몬 드 보부아르, 한나 아렌트, 시몬 베유, 아인 랜드의 삶과 철학」 등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책, 전시, 공연, 영화 등 예술의 전 분야에 걸친 문화평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올 봄이 가기 전에 이 책을 읽고, 많은 독자들이 예술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살기를 권유해본다. 



”음악사 연보를 들여다보니까 브라질 작곡가 시키냐 곤자가가 1885년에 자작곡을 갖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최초의 여성 지휘자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녀는 당시 브라질 음악계에서 보기 드문 여성 음악가로, 많은 차별 속에서도 활발한 음악활동을 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많은 여성들이 지휘봉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여성 음악가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맞선 여성 지휘자들의 오랜 분투가 있었기에 이제는 여성 지휘자들이 포디엄(podium)에 당당하게 서고 있는 것이다. 오늘 여성 지휘자들을 향한 박수 세례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님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p.195) - 「4부 ‘세계의 포디엄을 누비는 한국의 마에스트라들」 중에서


저자 : 유창선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대부터 방송, 신문, 잡지, 인터넷 등을 통해 활발히 정치평론을 해온 1세대 정치평론가였다. 평생 정치 얘기를 하던 사람이 문화예술에 관한 책을 써서 나타나니 독자들은 의아할지 모르겠다. 저자는 5년 전 생사를 가르는 뇌종양 수술을 받고 오랜 투병과 재활의 시간을 가졌다. 그때 병상에서 만난 것이 음악이었다. 불 꺼진 병실에서 밤마다 음악을 들으며 예술이 갖는 위로와 치유의 힘을 실감했던 저자는 병원에서 나온 뒤로 각종 공연과 전시회를 찾아다니게 됐다. 오십 대의 마지막에 예술을 제대로 만나 푹 빠져들게 된 것이다. 배신감과 허망함을 안겨주었던 정치와 달리 예술은 우리의 마음에 공감해주며 더 좋은 인간이 되도록 손잡아 주는 동반자임을 저자는 발견했다.

『오십에 처음 만나는 예술』은 근래에 저자가 보고 들었던 문화예술 작품들에 대해 쓴 글들을 싣고 있다. 공연이나 전시 등에 대한 단순한 후기가 아니라 작품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야 할 지점이 무엇인가를 던져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최근에 주목받았던 공연과 작품들이 많이 소개된다. 책에나오는 작품을 아직 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관람의 욕구를 부여하고, 이미 접했던 사람들에게는 그 이면의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 줄 것이다.

저자는 현재 <여성신문>에 ‘유창선의 문화이야기’를 연재하는 등 문화예술에 대한 글쓰기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 저서로는 인문 에세이 『나를 찾는 시간』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삶과 죽음의 대화』(공저) 등이 있고, 정치평론집으로는 『김건희 죽이기』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정치의 재발견』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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