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모범생 2 - 심장 갉아 먹는 아이 특서 청소년문학 36
손현주 지음 / 특별한서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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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가짜 모범생 2』는 저자 손현주의 전작 『가짜 모범생』에 이은 두 번째 소설이다. 전작은 부모의 기대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 시대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는 평가와 함께 청소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번에 펴낸 『가짜 모범생 2』는 「심장 갉아 먹는 아이」라는 조금은 파격적 부제를 달고 있다. 주인공 효주가 의사 지망생이었기에 의도적인 부제로 채택한 것으로 이해된다. 자신에게 헌신하는 아빠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의대 입시를 준비하던 ‘효주’가 〈피움학교〉라는 정체 불명의 세계로 이동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자신을 감시하는 부모님 때문에 자기 방 방문조차 마음대로 닫지 못하는 같은 반 시윤, 성적이 안 좋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괴물’이라는 소리를 듣는 은찬, 명문대를 가야 한다는 압박에 삼수를 하고 있는 삼수 오빠와 함께 각자의 고민으로부터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 

수년 전 대한민국은 JTBC 드라마 〈SKY 캐슬〉의 열풍에 휩싸인 적이 있다.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SKY 캐슬 안에서 남편은 왕으로, 제 자식은 천하제일 왕자와 공주로 키우고 싶은 명문가 출신 사모님들의 처절한 욕망을 샅샅이 들여다보는 리얼 코믹 풍자 드라마였다. 작품 내 모티브가 사실과 다른 점이 있다손치더라도 풍자의 대상이 대한민국 교육 현장이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되는 점이 강했던 것 같다. 지금은 없어진 신분인 귀족 사회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과 이를 비판적으로 풍자하는 코믹한 드라마라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의 단면을 과감하게 해부해 비판한 것이다. 

저자의 전작 『가짜 모범생』도 청소년 성장소설이지만 드라마 〈SKY 캐슬〉의 일부를 확대해 들여다보는 느낌이어서 관심이 갔다. 드라마에는 여러 가족의 이야기가 중첩되며 그들만의 세상이 그려지지만 이 소설에선 한 가정의 그릇된 교육열과 영재 쌍둥이형의 자살로부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면서 좀더 세밀한 확대경이나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스포트 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독자는 전망한다.



전작 『가짜 모범생』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영재 코스만 밟아온 일란성 쌍둥이형 건휘가 성적과 스펙에 집착하는 엄마와 매일 다툼을 일으킨다. 어느 날 터질 듯한 스트레스를 안고 지내던 건휘가 큰 사고를 친다. 농구를 하다가 시비가 붙은 아이의 목을 조른 것이다. 아이가 의식을 잃어 병원에 실려 간 사이, 건휘는 도망치듯 현장을 빠져나간다. 그날 밤, 엄마는 선휘의 방으로 찾아와 말했다. “선휘야, 형 대신 네가 그 애의 목을 졸랐다고 말해줄 수 있겠니?” 엄마는 ‘완벽한’ 형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설령 동생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일이라 해도.

그러던 어느 날, 건휘가 죽었다. 건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그에게 쏟아 부어졌던 엄마의 집착은 선휘에게 옮겨간다. 형을 대신하는 것이 산 자로서의 도리라는 엄마의 집착에 선휘는 자신이 점점 미쳐가는 것 같다고 느낀다. 답답한 속을 그나마 뚫어주는 것은 시원한 콜라. 정신과 치료는 진전이 없고, 혼자만의 싸움을 이어가던 중 같은 반 은빈과 가까워진다. 성적은 나쁘지만 자신의 꿈을 당당히 이야기하는 은빈과 사귀며 선휘도 자유로운 삶을 점점 더 강하게 갈망하게 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엄마의 집착과 선휘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장면을 연출한다. 

저자 손현주는 〈창작 노트〉에서 집필 이유를 밝혔다. "사람들은 ‘교육 학대’에 대해 무감각하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학대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병폐이다. 『가짜 모범생』은 교육이라는 그럴싸한 단어 뒤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폭력과 학생의 인권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수면 위로 꺼내본 것이다. 강요에 의한 교육은 아이들을 정신적 억압의 상태로 몰고 가 ‘분노 조절 장애’라는 내적 괴물을 만들어낸다. 성적 지상주의, 경쟁이라는 단어가 가짜의 ‘나’를 만들어 분노를 차곡차곡 쌓이게 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폭발해 사회적 문제를 일으켜 좌절을 준다. 아이들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남에도 발견도 하지 못하고 성적이라는 환상에 매몰되어 버린다. 그 재능을 끄집어내주는 게 진짜 참교육 아닐까 싶다. 학교 성적으로 서열을 매기는 사회가 아닌 자신의 재능으로 박수갈채를 받는 시간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가짜 모범생 2』의 주인공 효주는 어릴 적부터 아빠가 원하던 의사라는 꿈을 갖는다. 다섯 살때부터 효주는 의사, 아빠는 환자로서의 역할을 맡아 소꿉놀이를 할 정도다. 다섯 살 효주는 자연스럽게 의사를 꿈꾼다. 그러나 모범생으로 자라 17살 효주는 친구란 경쟁자와 경쟁자가 아닌 아이로 나뉠 뿐이다. 목표가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 설정에 관여한다. 효주는 더욱이 아빠를 걱정시키는 일은 절대 하고 싶지 않은 '모범생'이다. 아빠의 보살핌 속에 공부 잘하는 어엿한 모범생 효주는 시험이 끝난 날 하교하던 길에 불안 증세를 느끼다가 학교 담벼락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빛에 정신을 잃는다. 잠시 뒤 깨어나 보니 낯선 여자가 효주의 앞에 있다다. 자신을 ‘안나 선생님’이라고 소개한 여자는 효주에게 모래시계를 건네며 믿을 수 없는 설명을 한다. 이곳은 효주처럼 불안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시공간의 왜곡을 거쳐 오는 또 다른 세상이라고 말한다. 이 모래시계는 마음의 에너지가 채워질 때 움직이며, 이 모래가 모두 아래로 떨어질 때쯤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고 설명하는 안나 선생님의 존재도 판타지적 요소로 이 소설의 스토리를 풀어가는 키 포인트가 된다.

사실 효주의 마음은 복잡하다. 엄마는 자신의 꿈을 위해 아빠와 효주를 남겨둔 채 파리로 홀로 가버렸다. 그리고 평범한 직장인 효주의 아빠는 효주 자신을 위해서라도 의대에 가게 하기 위해서 퇴근 후 효주의 학원 셔틀을 담당한다. 그만큼 효주의 아빠가 기대하는 바가 너무 커 효주는 아빠에게 자신의 진짜 꿈을 말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하루는 아빠가 시험 문제를 풀 때 스톱워치로 시간을 체크하게 했다. 효주는 그러는 동안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는 느낌을 받는다. 시공간의 왜곡 지대인 피움 학교에는 모두 각각의 불안감으로 인한 증상을 갖고 있다. 효주는 심장박동이 이상하고, 과호흡증까지 있는 17세 여고생. 그 외에 복통 김세현, 편두통 박서아, 수면장애 전수진, 구토 증세 이유진 등이 이곳에 있다. 증상은 다르지만 모두들 불안감으로 인한 이상 증세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담벼락을 통해서 피움 학교로 온다. 피움 학교에서는 각자 모래시계를 받는다. 자신의 마음의 에너지가 채워질수록 모래시계가 움직이는 양과 시간이 달라진다. 모래시계 속의 모래가 모두 아래로 내려가야 피움 학교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



그렇게 효주는 이곳에서 같은 반 홍시윤과 엄마로부터 '공부 못하는 괴물'이라는 별칭을 얻은 중학생 은찬, 부모의 압박 때문에 명문대를 목표로 한 삼수생 삼수 오빠를 만난다. 같은 조가 된 네 사람은 피움 학교에서 조금씩 서로의 마음을 드러내고 자신에 대해 고민하며 마음 에너지를 쌓아간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다른 아이들의 모래시계가 조금씩 움직이는 동안에도 효주의 모래시계는 그대로이다. 효주의 모래시계가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자들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발동시킨다. 또, 피움학교의 가이드인 안나 선생님은 왜 이곳에 오게 된 걸까? 이 소설은 불안에 짓눌려 살아가는 10대들을 초대하는 특별한 세계의 힐링 판타지 이야기다.

저자 손현주는 「내가 누군지 알아가도 괜찮아」라는 제목의 〈창작 노트〉를 통해 "『가짜 모범생』이 출간되고 나서 2년이 지났다. 강연장 사인회에서 누군가 내민 편지 한 장 덕분에 2권을 쓸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며 "1권이 현실에 짓눌린 아이의 저항이라면 2권은 상처받은 아이들이 판타지 세계로 넘어가 치유 받는 과정을 그렸다"고 밝혔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는 성적에 짓눌려 부모님에게 속마음조차 말하기 쉽지 않은 아이들이 많다"고 전제하고 "여전히 '가짜 모범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고 집필 동기를 언급한다. 시간이 지나도 아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꼬집어 냈다.

저자는 이어 '모든 아이들은 자기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에 공감한다며 공부 지옥에서 사춘기 전쟁까지 겪는 동안 이 사회가, 학교가, 부모가 아무도 그들에게 공감해 주지 않고 해결책도 없다는 사실을 두고 "꿈을 묻기 전에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소망을 피력한다. 저자는 "아이들의 미래를 미리 단정해 놓고 시작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성적에 떠밀려 좌절을 느끼는 아이들에게 잠시 자신이 누군지 알아가도 괜찮다고 강력하게 조언한고 있다. 



이 소설 작품은 숫자로만 표시된 장(章)의 변화가 장면의 변화를 보여주는 단순한 구조이다. 하지만 짧은 소설(약 200 페이지)이니만큼 사건의 발단부터 막을 내릴 때까지 한 길로 쭉 걸어가는 듯한 느낌으로 독자들의 몰입을 이끌어낸다. 쭉쭉 읽어내려 가도 줄거리를 놓치지 않는 구조다. 청소년 대상 소설이어서 불필요한 은어, 비어, 선정적이거나 폭력적 문장도 없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話者)나, 이를 읽는 독자나 혼란스럽거나 거북한 느낌이 없다. 청소년들의 방황보다는 내면의 문제를 지적하고 이를 청소년기에 확립하는 것이 좋다는 저자의 생각에서 비롯된 구조로 이해된다. 

소설의 첫 장면은 주인공 나(효주)의 다섯 살 무렵의 기억이다. 아빠와 나는 소꿉놀이를 하듯이 의사 놀이를 즐겨 했다. 아빠는 나의 환자였다. 한없이 다정한 아빠와 한참 귀여울 때의 단란한 한때다. 아빠와 효주는 바라보기만 해도 미소를 지을 정도로 한없이 사랑스러운 부녀지간이다.


“아 해보세요.”

아빠는 얌전히 앉아 입을 벌렸다. 나는 아빠의 입안을 눈으로 살핀 후 체온계를 이마에 댔다. 사람의 손이 닿으면 빨간불이 번쩍거리는 비접촉성 체온계였다. 아빠가 옷을 걷어 올리면 빨간색 하트 그림이 가운데 박혀 있는 청진기를 가슴에 댔다.

“숨을 내쉬어 보세요.”

나는 청진기를 아빠의 가슴에 대고 들리지 않는 심장 박동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쿵, 쿵, 쿵, 쿵, 쿵.

“심장은 아주 튼튼하세요. 대신 목이 좀 부으셨떠요.”

발음도 명확하지 않은 어린 의사 선생님은 진찰을 마친 후 처방을 내렸다. 그리고 작은 초콜릿 알맹이가 들어 있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어린 의사의 처방을 받은 후 아빠는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노효주 선생님은 아주 훌륭한 의사가 되실 거예요.”

나는 그 말뜻도 제대로 모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미소는 가끔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p.7-8)



파리로 간 엄마와의 화해는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자신의 꿈을 좇아 파리로 갔지만 가족을 버린 것은 아니다. 엄마는 한층 원숙해진 모습으로 효주와 재회한다. 효주를 아빠에게 맡긴 채 자신의 꿈을 좇았지만 효주에 대한 사랑이 변한 것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더욱 더 자신을 위한, 자신에 의한 삶을 살도록 조언하는 모습은 과거의 엄마와는 다른 모습이다. 재회의 자리에서 엄마는 잠시 효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효주야, 널 보면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 깨닫곤 해. 넌 내 딸이야. 날 미워해도 좋아. 그냥 너만을 생각하는 결정을 하면 좋겠어. 마음에서 의심이 들거든 그 마음을 따라가 봐. 솔직한 마음을 네가 외면하면 진짜 널 찾을 수 없어. 혼란스러운 지금의 그 감정을 따뜻하게 품어줘.”

“정말 그럴까.”

“물론이지. 누군가 눈에 좋아 보이는 직업도 네가 불행하면 다 소용없어. 세상에는 좋은 대학을 나오고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 손톱에 흙 때를 묻히면서 농사를 지어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위험을 무릅쓰고 불구덩이에 들어가 사람을 구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도 있어.”

나는 엄마를 향해 다시 물어보았다.

“엄마는 지금 행복해?”

“최소한 내 선택에 후회는 없어. 만약 내가 후회한다면 그건 너한테 못 할 짓을 한 거야. 누구 때문에 못 한다는 말은 하지 마. 나 때문에 해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은 어떤 결정을 하는 게 고통스럽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진짜 너를 만나게 될 거야.”(p.139)


저자 : 손현주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200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엄마의 알바』로 등단했고 2009년 문학사상에 단편소설 『당신의 남자』로 신인상을 받았다. 2010년 평사리문학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제1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불량 가족 레시피』 『소년, 황금버스를 타다』 『헤라클레스를 훔치다』 『도로나 이별 사무실』 『빡빡머리 앤』(공저)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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