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초대전 - 내 하루는 괜찮냐고 그림이 물었다
장광현 지음 / 미다스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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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일상으로의 초대전』이란 표제어로 쓰인 '일상(日常)'이란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을 뜻한다. 이 단어의 상(常)은 '항상 상'을 써서 '늘 같은'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삶은 꾸준히 변화해 가지만 왜 우리는 매일 같은 일을 할까? 같은 일을 하는데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분명 변화해 있음을 깨닫는다. 늘 같은 일을 하는데 왜 권태롭지 않을까? 이 책은 저자 장광현의 일상을 소재로 쓴 에세이다. 그가 어떤 일을 하기에 일상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위로를 하려는 걸까? 저자는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며 예술가로서의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예술가의 꿈은 멀고도 험한가 보다. 그는 이 책에서 밝히지는 않지만 결혼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예술가의 꿈을 키웠던 것으로 이해된다. 우여곡절 끝에 조각가로서의 꿈을 접을 무렵, 현실 자각이 시작된 것 같다. 

저자는 조각과는 멀어졌지만 예술적 열정은 그대로였나 보다. 호구지책은 당연히 예술가에게도 필요하다. 그는 미술 교사로서 새 길로 접어들면서 후회와 예술 사이를 오가는 고민이 많았을 것으로 책의 군데군데에서 읽힌다. 예술가든 비예술가이든 일상은 개개인에게 소중하다. 예술이 지향하는 것도 결국의 인간의 삶이다. 인간의 삶은 인간의 일상에서 빚는 하나의 예술로서 독자적으로 빛난다. 그 삶이 치열할수록,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수록 그 사람의 삶은 빛난다. 이처럼 인간의 삶은 어떤 일을 하든 노력과 열정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언제든 노력에 걸맞은 결과를 남긴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권태롭게 생각하지 않고 이어갈 수 있는 것 같다. 순간순간 삶에 집중하는 사람에게 권태란 찾아올 겨를이 없을 것이다. 

현대 사회는 지나치게 빠르게 변화해 간다. 디지털 문화로 접어들면서 마치 빛의 속도로 변화해 간다. 거기다 복잡해지기까지 했다. 인구 수의 증가, 다양한 문명의 발전은 인간을 조금도 쉴 틈이 없게 한다. 게으름을 부리다간 자칫 원심력에 밀려 사회 변두리 쪽으로 쫒겨나간다.



쉴 틈 없이 돌아가는 현대 사회는 인간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현대인치고 스트레스로 인한 장애를 겪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한다. 특히 후유증을 남길 정도로 스트레스를 계속해서 받게 되면 스트레스 증후군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정신적 장애 증상도 나타난다. 그래서 삶을 단순하고 명정의 상태로 유지하라고 종교인들은 말한다. 일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쉼'을 통해 약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인들만 '쉼'과 '여유'를 권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 특히 '신의 경지'에 가까운 의사들도 인간의 쉼과 여유는 삶의 제1 조건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현대인에게는 잠시 시간을 내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마땅치 않다. 그러한 추세를 대변하듯 간편하고 손쉬운 자극만이 급속도로 늘어가는 요즘이다. 영상도 쇼츠 영상이 대세다. 빠른 소통으로 하루아침에 소통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SNS에서 쇼츠 영상은 열풍이 일고 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이 같은 흐름에 휩쓸린 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에 위로를 전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앞서 언급한 대로 조각가가 되었던 꿈을 접고 미술 교사가 되고, 틈나는 대로 그림과 글쓰기를 겸하는 저자의 일상은 우리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위로를 전하고 쉼을 권유할 수 있을까? 

이 책에는 저자 자신만의 일상이 적혀 있고, 저자가 살아오면서 받은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이 언뜻언뜻 독자들에게 전해져 온다. 저자의 집필 취지가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일이 가능할까? 

출판사 측에 따르면 이 책은 짧고 중독적인 이야기만 소비되는 세상에 작은 반기를 든 책이다. 직접 그린 그림과 글은 그의 일상을 덧칠해 하나의 ‘전시회’처럼 꾸며졌다. 늦은 결혼과 육아, 학생들을 가르치며 느낀 이야기는 한 폭의 작품처럼 펼쳐진다. 저자가 용기를 내 건넨 ‘일상 속 초대장’이 궁금하다면? 기꺼이 이 책 『일상으로의 초대전』 속으로 들어가볼 것을 먼저 읽은 독자로서 권유한다.



저자는 「제 일상으로 초대합니다」란 제목의 〈프롤로그(책을 펴내며)〉를 통해 "모두가 말하기 바쁜 텍스트 홍수의 시대"라고 전제하고, "바쁘고 피곤하기에 마음의 여유가 없엇 남의 생각엔 관심을 두기 어렸습니다. 하지만 짧고 자극적이며 놀랄 만한 이야기는 중독처럼 소비하며 사는 우리는, 사실 늘 어딘가 아픕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어 "그렇기에 묻고 싶습니다. 삶이란 것이 어찌 늘 그리 특별하기만 하던가요. 고단했던 하루에 또 다른 하루를 덧씌워 슬픔과 기쁨의 평균값을 맟춰 가는 일이 살아가는 일 아닌가요? 흔한 이웃인 저는 제 일상을 통해 그 질문에 답하고 싶었습니다. 소소한 드로잉으로 생각을 덧칠해 제 이야기가 더욱 친근하게 와닿길 바랐습니다"라고 언급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결혼 역시 늦은 나이에 했고, 육아를 위해 힘들었다는 점도 솔직한 언어로 털어놓는다. 작업만(조각 예술)만 하겠다고 큰소리치던 사람이 미술을 가르치며 아이들과 함께하며 성장한 이야기도 이 책에 담았다. 빠르고 다양한 시대, 눈이 팽팽 돌아가는, 급변의 시대이기에 우리의 일상은 더욱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말 속에 녹아 있다. 어디서나 원하는 것이 넘치도록 솟구치고 있는 '홍수'의 세상이다. 현 시대의 콘텐츠가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자극을 택한 것은 당연한 추세라고 저자는 말한다. 문제는 인간의 욕심도 홍수처럼 넘친다.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손쉽게 추구하고 획득할 수 있다. 하지만 삶이란 게 늘 특별하기만 할까? 일상의 풍경은 대개가 소소하지만, 그렇기에 더욱이 소중한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햇살이 좋아 베란다에 빨래를 너는 일과 친구와 함께 술잔을 부딪치는 일. 어머니의 기일을 챙기고, 사랑하던 연주자의 음악을 듣는 일 모두 붓 아래서 다시금 채색했다.


                  <에셔 작  「상대성(1953)」 사진 출처=두산백과>

이 책은 3개 섹션(section)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술 전공자로서 단어 선택도 남다르다. section1 〈일상 속 인상주의〉, section2 〈미술 교사의 낭만주의〉, section3 〈육아라는 리얼리즘〉 등이다. 각각의 섹션은 15개 안팎으로 모두 45개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상주의, 낭만주의, 리얼리즘(사실주의)라는 단어 선택도 흥미롭다. 조각에 몰두하던 때와 달리 미술 교사로서의 일상이 삶에 대한 강한 인상을 주었나보다. 또 미술 교사로서 아일들과 함께 성장하는 기간에는 '낭만주의'를 채택했고, 육아의 어려움을 '사실주의'로 표현한 것이 적절해 관심을 끈다. 

section1 〈일상 속 인상주의〉의 첫 장 「에셔의 계단」이란 제목이 있다. "낮이 궂은 날 휴일에는 아파트 계단을 걷는다.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동안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유산소 운동이라 종종 하는 편인데 제법 운동 효과가 크다. (중략) 지난 4년 간 체중이 복리의 마법을 부렸는지 놀랄 정도로 늘어났다. 육아로 인해 늘 다니던 헬스장을 못 가게 되니 근육량이 감소하고 기초대사량도 같이 떨어졌는데, 먹는 것은 그대로라 당연한 결과다. 은근히 자부심이었던 관리된 몸매가 이제는 자연의 미를 눈에 띄게 담아낸 요즘 주변인들의 안부 인사에 꼭 포함되곤 한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어 둥글한 매력도 좋으련만 내 친지들은 아직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안 되어 있나 보다."(p.14) 

저자는 '계단'과 반복과 순환에서 네덜란드 출신의 초현실주의 작가 에셔(Escher, 1898~1972)를 떠올린다. 미술 전공의 미술 교사의 면모를 내보인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에셔는 일상 속 비일상, 현실 속에서 비현실적 작품을 만들기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수학·과학적이며, 벽지나 타일처럼 반복되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 중 상당수는 신화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으며, 원(圓)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다. 〈도마뱀〉(1943), 〈상대성〉(1953, 사진) 등이 좋은 예다. 특히 병렬 차원과 시각 차원의 혼재가 마치 순환하는 듯 보이는 〈상대성〉은 애니메이션, 영화, 비디오게임, 테마파크 등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차용, 활용되고 있다.



이 책에는 화가들이 적잖게 등장한다. section3 〈육아라는 리얼리즘〉의 33장의 「Let’s dance」, 34장의 「육아, 그 고단함에 대하여」에서도 마티스와 모딜리아니가 등장한다. 마티스는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 나왔던 기억이 난다. 프랑스의 색채화가로 뛰어난 데생 능력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초반에 신인상주의, 1905년부터는 포비즘의 경향을 보였다. 여러 공간표현과 장식적 요소의 작품을 제작하였고, 1932년 이후 평면화와 단순화를 시도했다고 미술 책에서 소개되고 있다. 신인상주의, 야수파로도 불리운다. 로제르 드 방스 성당의 건축 설계, 벽화 등을 제작했다고 전해진다. 저자는 이 책에서의 춤은 아기와의 제자리돌기 이야기다. 아이의 웃음소리는 집안으로 가득 퍼져 아빠의 시름을 집 밖으로 밀어낸다. 언제 걸음을 걷나 걱정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한시도 몸을 가만히 두질 않는다. 보행기에 탄 둘째도 뭐가 그리 좋은지 같이 까르륵. 우리는 이 순간 투명하게 행복하다. 그래, 같이 춤출까? 저자의 의도인지 편집자의 배려인지 책에는 '마티스의 춤은 혼자선 불가능하다'라는 사진 설명이 붙어 있다. 이 그림은 마티스의 그림 〈댄스II(1932)〉를 모사한 것 같다. 

'육아의 고단함'이라는 제목답지 않게 육아를 거치는 동안 아내의 나이듦을 미안해 하는 글이다. 저자의 안타까운 감정이 듬뿍 묻어난다. "한 송이의 장미는 아니었을지라도 늘 발랄한 과즙미가 넘쳐 자두 같던 내 와이프, 출산 후 어린 남매에게 시달리다 보니 어느새 과즙은 빠지고 건자두가 되어 내 마음을 짠하게 한다. 아침부터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 악을 쓰며 도망 다니는 첫째에게 지친 와이프를 바라보다 문득 모딜리아니의 그림이 떠올랐다. 그의 그림 속 여인들의 우수가 실은 육아의 고단함을 표현했던 건 아니었을까.(p.177) 누가 읽어도 아내에 대한 진한 사랑과 미안함이 느껴지는 글이다. 사실 모딜리아니를 떠올린 것은 저자의 의도라고 독자는 이해된다. 화가 모딜리아니는 수많은 여인을 만났지만, 최후에 약혼녀가 된 잔느 에뷔테른느는 어떤 여자와도 달랐다. 잔느는 모딜리아니에게 그 어떤 계산도 없는 순진무구한 사랑을 바친 유일한 여인이었다고 서양 미술사에는 기술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긴 목에 긴 얼굴, 선이 분명한 얼굴에 꿈꾸는 듯한 표정, 모딜리아니가 그린 인물들의 내면은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듯하면서도 두터운 베일에 싸여 있기도 하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속된 감정과 신비로운 꿈이 동시에 들어 있다. 보들레르가 인간의 우울과 이상을 동시에 그리려고 했던 것처럼, 랭보가 감각을 활짝 열어서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를 들여다보려고 했던 것처럼, 모딜리아니는 감각적인 세계를 추구하면서도 감각 너머의 세계를 그렸다. 우수에 깃든 여인의 표정은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새겨져 있다. 저자의 가슴에 아내의 건자두 같은 모습이 박혀 있듯이.



지금은 내가 원했던 삶의 모양과는 다르게 살고 있지만, 이 또한 내가 바라던 행복의 모습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기를 간절히 원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도.(P.121) - 「그대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중에서


내가 아버지를 향해 쏘았던 원망의 화살들은 아직 회수되지 못했기에 시위를 무수히 당긴 내 몸의 고통만 기억에 남아 있다. 나의 두려움은 깨질 것같이 투명한 것을 보았을 때 더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지금 나는 두려움을 겪고 있다. 너무 사랑하면 늘 그랬다.(p.194) -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중에서


사람이기에 우린 스스로 감내해야만 하는 슬픔이 있다. 아프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일이다. 잊고 지낼 뿐 모든 일엔 끝이 있기에 의미가 생기는 것 아니던가. 보내진 못하고 애써 붙잡고 있을 때의 고통은 놓아줘야만 해방될 수 있다.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p.218~219) -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중에서


저자 : 장광현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작업실을 전전하며 예술을 하겠다고 애썼지만 길게 이어갈 수 없었다. 졸업 후 성인들과 학생들에게 미술을 교육하며 대학 시절보다 예술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마음 가는 대로 살다 보니 실수가 많았고 후회도 깊었다.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 미술 심리치료를 공부하고 도예를 배웠다. 내성적이지만 글로 소통하는 것은 좋아해 틈틈이 온라인 플랫폼에서 에세이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현재 교단에서 중학생들이 미술을 좋아하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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