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이미경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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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힘든 시기를 보낸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 수 없다. 고통은 이겨내야 할 삶의 과정이라고 책에 쓰여 있다. 어떤 고난이나 고통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온다는 말도 우리 삶의 진리처럼 느껴진다. 독자는 이런 삶의 격언 등을 '삶의 진리'를 표현한 말들이라고 믿는다. 독자는 살아오면서 수많은 삶의 고통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또 그만큼 극복하는 과정의 이야기도 들었다. 대부분의 책은 고통을 이겨내야만 달콤한 과일을 딸 수 있다는 사실을 진리처럼 말한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성경이나 불교 경전에서도 같은 의미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고 한다. 철학서나 위대한 예술 작품들도 또한 같다. 인간의 삶은 고통·고난과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 같다.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도 훌륭한 업적의 이면에는 늘 힘든 시간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수없이 듣고, 읽고, 배웠지만 막상 자신에게 찾아오는 고통·고난은 더 크고 무겁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독자뿐만 아니라 누구든 그럴 것이다. 살면서 삶의 명언을 한 번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다. 하나만 말해보라고 해도 누구든지 한두 개쯤은 술술 읊을 수 있다.

"고난과 눈물이 나를 높은 의지로 이끌어 올렸다. 보석과 즐거움은 이것을 이루어주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교육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페스탈로치는 말했다. "고통은 깨달음을 준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성장할 수 없다. 고통과 슬픔을 경험한 후에 우리는 진리 하나를 얻는다. 만약 지금 당신에게 슬픔이 찾아왔다면 기쁘게 맞이하고 마음속으로 공부할 준비를 갖추어라. 그러면 슬픔은 어느새 기쁨으로 바뀌고 고통은 즐거움을 바뀔 것이다"는 대문호 톨스토이의 말이다. 우리가 잘 아는 헬렌 켈러도 "쉽고 편안한 환경에선 강한 인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만 강한 영혼이 탄생하고, 통찰력이 생기고, 일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며, 마침내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불교계의 달라이 라마도 "좋은 시절은 우리의 적이다. 우리를 잠들게 만든다. 역경은 우리의 친구다. 우리를 깨어나게 한다"고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철학자 니체도 삶의 고통에 관한 사유의 결과를 내놓았다. "등산의 기쁨은 정상에 올랐을 때 가장 크다. 그러나 나의 최상의 기쁨은 험악한 산을 기어 올라가는 순간에 있다. 길이 험하면 함할수록 가슴이 뛴다. 인생에 있어 모든 고난이 자취를 감췄을 때를 생각해보라! 그 이상 삭막한 것은 없으리라."



이 책 『이제부터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의 저자 이미경도 살아오는 동안 유달리 고통의 순간을 많이 겪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15년차 싱글맘이자 보험설계사로 살아왔다. 어렵게 시작했지만 최단 기간 내 ‘백만달러원탁회의’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저자는 자신이 '아홉수'에 걸렸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고백한다. 아홉수란 숫자 '9'의 아홉을 이르는 말로, 마지막 관문, 대격변 직전의 상태 등을 상징한다. 보통 19세, 29세, 39세 등 끝자리가 아홉(9)일 때 극심한 고난이 닥쳤을 때 붙이는 말이다. 저자의 경우 9살에 알게 된 이복동생의 존재, 19살에 길에서 돌아가신 아버지, 29살 받은 불임판정, 39살 어머니의 죽음과 이혼으로 시작된 싱글맘으로의 삶(이혼에 따른)으로 자신의 처지를 비하하는 말로 사용한 듯하다. 

이 책에는 우리 주변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시련을 저주라 할 만큼 많이 겪어야 했던 저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자서전적 자기계발서로 분류된다. 그 시련들을 지나온 저자는 이제 시련은 삶의 동반자이자, 성장의 촉진제임을 밝힌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보다 한 차원 높은 곳에 올라서, 시련이 가져다 줄 성장의 기회를 기대하는 저자의 모습이 잘 적혀 있다. 이 책이 지금 시련에 힘들어하는 수많은 독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평범하고 싶다는 것을 앞세워 고난과 시련으로부터 최선을 다해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고 말한다. 삶을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일 것으로 털어놓는다. 몇 차례의 시련이 반복되고 마침내 종교로 피신처럼 숨어 들었다. 저자는 성찰과 깊은 생각을 통해 자신이 고난과 시련 앞에 비겁했고 무릎을 꿇는 비루한 삶을 살아왔다고 깨달았다. 이겨내는 삶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도망치는 삶이었다는 것이다. 고난과 시련은 저자에게 깨달음과 지혜를 주고자 반복적으로 찾아왔는데도 어떻게든 고난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후회에 진저리칠 정도로 부끄러웠다. 고난이 자신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똬리를 틀 정도로 익숙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삶 속에 박혀 있는 고난과 시련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저 힘듦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련은 피하고 싶다고 피해질 것도 아니며 잠시 피해간 것처럼 보여도, 더 크게 더 아프게 저주처럼 돌아온다."고 깨달음에 이르렀다. 



저자는 삶의 시련을 이겨내야 제대로 살 수 있다고 깨닫는 순간부터 오직 고난을 벗어난 데에 열정과 노력을 다했다고 한다. 사실 평범한 가정주부가 어느 한 순간 두 아이를 돌보는 싱글맘이자 보험설계사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이겨낼 역경은 아니다. 더욱이 보험설계사로서 수백~수천 명 중 한 명 나올까말까한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사실은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는 이제 삶의 시련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이야기할 정도로 성숙한 삶에 이르렀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삶의 모든 고개를 넘어 인생이라는 산을 정복한 저자는 이제 삶에 닥친 시련과 싸우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선사하고 싶다는 생각에 책쓰기에도 도전했다. 이 책이 첫 결과물이다. 이 책은 모두 5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나는 전생에 어떤 죄를 저질렀을까?」, 2장 「보통의 삶이 가장 어려운 삶이다」, 3장 「지독한 시련은 내게 변형된 축복이었다」, 4장 「반전 있는 드라마가 더 재미있다」, 5장 「나는 오늘도 한 뼘 더 성장했다」 등이다. 

1장에서는 저자가 겪었던 아홉수의 저주를 담담하게 돌아보며, 자신이 태어나기 전 쌓아놓은 전생의 업(業)에 관해 살펴본다. 그리고 그 업조차 자신의 성장을 위해 스스로 설계한 장치임을 깨달은 저자는 이제 스스로 인생에 끌려가지 않고, 인생을 ‘업고 간다’고 말한다. 2장에서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보통의 삶과 행복이 스스로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이야기한다. 스스로 최선이라 믿었던 선택에 배신당하고, ‘착한 사람’이 되고자 했던 어리석은(?) 날들을 떠올리며 저자는 보통의 삶, 보통의 행복이 아닌, 스스로 정의한 자신의 삶을 살라고 독자들에게 권유한다. 3장은 ‘시련’이다. 남편과의 이혼과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한순간 싱글맘이 되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날들. 그러나 저자는 오히려 그 시련들이 병들었던 자신에게 내려진 ‘삶의 극약 처방’이라고 회고한다. 4장에서는 인생 후반전에 새롭게 삶의 방향키를 거머쥔 저자의 인생 꿀팁이 이어진다. 죽음의 공포와 시련 속에 괴로워하던 모습에서, 책 쓰는 보험설계사이자 ‘국민작가’를 꿈꾸게 된 저자의 삶과 꿈, 돈을 대하는 태도까지 엿볼 수 있다. 마지막은 작가가 보내는 따뜻한 위로의 말들이다. ‘모든 것의 중심은 오늘 처음 만나는 나’이니 자신에 집중하라는 말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나’를 사랑하고 나의 ‘삶’을 사랑할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는 삶의 희망을 깨닫고 용기를 내 다시 시작할 때까지 지혜를 준 종교에 대해 잠깐 언급한다. 저자가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아서 독자의 추정한 바로는 "답답한 마음에 타로카드라는 서양 점을 보기도 했고, 여기저기 염험하다는 만신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들의 말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아니면 버려야 할지··· 보면 볼수록 머리가 명쾌해지기는커녕 복잡함만 더했다. 그래도 나의 전생에 관한 그들의 말에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었다.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 중에서 저자가 기억하고 있는 내용을 1장에 적고 있다.

"나는 전생에 인도의 고승으로 살았던 때가 있었고, 그때 나는 자신만의 진리를 찾아 가족을 버리고 홀연히 가출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나 또한 풍류를 즐기고 신변잡기에 능했던 한량으로 정인을 배신하고 다른 사람의 아내를 빼앗았단다. 또 한때는 프랑스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욕심 많은 여자로, 소싯적 은혜를 베풀어준 적이 있는 배고픈 친구와 그의 가족을 매몰차게 내쳤다고 한다. 이 정도라면 전생에 정말 악업이 쌓여도 아주 겹겹이 쌓였던 것이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악업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중에 약간의 선업도 있었다. 나는 유관순 열사의 친구로 살았던 적도 있었다고 하낟. 그녀와 동시대에 존재하면서 나는 적극적인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것은 아니어도, 태극기를 제작하고 밥을 해주는 것 따위를 도왔던 사람이었단다. 이 대목이 안타깝다. 나도 유관순 열사처럼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어야 한다. 그랬더라면, 나의 현생은 전생의 선업으로 조금은 편안하게 누리는 삶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p.15)

불확실한 점성가들이 한 말들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면 저자의 당시 마음 상태가 매우 공허하거나 혼란스러웠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독자는 알 수 있다. 특히 앞의 말에 이어 뒷말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닌 듯하다. 나는 명상과 자아성찰을 좋아하며, 마음이 복잡하고 심란할 때면 마음이 끌리는 사찰에 다녀온다"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어 후자에 더 가까울 것이란 추정도 해본다. 그러나 불확실한 말을 굳이 저자가 이 책에 써둔 것은 '업보'란 말을 되새기기 위해서인 듯하다. '카르마'는 업보인 것과 동시에 인간의 정신적인 의지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자신의 삶이 굽이굽이 우여곡절이 너무 많았다고 돌이켜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왜?'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일이···'를 반복하며, 자책하고 자존감을 무너뜨렸다고 한다. 부모님도 원망하고, 신(神)조차도 원망했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이런 이야기를 첫 장에 꺼내든 것은 다음 말을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다. "나는 더 이상 내 삶과 연결된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내 삶의 주체는 영적인 나이므로 내가 주인이 된다. 누구에 의한, 누구로 인한 시련과 불행이 아니었다. 고통 또한 누군가 내게 넘겨준 것이 아니다. 나는 나의 세상에서 나의 삶을 사는 것이고, 카르마로 연결된 그들도 그들의 세상을 사는 것이다. 이것으로 내가 지금을 잘 살아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나는 전생에 어떤 죄를 저질렀을까?’에 대한 질문을 바꿔본다. ‘나는 다음 생에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답은 그 안에 있었다.(p.17)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면며 철학자 쇼펜하우어를 자주 떠올렸다. "삶이 곧 고통"이란 그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어떤 욕망이든지 채워지고 나면 즉시 새로운 욕망이 일어나고, 반대로 어떤 고통에서 벗어났다 싶으면 곧바로 새로운 불행이 찾아든다고 말하고, 고통이야말로 삶의 본래 모습이며, 쾌락이나 행복은 고통이 없어졌을 때 잠깐 찾아오는 소극적인 것, 즉 고통의 부재(不在)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한, “인생은 고통이요, 이 세계는 최악의 세계”라고 본다는 자신의 철학을 역설했다. 쇼펜하우어는 그의 주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삶이 곧 고통"란 주장을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한다. 첫째, 우리는 자기가 갖고 있을 때에는 그것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할 줄 모르다가 그것을 잃고 나서야 그 가치를 실감한다. 건강이나 맑은 공기나 사랑하는 사람 등 모든 것이 그렇다. 둘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끊임없이 고통이라는 몽둥이가 다가오고, 이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에게는 권태라는 또 다른 채찍이 떨어진다. 삶은 마치 시계추처럼, 고통과 권태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인생은 이렇게 고통과 권태라는 두 박자의 구조로 되어 있는데, 6일간의 고통과 제7일째의 권태라는 일주일의 생활 패턴은 우리의 삶을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다. 셋째, 고독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며,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누구나 혼자일 뿐이다. 또한 인류의 역사는 피로 얼룩진 전쟁의 역사이며 인간의 삶을 표현하는 단어에는 다툼과 전쟁, 학살과 약육강식 등이 있다. 이것은 정글법칙이 지배하는 동물계나 인간 세계나 마찬가지다. 저자가 쇼펜하우어를 인용하거나 이 책에 설명한 적은 없지만 독자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쇼펜하우어가 떠올랐다. 저자는 삶 자체를 쇼펜하우어가 정의한 대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독자의 머릿속에 계속 떠오른 이유이다.


오늘은 처음 만나는 날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나도 처음 만나는 나인 셈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의 경험을 생각해 보자. 얼마나 설렜던가? 또 얼마나 나를 꾸미고 치장하며 함께할 시간을 상상하고 즐거워했던가? 매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의 기분으로 자신을 대해 보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데도 많은 공을 들이고 마음을 쓰는데, 하물며 자신을 만나는 것에는 아무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자존감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자신을 사랑해주고 대접해주는 것이 기본이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저항 없이 남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p.231)


저자 : 이미경


작가, 15년 차 우수인증 보험 컨설턴트, 바리스타&감독관, 빛의 일꾼. 《이제부터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의 저자이자, 15년 차 우수인증 보험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월드커피 바리스타협회 소속 바리스타&감독관으로 활동하며, 재능기부를 통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023년 11월 찾아온 지구별 사명인, 빛의 일꾼들을 깨우고, 모으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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