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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칼로레아 철학 수업 - 논리적 사고를 위한 프랑스식 인문학 공부
사카모토 타카시 지음, 곽현아 옮김 / 현익출판 / 2024년 3월
평점 :
정직하게 말한다면 독자는 '바칼레러아'란 단어를 처음 들어본다. 이 책 『바칼로레아 철학 수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물론 고등학교 시절(우리는 선진국이 아닌 시절) 서양 선진국에선 고등학교부터 '철학'이란 커리큘럼이 들어 있다고 말은 들었지만, 어떤 식으로 배우는지, 뭘 배우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더 이상 알 필요도 없었고(배우는 것을 제대로 소화하기에도 어려웠고,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과목이 아니었기에 선생님들도 더 이상의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까맣게 잊고 지낸 동안 수십 년이 지났다.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프랑스 대입에 필요한 '바칼로레아'란 단어를 알고부터 "아하, 그런 것이었구나" 싶다. 한마디로 프랑스 철학 수업은 논리적 글쓰기로 귀결된다. 논리적 사고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지만 결국 대입 때는 글로 써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 사카모토 타카시는 이 책에서 200년 넘도록 시대의 주요 이슈를 관통하는 철학적인 질문들을 제시해 온 프랑스 대학 입학 자격시험이 ‘바칼로레아’라고 밝힌다. 주입식 입시 교육의 대안으로 꾸준히 주목받는 바칼로레아에서는 철학적인 질문에 얼마나 합리적인 논거로 명료하게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학생들은 ‘노동은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드는가?’, ‘기술은 우리의 자유를 증진시키는가?’, ‘권력 행사와 정의 존중은 양립 가능한가?’ 등의 질문에 철학자들의 논리를 바탕으로 탄탄한 구조를 갖춘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 답을 찾고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비판적 사고와 건전한 토론 의식을 함양하게 되므로 교양인이 되기 위한 효과적인 훈련법으로 세계에서 그 탁월함을 널리 인정받고 있다는 것. 이젠 '아날로그 세대'로 사회 중심에서 밀려났지만 한때 우리 사회 발전에 중심 세대로의 몫을 다했던 오늘날 중년의 세대로선 많은 회한을 남긴다. 왜 우리는 고등학교 교과 과정에서 '철학'을 가르치지 않았을까? 여전히 일본식 교육의 답습이라는 비난을 지울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저자 사카모토 타카시는 현재 교토약과대학 교수로서 프랑스의 보르도 제3대학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과정을 밟았다고 한다. 전공은 〈20세기 프랑스 사상사(미셸 푸코) 및 철학 교육〉이다. 바칼로레아 및 철학적 사고에 관한 저서를 다수 집필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 『바칼로레아 철학 수업』은 입시제도를 설명하거나 문제를 단편적으로 소개하는 기존의 다른 책과 다른 점이 두드러진다. 바칼로레아의 실제 답안 작성 과정을 따라가며 논리적 사고를 전개하는 방법에 집중하고 있다. 이로써 아무리 까다로워 보이는 질문이라도 여러 각도로 쪼개고 분석하여 합리적인 답을 낼 수 있도록 이끈다. 그렇다면 왜 저자는 일본에서 이 책을 올해 출판했을까? 일본의 입시 제도를 전혀 모르는 독자로서는 일본 역시 아직 프랑스처럼 합리적인 철학 수업을 고등학교 교과 과정에서 가르치지 않는다는 뜻일까? 확실하진 않지만 이런 철학 수업 제도를 일본에도 들여야 한다는 의미로 이 책을 썼을까? 아니면 채점의 공정성을 기할 수 없다는 등의 많은 의문이 뒤따른다.
저자에 따르면 바칼로레아 문제에는 시험이나 논술에 등장하는 학술적인 질문을 비롯해 ‘이직을 할 것인가?’, ‘정부의 정책을 지지할 것인가?’ 등 실생활과 밀접한 고민까지 포함된다. 오랜 연구를 거쳐 만들어진 바칼로레아식 ‘사고의 틀’은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는 우리 사회에서 진정 발전적인 논의를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도구가 된다. 정해진 답이 없는 세상의 문제 앞에서 논리적으로 의견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이 책과 함께 바칼로레아식 사고를 훈련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예술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 ‘정의로운 사람은 법을 어겨도 되는가?’ ‘이성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 등이 프랑스 대학 입학 자격시험 ‘바칼로레아’에 실제로 출제되었던 철학 문제들이다. 주어진 시간은 단 4시간. 문제를 푸는 고등학생들은 그 안에 충분한 논리로 뒷받침된 하나의 답안을 작성해서 제출해야 한다. 어떻게 프랑스의 교육은 학생들이 이렇게 난해한 질문에 답하도록 만들 수 있었으며, 왜 이런 교육을 지향하는 것일까?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바칼로레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바칼로레아의 모든 것을 이 책에 담아 제도 정착을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나폴레옹 황제 시대부터 무려 200년 이상 이어져 왔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철학 시험은 그해의 가장 중요한 이슈를 다루는 경우가 많으며, 시험이 시작되고 문제가 공개되면 수험생이 아닌 일반 시민들까지도 각종 미디어를 통해 해당 주제를 두고 토론하기도 한다. 긴 역사 동안 철학 과목이 포함된 학교 교육을 받아 온 프랑스인들에게는 이러한 사회적 논의가 낯설지 않은 것이다. 이 책 『바칼로레아 철학 수업』에서 소개하는 프랑스 철학 교육의 목표는 다음 5개의 주제를 지향한다.
① 자기 생각이나 지식을 검토하여 그 타당함을 검증할 수 있을 것
② 곰곰이 생각하지 않으면 대답하기 어려운 복수의 질문을 만들 수 있을 것
③ 하나의 문제에 대해 복수의 시점을 비교 평가하고,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
④ 근거 있는 주장 및 지식에 기초한 논거를 제시함으로써, 자신이 긍정하는 것과 부정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
⑤ 철학 작품 독서, 발췌 학습을 통해 얻은 지식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책에 따르면 이 교육 목표에서 알 수 있듯, 프랑스의 철학 수업에는 철학적 개념들과 주요 철학자들의 이론을 학습하는 과정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적 주장을 펼치는 방법인 ‘사고의 틀’을 배우는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설득력 있게 의견을 개진하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도 반목 대신 생산적인 토의를 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바칼로레아의 주된 목적이다. 이처럼 주입식 암기 교육의 한계로 지적되는 비판적 사고력 함양과 건전한 토론 능력 증진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그리고 인공지능에 익숙하지만 대신 '생각의 힘'을 잃어가는 우리 사회 현실에서 가장 필요한 교육이 '생각'이라는 점에서 바칼로레아 교육은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물론 철학만이 사고하고 표현하는 것을 기초로 하지는 않는다. 분야에 따라 그 시점이나 방법의 차이는 있지만 학생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사고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다만 프랑스는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에 철학 교육을 통해 이를 배운다는 것이다. 그렇게 프랑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칼로레아를 취득한다는 것은 시민이 갖춰야 하는 기본 소양을 쌓았다는 의미이다. 이념상으로는 그렇지만, 실제로 그 수준까지 도달한 사람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바칼로레아는 고등학교 기간의 학습 성과를 평가하는 시험이라는 말이다. 즉, 1년 동안 철학을 얼마나 잘 배웠는지 평가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철학적 사고와 논리, 표현 등을 갖추었는지는 이 시험을 통해 드러난다는 의미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수험생들이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 문제를 풀 때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쓴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런 훈련 덕분에 프랑스인은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펼친다는 주장은 얼핏 그럴 듯해 보이지만 사실과는 다르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은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하지를 확인하는 시험이 아니고, 단순하게 의견이나 감상을 쓰는 시험도 아니라고 밝히면서 "에세이나 독후감과는 다르게 쓰기 교육에서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사고와 글쓴이의 개성이나 감성이 잘 표현된 글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평가 내용의 정형화와 평가의 공정성이 사전에 전제돼야 함을 지적한다. 실제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에서는 사고의 틀에 숙달했는지를 평가한다고 답변을 대신한다. '사고의 틀'이란 무엇일까? 한 문장으로 표현된 시험 문제를 정해진 순서대로 분석하고, 답을 '도입-전개-결론'의 세 부분으로 구성해 작성하는 것이란 말이다. 프랑스 고등학생은 1년에 걸친 철학 수업을 통해 이 틀을 배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은 바로 그 틀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다. 한 문장으로 출제된 문제에 4시간이나 걸려 답을 써 내게 되는 시험이다.
사실 '철학'과 '틀'이란 모순적이다. 철학에 필요한 것은 사물을 다른 각도로 보는 창의력이나, 하나의 질문에 대해 끈질기게 사고한 끝에 독창적인 답에 도달하는 재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철학을 생각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프랑스 철학 교육에서 틀을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일까?란 질문이 뒤따르게 된다. 저자는 프랑스 고등학교에서 철학 교육의 목적이 지식이나 학문으로써의 철학을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철학 교육의 목적은 권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발언하며 행동할 수 있는 시민을 육성하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철학이다. 철학의 역사나 다양한 철학자의 주장을 이해하고 암기하는 것보다는 어떤 사고 방법을 활용하는지, 어떻게 그 방법을 활용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는 설명이다. 사고의 틀은 이처럼 시민이 익히는 것이며, 사고하고 표현하는 방법의 기초가 된다. 사고의 틀을 익히는 목표는 서양이 역사적으로 복잡한 사고의 본보기로 삼아온 철학을 학습함으로써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시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고'와 '틀'은 모순적이다. '틀에 박힌 사고'라면 일반적으로 모든 일을 형식에 맞춰 처리하는, 독창성이나 창조성과는 정반대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고의 틀'과 '틀에 박힌 사고'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집안을 돌본다'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틀에 박힌 사고'이다. 이에 반해 프랑스 철학 교육이나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사고의 틀은 다양한 의견을 표현하기 위한 '공통적인 양식'이다. 즉, '내용'이 아닌 '형식의 규칙'을 말한다. 그 형식에 따라 토론하고, 자기 입장을 표명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란 말로 저자는 풀이하고 있다.
바칼로레아는 이처럼 틀에 따라 주장을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한다. 그리고 이 틀 안에는 확실한 장점이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바로 자신의 주장과 대립하는 반대 의견에도 타당한 근거를 확실하게 표시하고, 반론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반대 의견을 존중하고 최대한 이해한 다음, 자기 입장이 정당함을 주장하는 절차가 강조되는 이유이다. 프랑스에서 실시되는 이런 철학 교육의 목표가 충분히 이뤄졌다고 보기에는 아직도 미흡한 점도 있다. 철학과 실천 사이에 괴리가 존재하며, 모든 사람이 전부 학교에서 철학적 사고를 익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현실과 이념 사이에 괴리가 존재하기에, 다시 철학으로 돌아가 방향성을 검토해 볼 수도 있다는 점은 남겨놓았기에 철학 교육은 이처럼 계속해서 우리에게 숙고의 기회를 제공해 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은 모두 6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프랑스 철학 교육」, 2장 「사고의 틀이란 무엇인가?」, 3장 「사고의 틀 전체상」, 4장 「노동, 자유, 정의」, 5장 「사고의 틀로 철학을 하다」, 6장 「사고의 틀을 응용하다」 등이다. 1~2장은 바칼로레아에 대한 소개와 바칼로레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고의 틀을 살펴본다. 3장은 사고의 틀을 구성하는 요소, 즉 문제의 주제, 형식 식별, 용어 정의, 가능한 답안 열거, 질문 분석, 구성안 적성 등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4장에서는 서두에서 언급한 세 가지 문제에 답하는 데 필요한 철학자들의 핵심적인 주장을 소개한다. 5장에서는 앞의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예시로 삼아, 실제로 사고의 틀을 사용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특히 세 가지 문제에서 다루는 노동, 기술, 자유, 권리, 정의와 같은 개념은 프랑스 철학 문제 중에서도 반복해서 출제되는 주제이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필요한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능력과 자세'를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문제를 발견하는 힘,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익힌다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답이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 주기도 합니다. 더욱이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면 ‘답이 없는 것’, ‘의견이 바뀌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새로운 정보나 논거를 손에 넣음으로써 자신이 지금까지 옳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 실은 옳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때까지의 자기 의견에 집착하거나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고치기 쉽습니다. 새로운 조건으로 다시 한번 질문을 만들어 보고, 자기 의견을 절대시하지 않고, 몇 번이고 수정하며, 계속해서 의심해 보세요. 이 같은 태도야말로 ‘교양’이 주는 선물이며, 시민에게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p.201) - 「6장 사고의 틀을 응용하다」 중에서
저자 : 사카모토 타카시
교토약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교토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연구 박사과정 연구지도를 받았으며, 프랑스의 보르도 제3대학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과정을 밟았다. 전공은 ‘20세기 프랑스 사상사(미셸 푸코) 및 철학 교육’이다. 바칼로레아 및 철학적 사고에 관한 저서를 다수 집필했다.
역자 : 곽현아
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전공하고, 일본학과를 부전공으로 졸업하였으며, 현재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