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떠러지 끝에 있는 상담소 - 우리 모두는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이지연 지음 / 보아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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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낭떠러지 끝에 있는 상담소』는 이 책 속표지 맨앞에 '일러두기'처럼 적혀 있는 심리상담소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각색하고 창작한 이야기다. 저자 이지연은 "평소 사람의 마음, 뇌과학, 첨단기술에 관심이 많아 우리 누구나 갖고 있는 마음과 감정을 소재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책의 뒷 부분 〈작가의 말〉을 통해 "누구나 저마다 삶의 서사를 갖고 있고, 그 이야기에서 주인공이다"고 전제하고 "이 소설을 통해 고군부투하며 살아온 자신의 삶을, 그리고 그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조용히 들여보며 어루만지는 시간이 되기"를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있다. 

이 소설은 마음을 바꿔 삶이 바뀐 사람들의 이야기다. 독자들은 치유의 현장에서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치료하는 상담심리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다양한 마음의 모습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병든 마음을 치료하고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정은 쉽지 않다. 우리가 흔히 병든 육체를 치료하는 의사는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병든 마음을 치료하는 '정신 건강'은 돈으로도 살 수 없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책이다. 

이 소설을 읽기에 앞서 저자는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라고 질문한다. 돈, 명예, 성공, 가족, 일 등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마음이 무너지면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결국 삶도 무너지게 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때문에 살면서 물질적인 풍요로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 내 의지를 벗어나 무너지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는 남보다 앞서고 빠르게 달려야 한다는 경쟁심과 욕망, 물질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우리는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시간이 없다. 이는 우리를 병들게 하고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을 외면하게 한다. 내면에 쌓이는 부정적인 감정은 마치 언젠가는 폭발하는 화산처럼 폭발할 기회를 노리다 반드시 고개를 들어 예기치 못한 일을 감행하기도 한다. 저자는 마음을 다스리고 마음을 다치지 않게 돌봐야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각인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 소설 집필의 취지이기도 하다.



이 소설엔 모두 여섯 가지의 사례가 등장한다. 「세상에서 고립된 아이' 현수」 「여자가 되어 엄마를 간직하고 싶은 청년' 세훈」 「기댈 곳을 찾아 헤매는 어른아이, 미희」 「돈과 결혼한 여자, 희진」 「신데렐라가 되고 싶은 남자, 희준」 「거울을 보지 않는 상담사, 유경」 등 6개 에피소드를 통해 마음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치유를 통해 무너진 삶을 일으켜 세우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번아웃, 우울증, 화병, 불안, 집착, 열등감 등 부정적 감정에 대한 '심리학적 고찰'이 되는 셈이다. 저자는 심리상담의 결과를 갖고 독자들이 더 쉽게 이해하고 혹시 모를 마음의 병을 예방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실제 사례를 소설로 재구성(각색·창작)한 리얼리티 심리 소설이다. 쉽게 말하면 실화 소설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에는 우리 누구나 갖고 있는 감정을 대변하는 6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삶이 무너져 마음의 낭떠러지 끝에 서 있지만, 치유의 과정을 통해 마음을 회복하고 삶이 바뀐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아픈 마음을 낫게 하기 위해서는 힐링을 넘어 반드시 치유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힐링은 외부로부터 받는 위안이기에 수동적이지만, 치유는 능동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밝힌다. 마음의 치유를 위해서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어루만지기, 자신의 열등한 부분을 받아들이기,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퇴행을 극복하기,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통합하기 등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자신의 노력을 요청하고 있다. 이 소설은 치유의 현장에서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치료하는 직업을 가진 상담심리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다정한 마음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병든 마음을 치료하고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겨운 과정에서 독자들의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낼 감동적 사연도 자주 등장한다. 

특히 표제어에 등장한 '낭떠러지 상담소'의 상담심리사 역시 소설 속 한 사람의 실제 사례로 등장해 마음의 병을 앓는 '환자와 함께하는 치유자'라는 인식을 독자들에게 심어줄 수 있어 호응도 배가된다. 마음의 병을 앓아본 사람이 환자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일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사례자 '유경'이 상담심리사이자, 그 자신 역시 심리적으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앞에서 사례적으로 살펴본 부정적 감정 중의 하나인 '열등감' 때문이다. 이는 소설 속 마지막 사례 「거울을 보지 않는 상담사, 유경」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유경은 미국으로 떠나기 전 유학원에서 상담도 받고 책을 찾아보면서 미국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한 정보를 수집했다. 마침 준호가 유학 중인 시카고에 꼭 만나고 싶어 했던 밥 교수가 교수로 있는 대학이 있었다. 유경은 일단 가격이 저렴한 시카고에 있는 칼리지 대학에 들어가서 2년 과정을 마치고, 밥 교수가 있는 대학으로 편입을 목표로 준비했다. 유경은 결혼식을 마치고 지원한 칼리지 대학에서의 비자가 허락되어 미국으로 향했다. 엄마가 남겨주신 소중한 돈은 학비의 일부로 보태 유용하게 쓰였다."(p.304) 

유경은 학업과 결혼생활을 병행하면서 결국 노력 끝에 7년째 되었을 때 한국으로 귀국했다. 유경은 귀국 후 한국상담연구소에 상담심리사로 취업해 자신이 그렇게 바라던 상담사로서의 첫발을 내딛었더, 그리고 기관에서 상담사로서 크게 인정을 받고 5년째 되던 해 독립해 '마음서고 심리상담소'를 차렸다. 부유한 집안의 며느리, 해외 유학을 다녀온 유능한 상담사, 능력 있는 남편의 아내라는 겉으로 내세우기 좋은 모습만을 자신으로 인정하고 싶은 것이다. 

심리상담소장 유경은 어느 날 딸이 선물한 거울을 보며 지난 과거를 돌이켜본다. 문득 거울 속에 비친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거울을 본 것은 준호와 결혼하고 나서 처음임을 자각한다. 유경은 준호와의 결혼으로 완전히 새로운 인생의 장이 펼쳐졌다. 자신의 초라하고 어두운 과거를 완전히 지우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미국 유학생활을 할 때도, 한국에 귀국해 상담사 일을 할 때도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과거를 일절 말하지 않았다. 유경은 내담자들에게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마주하고 자신의 어둡고 열등한 면도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고 늘 말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그렇지 못했다고 깨닫게 된다. 겉으로 드러난 자신의 현재 모습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과거의 어두운 모습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고 싶었다.



유경은 상담심리사로서 다른 환자들과의 상담 치유를 하는 것처럼 자신이 부정하고 지워버리려 했던 마음 한구석에 처박아버린 어린 유경에 대한 기억을 꺼내 어루만졌다. 한없이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자신의 어둡고 열등한 자아를 꼭 껴안아 주었다. 그러자 꼭꼭 숨기고 싶던 자신의 모습이 오히려 없어서는 안 될 존재처럼 소중하게 느껴졌다. 유경은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가장 어렵고 또 가장 필요한 일임을 새삼 깨달았다.(p.307)

책에 따르면 인간은 이성보다 감정의 지배를 받는 존재다. 그리고 감정은 우리 삶뿐만 아니라 사회,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남보다 앞서고 빠르게 달려야 한다는 경쟁심과 욕망, 물질에 대한 집착이 우리 개인은 물론 사회적 정서를 집어삼키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조현병에 의한 살인, 은둔형 외톨이, 왕따, 우울증, 공황장애 등이 해가 갈수록 증가하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근본을 들여다보면 공통적인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세상에서 고립된 아이, 현수」의 주인공 현수는 어렸을 때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빠와 둘이 사는 고2 학생이다. 아빠는 현수를 방치해 현수는 학교와 집에서 문제아이자 외톨이다. 현수는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없어 세상과 격리된 채 게임을 친구로 삼아 컴퓨터만 끼고 산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때로 폭력을 행사하고 문제를 일으킨다. 현수는 세상과 전혀 소통할 수 없어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간다. 현수는 학교에서 퇴학을 당할 뻔하지만, 그의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으로 학교에서 마지막 기회를 주어 상담소로 오게 된다.

「여자가 되어 엄마를 간직하고 싶은 청년, 세훈」의 주인공 세훈은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을 해서 엄마의 정이 몹시 그리운 애정결핍의 청년이다. 감성적이고 정서적으로 여자인 세훈은 여자가 되고 싶지만, 완벽주의에 보수적인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힌다. 이로 인해 아버지와 사이가 극도로 좋지 않다. 더욱이 아버지는 성전환을 하려는 그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그를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킨 적이 있다. 자신의 문제를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세훈은 내면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대상이 필요해 상담소를 찾게 된다.



「기댈 곳을 찾아 헤매는 어른아이, 미희」의 주인공 미희는 알코올 중독자이고, 사이비 종교에 심취해 있는 40대 주부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에 의해 잘난 여동생과 모든 것을 비교당하며 살아온 미희는 항상 주눅이 들어 있고, 매사에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해 자신의 문제를 다 해결해줄 것처럼 보이는 그 무엇인가에 의존하며 산다. 그것이 처음에는 마시면 모든 것을 잊게 해주는 술이었고, 그다음으로 찾은 것이 사이비 종교다. 이로 인해 미희의 남편은 인내심의 한계에 부딪혀 이혼을 고민하며 마지막 기회를 준다는 심정으로 미희를 데리고 상담실을 찾아온다.

「돈과 결혼한 여자, 희진」의 주인공 희진은 미모의 여성으로 아버지 사업이 망해 가난에 시달리다 돈이 많은 집안에 시집을 간 신데렐라 여성이다. 그러나 외부에서는 전혀 모르는 자신을 무시하는 시댁, 남편의 폭력 등 불행한 결혼생활로 인해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시달리다 탈출구의 방편으로 상담소를 찾아와 상담을 시작한다. 「신데렐라가 되고 싶은 남자, 희준」의 주인공 희준은 외도로 이혼을 하고, 이혼녀인 여자친구와 결혼을 생각했지만 여자친구가 의사와 재혼을 하는 바람에 독신이 된다. 그러나 명문대 출신의 약사인 여자친구를 잊지 못해 공허함과 외로움으로 상담실을 찾게 된다.

「거울을 보지 않는 상담사, 유경」의 주인공 유경은 앞의 5명의 내담자들을 상담해주는 심리상담센터의 소장이자 상담사다. 앞서 언급한 대로 지금은 10명의 상담사를 둔 상담센터의 소장이자 부유한 집안의 며느리이지만, 그녀에게는 상담사가 된 기구한 사연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어느 누구에게도 밝힌 적이 없는데, 그녀의 에피소드에서 그것이 밝혀진다.

각자의 사연을 가진 내담자들은 어떻게 자신의 무너진 마음과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는지 차분한 마음으로 읽을 것을 먼저 읽은 독자로서 권유한다. 차분하지 않다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내담자들의 가족이 내담자로 인해 받은 상처와 고통을 어떻게 치유하고 그들과 관계를 회복하게 될지 깨닫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 남편이 술을 마셔서 그랬어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저에게 그러지 않아요.”

희진은 매 맞는 아내들이 자신은 폭력의 희생양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할 때 하는 변명을 똑같이 내세웠다. 희진은 자신이 선택한 결혼생활이 실패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술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희진을 바라보며 유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어서 유경은 지금 희진이 어떤 생각과 감정이 드는지를 물었다. 그러나 희진은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유경은 희진이 건네는 침묵의 답변에 함께 침묵했다. 이윽고 희진이 입을 열었다.

“정말 믿어지지가 않아요. 지금 이 모든 것들이요.”

희진의 말은 내담자들이 자신이 믿고 있었던 진실, 신념들이 깨졌을 때 내뱉는 말이었다. 유경은 내담자들이 자신의 왜곡된 신념들을 재정의하는 과정을 수없이 보았다. 희진도 이제 그 과정의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어떤 점이 믿어지지 않나요?”

혼란스러움에 빠져 있는 희진의 마음을 다독이며 유경은 희진이 말한 믿어지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제가 가정폭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이요. 남편은 내가 얼마나 돈에 집착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돈으로 자신의 폭력을 무마했던 거예요. 왜 요즘 한창 난리 난 가스라이팅 있죠. 생각해보니 저는 지금까지 가스라이팅을 당해온 거 같아요.”

희진은 마침내 자신의 돈에 대한 집착이 자신의 삶에서 많은 것들을 잘못 선택하도록 했음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희진은 현재 비극적인 영화 속의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여주인공이나 마찬가지였다. 유경은 희진의 앞으로의 삶이 해피엔딩으로 끝나기 위해서는 그녀가 올바른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pp.186-187) 「돈과 결혼한 여자, 희진」 중에서


저자 : 이지연


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 고전 마니아. 시공간을 뛰어넘어 살아남은 고전처럼 좋은 책을 쓰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평소 사람의 마음, 뇌과학, 첨단기술에 관심이 많아 우리 누구나 갖고 있는 마음과 감정을 소재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 이 소설은 마음이 무너진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독자들에게 질문을 건네고 있다. 또한 우리 누구나 살면서 마음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되지만, 그때 어떻게 그 순간들을 건너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삶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있다. 앞으로도 한 번뿐인 삶에서 가치 있는 것들을 추구하는 과정을 소설을 통해 독자들과 함께 나누려고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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