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워크 - 가정과 자유 시간을 위한 투쟁의 역사
헬렌 헤스터.닉 서르닉 지음, 박다솜 옮김 / 소소의책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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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애프터 워크』는 「가정과 자유 시간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표제어에 쓰인 워크(work)에 대한 풀이다. 즉 이 책은 집안일(가사)로 여념이 없는 여성의 노동 시간과 관련한 투쟁의 역사를 살펴본다는 의미다. '가정'이라 하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식구들이 함께하며 쉬고, 먹고, 놀고, 자는 곳이라는 이미지로 뇌리에 박혀 있다. 어디든 인간이 머무는 곳은 청소라는 '일'이 따르게 마련이다. 일을 하기 위해 모인 회사도 마찬가지다. 일하는 동안 생긴 잡동사니나 휴지, 쓰레기를 치워야 다음날 깨끗한 곳에서 또 일을 할 수 있다. 일터에서 발생되는 '청소일'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청소일 하는 사람에게 별도의 경비를 지급하며 처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정에서의 일은 다르다. 육아, 가정 교육, 놀고 먹는 데도 당연히 청소라는 뒷처리가 필요하다. 조상들이 해왔던 것처럼 으레 여성(주로 어머니)의 몫이다. 사실 청소나 빨래는 그렇다쳐도 육아나 가정 교육은 아이의 장래로 봐서나, 집안의 미래로 봐서나 굉장히 중요한 몫이다. 아이가 젖을 떼고 걸을 때쯤 되면 더 많은 시간이 육아에 필요해진다. 늘 움직이려는 아이를 에기치 않은 사고나 문제로부터 보호하려면 뒤를 따라다녀야 할 지경이다. 어느 집안이나 겪는 일이다. 이것도 여성의 몫이다.

이 책은 인간에게 일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지를 탐구한다. 일의 성격과 규정을 명확히 파악해둬야 일에서 파생되는 각종 문제의 해결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임금노동에 스스로 복종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왔다. 그 안에서,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탈노동의 요구는 역사적으로 볼 때 근대 이후의 일이다. 노동에 관련된 문제가 발생될 때는 늘 하던 대로 남성 위주의 산업과 일자리에만 집중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생계를 위한 임금 문제나 일자리 문제 등은 가정의 문제일 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고, 국가적 문제와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는 흔히 가사노동으로 대표되는 ‘사회 재생산 노동’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육아나 교육 등은 관련 기관에 돈을 주고 전문적인 보호를 받으면 된다. 물론 국가가 챙겨줘야 할 일이다. 그러나 나라가 가난할 때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라 가정의 문제는 임금 노동이란 개념에서 아예 빼버린 것이다.


이 책 『애프터 워크』는 탈노동 프로젝트에 관한 것을 다룬다. 가정에서의 일, 즉 가사는 모두 이에 포함된다. 당연히 노동 문제를 다루며 정책을 만들 때 포함되어야 하는데도 이는 사회에서 문제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탈노동 프로젝트'의 중심 개념은 가사도 우리가 말하는 노동 문제에 포함해 함께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동 저자 헬렌 헤스터와 닉 서르닉(이하 저자)은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의 변화를 살펴보고 우리의 미래를 내다보는, 더없이 소중하고도 긴급한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요리, 청소, 육아, 돌봄 등과 같은 무보수 가사노동이 어떻게 이전의 전통 사회보다 현대 생활에서 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그와 관련된 장벽과 난관, 불평등 문제를 꺼낸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재생산 노동 담론'에서 가장 필요한 네 가지 요소, 즉 기술의 발전, 사회적 기준 강화, 가족 형태의 변화, 주거 공간의 실험에서 제기된 다양한 주장과 시도를 사례로 들면서 지금보다 더 자유롭고 자기 주도적인 삶을 위한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인간에게 일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일은 어떤 형태로 우리를 속박할까? 이를 살펴보는 것은 일을 임금으로 환산해 가족의 생계를 위한 돈으로 지급하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분석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에서 일은 직장에서 필요한 일을 혼자, 또는 공동으로 함으로써 사전 계약된 임금을 받는다. 구석기나 신석기 시대인 유사 이전의 역사로 되돌아가보면 공동으로 사냥한 후 각자에게 배분된 몫을 받아 각 가정으로 돌아가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원리로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인 현대의 사회 시스템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생존하기 위해, 즉 임금을 받기 위해 스스로 노동(일)에 복종한다. 그것은 또한 다른 사람이나 조직에 시간을 팔아넘기고 통제권까지 넘겨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는 길바닥에 나앉아 배를 곯고 빈곤하게 살게 될까봐 두려워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처럼 굉장히 체계적으로 짜여진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에 대한 불안감이 그 어느 때보다도 팽배해지고 있다. 일자리 부족 현상이다. 훨씬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일자리가 없다는 것은 크게 보자면 사회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이다. 더욱이 많은 이들이 인공지능과 자동화 같은 혁신적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의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또 실제 적용되는 많은 예를 우리는 듣고 보고 있다. 



이런 까닭에 더 적게 일하고 시장에 대한 의존을 줄이려는 새로운 탈노동 사회로의 길을 모색해야 할 때라는 게 공동 저자(이하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임금노동이 아니라 미래의 노동자를 키워내고, 현재의 노동인구를 재생시키고, 일하지 못하는 사람을 부양함으로써 사회 자체를 재생산하고 유지시키는 ‘사회 재생산’이라는 일이다. 하지만 재생산 노동, 즉 육아, 돌봄 등 잡다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집안일 등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활동은 탈노동 담론에서 ‘진짜’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묵살되어 왔다. 오랫동안 가사노동에는 금전적 이득과 구별되는 프레임이 씌워져 있었다. 돌봄 노동은 가족에 대한 사랑의 노동으로, 가정은 외부 세계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휴식의 공간으로 간주되고 여성이 주도적 역할을 맡아왔다.

그럼에도 고착화되고 그릇된 편견이 지배하는, ‘기계가 아니라 살갗을 만지는 일’은 그 규모와 중요성이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실제로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무보수 재생산 노동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2014년 한 해 동안 영국에서는 장기 무보수 돌봄 노동에 81억 시간이 소요되었고, 미국인들은 알츠하이머를 앓는 가족을 무보수로 돌보는 데에만 180억 시간을 썼으며,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데이터를 보유한 64개국에서 하루 동안 이루어지는 무보수 노동시간이 164억 시간에 달한다고 추산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국민 전체 노동시간의 45~55퍼센트가 무보수 재생산 노동에 사용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주로 서방세계에 속한 고소득 국가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저자는 이번에 출판한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더욱 우려를 표하고 있다. 과로에 반대하고 자유 시간의 젠더 불평등을 강조하는 측면에서는 이 책이 한국에 유독 적합하다고 지적한다. "한국은 긴 근로시간으로 악명이 높다. 2022냔 힌 헤 동안 한국의 노동자는 평균 1,901시간을 일했는데, 이는 독일 노동자가 일한 시간보다 560시간이나 길었다. 한국 노동자의 주당 근로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긴 수준이다. 기업 측에서는 법적으로 허용되는 주당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에서 주 69시간으로 늘리라는 압박을 가했으나, 노동조합과 청년들의 저항으로 겨우 저지되었다.



이 책은 ‘사회 재생산 노동’으로 일컬어지는 가사노동을 둘러싼 여러 담론과 논쟁, 그리고 열정적인 투쟁과 획기적인 실험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현실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을 극대화하는 실천적 대안을 내놓는다. 물론 그 핵심은 가사노동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이다. 자본주의 체제하의 노동 문제를 다방면으로 연구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모든 사람이 일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성차별적인 가사노동을 공평하게 분담할 수 있는 효율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를 꾀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지난 몇 세기에 걸친 변화를 추적, 많은 사례를 바탕으로 재생산 노동의 핵심 사안을 흥미롭게 풀어놓는다.

탈노동 관점에서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기술의 발전’이다. 냉장고, 식기세척기, 진공청소기, 오븐 등 각종 가전제품이 집 안에 가득 들어차 있는데도 가사노동의 총량이 줄어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의 스마트 홈 기술은 가정을 해방적으로 변혁시킬 수 있을까? 이러한 가정 기술을 둘러싼 여러 논의와 주장에 뒤이어 저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청결, 안락함, 육아, 그리고 전반적인 분주함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어떻게 강화되고 표준화되었느냐이다. 이에 대해서는 가정 내 청결, 말쑥한 몸단장, 육아 등의 규범이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보편화된 결과 노동시간이 그 기준을 만족시키고 더 많은 결과물을 내는 데 투입되었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가족 형태가 변화하면서 어떻게 생계 부양자/가정주부 모델이 남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강압적인 제약을 가하고 있는지, 관습적 단위인 ‘가족’이 언제까지 가사노동과 돌봄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그 해법이 무엇인지도 깊이 생각해볼 대목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주거 공간에 대한 흥미로운 건축적 제안과 소규모의 실험 사례를 소개하면서 주거 환경에 대한 인식 변화가 새로운 상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앞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세 가지의 핵심 원칙, 즉 공동 돌봄, 공공 호사, 시간 주권의 개념을 설명하고 실천적 방법을 제시한다. 탈노동 사회로 가는 길은 결코 순탄할 수 없다. 끊임없는 환경 변화와 서로의 이익이 상충하는 장애물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말하듯, 그것은 한없이 프로메테우스적인 과정의 일부이고 궁극적으로는 시간을 해방시키고, 인류의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악명 높은 근로시간, 최하위권의 워라밸 지수, 만성적 과로와 젠더 불평등, 가사노동의 불균형으로 인한 여성의 상대적 박탈감 등이 심각한 지경에 이른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 책은 무척이나 도발적이고 유용하게 읽히면서 많은 물음표를 던진다.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는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이 끝난 뒤(애프터 워크)’, 또 일해야 하는 세상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 것인가. 지금 우리는 이 두 갈래의 길 앞에 서 있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우리의 자유 시간을 잡아먹는 재생산 노동을 어떻게 개선해나가야 하는지를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루기 위해 네 가지 요소를 끄집어낸다. 그것은 바로 ‘기술의 발전’, ‘사회적 기준 강화’, ‘가족 형태의 변화’, ‘주거 공간의 실험’이다.

다음으로는 기술의 발전에 따른 사회적 규범과 기준, 기대가 어떻게 강화되었는지를 살펴본다. 혁신적 기술은 또 다른 일을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결과물을 기대케 했다. 이로써 노동의 양이 줄어들 희망은 사라졌고, 개인의 자유 시간은 지속적으로 침해받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우리 모두가 따르고자 하는 규범을 함께 결정하고 스스로 법을 제정하는 수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가정 내의 사회적 관계, 특히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회 재생산의 주체인 핵가족에도 주목한다. 사회 재생산 노동의 관점에서 핵가족은 비효율적인데다 각종 젠더 불평등의 온상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핵가족 형태는 여전히 우리 시대의 문화적 상상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면 핵가족은 어떻게 탄생해 오늘날 가장 보편적인 가족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 또한 관습적 가족의 일원이 아닌 사람들은 언제까지 사회적으로 외면당할 것인가? 이렇듯 핵가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의 불합리한 문제와 제약, 그리고 변화하는 양상을 면밀히 짚어본다.

가정 공간을 어떤 형태로 조직하면 가정 내 무보수 노동과 돌봄 노동이 겪는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지도 면밀히 들여다본다. 20세기의 흥미로운 건축적 제안과 소규모 실험, 즉 러시아 혁명 직후의 열린 공간인 ‘주택 코민’, 프랑크푸르트 주방, 붉은 빈, 드롭 시티, 랜다이크 운동 등은 생활공간과 대항적인 사회적 상상에 중요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재생산 노동을 둘러싼 네 가지 요소의 분석을 기초로 탈노동 미래를 위한 실천적 방법을 제시한다. 공동 돌봄, 공공 호사, 시간 주권이다. 이 개념들이 어떻게 결합되는지를 설명하면서 우리 모두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한지를 유연하게 생각하고 끊임없이 자유의 영역을 넓혀나가야 한다고 덧붙인다.


저자 : 헬렌 헤스터(Helen Hester)

영국 웨스트런던 대학교에서 젠더, 기술, 문화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테크노페미니즘, 사회 재생산, 노동 이론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며 국제 작업 그룹 ‘라보리아 큐보닉스(Laboria Cuboniks)’의 일원이다. 지은 책으로 『노골적인 것을 넘어 : 포르노그래피와 성의 이동(Beyond Explicit: Pornography and the Displacement of Sex)』, 『제노페미니즘(Xenofeminism)』, 『포스트 워크(Post-Work)』 등이 있다.


저자 : 닉 스르닉(Nick Srnicek)

영국에서 활동하는 캐나다 출신의 연구자이다. 현재 런던대학 킹스칼리지에서 디지털 및 플랫폼 경제, 인공지능의 정치경제, 노동거부의 정치,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좌파 가속주의자의 대표 주자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기술적 발전을 전유해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사회적 변화와 급진적 해방을 추구하는 데 관심이 있다. 수평적이고 직접적인 자율성에 무조건 호소하지 않고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조정을 강조하면서도 전 지구적으로 실현 가능한 현실적 대안을 추구한다. 주요 작업으로는 『플랫폼 자본주의』가 있으며, 알렉스 윌리엄스와 함께 『가속주의자 선언』을 발표하고 『미래의 발명: 탈자본주의와 노동 없는 세계』를 펴냈다.


역자 : 박다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했다. 책 『멍든 아동기, 평생건강을 결정한다』, 『만만찮은 여자들』, 『불안에 대하여』,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관찰의 인문학』, 『죽은 숙녀들의 사회』, 『여자다운 게 어딨어』, 『스피닝』 등을 번역했다. 배우자와 아이, 고양이와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부지런히 찾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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