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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문학을 위하여 - 오에 겐자부로 소설론의 결정판! ㅣ 오에 컬렉션 1
오에 겐자부로 지음, 이민희 옮김, 남휘정 해설 / 21세기문화원 / 2024년 1월
평점 :
이 책 『새로운 문학을 위하여』의 저자 오에 겐자부로는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후 일본의 두 번째 수상자가 됐다. 1935년 일본 유서 깊은 무사 집안에서 태어난 오에는 전후 일본의 폐색된 상황에서 젊은이들의 갈 곳 없는 울분과 방황, 절망감 등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표현하며 이시하라 신타로, 가이코 다케시와 함께 전후 신세대 작가로 주목받았다고 한다. 독자로서는 그의 작품이나 그의 문학 사상을 접하지 못했기에 이름만 알고 있을 정도다. 전후 일본의 침체된 분위기가 아직 걷히지 않았을 1954년에 도쿄 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여 와타나베 가즈오 교수의 가르침 밑에서 단테, 라블레, 발자크, 포, 예이츠 등을 비롯하여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반영웅주의에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다. 1960년 평생의 친구이자 동지였던 사회파 영화 감독 이타미 주조의 여동생 이타미 유카리와 결혼했다. 일본 문단의 가장 주목 받는 작가로서 문학평론가로서 명성을 쌓았고, 노벨상 수상 이후 일본의 대표적 문학가로 자리 잡았다.
해외 문학을 폭넓게 접하면서 독특한 시적 문체를 정립한 그는 장애를 가진 큰아들과의 공존을 통해서 반전과 평화, 민주주의 등 인류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관찰과 천착을 거듭하여 자신만의 개성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한 것으로 전해진다. 천황제와 국가주의, 핵무기, 우익의 협박과 테러를 포함한 모든 폭력에 맞서며, 일본 평화헌법 9조의 개정을 반대하는 ‘9조 모임’과 자위대의 해외 파병 반대, 김지하 시인의 구명을 위한 단식 투쟁 등 다양한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그는 오로지 문학 활동에 전념했을 뿐 사회 사상이나 정치 이념에 좌우되지 않은 문필가로 세계의 명성을 얻었다. 아마 노벨문학상 수상의 이유가 됐을 것으로 판단된다.
오에는 한국에서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반대하는 다양한 활동 때문에 '행동하는 지식인'의 이미지가 강렬해, '소설가의 소설가'로 불리는 그의 소설에 대한 열정과 지식이 똑바로 부각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 책 『새로운 문학을 위하여』는 평소 오에를 연구해 오던 〈오에 간행위원회〉가 소설 읽기와 쓰기의 궁극적 단계에 이른 그를 한국의 독자들에게 충실히 알리고자 작품 컬렉션을 간행하기로 의견을 모아 추진한 '시리즈 5권' 중 첫 번째 책이다. 오에 컬렉션은 평론 4권, 소설 1권의 전 5권으로 구성됐고, 한국의 독자들에게 '읽기와 쓰기' 이론의 정수를 경험하고, 그 이론이 실제 소설에서는 어떤 양상으로 표출되는지를 제 5권을 통해 확인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첫 책의 「오에 컬렉션을 발간하며」란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간행 위원회는 『새로운 문학을 위하여』(논집)에서 오에 겐자부로는 단테·톨스토이·도스토옙스키 등의 작품들을 러시아 포멀리즘의 '낯설게 하기'라는 방식으로 새롭게 바라보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밝혔다. 간행위원회는 오에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은 어떻게 만드는가, 문학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등과 같은 질문을 파고든다고 설명하며, 문학을 적극적으로 읽고 쓰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그의 경험과 방식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이와나미신서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배치될 만큼 대표적인 문학 입문서로 평가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책은 모두 3부 16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새로운 소설 방법론〉, 2부 〈새로운 문학의 원리〉, 3부 〈새로운 문학의 미래〉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책이 새로운 문학의 원리와 방법론적인 문제를 다룸으로써 미래 문학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풀이로 읽힌다. 세 개의 부는 각각 5~6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1부에는 「‘소설의 목소리’를 듣다」, 「다양한 레벨에서 관계 맺기」, 「기본적 수법 ‘낯설게 하기’ (1)」, 「기본적 수법 ‘낯설게 하기’ (2)」, 「‘낯설게 하기’에서 전략화·문체화로」, 2부 「상상력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1)」, 「상상력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2)」, 「문학, 세상의 모델을 만들다」, 「읽기와 쓰기의 전환 장치 (1)」, 「읽기와 쓰기의 전환 장치 (2)」와, 3부에는 「익살꾼 = 트릭스터」, 「신화적 여성 (1)」, 「신화적 여성 (2)」, 「카니발과 그로테스크 리얼리즘」, 「새로운 글쓴이에게 (1)」, 「새로운 글쓴이에게 (2)」 등이다.
책의 뒷 부분에 성신여대 일문학과 남휘정 교수가 「지금, 새롭게 읽고 쓰려는 자들에게 전하는 오에 겐자부로의 진심」이란 제목의 〈해설〉을 쓰고 있다. 남휘정 교수는 "이 책은 하나의 형식을 갖춘 문예 평론이기 전에 작가 개인의 고백서이자 새로운 독자에게 전하는 희망의 편지"라고 전제하고, "어떻게 쓸 것인가, 어떻게 읽을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시대를 초월하여 새로운 독자를 찾아가는 소설가와의 창조적 관계를 경험하게 될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남 교수는 "쇠퇴는 회복해야만 하고 원래 상태로 돌아가리라 믿는다. 하지만 착실하게 되돌아갈 길을 만들 당사자 역시 앞으로 소설이나 시를 적극적으로 쓰고 읽을 젊은이들이다. 젊은 사람에게 희망을 거는 나는, 내 생각을 문학의 원리와 방법론으로 풀어놓으면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본문 p.22)를 인용하고, 저자가 고백을 시작으로 그들에게 문학적 연대를 요청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독자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작가로서의 현실적 숙명을, 오에가 누구보다 민감하게 인지하고 있었을 터라고 덧붙인다. 이 책이 오에 겐자부로의 타계 1주기를 앞둔 시점에서 새롭게 태어날 독자들을 위해 매우 중요한 메시지로 인식되도록 돕고 있다는 말이다.
남 교수는 이와 함께 "이전 발표된 오에의 평론 『소설의 방법』에서도 '낯설게 하기'와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에 대해 상세히 다루고 있지만, 이 책 『새로운 문학을 위하여』가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문자로 전달되는 '목소리의 힘'이라고 역설한다. 이에 따라 오에는 단지 홀로 이룩한 방법론과 성과를 앞세우지 않고, 인류 문명과 역사에 자각적인 지식인들로부터 수용한 사상을 전달하는 매개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고 해설하고 있다.
또 오에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저자 밀란 쿤데라(1929~2023)가 현대사회에서 '소설의 목소리'를 듣기 어려운 현실을 지적한 것을 인용하며 '기도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는 남 교수는 책의 마지막 부분을 주목할 것을 권한다. "경제 대국 일본 사회에서 기도하는 목소리가 잘 들리던가?"(-본문 p.271)
남 교수는 일본의 전후 경제 부흥과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의 급속도의 성장률을 거듭하면서 황금기 일본 신화와 한국의 산업화를 연결시켜 이 책이 번역돼 그의 문학 사상이 우리의 현실에 일종의 경계심을 준다고 말한다. "독서를 통한 능동적 행위가 상상력을 증폭시키고, 이렇게 얻어진 문학적 이미지는 이 책에서 언급한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처럼 쓰는 이와 읽는 이를 구별하지 않고 실제적인 힘을 발휘한다. 오에는 문학에 현실과 연결된 실제적인 힘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고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현재 모두가 알듯이 황금기 일본 신화는 붕괴했다. '잃어버린 30년'으로 상징되는 일본은 긴 침체기를 겪었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우리에게 서서히 그림자를 드리우는 저성장·저출산·고령화 사회라는 악몽을 일본 사회는 일찍이 경험한 것이다. 이 시기에 오에는 물질 만능 시대의 '종말'을 예견이라도 하듯이 '낡은' 것들을 넘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자 노력했다. 일본의 가장 화려한 시대에 발표된 『새로운 문학을 위하여』가 현재를 되짚어 보게 한다. 더 이상 사회 변화를 향해 어떤 능동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 군상은 일본에서 만연한 현상이었고 지금도 다를 바 없다. 여기서 1980년대 일본의 '수동적 인간상'과 우리의 '제5공화국' 그것에 나타난 격차의 문제를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으리라. 정치와 경제 모든 면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였던 두 나라의 시대상은 변화했지만 동시에 각각 또 다른 궁지로 몰린 것도 사실이다.
남 교수는 오에가 과거 역사로서 경험한 사실을 현재에 다시 생각하고 정의를 내리는 것으로 미래를 예측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일본의 1980년대는 현재의 한국과 가까운 듯하다. 그는 문학의 가능성에 대해 지적한 부분을 인용한다.
문하긍ㄹ 기대하는 지평이 역사적 삶의 실천에서 기대되는 지평보다 훌륭한 것은, 그것이 실제 경험을 보존하는 것뿐 아니라 현재 시점에서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을 앞서 예견하고, 사회적 행동에 있어 한정된 활동 범위를 새로운 원망·요구·목표를 향해 넓힘으로써 미래에 겪게 될 경험의 길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본문 p.133)
독자가 이 책에서 발견한 생경한 단어는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낯설게 하기'와 또 하나의 단어는 '트릭스타(trickster)'이다. 종교대사전에 따르면 트릭스타(trickster)는 책략이나 사기술을 구사해서 활약하는 '장난꾸러기'가 주인공으로서 등장하는 신화나 민화는 세계 각지에서 보이는데 그런 등장인물 말한다. 트릭스타는 책략을 이용하는 교활함·현명함이 상찬되는 한편,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어리석음으로 비웃음을 당하는 자이며, 또한 인간에게 불이나 문명을 가져온 문화영웅적인 신인 동시에, 단순히 장난을 좋아하는 반사회적인 파괴자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선한 문화영웅과 악학 파괴자, 또는 현자와 우자라는, 법과 질서상에서 보면 일관성이 결여된 모순된 역할이 주인공의 속성으로 이야기된다. 북아메리카의 인디언족의 트릭스타 설화는 코요테, 큰 까마귀, 들토끼나 마나보죠 등의 이름의 문화영웅=트릭스타가, 각각 주인공으로서 활약하는, 공통의 형을 포함하는 많은 설화군을 이루고 있다는 풀이로만 봐도 이해 가능하다.
그러나 '낯설게 하기'는 책의 여러 곳에서 등장하며 이 책의 내용 중 가장 중요한 단어의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어원을 따라 풀이까지 덧붙일 정도로 비중을 두고 다루고 있다.
저자 오에 겐자부로에 따르면 '낯설게 하기'라는 말은 본디 러이사어 아스트라녜니예(остранение)의 번역어에서 나왔다. 혁명 전후 러시아 예술의 다양한 분야는,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앞서서 새롭고 활기찬 빛을 발했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낯설게 하기'는 문학을 과학으로 진전시키 러시아 형식주의 그룹이 만들어 낸 용어이다. 이들 학자는 문학이-새롭게 만들어진 것뿐 아니라 전승된 민담이나 민요를 포함한 넓은 의미로서의 문학-표현하고 있는 내용·형태를 통해 연구해야 할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중략) '낯설게 하기'는 포멀리스트들이 만들어 낸 문예론의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잘 정제된 이론으로 단순하리만치 명쾌하며 깊이가 있어 일상·실용의 말이 어떻게 문학 표현의 말과 다른지 확인할 수 있는 지표를 제공한다.
상상력이란 실제로 자신에게 주어진 이미지, 고정된 이미지를 근본부터 다시 만드는 능력이다.(p.269)
저자 : 오에 겐자부로(おおえ けんざぶろう, 大江 健三郞)
일본 소설가.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 1935년 일본 에히메현의 유서 깊은 무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1954년 도쿄대학 불문과에 입학했고, 논문 「사르트르 소설의 이미지에 관하여」로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발표한 단편소설 「기묘한 아르바이트」(1957)가 [마이니치신문]에 언급되면서 주목받고 평론가들의 좋은 평을 받으며 작가로 데뷔했다. 이듬해에 단편 「사육」으로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을 최연소 수상하면서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등단 초기에는 전후 일본의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청년들의 방황과 좌절을 그려냈고 60년대에는 미일안보조약 재개정 반대 시위와 학생운동 등 민주주의로 향하는 진보적인 흐름을 작품 속에 그려냈다. 훗날 노벨문학상 수상식에서 대표작으로 언급된 『만엔 원년의 풋볼』(1967)에서는 이러한 주제를 100년 전의 농민 봉기와 연결하기도 했고, 『홍수는 나의 영혼에 이르러』(1973)에서는 일본의 급진 좌파가 몰락하게 되는 ‘아사마 산장 사건’을 다루었다. 1960년 평생의 친구이자 동지였던 사회파 영화감독 이타미 주조의 여동생 이타미 유카리와 결혼했다. 1963년 장남 오에 히카리가 뇌 이상으로 지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를 계기로 『개인적인 체험』, 『허공의 괴물 아구이』, 『핀치러너 조서』 등 지적 장애아와 아버지와의 관계를 모색하는 여러 작품을 집필했다. 폭력 앞에 놓인 인간에 대해 깊이 성찰하면서 국경을 넘어 사회적인 약자,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작품 속에 그려 냈다. 대표작인 『개인적인 체험』(1964)은 실제 오에 히카리가 태어났을 때의 상황을 기반으로 해서 쓴 소설이다.
이후 소설뿐만 아니라 르포르타주인 『히로시마 노트』, 『오키나와 노트』 등을 발표하면서 전후 일본 민주주의의 주요 과제들을 주목했다.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후 일본의 두 번째 수상자가 됐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작가 스스로 마지막 소설 3부작이라고 명한 『체인지링』, 『우울한 얼굴의 아이』, 『책이여 안녕!』을 발표했고 근래까지 장편소설 『익사』(2009), 단편집 『오에 겐자부로 자선 단편』(2014) 등을 발표하였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일본 전후 세대 대표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2023년 3월 향년 88세로 별세하였다.
역자 : 이민희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고려대와 한림대에서 연구원과 강사로 활동하였다. 지은 책으로 『일본 대중문학 형성기와 아쿠타가와문학: 야스키치 시리즈·사소설·메타픽션』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일본 프로문학지의 식민지 조선인 자료 선집』 『일본인, 경성을 보고 듣고 느끼다』 『처음 읽는 로마사』 『카프카답지 않은 카프카』 『프로만 알고 있는 소설 쓰는 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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