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성 문화, 사색 - 인간의 본능은 어떻게 세상을 움직였나
강영운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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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한자 실력이지만 이 책 『역사 속 성 문화, 사색』의 표제어로 쓰인 '사색(史色)'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본다. 원래 우리 발음으로 흔히 쓰이는 '사색'은 '思索'이다. 사전식 풀이로는 '어떤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짐'을 의미한다. 철학자들이나 예술가들이 즐긴다는 사색이다. 사실 사색이란 단어는 단순한 뜻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다워지고, 찬란한 문명을 발달시켜온 원동력이다. 즉 '생각하다'는 인간에게 주어진 신(神)의 최고의 선물로 받아들여져 왔다. 이 책에서 쓰인 '사색'은 '史索'이다. 즉 역사에서 찾은 '성 문화'쯤으로 해석 가능하다. 국어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단어인 것으로 보아 저자가 고안한 '조어(造語)'가 아닐까 생각된다. 조금 억지스럽지만 생각할수록 기발한 발상으로, 책의 내용이 머리에 쏘옥 들어오게 해준다.

우리 문화는 아직도 잔재가 많이 남아 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남아 있을 '유교'의 영향을 오랫동안 받았다. 유교는 공자로부터 맹자, 주자 등으로 내려오면서 우리 삶의 기본 이념은 물론 정치, 경제, 사회의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 성리학은 고려말에 전해져 오다 조선의 건국 이념이 됐다. 이후 조선시대 500년 역사는 유학의 역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종주국 중국보다 더 발전했다고 한다. 이런 문화에서 터부시되던 것 중 가장 엄격했던 것이 '성(性)'이 아니었을까 싶다. 조선시대는 유교의 영향으로 여성들의 권리는 거의 없었다. 늘 남성 중심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삼종지도(三從之道),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 등 남녀간의 교류가 극히 제한적이다. 특히 삼종지도는 어렸을 때는 아버지, 혼인해서는 지아비(남편), 늙어서는 자식(아들)을 따라 산다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남녀 간의 정념이나 정욕의 싹을 여성의 탓으로 돌렸다. 이런 문화는 유교문화권만 아니다. 세계 어디의 역사를 보더라도 남성 중심의 오랜 역사가 있다. 가장 선진 문명이라는 유럽 문명을 보더라도 여성의 사회 활동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여성들이 사회에 이름을 알리고 널리 알려지는 것은 왕족이나 귀족의 극히 일부 여성들뿐이다. 1800년대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거의 사회활동을 할 수 없었다. 문학과 미술 등 예술에서 뛰어난 활동을 보인 역사 기록이 있지만 거의 19세기 이후다.

 


 

이 책 『역사 속 성 문화, 사색』은 전 세계적으로 여성이 억압받던 시대(지금도 그런 곳이 있지만) 은밀한 사생활을 둘러싼 성 문화를 이야기한다. 과거 이야기여서 그런지, 지금 읽기에는 독자들에 따라 별 흥미를 끌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 시대 상황을 함께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면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을 사생활과 성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역사 이전의 인류의 성 문화는 거의 기록되지 않았기에 지금 쉽게 가름할 수 없다. 다만 BC 4,000년 이전의 석기시대의 성 문화는 간혹 발견된 벽화를 바탕으로 추정할 뿐이다. 그것도 문자로 기록된 당시 문화 시설의 벽에 그려진 것으로 보아 추정이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이로 인해 이 책에서 다루는 성 생활, 성 문화 등은 이집트와 수메르 문명 이후부터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리스 문명은 당시 가장 선진 문명이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세계 4대 문명으로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바대로다. 그들이 남긴 각종 기록이나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물과 건축물 등으로 미루어 그들이 높은 문명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른바 그리스 문명이다. 그들이 선진 문명을 일으키고 세상을 이끌어 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학문을 숭상하는 그리스인의 태도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다. 오늘날 서구 문명은 그리스 문명을 원조로 삼고 있다고 주장하는 데서 설득력이 높다. 이어 유럽과 아프리카 일부까지 포함한 대제국을 건설한 로마도 그리스 문명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한다. 이는 역사적 사실로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으로 각 지역의 서양 문명은 로마를 중심으로 일치화된다. 붕괴 이후에도 문명은 그대로 이어져 오늘날까지 서유럽의 강대 국가들은 로마제국의 정통성을 가져온 나라가 자국이라고 주장하는 예가 많다.

그리스에서 대리석은 건축물뿐만 아니라 위대한 인물의 동상을 아름답게 빚어낸 재료였다. 말만 들어도 거의 모두가 잘 아는 신전이나 왕궁 등을 지을 때 주로 사용하는 것은 대리석이었다. 지질학적으로도 대리석이 많은 지역이라고 한다. 그리스 동상하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나체'의 동상을 빚어냈다는 것이다. 오늘날 개념으로는 위대한 인물의 나체상을 세운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들은 예술로 생각했기에 나체상을 남겼나 보다. 이뿐만 아니다. 남성 나체상의 성기가 비례에 맞지 않게 작게 표현됐다는 점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 책의 설명을 들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왜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만 성기를 유독 작게 그렸을까요? 그리스 석상의 작은 성기는 학자들에게도 ‘핫이슈’였습니다. 수많은 미술사학자가 이 주제에 천착해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격론이 오갔고, 결론이 나왔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작은 성기를 매우 아름답다고 여겼다”고요. 그들의 사고방식을 좀 더 들여다볼까요. 고대 그리스는 철학의 나라였습니다. 이들에게 남성성은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신체 단련을 통한 근육질 몸매와 합리적 사고로 무장한 이성이었습니다. 근육질 몸매와 이성은 서로 극명히 다른 요소로 보이지만, 사실 인간의 의지로 아름답게 빚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하나로 연결됩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불굴의 의지로 섹시한 근육질 몸매를 만든 사람과 이성과 철학을 겸비한 시민을 최고의 남자로 쳤던 것입니다. 반면 이들에게는 원초적인 욕망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교양 있는 그리스 시민이 아니었습니다. 성기는 욕망의 지표였기에 그만큼 작아야 했지요.(p.13∼15)

고대 문명은 일반적으로 남성의 성기나 여성의 가슴이 비정상적으로 크게 표현되고 있다. 책에 따르면 구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봐도, 가슴과 성기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묘사돼 있으며, 고대 이집트에서도 큰 성기로 묘사된 신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라이벌 관계였던 페르시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에게 성기는 '대대익선(大大益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 로마인에게 원초적인 욕망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교양 있는 그리스 시민이 아니었다고 이 책의 저자 강영운은 합리적인 추정을 하고 있다. 성기는 욕망의 지표라고 생각했다는 것. 『그리스의 동성애』를 쓴 케네스 도버는 "그리스인들에게 거대한 성기는 그저 멍청하고 탐욕적이며 흉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성기의 대대익선 이데올로기가 그리스에서만큼은 '소소익선'이 된 셈이다. 이런 그리스 시민들은 여성의 가슴 또한 작은 것을 지향했다고 한다. 로마 풍자시인 마르티알리스는 "여성의 가슴은 한 손으로 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저자는 역사의 기록물을 찾아 적고 있다. 저자는 이와 함께 우리도 고려시대에는 성기가 작은 것을 지향했다는 증거가 있다고 말한다. 1992년 북한에서 발견된 청동 조각상 하나가 고려 태조 왕건의 동상이었는데 성기가 2cm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고 한다. 노명호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는 "당시 불교 문화의 영향으로 부처가 갖춰야 할 신체 특정 서른두 가지 '32대인상'으로 규정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마음장상(馬陰藏相)'이었다. 말의 남근처럼 성기가 오그라들어 몸 안에 숨은 형상을 뜻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주제편〉, 〈인물편〉으로 나뉘어 모두 27가지의 성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원에서 매춘', '자위', '포르노', '나체주의' 등 지금 들어도 자극적이고, 불합리한 성 문화가 이어졌고 앞으로도 더 충격적인 성 문화가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말을 〈주제〉별로 담아 17개 장(章)을 이루고 있다. 또 〈인물편〉에서는 '사디즘'이란 용어를 만들어낸 사드 후작의 이야기, 프랑스를 구한 불륜녀 아네스 소렐의 뒷 이야기, 마약에 취해 시를 썼던 보들레르, 60세 연하에게 청혼한 대문호 괴테의 이야기 등 10명의 인물을 다룬다. 6장 「자위 막고자 칼날 든 속옷까지 입었다」에서 저자는 한 에피소드를 꺼낸다.

어젯밤 동네 처녀를 생각하면서 자위 행위를 한 한 소년이 다음날 교회를 찾아 고백한다. "목사님, 제가 수음의 죄를 범했습니다." 목사가 말한다. "회개하라, 주님의 어린 양이여, 너를 용서하노라, 다만 이걸 차고 다시는 죄를 짖지 말도록 해라." 소년은 놀란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목사가 건넨 속옷 안에 날카로운 칼날이 '그곳'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목사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한다. "우발적인 '사고'를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네." 소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18세기 영국 보수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이야기다. 이처럼 자위가 저주받기 시작한 것은 기독교가 유럽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였다고 저자는 밝힌다. 중세부터 근세까지 유럽에서 자위는 신의 섭리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기독교가 유럽의 종교로 자리 잡은 이후, 그들은 시민들의 성을 통제하는 미시 권력이었다. 정욕은 곧 원죄와 같은 것이었고, 성적 욕망이란 어떻게 해서든 통제해야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부부간의 성관계가 아닌, 오직 쾌락만을 위한 자위행위는 큰 죄악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중세 사람들은 자위행위를 '필수 악'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독일 보름스 지역의 신학자였던 부르카르트는 11세기 편찬한 『교령집』에서 "수음한 남자는 10일에서 20일간 빵과 물만 먹는 참회 고행을 하여야 한다"고 적었다. 열흘 동안 두 가지만 먹는 게 고역이라면 고역이겠지만 대수롭지는 않는 처벌이라는 점에서 가벼운 죄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당시 죄로 규정된 다른 행위의 처벌 강도는 훨씬 셌다는 점이다. 구강성교에는 3년의 참회 고행이 따르고, 부부관계 시에 정상위(남성의 위로 가는 성행위)가 아닌 자세로 해도 마찬가지로 3년 고행형이다. 자위행위가 중세 유럽 기독교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용인될 행위로 봤다는 방증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종교'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된다. 종교는 대개 인간의 본성 중의 하나인 욕망을 스스로 통제하는 힘을 가지도록 한다. 위대한 종교라고 일컬어지는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역시 인간의 본성을 제어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종교의 창시자인 예수, 석가모니, 마호메트 등은 대체로 자신의 고통을 돌보는 것보다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는 노력을 하기 위해서였다. 오랜 고통의 경험을 통해 인간으로서 스스로의 본성을 억누르고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가르침을 주었다. 성경, 불교 경전, 코란 등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감정을 갖는다. 탐욕이나 분노, 정욕 등은 부정적인 본성이다. 부정적인 본성이 드러나면 대체로 죄를 짓게 된다. 이들 종교들은 이런 본성을 드러나지 않게 교리를 통해 성인의 말씀을 전해 듣는다. 그리고 이를 믿음으로 자신의 본성을 억제한다. 이렇게 해야 인간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 그러나 감정이 격해지면 본성은 또다시 고개를 든다. 이 책에서도 색(色)과 관련된 많은 행위들에 대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데서 죄를 짓게 됨을 알 수 있다. 종교와 성은 불가분의 관계임을 반증하고 있는 부분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목욕을 숭고한 의미로 즐겼다. 고대 로마에서는 목욕 문화가 퇴폐와 연결되기도 했다. 로마 제국 후기에 기독교가 유럽에 자리 잡음으로써 목욕 문화는 쇠퇴했다. 목욕을 쾌락의 일종으로 봤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이후 근대에 들어서 계몽주의가 종교의 자리를 대신하면서 위생 관념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한다. 목욕의 부활이다. 우리나라도 고려시대에 발달한 목욕 문화가 조선시대 유교의 벽에 부딪쳤다. 목욕과 성에 관한 이야기는 역사상 끊임없이 등장한다. 영국의 가장 강력한 시대(대영제국)의 문을 연 엘리자베스 여왕(재위 1558~1603)은 영국의 성군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붉은 빛이 도는 금발, 검은 눈동자, 생기가 넘치는 얼굴, 170cm을 훌쩍 넘는 키로 매력적인 여성이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가까운 곳에 있던 사람들의 평가는 사뭇 달랐다고 한다. 생각지도 못한 '악취' 때문이라고 하니 선뜻 공감이 되지 않는다. 강력한 권력자이며 얼핏 들어도 매우 매력적인 여성이었을 그녀에게 향기 대신 악취가 풍긴다면 그녀의 시종들은 모두 '처형감'이다. 그러나 웃지 못할 일은 악취의 원인이 그녀의 목욕 성향이라고 하니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양치질도 거의 하지 않고, 단 음식은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이때문에 이는 썩고 결과는 끔찍한 구취가 났던 것이다. 문제는 중세 유럽에서 목욕은 금기되었다고 한다. 불결이 일종의 시대정신이었을 때이니 가능한 일이었다. 청결을 지상과제로 여기는 오늘날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세상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목욕을 경회의 느낌으로 바라봤다면, 고대 로마에서는 쾌락과 연결된다. 고대 로마 지도자의 권력 기반은 '빵과 서커스'라고 한다. 먹을 것과 유흥을 통해 시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이 서커스 중 하나가 목욕이엇다. 목욕탕에서 일종의 성매매가 이뤄졌다고 하니 '퇴폐의 온상'이었던 것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나체로 따뜻한 물에 들어가서 느끼는 기분 좋은 나른함을 성교와 연관 지었다. 화산 폭발로 사라진 폼페이의 한 목욕탕에서는 목욕하는 사람들의 성교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그림이 남아 있다고 하니 당시 목욕탕이 매매춘의 장소였다는 것을 방증한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이 1776~1788에 펴낸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온수욕에 의해 로마는 무너졌다"고 썼다고 하는 이유다. 쾌락만이 지배 논리로 군림하는 나라는 오래 존속할 수 없다는 통찰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 책의 압권은 〈인물편〉 18장 「때리며 쾌감 느낀 남자, 사드 후작」의 이야기다. 사드 후작은 오늘날 가학성 성애를 일컫는 '사디즘'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그가 쓴 『소돔의 120일』은 변태 소설로 유명했다.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가장 불순한 이야기"라는 평을 받은 이 소설은 꺼림칙한 소재로 가득하다. 동물과 거리낌없이 수간하고, 납치한 미성년자들을 상대로 강간과 윤간을 거듭한다. 근친상간, 소아 성애, 가학 행위에 이은 엽기적 살해는 덤이다. 세상 모든 성도덕을 부정하는 극단의 것들이 나열돼 있다. '야설'로는 부족하고, 고어물 중의 고어물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활자 중독자들마저 "한 장 한 장 넘기기가 힘들다"고 털어놓는다고 한다. 사드 후작의 본명은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이다. 2017년 그가 쓴 『소돔의 120일』 육필 원고가 프랑스 파리 경매시장에 나와서 화제가 됐다. 프랑스 문화부는 그 즉시 경매 중단을 명하고 외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450만 유로(한화 약 60억 원)에 사들였다. 어떤 가치가 있기에 프랑스 정부가 거액을 들여 샀던 것일까? 이 책의 일부를 여기에 적고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10대 소녀를 납치해 오게. 우리는 그들과 밤새도록 강제로 성교를 할 거야. 때론 때리면서, 때론 맞으면서. 가능하면 소년들도 데려오면 좋겠군. 남색이 주는 황홀경도 놓칠 수 없거든."(p.203)

〈인물편〉에는 10개 장에 모두 10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 가운데 대문호 괴테의 이름도 보이고 〈악의 꽃〉의 시인 보들레르도 등장한다. 또 불륜녀의 대명사 아네스 소렐, 남편 친구와 누드 사진을 찍은 소설가 마리 드 레니에 등 여성도 있다. 관심 있는 독자들뿐만 아니라 역사에 관심 있는 독자들도 알아두면 좋을 내용이 담겨 있다. 먼저 읽은 독자로서 일독을 권한다.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은 출간 당시 프랑스 시민들로부터 외면 받았다. 섹스, 죽음, 레즈비언, 변태, 우울, 도시의 부패, 삶의 억압이 담긴 이 책을 프랑스는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타락한 쓰레기'라는 당시 평론계의 조롱이 이어졌고, 보들레르는 미풍양속을 해졌다는 이유로 기소돼 벌금형과 함께 유죄 판결까지 받았다. 시집은 가까스로 출간됐지만 여섯 편이 삭제된 채였다고 한다. 시대보다 앞서 간 병적인 불운의 예술가들은 대개 요절한다. 또 당대에는 빛을 보지 못하지만 죽은 뒤에 진가를 알아본 사람들에 의해 다시 세상에 나온다. 화가 고흐나 귀족 가문에서 자란 버지니아 울프 등이 생각난다. 1977년 9월 5일 미국 나사가 우주탐사선을 발사했다. 보이저 1호다. 인류가 자랑할 만한 작품을 황금색 LP 디스크에 녹음해 로켓에 실었다. '지구의 소리(The Sound of Earth)'였다. 이곳에 실리 작품이 보들레르의 「비상(L'elevation)」이다.

 

연못들, 계곡들, 산들, 숲들, 구름들,

바다 위로, 태양 너머로, 창공 너머로, 별들의 천구 너머로,

나의 정신, 너는 민첩하게 움직이고,

파도 속에서 황홀해지는 헤엄 잘 치는 사람처럼,

너는 말로 할 수 없는 남성적 쾌락을 느끼며

그 방대하고 깊은 곳을 즐거이 누비고 다니는구나.(p.319)

 

저자 : 강영운

 

매일경제신문 기자다. 1988년 초봄 경기도 남양주시 작은 서점에서 태어났다. 날 때부터 책에 둘러싸여, 책을 선생님과 친구로 삼으며 자랐다. 책이 풍기는 향기가 좋았고 종이의 질감에 편안함을 느꼈다. ‘글밥’을 먹으며 살고 싶다고 오랜 기간 생각했다. 언론사에 입사해 ‘작은 꿈’을 이뤘다. 본업으로는 새로운 소식인 ‘뉴스’를 다루고, 부업으로는 옛날얘기인 ‘사색’과 동물의 성을 다룬 ‘생색’을 쓰고 있다. 책에서 받은 통찰과 재미를 독자와 공유하고 싶다. 어떤 책에서도 보기 힘든 내용이 담긴 ‘맛있는 책’을 요리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그리하여 종이책이 멸종 위기에 처한 지금, 작은 파수꾼이 되고자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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