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85km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PCT를 걷다
남난희.정건 지음 / 마인드큐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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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예전에 등산을 다녀봤지만 매니아급은 못 되는 국내 가까운 산 정도다. 젊었을 때 이야기이니 지금은 트레킹도 큰 맘 먹고 계획 세워 다녀야 할 만큼 나이도 들었다. 해외 등산은 산악인, 전문 등산가 등만 다니는 것으로 독자로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도전이다. 그래서인지 사실 외국의 산이나 트레킹은 TV를 통한 영상만으로 만족할 수준이다. 이 책 『4285km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PCT를 걷다』의 PCT(pacific crest trail)도 처음 알았다. 예전 TV에서 봤던 '산티아고 순례길' 정도로 생각했다. 긴 거리 때문에 상상 이상의 체력이 요구되는 곳이란 정도만 책 표제어를 통해 알게 된 지식이다. 4,285km라면 독자 수준의 사람이라면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거리다. 그도 그럴 것이 등산이나 둘레길 경험은 국내에서만 했기에 1,000km 이상의 길은 상상하기 어려운 탓이다.

이 책의 저자는 남난희와 정건, 두 분이다. 남난희는 예전에 그가 낸 책으로 접한 적 있어 알고 있었지만 정건은 처음 만나는 분이다. 남난희는 우리 독자들 중에서도 낯선 이름이 아닐 것이다. 그는 1984년 1월 1일부터 국내 최초로 76일 동안 백두대간 단독 종주에 성공하여 산악계의 샛별이 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여성 세계 최초로 해발 7,455미터 높이의 히말라야 강가푸르나 봉에 올라 세상을 놀라게 한 경험도 있는 전문 산악인이다. 이후 지리산에 거주하며 '지리산학교'를 운영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정건은 아무래도 낯설다. 그러나 그의 이력 또한 만만치 않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1986년 조선대학교 산악회를 시작으로 산에 입문해 조선대 재학 시절 백두대간을 완주했다. 여러 차례 전국 암벽 대회에서 입상하며 산악인으로 기반을 다졌다고 한다. 젊은 시절 산악 마라톤과 유럽 알프스를 등반하며 체력과 기량을 꾸준히 넓힌, 산악인임에 틀림없다. 1994년 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 대원으로 발탁되기도 했다고도 하니 산악인으로 불리울 만큼 산과 산길을 좋아하는 분인 듯하다. 이름이 낯선 것은 도미하여 워싱턴 주 시애틀 근교에서 응급간호사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 표제어에 나오는 PCT는 멕시코 국경에서 출발하여 미국의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 3개 주를 관통하여 캐나다 매닝파크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북아메리카 대륙을 세로로 종단하는 트레일 코스는 현재 3개가 있다.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콘티넨탈 디바이스 트레일(CDT), 그리고 애팔래치아 트레일(AT) 등 3곳이다. 이 가운데 하나인 PCT가 이 책이 탄생한 길이다. 이 길은 걷는 자들에게 꿈의 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 불린다고 해서 이 책의 표제어로 차용된 듯하다. 독자는 처음 듣는 길이지만 사막, 협곡, 호수 등 다양한 자연환경을 마주하며 곰, 방울뱀, 모기 등 걷는 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야생 동물들을 수시로 만나는 곳이라고 하니 자연 환경이 잘 보존된 곳이란 짐작을 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이 길은 우리에게 셰릴 스프레이드의 책과 영화 〈와일드〉의 배경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이 길의 전 과정을 자신이 먹고, 생활해야 할 모든 짐을 스스로 메고 걸어야 한다는 점이다. 텐트와 침낭 등 야영장비뿐 아니라 음식까지 며칠마다 나타나는 보급지에서 우편으로 미리 보내 놓은 보급품을 찾아가며 일정을 진행해야 한다. 운행에 필수품인 물마저 며칠 분량을 스스로 메고 걸어야 하는 길이라고 한다. 그것만 아니라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갖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 스스로를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점 때문에 이 길은 더욱 특별하다. 독자 입장에서는 넘보기에 벅찬 길이다. 이 때문에 이 책이 더욱 절실함으로 다가온다.
책에 따르면 보통 3-4월에 멕시코에서 출발한 도보 여행자들은 10월이나 되어 캐나다 남부의 종착 지점으로 거지꼴이 되어 도착하기 일쑤이다. 그나마 온전히 완주하는 하이커는 연간 몇 명 되지도 않는다.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이 길을 한국의 '아줌마 부대'가 걸어내고 이 책을 썼다. 때론 여럿이 대부분 단둘이. 출발은 함께 했지만 길을 모두 완주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모두의 생활이 있기 때문이고 각자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설적인 산꾼인 남난희와 94 에베레스트 원정 대원이었던 정건이 이 길을 모두 걷고, 걷는 기간의 과정과 단상을 정리해 한 권의 책을 만들어냈다. 무려 5년에 걸친 고군분투 끝에 얻어낸 소중한 결실이다. 코로나가 창궐하는 그 시기에 5년간 매년 한 달씩 걸어 4,285km 길을 걸었다. 걷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처럼 4,285km를 그들은 걸었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오로지 걷기 위해 만들어진 길을, 수 개월간 오로지 걷기만 하며 목표 지점에 다른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의 일상은 매일 꾸준히 반복된다. 걷기 아니면 먹기 그리고 잠자기다. 그 외에는 다른 것이 없는 세상이니 가장 단순한 삶을 사는 것이다. "길이 삶을 이토록 단순하게 해 준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라며 저자 남난희는 이 길을 예찬한다. 길에 따라 사정이 조금씩 다르지만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대개 하루 약 10시간 정도 걷고, 10시간 정도 쉬거나 누워있거나 잔다. 그 외의 시간은 먹고, 물 정수하고, 막영을 준비하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다. 다른 일이 있을 리 없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다면···.
저자에 따르면 이 길을 걷다 보면 생각도 줄어들고, 걱정도 사라지고, 궁금한 것도 없어진다. 대신 어디까지 가야 하고, 얼마나 왔고, 어디에다 캠프를 칠까? 날씨는 어떤가? 이런 것들에만 관심이 있고 집중을 한다. 얼마나 단순한 삶인가? 걷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고 다니느라 등짐은 무겁지만 생활은 더없이 간편하다. 이렇게 아무 걱정하지 않고, 무엇에 얽매이지도 않고, 욕심부릴 것도 없고, 누구를 시샘할 일도 없는 원초적 일상이 매력적인 이 길이 좋다.
저자는 길은 내가 걷지 않으면 절대로 줄어들지 않는다는 가장 단순한 진리를 되뇌며 사막을 지나고 설산을 지나 마침내 원하는 곳에 다다랐다. 그리고 목표를 채우고 난 다음은 충만감도 없고, 특별한 기쁨도 없을 터, 왜 걷는지에 대해 많이 해보지 않고,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가 살아가는 온갖 짐을 등에 지고 걸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작게 사는 것, 적게 먹고 적게 버리는 것, 그것이 자연과 나를 아끼는 방법이고 우리 모두를 살리는 방법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므로 길이 스승인 것이다. 스스로 알게 하는, 오로지 체험만이 참 공부다.(p.160)

 


 

저자 남난희는 「일상의 짐을 메고 긴 길을 걸어 걸을 수 있음에 2023년 PCT」란 제목의 〈서문을 대신해서〉란 글을 통해 이 길을 한 번에 모두 걷지 못하고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거의 6년이 걸렸다고 썼다. 자신이 한국에서 생활하기에 몇 달~몇 년을 미국에서 보낼 수 없기 때문에 한 번에 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구간을 나눠 6년에 걸쳐 완전히 걸어냈다는 말은 다시 한 번 삶에 많은 영감을 준다. 그리고 지난 6년 행복했고, 만족한 날들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아마 산악인이기에, 걷기를 좋아하기에 할 수 있는 말일 것 같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말은 아무리 국가가 정책적으로 지키려 해도 기후변화에 의한 자연 훼손은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자연 환경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기존의 의식을 바꿔야 할 듯한 말도 남긴다. 저자가 이번 걸었던 코스가 '모하비 사막 구간'이다. 그동안 봐온 자료에는 더위와 갈증으로 매우 심한 고생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또 수시로 나타나는 방울뱀과 야생벌 등을 조심해야 한다. 그만큼 자연 훼손이 덜 된 곳이란 의미로도 독자에게는 들린다. 
그러나 이런 급속도로 진행되는 기후변화로 이곳에도 영향을 미치고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일일이 이 책에 적었다. 물론 기후변화 대응이 미흡하다는 주장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기후변화가 이처럼 직접적인 악영향을 몰고 오는데 왜 전 세계인들은 인식을 바꾸지 않느냐고 지적하는 듯하다. 
"그런데 사막이 수상하다. 황갈색으로 황폐하게 메말라 가는 사막이 아니고 노란 꽃이 지천에 피어, 불어오는 바람에 살랑살랑 움직이며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다. 키 작은 나무도 연녹색으로 또는 진녹색으로 자기네 세상이라는 듯 생기발랄하게 나그네의 눈길을 끈다. 지난겨울, 미국의 기후가 이상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사막이 이렇게 생기 넘치는 줄은 몰랐다. 하지만 사막이 꽃밭이 되고 풀밭이 되어있는 것이 당장 보는 우리는 좋을지 몰라도 과연 괜찮은 것인지 모르겠다.(p.13)

 


 

저자들이 단순히 등산가가 아닌, '산꾼'으로 불리는 이유를 독자는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들이 산을 오르고 끝 모르는 길을 끝없이 걷는 것은 산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길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현재 기후가 이상하고, 겪는 피해를 나열함으로써 기후변화 대응을 할 것이 아니라, 현재 기후변화로 달라지는 우리의 지구 전체가 이렇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집중한다. 그리고 산을 오르면서, 길을 걸으면서 보여지는 상황을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길은 지난해 걸었던 워싱턴 구간과는 완전 차이가 난다. 지난해는 거의 야생의 길로 트레일이 이루어져 있었다면 이번 구간, 즉 모하비 사막 구간은 사람의 필요에 의해 간리되어 야생의 맛은 없어 보였다. 주로 바람개비나 수로 등을 관리해야 할 목적 때문인지, 찻길이 여러 갈래로 뚫려 있다. 지난겨울 비가 많이 와서 사막의 꽃도 그랬지만 물도 수시로 만났다. 우리가 그 악명 높은 사막을 걷는지 그냥 겨울날의 평지를 걷는지 모를 지경이다. 사막의 풍취는 고사하고 추위에 떨어야 할 줄은 정말 몰랐다."(p.15)
이 책은 4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 〈2018년-오리건〉, 2부 〈2019년-캘리포니아 남부〉, 3부 〈2021년-캘리포니아 중부〉, 4부 〈2022년 - 워싱턴〉 등이다. 두 저자 남난희와 정건은 같은 길을 함께 걸으며 함께 먹고 자고 했으니 보고 느낀 게 거의 같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길을 두 번 소개하지 않고, 특히 다른 느낌을 새롭게 적을 수 있으니 이 책의 기획과 출판 취지가 잘 맞았으리라 이해된다. 독자들도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르게 느낀 점이 있듯이···. 이들은 각 부의 제목 아래 다른 느낌의 소제목을 달고 있다. 1부에는 「운명적으로 PCT를 만나다」, 2부엔 「나는 길을 걷기 위해 태어난 사람」, 3부에는 「길은 내가 걷지 않으면 절대로 줄어들지 않는다」, 4부는 「매일매일이 내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가 부제로 적혀 있다.

 


 

이들 저자들은 따로 따로 집필해도 감정 표현과 함께 걸으면서 받은 영감은 표현상으로 다르다. 저자들은 아낌없이 그리고 정직하게 이를 책에 적어 넣었다. 독자에게는 같은 장소 다른 느낌이 전해지는 행운으로 다가서기도 한다. "우리가 걸은 트레일은 단조로움이 함축된 세계다. 매일 똑같은 리듬과 지극한 단순함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인위적인 규칙이나 규범, 기준이 없는 곳이다. 오직 자연과 인간적인 척도만 있는 곳이 우리의 세상이었던 PCT다. 모든 것을 스스로, 오로지 자신이 행하고 자신이 책임진다. 철저히 독립적으로 야생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본인이 스스로 자연임을 인식하게 하는 그 시간들은 참으로 축복받은 시간이었다."(p.329)

저자 : 남난희

지리산학교 숲길걷기반 교사, 지리산걷기학교 교사, (사)백두대간평화트레일 이사장.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1981년 한국등산학교를 수료했다. 유난히 눈이 많이 오던 1984년 1월 1일부터 국내 최초로 76일 동안 백두대간 단독 종주에 성공하여 산악계의 샛별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여성 세계 최초로 해발 7,455미터 높이의 히말라야 강가푸르나 봉에 올라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 뒤 ‘금녀의 벽’으로 불리던 350미터의 국내 최장 설악산 토왕성 빙벽 폭포를 두 차례나 등반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1994년부터 지리산에 내려와 살다가, 2000년 강원도 정선에서 일반인을 위한 자연 생태학습의 장인 ‘정선자연학교’를 세워 교장을 맡았다. 그러다 2002년 여름 태풍 루사가 온나라를 휩쓰는 바람에 그동안 피땀 흘려 이룬 모든 것을 잃고 나서 다시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현재 지리산학교와 지리산걷기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백두대간을 국제적 수준의 트레일로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러한 활동의 성과를 인정받아, 올해(2022년) 스위스의 ‘킹 알베르트 재단’에서 수여하는 ‘마운틴 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저서로 백두대간 단독 종주의 기록 에세이 『하얀 능선에 서면』과 산문집 『낮은 산이 낫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한 57일의 백두대간 등산 에세이 『사랑해서 함께한 백두대간』, 『당신도 걸으면 좋겠습니다』 등이 있다.

저자 : 정건
1986년 조선대학교 산악회를 시작으로 산에 입문하였다. 조선대 재학 시절 백두대간을 완주하였다. 여러 차례 전국 암벽 대회에서 입상하여 산악인으로 기반을 다졌다. 젊은 시절 산악 마라톤과 유럽 알프스를 등반하며 기량을 넓혔다. 1994년 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 대원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원정 이후 도미하여 워싱턴 주 시애틀 근교에서 살고 있다. 질병관리학을 공부하여 현재 스위디쉬 병원 응급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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