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부부 범죄
황세연 지음, 용석재 북디자이너 / 북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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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로서는 오랜만에 단편소설집을 읽는다. 더욱이 추리소설이다. 특히 부부간 범죄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 『완전 부부 범죄』는 독자의 눈길을 잡아 끄는 강력한 요인이 있다. 표제어에서 드러나듯 부부간 범죄를 소재로 다룬 점이다. 결혼 생활이라고 하기도 하고, 부부 생활이라고도 하지만 달콤한 신혼 생활이나 행복한 삶을 위한 부부간 노력에 대한 것이 아니다. 정반대다. 살인도 불사하는 두 사람의 파탄지경을 소재로 한다. 요즘 이혼이 많아지고, 더욱이 결혼은 해도 아이를 갖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지만, 입방에서 오르내리는 것으로는 일부 사람들의 일탈로 생각하는 듯했다. 대한민국 사회가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공식화된 지 이제 겨우 10여년 됐다. 예전엔 가난했어도 부부의 갈등이나 말다툼 같은 것은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대수롭잖은 것이었다. 또 설령 심각한 갈등이 있더라도 상대를 해치려 하지는 않았다. 유교적 관념에 길들여진 데서 빠져나오지 못한 탓일까? 그러나 뉴스에 나오는 부부 갈등 문제는 심각한 범죄 행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전통 부부 관계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회로 탈바꿈하는 데서 오는 불가피한 흐름일까? 불륜이든 돈 문제든 부부 관계 파탄은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이 소설에서 독자는 부부간 상대에 대한 신뢰나 사랑이 없는 관계에서 오는 비틀림 같은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저자 황세연은 장편소설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로 2018년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대상, 한국추리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작가다. 이 책에 실린 8편의 소설은 잡지 등에 발표된 작품도 있고, 이번에 새로 쓴 단편도 있다. 부부 사이에서 일어난 범죄도 끔찍한 일이지만 이 책은 '완전범죄'를 꿈꾼다. 완전범죄를 꿈꾼다는 것은 우발적 범행이 아니고,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일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독자들의 눈길을 끌기에도 충분한 소재이다. 저자는 평범한 부부보다는 뭔가 결핍된 부부간이 범죄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 같다. 추리작가로 검증 받은 한 중견 작가의 단편 소설을 읽는 일이 독자의 눈과 마음을 사회 병리 현상과 연관되는 찜찜함 속에 보상적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은 왜일까?

 


 

이 책 『완전 부부 범죄』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인 부부가 겪는 치열한 갈등과 그것으로 야기된 살인사건 여덟 편을 담고 있다. 서로 다른 생활 습관으로 인한 사소한 다툼, 돈으로 인해 퍽퍽해진 삶, 반려가 아닌 타인을 향한 부정한 관심, 가족 전체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폭력 등 뉴스는 물론 현실에서도 흔히 듣는 범죄 동기라 되레 일상적인 범죄로 인식될 정도다. 생각해 보면 실제로 일어나는 범죄에 있어서 굵직한 살인 동기란 그리 많지 않다. 동기 없는 범죄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면서 사소한 동기로 유발된 살인, 소소한 일상 미스터리가 독자의 관심을 사고 있으나 한편으로 오래전부터 부부간 애증 관계야말로 인간의 관심을 끌어온 원초적 범죄 동기 중 하나라고 저자는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부부간 살인’이라는 테마로 구성된 이 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며 많은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흥미로운 작품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결혼에서 무덤까지」는 치매 노인의 심리를 따라가는 심리 추리소설이다. 치매로 단기 기억 상실증을 앓는 여자, 머릿속이 하얗게 리셋되고 나서 정신이 드는 순간 눈앞에 끔찍하게 살해된 남편의 시체가 누워 있다. 그녀의 주머니에 들어 있는 완전범죄 설계도, 그리고 모든 현장 상황은 그녀가 범인임을 암시한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을 죽일 이유가 없다. 어떻게 된 일인가? 두 번째 작품 「인생의 무게」는 이른바 액자소설이다. 소설 속에 또 소설이 들어 있다는 말이다. 작중 남편은 작가이다. 게으르고 허영심 가득한 아내 지영은 우연히 재미와 호기심으로 남편의 탈고 전 소설을 읽어본다. 늘 그렇듯 남편 몰래 훔쳐 읽은 또 다른 소설에는 자신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중년 여성이 묘사되어 있다. 소파와 한 몸이 되어 TV만 보는 육중한 비곗덩어리, 쇼핑에만 가치를 두는 속물, 결국 창고행이 될 쓰레기나 다름없는 예술작품을 사들이는 호구 컬렉터. 더 소름 끼치는 건 미완성 소설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 아내를 감쪽같이, 그리고 우아하게 죽이는 방법을 생각해 볼 것”이라는 작가 남편의 메모다.

 

 

반신반의하던 아내는 남편이 소설을 쓰다가 조사가 필요한 미심쩍은 부분을 ‘###’로 표시해 두고 반드시 실행했었다는 것, 다음 날 남편이 자료조사차 집을 비운다는 것 등 여러 정황이 자신을 살해하려는 계획과 맞아떨어짐을 깨닫는다. 살기 위해 남편을 죽이기로 한 아내. 마지막에 살아남는 이는 누구일까. 애초에 이 모든 일이 아내의 착각은 아니었을까. 저자 황세연은 〈작가의 말〉을 통해 이 단편 「인생의 무게」의 맨 끝에 메모를 남긴 의도를 알아챈 독자가 있다면 천재 프로파일러라고 할 수 있을 것으로 적고 있다. 이 작품의 제목 「인생의 무게」에 대한 작가의 말도 흥미롭다. "오래전, 어느 유명 소설가가 해준 조언이 있다. '소설 제목은 읽고 나서 재미있는 제목보다는 읽기 전에 재미있는 제목이 훨씬 좋다. 제목은 내용과 달라도 상관없다.' 나는 지금도 그 말을 진리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인생의 무게」는 고심해서 제목을 지어놓고 보니 읽고 나면 의미 있는 제목이지만 읽기 전에는 진부하고 문학적(?)이어서 아무도 읽으려 들지 않을 것 같았다. 다시 고심 끝에 그나마 나은 듯한 '천생연분'으로 제목을 바꿨다. 그런데 뒤늦게 이 소설을 읽은 어느 작가님이 이 소설의 제목은 원래 제목인 '인생의 무게'여야 한다며 마치 자기 작품인 양 큰소리쳤다. 그래야 평작이 명작이 된다나? 듣고 보니 맞는 말인 듯하여 다시 원래 제목으로 변경했다."(p.307~308)

저자는 「진정한 복수」도 제목을 지어놓고 보니 너무 식상하고 촌스러워 아무도 읽으려 하지 않을 것 같았다고 말한다. '진정한 복수'하면 떠오르는 게 상대를 용서하고 내가 잘사는 게 진정한 복수 아니던가. 이 얼마나 읽고 싶지 않은 제목인가. 그래서 그나마 낫다고 생각되는 '복수의 법칙'으로 제목을 수정했다고 밝힌다. 「진정한 복수」는 부도덕한 아내가 꼴도 보기 싫은데 절대 이혼은 할 수 없는 상황의 남자가 '어쩔 수 없이' 아내를 죽이기 위해 '진정한 복수'를 덫으로 이용하는 이야기다. 문학평론가 배휴는 〈계간 미스터리〉 2022년 봄호 「황세연론」에서 이 작품을 '변증법적 추리소설의 수작'이라고 평가했다.

 


 

배휴 문학평론가는 책의 뒷 부분에서 「소극(笑劇), 변증법을 통해 드러난 황세연의 정신세계」란 제목의 〈작품 해설〉을 통해 "황세연의 작품은 유머로 넘쳐난다"고 전제하고, "풍부한 해학성이 내실을 다져 정점에 오른 작품이 2018년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이다. 이 작품에는 데뷔작인 「염화나트륨」(신춘문예 당선작)에서부터 발휘된 그의 역량이 총동원돼 있다. 황세연 추리소설의 맛을 제대로 느껴보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흥미로운 것은 그의 독특한 유머 감각이 변증법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고 주장한다. "사고방식의 소유자치고 유머 감각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B, 브레히트의 말을 인용한다. 이 말은 황세연의 정신세계에 딱 들어맞는 말이라는 주장이다. 황세연은 한 사물(인물)이나 사건의 정체성은 변증법적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드러날 수 있다고 본다. 염화나트륨(소금)의 용도(정체성)는 성폭행을 당한 여고생의 불결한 몸을 정화하는 물질이었다가 살인 도구가 욕조에 던져졌을 때 전기를 통하게 하는 매질 즉 전해질(살인에 성공!)로 변한다고 지적한다.

배휴는 이 책에서 황세연 특유의 변증법적 단어라 볼 수 있는 치매(알츠하이머)를 통해 스토리의 결말을 매조지하는 작품(「결혼에서 무덤까지」)도 있고, 「진정한 복수」에서처럼 사랑이라는 테마를 매개 항 삼아 인간의 내면과 외면의 변증법을 다루고 있기까지 하다는 말이다. 본인한텐 사랑하는 척(내면의 세계)에 불과하지만, 남한텐 진정한 사랑(행위)으로 이해된 외면의 세계, 양자의 변증법적 다툼으로 한 발 더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배휴 평론가는 「진정한 복수」는, 남자 주인공이 김낙인의 '복수의 법칙'을 악용해 아내의 뒤통수를 치려고 했지만 정작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은 자신이라는 '원환적인 이야기'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닫힌 세계, 출구가 없는 폐쇄된 세계, 끝없이 직진하면 결국 자신의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원환적인 세계 내에서 작동하는 변증법적 원리란 무엇일까? 이게 황세연의 궁극적 물음이 아닐까? "고조된 상승과 심연을 뛰어넘는 초월이 가능한 이원적 세계 내에서 작동했다면 황세연의 변증법적 원리는 표 나게 삶의 고양감과 인식의 점진적 진보에 대해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와 달리, 일원적 세계 내에서의 변증법적 원리는 소극(笑劇, farce)의 형태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p.315~316)

 


 

같은 시대, 공간을 공유하는 「범죄 없는 마을 살인사건」은 ‘20년간 단 한 건의 범죄가 일어나지 않은 마을’이라는 배경은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과 같으나 분위기와 사건은 판이하다. 낯선 시골 흉가로 이사 온 남자의 소문 속 보물을 찾기 위한 고군분투기인 「보물찾기」는 저자의 아내와 공동으로 집필한 작품이라고 한다. 작품을 반쯤 썼을 때 심한 독감에 걸려 끙끙 앓느라 마감에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러자 아내가 구원투수로 나섰다고 저자는 밝힌다. 독자는 소설 작품을 형제가 공동 집필한 경우를 외국의 예에서 본 적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작가 중 처음이다. 이 작품은 줄거리를 듣고 난 아내가 자기 취향에 맞는다며 밤새 써서 완성했다고 한다. 나중에 저자가 한 번 손을 보긴 했지만, 소설 앞쪽과 뒤쪽의 문체, 말투, 분위기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는 말을 남겼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농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비리가 너무 많다」, 짜릿한 밀실트릭과 인간사의 부조리를 적절하게 융화한 사회파 추리소설 「내가 죽인 남자」, 클리셰의 고전이지만 여전히 유효한 클로즈드 서클 형식의 「개티즌」까지. 보편적인 추리문법 속에서 오랜 시간 탄탄하게 쌓아 올린 작가의 저력이 빛을 발하는 단편들이 수록돼 있다.

 

아내가 놓고 간 돈을 나는 한참 동안 내려다봤다. 삶이 참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게 참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잠시 은행이라도 털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은행을 털어 잡히지 않으면 좋고 잡히면 교도소에 가서 공짜 밥을 먹으며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저녁때 3만 원을 들고 동창 모임에 갔다. 따분한 만남이었다. 친구 녀석들의 화제라는 것은 직장에 관한 이야기, 아파트가 당첨되어 새집으로 이사 간다거나 큰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 간 이야기, 어디 집값이 오를 것 같으니 투자하라는 이야기, 아들딸에 관한 이야기들뿐이었다. 내가 끼어들 수 있는 이야깃거리는 아무것도 없었다.(p.142) - 「비리가 너무 많다」 중에서

 


 

저자 : 황세연

 

충청남도 청양 칠갑산 밑에서 태어나 자랐다. 대전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 경영학을 전공했다. 광주교도소에서 경비교도대로 군 복무를 했다. 26세 때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염화나트륨』이 당선된 후 10년간 전업 작가로 소설을 써온 한편, 영화 시나리오 작가, 라디오 방송 작가, 광고 콘티 작가, 국가정보원 추리퀴즈 작가로도 활동했다. 결혼 후 전자책 출판사에서 10년간 편집자로 일했다. 회사 합병으로 직장에서 잘린 뒤 다시 열심히 소설을 쓰고 있다.

장편소설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로 PC통신 문학상, 《미녀 사냥꾼》으로 한국추리문학상 신예상,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로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대상과 한국추리문학상 대상, 단편소설 『스탠리 밀그램의 법칙』 『흉가』로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을 2회 수상하였다.

그 외 출간작으로 국가정보원 홈페이지에 연재한 추리퀴즈를 모은 《IQ 추리퀴즈 프로젝트》 《EQ 추리퀴즈 프로젝트》와 장편소설 《삼각파도 속으로》(해양 미스터리) 《셜록 홈순 탐정단-도깨비 광산의 비밀》(동화), 단편소설 『환상의 목소리』(로맨스 미스터리) 『고난도 살인』(SF 미스터리) 『냥탐정 사건 파일-천사의 심장』(본격 미스터리) 『40원』(괴기 미스터리) 등이 있다.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염화나트륨」이 당선되어 데뷔. 장편 추리소설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로 PC통신 문학상, 『미녀사냥꾼』으로 한국추리문학상 신예상,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로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대상과 한국추리문학상 대상, 단편 추리소설 「스탠리 밀그램의 법칙」과 「흉가」로 황금펜상을 2회 수상했다. 근래 발표작으로 장편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 『삼각파도 속으로』 단편 「흉가」 「고난도 살인」 「냥탐정 사건 파일: 천사의 심장」 「내가 죽인 남자」 등이 있다. 소설 외에도 국가정보원 홈페이지에 연재한 추리퀴즈를 모은 『IQ 추리퀴즈 프로젝트』 『EQ 추리퀴즈 프로젝트』, 동화책 『셜록 홈순 탐정단: 도깨비 광산의 비밀』 등을 출간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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