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로 간 소크라테스 - 철학자의 삶에서 배우는 유쾌한 철학 이야기
김헌 지음 / 북루덴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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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전쟁터로 간 소크라테스』는 독자가 그동안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에 대한 일침을 가하고 있다. 고대 특히 서양 도시국가 시대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시대다. 아테네 등 몇 곳에서 찬란한 문명을 이루었지만 모두 주변 국가와의 수없이 전쟁을 치르면서 국가를 지켜냈고, 승리한 강대국들이 문명도 훨씬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인물 중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참여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왜 아테네 문명의 많은 학자들에게서 배제했을까? 당시 귀족 등 학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시민으로서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기 위해 17세 이상의 남자일 경우 모두 군대에 가야 한다는 의무로서의 법이 있었고, 아테네 남자들 역시 대부분 군에 입대해 전쟁에 참여했을 것이다. 당시는 학교라는 것이 없었기에 선생이나 교육자에게 대한 징집 면제 혜택도 없었으니 당연히 그리스 모든 시민은 병역 문제를 스스로 군에 가서 해결해야 진정한 시민으로서의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로마 역시 남자는 그리스처럼 17세 이상의 남자는 군대에 가야 하고 등급에 따라 전쟁에서 주요 역할을 해야 했다고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로마군이 강했던 것은 용병 제도를 운용했거나, 무기 개발에 특별히 힘썼다는 점도 이유가 되겠지만 무엇보다 로마 제국 초창기에는 로마 시민만이 로마군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로마의 시민이 10만 명 안팎이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군단제로 운영할 때 25만 안팎의 병력을 소유했다고 알려져 있다) 병력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인근의 부족들을 하나씩 점령해 나갈 때도 지휘관이나 주요 요직은 로마 시민으로 못박았다고도 한다. 당연히 로마 시민은 전쟁에 이기면 전리품까지 나누어 받으니 호화생활(정복자로서)을 유지하려면 계속해서 전쟁을 벌여 나가야 했던 것이다. 그럴 때도 지금의 프랑스, 스페인, 독일, 영국 등을 군단을 파견해 정복 전쟁을 계속했다니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도 언급이 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로마군은 정복국에 대한 신뢰는 전혀 보여주지도, 바라지도 않았다고 한다. 피재배국에서 스스로 입대한 사람을 제외하고서는 전혀 로마군에 강제 동원하지도 않았다니 그들의 군대 문화는 가히 철저한 자주 의식에서 강한 면모를 가졌나보다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철학 인문서다. 철학이 사람과 사람의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이 책은 철학자들을 다룬다. 그의 학자로서의 면모보다는 많이 듣지 못한 그의 주변 사람들과 철학자들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저자 김헌은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철학자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소크라테스가 전쟁에 참여했다는 말도 독자는 이 책에서 처음 들었고, 사실 생각마저도 해본 적이 없었다. 군대와 철학자는 잘 어울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누구도 전쟁터에 철학자들이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철학자들은 없었기에 더욱 생소한 조합이다. 이 책은 이에 따라 철학책의 클리셰를 과감히 벗어 던졌다. 저자는 그 의도를 「무엇을 사랑하며 살 것인가?」란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명백히 밝힌다. 무려 21페이지에 달하는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하이데거의 예처럼 철학자의 삶 자체와 그 속에서 이루어진 철학적 사유를 살펴보고자 합니다”고 밝히고, 저자는 ‘철학 하는 것’이란 생각하고, 공부하고, 개념을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철학에 따라 행동하는 일상적 삶이라 강조한다.

이 책이 딱딱한 철학서가 아니라 '유쾌한 철학 이야기'로, 철학자의 삶을 풀어낸 점을 뚜렷이 밝힌다. 한마디로 '흥미롭고 유쾌한 철학 이야기'라는 것이다. 인문학자인 저자는 ‘인문학’은 ‘인간다움을 탐구하는 학문’이라 정의하며, 그 역할은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인문학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그 대안으로 철학에 대한 재검토를 제시한다. 그는 철학을 “인간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학문으로 정의하며 그 구체적 탐구와 사유의 모델로 하이데거의 예를 든다.

저자는 문(文)·사(史)·철(哲)로 불리우는 인문학의 올바른 의미와 차이점을 먼저 제시하고 독자들의 올바른 이해를 바란다. 세 분야는 모두 인문학으로 구분되는데 명확히 구분되는 다른 점을 탐구한다. 저자에 따르면 역사는 사실에 입각하여 실증적인 탐구를 해 나간다. 지금까지 인간이 이 세상에 무엇을 남겼느가를 정확하게 밝혀내려고 한다. 오직 사실만은 밝혀내겠다는 의지가 남다른 분야이다. 실증적인 증거가 없다면 아무것도 단언하려고 하지 않고,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며, 증거 자료를 찾아 사실이 아닌 것은 엄격히 제거하고 제한한다. 반면 문학은 기본적으로 사실에 충실하고 세상과 인간에 관한 진실을 지향하지만, 역사처럼 실증의 덕목에 묶여 있으려 하지 않는다. 인간이 실제로 무엇을 했는가를 탐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런 인간이라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즉 인간의 가능성을 마음껏 상상하는 가운데 인간이 무엇이며 무엇일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역사와 문학을 비교하며,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인용한다. "시인의 작업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었던 일, 즉 개연성이나 필연성에 따라 가능한 일을 말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따라서 "역사가와 시인의 차이점은 한 사람은 일어났던 일들을 말하는 반면, 한 사람은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말한다는 데 있다."

 


 

저자는 인간이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것은 분명 인간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하고, 이로 인해 역사와 문학이 인문학의 중요한 두 축이 된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들 사이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들을 고찰하고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즉,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문제이며, 당위성을 따지는 것이다. 인간과 세상의 실상을 파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을 넘어서는 곳에서 철학이 그 고유한 빛을 찬란하게 발한다고 역설한다.

독자는 지금까지 문·사·철, 인문학에 대해 이렇게 명료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책도 읽은 적이 없다. 학생들에게 이렇게 명료하게 철학·역사·문학을 이해시킬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철학은 '인간은 이렇게 했다. 그리고 인간은 이런 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해야 도리가 아닌가?라는 당위의 문제를 다루며, 사람들이 가야 할 길을 환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철학도 역사처럼 인간과 세상의 실체를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무엇을 해야만 하고, 그렇게 했을 때, 인간과 세상은 어떤 행복을 누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단순히 논리적인 탐구만이 아니라 문학에서와 같은 모종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철학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당위성을 제안하는 가운데 인간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데에서 최종적인 결실을 맺으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의 윤리적 문제를 다루었던 소크라테스를 철학의 본격적인 시작점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소크라테스 이전에도 많은 철학자들이 있었지만, 진정 인간의 윤리적인 문제를 다룬 철학자는 소크라테스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로마의 철학자인 키케로의 『투스쿨룸 대화』라는 책을 인용한다.

"그 옛날의 철학으로부터 아낙사고라스의 제자인 아르켈라오스에게서 강의를 들었던 소크라테스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은 숫자들과 운동들을 다루어 왔고, 모든 것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별들의 크기, 간격, 궤적과 천체에 관해 아주 진지한 연구를 해왔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처음으로 철학을 하늘에서 도시들과 인간들 안으로 불러들여 자리 잡도록 했고 집 안으로 끌어들였으며, 삶과 죽음, 선한 것들과 악한 것들에 관해 탐구하도록 만들었다."(p.13~14)

 


 

이 책은 철학자의 삶을 통해서 그가 문제를 인식하고 질문을 던지고 진지하게 답을 찾아가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책은 모두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분화구 속으로 뛰어들다〉, 2부 〈정의는 강자의 이익〉, 3부 〈전쟁터로 간 소크라테스〉, 4부 〈독주 한잔〉 등이다. 각 부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우리 삶에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는 '전쟁' '정의' '지혜' '쾌락' 등에 관한 사유이다. 이 책에는 서양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부터 이후 로마시대 이전까지의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1부에서 그리스 이전의 철학자들이 주로 등장한다. 물, 불 등 세상에 널리 산재해 있는 만물에 대한 사유를 끌어냈던 철학자들이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오늘날 자연과학 분야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이 시대에 등장하는 인물은 퓌타고라스, 탈레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엠페도클레서, 아낙사고라스, 데모크리토스 등의 철학과 그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을 오늘날 그리스 철학과 다른 명칭인 '자연주의 철학자'라고 칭한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과는 크게 달라 보입니다”라고 하며 “우리의 일상생활의 현장에 가까이 있는 느낌”이라고 당시의 분위기를 설명한다. ‘철학자’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퓌타고라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관해 철저하게 알고 싶어한 탈레스는 삶 속에서 철학을 실천하려 한 최초의 철학자들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신의 철학적 신념에 따라 죽음을 불사하기조차 했다.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한 엠페도클레스는 에트나산의 꼭대기로 올라가 스스로 분화구 속으로 뛰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학 안으로 들어가 ‘철학 하는 것’을 보여준 철학자들의 생생한 모습에 대한 이야기가 독자들을 흥미롭게 한다.

2부는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소피스트에 관한 이야기다. 김헌은 ‘궤변론자’라고 알려진 소피스트가 “객관적이고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왜 그렇게 불리게 되었는지를 먼저 살핀다. 저자는 당시 소피스트들은 강연이나 교육을 통해 수업료를 받으면서 ‘지식 장사꾼’이라는 비난을 받았다고 말한다. 소피스트 이전의 철학자들 누구도 자신의 철학으로 대가를 받지 않았으며, 당시 사람들은 지식이 상품처럼 팔고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소피스트가 수사학, 즉 연설의 기술, 설득의 기술을 가르치고 수업료를 받는 것이 문제가 될 건 없어 보인다”며 소피스트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만을 가르치려 한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소피스트에 대한 오래된 비난과 프레임을 넘어 그들의 철학적 내용을 소피스트의 삶과 궤적을 통해 다시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책에 따르면 프로타고라스는 소피스트로 알려져 있다. 프로타고라스는 아테네의 최고 권력자 페리클레스에 의해 입법책임자를 맡았는데, 현대 철학자들은 프로타고라스를 ‘현상론자’라고 한다.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의 감각으로 포착할 수 있는 것, 사람의 감각에 드러나는 현상만 ‘있다’고 말할 수 있고, 감각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프로타고라스는 ‘어떤 것이 아름답고 추한가, 좋은가? 나쁜가,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다는 의미에서 “인간(또는 개인)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했다. 프로타고라스는 상대주의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회의주의 철학자 고르기아스는 “있는 것은 없다. 있다고 해도 알 수 없다. 안다 해도 말할 수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트라쉬마코스는 소크라테스와 ‘정의란 무엇인가’로 논쟁을 벌였다. 트라쉬마코스는 “정의는 강자의 이익입니다”라고 주장하며, “도대체 누가 법을 만드는가”라며 사회적 강자를 문제 삼았다. 트라쉬마코스의 논리에 따르면, 약자들은 법을 지킬수록 손해를 보고, 그 법을 만든 사람들의 이익을 크게 하는 데 일조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약자의 이익을 돌보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법과 제도에 편승해서 부를 축적하고 특권을 누리는 것은 사회적 강자들이다.

3부에서 저자는 진정한 철학의 시대로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사유를 그들의 삶과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서 서술한다. 소크라테스는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며,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꼽힌다. 서양철학이 그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아 석공이나 조각가로 평생을 살아가는 대신,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우고 사람다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돕는 정신의 산파로서, 정신의 조각가로서 철학자의 길을 걸어갔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구름 위에 있는 철학자가 아니었다. 포티다이아 전투에 중무장 보병으로 참가하기도 했고, 혹한의 겨울 날씨에 평상복 차림으로 군영 밖으로 나가 활보했다고 한다. 크산티페와 결혼한 소크라테스는 천하의 백수로 살았던 사람이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고라 장터에 나가 사람들과 철학을 한답시고 노닥거리기 일쑤였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로 알려졌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던 유명한 격언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그때부터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아폴론 신전의 격언을 가장 잘 실천한 사람이었다. 그의 삶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그가 고발당하고 재판정에 서서 사형선고를 받고, 그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는 최후의 장면이다.

 


 

무지를 들킨 아테네 사람들이 소크라테스를 괘씸하게 여겨 없애려고 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이 요구한 탈옥을 거부했다. 자신은 죽음을 기다려 왔고, 또 죽음을 연습했다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란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자신이 아테네의 법에 따라 진행된 재판의 결과까지 거부하면서 죽음을 피한다면 자신의 삶은 모순일 수밖에 없다고 강변했다. 철학의 절정, 철학의 완성이 바로 죽음이다.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서양철학의 가장 중요한 틀을 만든 사람은 플라톤이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스무 살에 만나, 불과 9년 동안 제자로 지냈다. 플라톤은 기록에 따르면, 적어도 세 번은 전쟁에 나갔다. 플라톤은 인간의 본성은 이성이고, 그 이성에 의해 인간은 도덕과 행복을 추구해 나갈 수 있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철학이 개념을 다듬고, 그 개념을 논리적으로 잘 짜 맞춰서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학문이라면, 논리적인 구조를 갖춘 기하학이나 수학을 공부하는 것은 철학적 사유를 하는 데 기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은『국가』에서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자가 되어 국가를 다스리는 철인정치를 주장했다. 플라톤은 아카데미아를 세우고 20년 동안 학문에 매진하고 결사적으로 많은 작품을 써 내려갔다. 특히 이상적인 정치를 그려낸 『국가』가 현실에서는 무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학문적 반성을 토대로 좀 더 현실적인 국가의 청사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플라톤과 같은 시대에 활동한 이소크라테스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사상과 교육, 구체적으로 학교 운영까지도 플라톤과 치열한 경쟁 관계였다. 이소크라테스는 심지어 “나야말로 진짜 철학을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저자 : 김헌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서양고대철학, 플라톤), 서양고전학 협동과정에서 석사학위(서양고전학, 호메로스)를 받고 박사 과정을 수료한 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박사학위(서양고전학, 아리스토텔레스)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HK교원)로 재직 중이다. 서양 고대 그리스의 문학과 신화, 고전기 아테네의 수사학과 철학이 주요 관심 분야이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인문학의 뿌리를 읽다』, 『그리스 문학의 신화적 상상력』,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 등의 저서가 있고, 역서로는 『두 정치연설가의 생애』, 『그리스 지도자들에게 고함』, 『‘어떤 철학’의 변명』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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